1월23일 오전 7시40분. 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서 김(70)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요즘 출근길 지하철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신문 할아버지’ 중 한 명. 승객이 빽빽하게 들어찬 지하철 안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읽다 버린 무료신문을 수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구로동에 사는 김 할아버지는 매일 오전 7시 대림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탄다. 버려진 신문을 쫓아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면서 2호선 노선을 한 바퀴 돈다. 대림역까지 그와 동행했다.
155cm가 될까 말까 한 작은 키. 손을 힘껏 뻗쳐 선반 위에 그득하게 쌓인 신문을 끄집어내린다. 사람들은 대부분 할아버지에게 관심이 없다. 할아버지의 관심도 오로지 신문뿐이다. 빈 자루가 빠른 속도로 신문으로 채워진다. 흐르는 땀을 연신 수건으로 닦는데도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kg당 70원 … 용돈 벌고 운동 되고 일석이조
kg당 70원. 애써 모은 신문을 고물상에 가져다주고 받는 값이다. 김 할아버지는 매일 신문을 50kg씩 수거한다고 했다. 하루 수입은 3500원. 주말을 빼고 한 달 내내 ‘출근’해도 겨우 7만원 버는 셈이다. “사람이 게으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여. 짐승이라면 잡아라도 먹지.” “얼마 벌지 못하는 거 뭣 하러 하시냐”고 묻자 나온 그의 대답이다.
김 할아버지는 ‘신문 할아버지’ 사이에서 경제적 형편이 넉넉한 편에 속한다. 18평짜리 연립주택을 갖고 있고 매달 20만원 정도의 국민연금을 받는다. 구로공단에서 청소일을 하는 아내의 월급이 55만원이며, 자녀들이 매달 10만원씩 용돈도 준다. 그럼에도 신문 수거를 고집하는 이유는 ‘사지 멀쩡한 사람이 놀고 먹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신문을 줍다 둘째 며느리를 우연히 만나는 바람에 크게 혼이 났다고.
대림역에서 김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난 뒤 안종혁(73) 할아버지를 만났다. 신길동에 사는 그는 오전 7시에 집을 나선다. 신대방삼거리역에서 7호선을 타고 온수역까지 왕복하면서 신문을 모은 뒤 집에 가져다둔다. 그리고 다시 7호선 지하철을 타고 대림역으로 와서 2호선으로 갈아탄다. 안 할아버지는 대림역에서 이대입구역까지 왕복하며 하루 50~70kg의 신문을 모은다고 했다.
배낭은 이미 신문으로 가득 찼다. 안 할아버지는 지하철 바닥에 앉아 나머지 신문을 노끈으로 묶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급하게 묶은 탓에 이대입구역에 도착하자마자 노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승강장 바닥에 흩어진 신문을 모으느라 진땀을 빼는 안 할아버지를 몇몇 승객들이 측은한 눈길로 쳐다봤다.
안 할아버지에게서는 소주 냄새가 났다. “아침에 소주 반 병씩 마셔요. 그 힘으로 이 일을 하지. 허허.” 군대에서 다치는 바람에 다리를 저는 그는 작년에야 뒤늦게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매달 정부에서 나오는 30만원가량의 장애인 수당이 수입의 전부. 이 돈으로 허리 다쳐 거동이 불편한 아내와 막내아들이 맡기고 나간 열한 살짜리 손자를 돌봐야 한다. 안 할아버지가 지하철에 나오는 이유다. 신문 폐지뿐 아니라 매일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빈 종이박스 등을 수거해 고물상에 내다 판다. 그렇게 버는 돈이 한 달에 약 15만원이다.
“손자 녀석 학원에 못 보내는 게 참 미안해요. 그래도 다행인 게 손자가 참 착해요. 요즘 방학이라서 카트 가지고 역까지 마중 나오거든요. 신문 끌고 동네 지나다니는 걸 창피하게 여기지 않으니 참 기특하죠.”
신문 할아버지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지하철 노선은 역시 2호선이다. 승객이 많은 만큼 버려진 신문도 많기 때문. 25일 오전 9시, 2호선 충정로역 승강장에는 무료신문이 가득 담긴 자루가 여기저기 놓여져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신문 수거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한 아이디어도 생겨났다. 카트 위에 작은 냉장고가 들어갈 만한 큰 박스를 얹어 신문을 담는 것이다. 한 할아버지는 “이렇게 하면 하루에 150kg도 혼자서 거뜬히 가져갈 수 있다”고 자랑했다.
충정로역 승강장에서 이성부(74)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이곳 승강장에 ‘베이스캠프’를 차려놓고 지하철을 갈아타가며 신문을 모았다. 그는 차가운 승강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신문을 차곡차곡 쌓은 뒤 노끈으로 묶으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올 소원은 정기적 일자리 갖는 것”
“우리 아버지가 오사카 항구에서 함바 오야붕(인부 우두머리)을 했어. 광복 후 부산으로 돌아왔지. 나는 김해에서 농사짓다 6·25전쟁 끝나고 서울로 올라왔어. 그때 내 나이 열일곱이었는데, 서울에선 돈 잘 벌었지. 초대 국무총리 비서실장의 심부름꾼을 했는데, 김종필 알지? 그때 인천에서 대위를 하고 있었는데, 대단했지. 내가 김종필도 만났다니까….”
이 할아버지의 잘나가던 시절 이야기가 한창 깊어가는 동안 영국 프리미어 리그로 진출하는 이동국 선수, 모 언론사 사주의 아들과 연애하는 여자연예인, 아담 샌들러 주연의 새 영화 광고 등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 할아버지는 생활보조금으로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면 30만원 정도 남는다고 했다. 아내가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 약값으로 쓰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단다. 신문지를 팔아 버는 한 달 15만원의 수입은 자신만을 위한 용돈. 이 할아버지는 “점심 먹고 탑골공원에서 놀다가 종로에서 막걸리 한잔 사 마시고 담배 사 피우는 데 용돈을 쓴다”고 했다. 이야기 도중 선반에 신문이 많이 쌓인 지하철이 도착하자 할아버지는 “오늘 매상이다!”라고 외치며 냉큼 지하철에 올라탔다. 20분 후 돌아온 그는 “동대문운동장역까지 갔다 왔다”면서 자루에 담긴 신문을 바닥에 토해놨다. 약 10kg, 700원어치다.
신문을 정리하는 이 할아버지에게 대여섯 명의 할머니들이 와서 아는 척을 했다. 지하철역 앞에서 무료신문을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할머니들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이 할머니들은 한 달에 25만원을 받는다고 하니, 신문 할아버지들보다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이 할아버지는 “이 할머니들이 나눠주고 내가 거둬들인다”며 웃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세 할아버지는 모두 “올해 소원은 정기적인 일자리를 갖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들 여기저기에서 열리는 노인 일자리 박람회를 빼놓지 않고 쫓아가 보지만, 워낙 많은 노인이 몰려드는 까닭에 일자리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한숨을 쉬었다. 안 할아버지는 아파트 경비원을 하는 게 소원이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대요. 예순다섯 이하만 뽑더라고요.” 김 할아버지는 지하철 역사 밖에 세워둔 자전거에 신문을 옮겨실은 뒤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워 물면서 “며칠 후부터는 지하철에 못 나올지도 모른다”며 희망을 밝혔다. 대한노인회에서 2월에 일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그는 “매일 나가서 네댓 시간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소원이 없다”고 했다.
일자리를 구해 더 이상 탑골공원 갈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이 할아버지는 “그래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며 허허 웃었다.
“이렇게 신문 주우러 다니는 거, 젊은 사람들은 창피해서 못할 일이지. 그래서 나는 참 감사해. 이 나이 돼서 신문 줍는 거 아무나 못하거든. 이렇게 힘 쓰며 돌아다닐 정도로 건강하다는 게 복 아니면 뭐겠어. 안 그래요?”
구로동에 사는 김 할아버지는 매일 오전 7시 대림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탄다. 버려진 신문을 쫓아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면서 2호선 노선을 한 바퀴 돈다. 대림역까지 그와 동행했다.
155cm가 될까 말까 한 작은 키. 손을 힘껏 뻗쳐 선반 위에 그득하게 쌓인 신문을 끄집어내린다. 사람들은 대부분 할아버지에게 관심이 없다. 할아버지의 관심도 오로지 신문뿐이다. 빈 자루가 빠른 속도로 신문으로 채워진다. 흐르는 땀을 연신 수건으로 닦는데도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kg당 70원 … 용돈 벌고 운동 되고 일석이조
kg당 70원. 애써 모은 신문을 고물상에 가져다주고 받는 값이다. 김 할아버지는 매일 신문을 50kg씩 수거한다고 했다. 하루 수입은 3500원. 주말을 빼고 한 달 내내 ‘출근’해도 겨우 7만원 버는 셈이다. “사람이 게으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여. 짐승이라면 잡아라도 먹지.” “얼마 벌지 못하는 거 뭣 하러 하시냐”고 묻자 나온 그의 대답이다.
김 할아버지는 ‘신문 할아버지’ 사이에서 경제적 형편이 넉넉한 편에 속한다. 18평짜리 연립주택을 갖고 있고 매달 20만원 정도의 국민연금을 받는다. 구로공단에서 청소일을 하는 아내의 월급이 55만원이며, 자녀들이 매달 10만원씩 용돈도 준다. 그럼에도 신문 수거를 고집하는 이유는 ‘사지 멀쩡한 사람이 놀고 먹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신문을 줍다 둘째 며느리를 우연히 만나는 바람에 크게 혼이 났다고.
대림역에서 김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난 뒤 안종혁(73) 할아버지를 만났다. 신길동에 사는 그는 오전 7시에 집을 나선다. 신대방삼거리역에서 7호선을 타고 온수역까지 왕복하면서 신문을 모은 뒤 집에 가져다둔다. 그리고 다시 7호선 지하철을 타고 대림역으로 와서 2호선으로 갈아탄다. 안 할아버지는 대림역에서 이대입구역까지 왕복하며 하루 50~70kg의 신문을 모은다고 했다.
배낭은 이미 신문으로 가득 찼다. 안 할아버지는 지하철 바닥에 앉아 나머지 신문을 노끈으로 묶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급하게 묶은 탓에 이대입구역에 도착하자마자 노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승강장 바닥에 흩어진 신문을 모으느라 진땀을 빼는 안 할아버지를 몇몇 승객들이 측은한 눈길로 쳐다봤다.
안 할아버지에게서는 소주 냄새가 났다. “아침에 소주 반 병씩 마셔요. 그 힘으로 이 일을 하지. 허허.” 군대에서 다치는 바람에 다리를 저는 그는 작년에야 뒤늦게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매달 정부에서 나오는 30만원가량의 장애인 수당이 수입의 전부. 이 돈으로 허리 다쳐 거동이 불편한 아내와 막내아들이 맡기고 나간 열한 살짜리 손자를 돌봐야 한다. 안 할아버지가 지하철에 나오는 이유다. 신문 폐지뿐 아니라 매일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빈 종이박스 등을 수거해 고물상에 내다 판다. 그렇게 버는 돈이 한 달에 약 15만원이다.
안종혁 할아버지(왼쪽)와 이름 밝히기가 쑥스럽다는 김 할아버지.
신문 할아버지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지하철 노선은 역시 2호선이다. 승객이 많은 만큼 버려진 신문도 많기 때문. 25일 오전 9시, 2호선 충정로역 승강장에는 무료신문이 가득 담긴 자루가 여기저기 놓여져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신문 수거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한 아이디어도 생겨났다. 카트 위에 작은 냉장고가 들어갈 만한 큰 박스를 얹어 신문을 담는 것이다. 한 할아버지는 “이렇게 하면 하루에 150kg도 혼자서 거뜬히 가져갈 수 있다”고 자랑했다.
충정로역 승강장에서 이성부(74)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이곳 승강장에 ‘베이스캠프’를 차려놓고 지하철을 갈아타가며 신문을 모았다. 그는 차가운 승강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신문을 차곡차곡 쌓은 뒤 노끈으로 묶으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올 소원은 정기적 일자리 갖는 것”
“우리 아버지가 오사카 항구에서 함바 오야붕(인부 우두머리)을 했어. 광복 후 부산으로 돌아왔지. 나는 김해에서 농사짓다 6·25전쟁 끝나고 서울로 올라왔어. 그때 내 나이 열일곱이었는데, 서울에선 돈 잘 벌었지. 초대 국무총리 비서실장의 심부름꾼을 했는데, 김종필 알지? 그때 인천에서 대위를 하고 있었는데, 대단했지. 내가 김종필도 만났다니까….”
이 할아버지의 잘나가던 시절 이야기가 한창 깊어가는 동안 영국 프리미어 리그로 진출하는 이동국 선수, 모 언론사 사주의 아들과 연애하는 여자연예인, 아담 샌들러 주연의 새 영화 광고 등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 할아버지는 생활보조금으로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면 30만원 정도 남는다고 했다. 아내가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 약값으로 쓰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단다. 신문지를 팔아 버는 한 달 15만원의 수입은 자신만을 위한 용돈. 이 할아버지는 “점심 먹고 탑골공원에서 놀다가 종로에서 막걸리 한잔 사 마시고 담배 사 피우는 데 용돈을 쓴다”고 했다. 이야기 도중 선반에 신문이 많이 쌓인 지하철이 도착하자 할아버지는 “오늘 매상이다!”라고 외치며 냉큼 지하철에 올라탔다. 20분 후 돌아온 그는 “동대문운동장역까지 갔다 왔다”면서 자루에 담긴 신문을 바닥에 토해놨다. 약 10kg, 700원어치다.
신문을 정리하는 이 할아버지에게 대여섯 명의 할머니들이 와서 아는 척을 했다. 지하철역 앞에서 무료신문을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할머니들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이 할머니들은 한 달에 25만원을 받는다고 하니, 신문 할아버지들보다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이 할아버지는 “이 할머니들이 나눠주고 내가 거둬들인다”며 웃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세 할아버지는 모두 “올해 소원은 정기적인 일자리를 갖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들 여기저기에서 열리는 노인 일자리 박람회를 빼놓지 않고 쫓아가 보지만, 워낙 많은 노인이 몰려드는 까닭에 일자리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한숨을 쉬었다. 안 할아버지는 아파트 경비원을 하는 게 소원이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대요. 예순다섯 이하만 뽑더라고요.” 김 할아버지는 지하철 역사 밖에 세워둔 자전거에 신문을 옮겨실은 뒤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워 물면서 “며칠 후부터는 지하철에 못 나올지도 모른다”며 희망을 밝혔다. 대한노인회에서 2월에 일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그는 “매일 나가서 네댓 시간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소원이 없다”고 했다.
일자리를 구해 더 이상 탑골공원 갈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이 할아버지는 “그래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며 허허 웃었다.
“이렇게 신문 주우러 다니는 거, 젊은 사람들은 창피해서 못할 일이지. 그래서 나는 참 감사해. 이 나이 돼서 신문 줍는 거 아무나 못하거든. 이렇게 힘 쓰며 돌아다닐 정도로 건강하다는 게 복 아니면 뭐겠어.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