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르네상스 시기의 최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는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주인공 팡타그뤼엘이 등장한다. 그는 소설에서 자신이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지 자랑하고, 배변 후 뒤를 닦는 수십 가지 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팡타그뤼엘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암소 1만7913마리가 징발됐고, 그의 입에 도시가 통째로 들어갔다니 그 과장과 허장성세가 어느 정도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 바흐친이 ‘카니발의 뒤집힌 세계’라 불렀던 작가 라블레는 살아 있다면 지금 미국에서 횡행하는 화장실 유머의 원조 격으로 등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설적 풍자와 해학 … 가짜 다큐 코미디들
화장실 유머로 점철된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란 영화를 보니, 새삼스레 라블레의 팡타그뤼엘이 생각난다. 이 영화에도 직설적인 풍자와 해학이 과도하게 넘쳐나기 때문이다. 주인공 보랏은 카자흐스탄 방송국 프로듀서로 미국 문화를 배워 오라는 특명을 받고 지금 미국에서 문화수업 중이다.
그러나 미국의 모든 것이 온통 낯설고 우스꽝스러운 그는 화장실 변기 속 물을 샘물로 착각하고 벌컥벌컥 마시고, 파멜라 앤더슨이 숫처녀인 줄 알고 그녀를 신부로 삼기 위해 전 미국을 기꺼이 횡단한다. 뿐만 아니라 호텔에서는 같이 간 동료와 싸우다 벌거벗고 사람들 앞에서 레슬링을 벌이기도 한다. ‘사우스 파크’나 ‘아메리칸 파이’의 주인공이 울고 갈 만큼 욕지기 나는 성적 풍자와 막나가는 웃음의 연발탄으로 무장한 보랏은 심지어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할 줄 몰라 점잖은 정찬 자리에 변을 들고 나타난다!
감쪽같이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도록 만든 이 영화 ‘보랏…’은 그러니까 현실을 그대로 담은 다큐가 아니라, 대사와 연기가 어우러져 능청스럽게 현실을 주장하는 가짜 다큐라는 흥미로운 전통 위에 세워져 있다. 심지어 ‘반지의 제왕’ 감독인 피터 잭슨도 뉴질랜드에서 잊혀졌던 무성영화가 발굴돼 전 세계 영화의 시작이 뉴질랜드에서 발원했다는 ‘포가튼 실버’라는 엉뚱한 가짜 다큐를 만들었을 정도로 이 장르는 뿌리가 깊다. 영화적으로 보면 사실 가짜 다큐는 코미디와 밀착돼 있는데, ‘보랏’도 다큐가 아니라 다큐를 빙자한 코미디라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이자 감독인 영국의 코미디언 사샤 배런 코헨은 직접 편집과 연출, 각본까지 겸한 팔방미인의 활동으로 인디 영화치고는 이례적으로 미국 전역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8명의 스태프를 이끌고 1800만 달러 저예산을 들인 영화는 미국 개봉 첫 주에만 26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사샤 배런 코헨은 그 여세를 몰아 골든글로브 코미디 부문에서 상까지 받았다(물론 상을 받으러 나온 그는 콧수염을 민 말끔한 미남이었다).
이 가짜 다큐에서 지구상 최고 벽촌인 쿠섹 출신의 보랏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미국 문화에 무지하다. 그는 호텔 엘리베이터를 자신의 방으로 착각하고, 페미니스트 앞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작은 뇌를 가졌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카자흐스탄식 우정과 게이 커뮤니티의 환대를 혼동한다. 특히 파멜라 앤더슨을 보고 한눈에 반한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꿈꾸며 미국을 횡단하면서 수많은 미국인들과 만난다. 히피 대학생, 흑인 창녀, 광신적 종교집단, 백인 중산층과 방송국 사람들 등 미국의 사회계층을 대변하는 모두가 보랏을 피할 수 없다.
8명의 스태프, 제작비 1800만 달러에도 흥행에 성공
이러한 보랏의 문화적 맹점은 바로 미국 문화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거울 구실을 한다. 성적 농담을 상대에 대한 칭찬으로 여기고, 체면도 심리적 거리감도 없어 보이는 보랏의 행각은 미국식 유머감각도, 미국식 방송시스템도 죄다 뒤집어서 아무것도 아닌 개그로 만들어버린다. 특히 로데오 경기에서 ‘미국이 이라크를 때려부숴 사막에 도마뱀 한 마리 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과격 발언과 함께 미국 국가에 맞춰 카자흐스탄 국가를 부르는 장면은 문화적 오만함으로 전 세계를 하대하는 미국에 대한 어퍼컷 한 방이다.
‘보랏 씨 미국에 가다’라고 불릴 만한 이 영화에서 사샤 배런 코헨은 이렇게 미국 문화를 무지막지하고도 살벌하게 비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보랏이 비판하는 또 다른 미국의 그림자 속에는 미국인의 프라이버시를 빙자한 대인관계의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도 포함돼 있다. 자국 문화에 대한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백인 중산층(WASP)에게 보랏은 그야말로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그들은 보랏의 오버에 당황해 욕을 하거나 몸을 피하거나 분노를 표현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내쫓아버린다. 보랏은 자기 나라의 인사법처럼 사람들을 껴안아주고 싶어하지만 미국 남자들은 그를 게이로 오인하고, 오직 히피 대학생과 창녀 같은 주변부 사람들만이 사심 없이 그를 포옹해준다.
문제는 이 영국 코미디언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비판하면서 어찌하여 또 다른 타자인 카자흐스탄이라는 문화권에 대해서는 무자비할 정도로 성찰이 없느냐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창녀 동생을 누구에게나 빌려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카자흐스탄 남자들은 모두 다 색골이거나 강간범인 듯 묘사한다. 물론 골계와 과장의 미학으로 관객에게 심리적 거리 두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의도는 짚이지만, 근친상간과 저질 유머만 넘쳐나는 것 같은 카자흐스탄에 대한 묘사는 이 영화 역시 미국처럼 변방의 타자에 대해 오만하다는 모순에 발목 잡히고야 만다. 심지어 러시아와 그 주변 국가들은 이 영화를 러시아 문화권에 대한 심각한 왜곡으로 보고 상영 금지를 내렸다고 한다.
“우리들 왜곡” 러시아 문화권에선 상영 금지
네이버 검색에 이 영화를 부모와 함께 보러 가도 되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부모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싶다면 부디 그러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당신이 이 영화를 보고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모든 화장실 유머가 그러하듯, 당신이 철저히 보랏의 행각을 ‘웃자고 하는 일’로 즐길 것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기는 하다. 수백년이 지난 후 이 영화도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처럼 미국 문명을 조롱한 획기적인 코미디로 재평가받을 수 있을까? 그때쯤 되면 이 카자흐스탄 킹카는 미국을 빨아들인 문화 흡혈귀로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관객들에게 남는 것은 거대한 웃음의 배설물뿐이다.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로 그 싸구려 방식으로 영화는 웃기면서 돈도 벌고 싶다는 상업적인 야심을 숨기지 못한다.
직설적 풍자와 해학 … 가짜 다큐 코미디들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그러나 미국의 모든 것이 온통 낯설고 우스꽝스러운 그는 화장실 변기 속 물을 샘물로 착각하고 벌컥벌컥 마시고, 파멜라 앤더슨이 숫처녀인 줄 알고 그녀를 신부로 삼기 위해 전 미국을 기꺼이 횡단한다. 뿐만 아니라 호텔에서는 같이 간 동료와 싸우다 벌거벗고 사람들 앞에서 레슬링을 벌이기도 한다. ‘사우스 파크’나 ‘아메리칸 파이’의 주인공이 울고 갈 만큼 욕지기 나는 성적 풍자와 막나가는 웃음의 연발탄으로 무장한 보랏은 심지어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할 줄 몰라 점잖은 정찬 자리에 변을 들고 나타난다!
감쪽같이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도록 만든 이 영화 ‘보랏…’은 그러니까 현실을 그대로 담은 다큐가 아니라, 대사와 연기가 어우러져 능청스럽게 현실을 주장하는 가짜 다큐라는 흥미로운 전통 위에 세워져 있다. 심지어 ‘반지의 제왕’ 감독인 피터 잭슨도 뉴질랜드에서 잊혀졌던 무성영화가 발굴돼 전 세계 영화의 시작이 뉴질랜드에서 발원했다는 ‘포가튼 실버’라는 엉뚱한 가짜 다큐를 만들었을 정도로 이 장르는 뿌리가 깊다. 영화적으로 보면 사실 가짜 다큐는 코미디와 밀착돼 있는데, ‘보랏’도 다큐가 아니라 다큐를 빙자한 코미디라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이자 감독인 영국의 코미디언 사샤 배런 코헨은 직접 편집과 연출, 각본까지 겸한 팔방미인의 활동으로 인디 영화치고는 이례적으로 미국 전역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8명의 스태프를 이끌고 1800만 달러 저예산을 들인 영화는 미국 개봉 첫 주에만 26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사샤 배런 코헨은 그 여세를 몰아 골든글로브 코미디 부문에서 상까지 받았다(물론 상을 받으러 나온 그는 콧수염을 민 말끔한 미남이었다).
이 가짜 다큐에서 지구상 최고 벽촌인 쿠섹 출신의 보랏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미국 문화에 무지하다. 그는 호텔 엘리베이터를 자신의 방으로 착각하고, 페미니스트 앞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작은 뇌를 가졌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카자흐스탄식 우정과 게이 커뮤니티의 환대를 혼동한다. 특히 파멜라 앤더슨을 보고 한눈에 반한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꿈꾸며 미국을 횡단하면서 수많은 미국인들과 만난다. 히피 대학생, 흑인 창녀, 광신적 종교집단, 백인 중산층과 방송국 사람들 등 미국의 사회계층을 대변하는 모두가 보랏을 피할 수 없다.
8명의 스태프, 제작비 1800만 달러에도 흥행에 성공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보랏 씨 미국에 가다’라고 불릴 만한 이 영화에서 사샤 배런 코헨은 이렇게 미국 문화를 무지막지하고도 살벌하게 비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보랏이 비판하는 또 다른 미국의 그림자 속에는 미국인의 프라이버시를 빙자한 대인관계의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도 포함돼 있다. 자국 문화에 대한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백인 중산층(WASP)에게 보랏은 그야말로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그들은 보랏의 오버에 당황해 욕을 하거나 몸을 피하거나 분노를 표현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내쫓아버린다. 보랏은 자기 나라의 인사법처럼 사람들을 껴안아주고 싶어하지만 미국 남자들은 그를 게이로 오인하고, 오직 히피 대학생과 창녀 같은 주변부 사람들만이 사심 없이 그를 포옹해준다.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우리들 왜곡” 러시아 문화권에선 상영 금지
네이버 검색에 이 영화를 부모와 함께 보러 가도 되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부모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싶다면 부디 그러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당신이 이 영화를 보고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모든 화장실 유머가 그러하듯, 당신이 철저히 보랏의 행각을 ‘웃자고 하는 일’로 즐길 것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기는 하다. 수백년이 지난 후 이 영화도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처럼 미국 문명을 조롱한 획기적인 코미디로 재평가받을 수 있을까? 그때쯤 되면 이 카자흐스탄 킹카는 미국을 빨아들인 문화 흡혈귀로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관객들에게 남는 것은 거대한 웃음의 배설물뿐이다.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로 그 싸구려 방식으로 영화는 웃기면서 돈도 벌고 싶다는 상업적인 야심을 숨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