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을 빼놓고 제작된 국립중앙박물관 연표(왼쪽)와 일본 후소샤 역사 교과서 연표.
항의가 잇따르자 중앙박물관 측은 ‘청동기시대(기원전 1000~300년)’ 연표 밑에 ‘고조선(기원전 2333년 건국: 삼국유사)’이라고 추가 표기했다.
기원전 2333년 건국은 ‘동국통감’에 기록
하지만 ‘고조선(기원전 2333년 건국: 삼국유사)’이라는 표기는 조선총독부가 고조선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동원한 논리를 따른 것이다. 고조선 옆에 괄호를 하고 ‘기원전 2333년 건국’이라고 표기한 것은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역사 기록으로는 인정되지만 고고학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미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일본인 학자들을 동원해 국가는 청동기시대 이후에 성립되며 한반도에 청동기 문명이 유입된 것은 한사군 설치 전후라고 조선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이를 받아들인 조선 학생들은 석기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24세기의 고조선 건국은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 유명 박물관 어디를 가도 자국의 최초 국가 형성과 청동기시대를 관련지어 설명하는 곳은 없다. 대영박물관은 물론이고 이집트나 인도의 박물관도 고대 이집트 왕국이나 인도 왕국이 청동기시대에 비로소 성립했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일본인 학자들은 조선 학생들에게는 ‘청동기시대와 국가 형성’이라는 논리를 주입해놓았지만 일본의 고대사를 설명할 때는 이 논리를 적용하지 않는다. 일본의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도 청동기시대가 전개됨으로써 고대 일본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기술은 없다.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의 일본 고고학 연표 또한 조몽시대-야요이시대-고훈시대 등 유물이 출토된 지역이나 유물의 특징을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
중앙박물관 측이 고고학 연표 청동기시대 밑에 ‘고조선(기원전 2333년 건국: 삼국유사)’이라고 수정 표기한 것에는 또 다른 오류가 있다. ‘삼국유사’에는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삼국유사’는 기원전 2308년에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기록한 책은 ‘동국통감’이다.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했다는 역사 연표를 작성한 사람은 대한제국 내각편집국장을 지낸 어윤적이다. 요즘으로 치면 교육부 국장쯤 되는 고위관리다. 대한제국은 이를 널리 알렸다. 하지만 조선총독부가 들어서자 총독부는 조선인들에게 뿌리 박힌 고조선을 지우기 위해 ‘삼국유사’를 이용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를 불가의 책이라 하여 별로 주목하지 않았는데, 이를 안 조선총독부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신화로 해석함으로써 고조선 역사 말살의 도구로 활용한 것이다.
이 사실은 국보로 관리되고 있는 ‘삼국유사’ 임신본을 확인해보면 변조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추가한 ‘고조선(기원전 2333년 건국: 삼국유사)’ 중에서 삼국유사는 동국통감으로 수정돼야 한다.
많은 국내외 학자들이 고인돌과 청동검을 고조선의 유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유독 중앙박물관만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며 이들 유물을 고조선의 유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한다면 너무 소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중국 학회지에는 명도전이 고조선의 화폐라는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중국 학자들조차 고조선의 화폐를 연구하고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이 고인돌과 청동검을 두고도 어느 국가, 어느 시대의 것인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