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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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번역 ‘발등의 불’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폐막 … 주빈국 기쁨 잠시 저작권 수출 ‘언어장벽’과제로

  • 프랑크푸르트=정현상 출판팀 기자 doppelg@donga.com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05-11-02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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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도서전에도 조류독감이 유행했다. 다행히 책 안에서만 발견됐다.”

    이런 농담이 유행할 정도로 온갖 종류의 책이 선보였고, 다채로운 행사로 관심을 모았던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10월19~23일)이 막을 내렸다. 참가업체는 101개국 7200여 출판사, 관람객만 30여만명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도서전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번역의 중요성을 일깨운 행사였다.

    도서전 기간에 한국은 주빈국(Gastland)으로서 개막공연 ‘책을 위한 진연’, 작가 낭독회, 음악회, 전시회, 공연 등 화려한 문화 행사들로 한국의 저력을 맘껏 발휘했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독일어 못하는 한국관 주위 한산

    그러나 정작 도서전의 핵심인 ‘도서 저작권 거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애초 대한출판협회는 주빈국 특수 덕에 400여건의 계약 성사와 약 400만 달러의 저작권 수입을 기대했지만, 현장에서 계약(구두계약 포함)이 이뤄진 것은 ‘고양이에게’(바다출판사) 등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시 기간에 113개(39개사는 위탁) 출판사가 책을 전시한 한국관 주위도 한산한 편이었다. 그 원인을 일간지 함부르크 아벤트블라트는 “한국 담당자들이 독일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영국의 에이전트 니나 마틴은 “한국 책을 사고 싶은 외국 출판사 에이전트가 한국 부스에서 자신의 언어로 번역된 책을 보면서 설명을 듣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대니홍 에이전시 홍대규 실장도 “전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로 된 텍스트가 없다면 차라리 내놓지 않는 게 협상에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번 도서전에 부스를 마련했던 마음산책 정은숙 사장은 “박영택 씨의 ‘예술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저작권 상담이 여러 건 있었지만 영어로 만든 요약본이라도 있었더라면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언어가 권력’이라는 말을 실감했다”고 아쉬워했다.

    번역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던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위원장 김우창)는 한국문학번역원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책’ 100권을 번역해 이번 전시장에 내놓았다. 책 선정 위원들은 상업성과 의미를 모두 고려해 선정했다고 하지만, 이 책들은 프랑스 쥘라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해외의 무명 출판사에서 출판돼 빛이 바랬다는 지적도 있다. 그리고 종수에서도 10년 전 이 도서전의 주빈국이었던 일본이 1000권을 번역해 전시한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도서전이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던 10월22일 오후 전시장 5관에서 만난 스페인 문학 에이전트 베아트리스 콜은 쾌활한 목소리로 신작 소설 ‘아바볼의 천구(Ababol’s Sphere)’를 소개하면서 “스페인 정부가 번역료의 80%를 지원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서전 기간에 정부의 번역지원 대상이 된 도서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많은 나라들이 번역지원 제도 등을 통해 자국의 문화를 알리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

    한국 문학 번역 ‘발등의 불’

    주빈국관의 ‘작가의 벽’에 작가 이문열, 오정희, 조정래, 황석영 씨 등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영어뿐 아니라 10억명이 사용하는 스페인어권, 프랑스어권 등에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각주마다 비상업적 도서에 한해 출판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고, 스페인도 교육문화부가 연간 200여종에 대해 번역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도 외무부 산하 국립도서센터(NL)에서 연간 500여권의 번역출판을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일본재단에서 번역지원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번역 지원은 저작권 수출의 첫 단추에 불과하다. 독일 등 유럽에서 한국 책의 번역이 활발하기 위해서는 국가 인지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즉 번역은 언어의 영역 너머 사회, 정치, 문화의 코드와도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이미지 제고를 위한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 독일 통일 이전 서독에서 대(對)동구권 선전방송 구실을 맡았던 DLF는 21일 “한국은 군사정권 때 의사 표현이 자유롭지 못했는데 최근에야 작가들이 자기 작품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보도할 만큼 한국 현실에 어두운 듯했다.

    아직 대접받지 못하는 슬픈 현실

    대표적 중도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한국 측이 좋은 조건을 내걸며 한국 문학을 독일 시장에 내놓으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평했다. 독일 출판계 입장으로서는 아무리 계약조건이 좋다 해도, 판매에 성공할 가능성이 적은 한국 책들을 출판하려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국제적으로는 아직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한국 문학의 슬픈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다.

    한국 문학 번역 ‘발등의 불’

    저작권 상담을 하고 있는 한국 EYA 신형식 부장(가운데)과 콘란 옥토퍼스사 저작권 담당자 앨런 에드워즈.

    그나마 이번 도서전 기간을 전후로 주빈국이라는 배경 덕분에 프랑크푸르트 시내 서점에서도 번역된 일부 한국책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도서전이 끝나고 그 책들이 팔리지 않으면 다시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문학번역원 권세훈 팀장은 “번역원이 올해 도서전을 앞두고 1차 100권, 2차 96권의 번역 지원사업을 벌였고, 앞으로 매년 50여권의 번역 지원을 할 계획이지만 이것만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다. 국내 출판사들이 도서 수입에만 매달리지 말고 세계시장을 겨냥해 기획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이번 도서전에서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해외에 판매하기 위해 노력했던 홍대규 실장은 “이 책은 스페인에서 이미 출간됐고, 프랑스에서는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며 영국과 미국의 유명 출판사들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세계시장을 염두에 둔 기획, 탄탄한 내용이 뒷받침된다면 저작권 수출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 해외의 작은 서점에서도 번역된 한국 책들을 볼 수 있는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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