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중섭과 박수근 화백의 그림 58점을 모두 ‘가짜’라고 판명하고, 이중섭 화백의 작품 4점을 경매로 팔았던 서울옥션 대표의 사임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문제는 해당 사건에 연루된 작가의 작품 대다수를 못 믿겠다는 의심을 넘어 미술시장에서 유통되는 거의 모든 작품을 가짜로 바라보는 선입관이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미술 전문가는 아니지만, 보도되는 기사들만 보고 있자면 한국 미술계는 지금 시궁창에 처박혀서 자력으로 헤쳐나올 기력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번 사태를 두고 ‘파문’이란 표현은 지나치게 점잖은 것이고 ‘위기’도 밋밋한 모양이다. ‘붕괴’라는 진단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고, 화가-화랑·경매장-고객으로 이어지는 먹이 그물에는 대어 대신에 온통 ‘불신’이라는 해파리만 끝없이 걸려나오는 형국이다.
1992년부터 지속된 한국 미술시장의 장기 불황도 끝이 안 보이는 마당에 이런 ‘핵폭탄’까지 투하되자, 차라리 전쟁 뒤의 폐허 상태를 인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위작 파문 때문에 한국 미술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구조적 모순까지 고스란히 도마에 오른 셈인데, 무엇이 이토록 한국 미술시장을 안으로부터 갉아먹은 것인지, 학습하는 기분으로 귀동냥했다.
나는 안면이 있는 미술담당 기자와 미술평론가, 그리고 큐레이터에게 전화를 걸어서 순진한 학생처럼 물어보았다. “이거 어찌된 일입니까? 뭐가 문제인가요?” 각 사안의 심각성과 해법의 우선 순위에서는 당연히 사람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이구동성으로 꼽아주는 몇 가지 문제만큼은 너무나 확연했다. 세 가지만 추려본다.
첫째, 수요와 공급의 심각한 불일치란다. 혹자는 젊은 작가들을 빼고 협회 등에 등록된 미술 작가만 1만5000여명에 달하는데, 이들이 한 해에 작품을 한 점만 완성한다는 가정을 해도 1만5000여점에 달한다. 그런데 한 해 동안 10점 이상 미술 작품을 사는 고객은 기껏해야 300여명 안팎이어서, 이러고도 미술시장이라고 말해온 것은 ‘기적’이거나 ‘사기’라면서 자조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300명이 10점씩 3000점을 모두 다른 작품을 사고, 작가는 한 해에 딱 한 점만 만든다고 치면, 협회에 등록된 나머지 1만2000여명은 ‘손가락 빠는’ 신세라는 말이다.
시장다운 시장 없으면서 처방전 남용
둘째, 화랑이나 경매회사를 통해 작품을 구매하려는 고객이 나타나서 작가에게 가격 이야기를 하면, 적지 않은 작가들이 ‘안 판다!’고 반응하는 인식의 문제가 있단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을 판다는 행위에 대해 반(反)작가적 행위나 반(反)미술적 문화로 간주하는, 요컨대 미술 작품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이지 상품으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구태의연한 태도가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설혹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도 공급자가 팔 수 없다는데 시장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셋째, 수요와 공급의 극심한 불일치 속에서 그나마 실제로 거래되는 미술 작품의 가격은 엿장수 마음대로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같은 작품을 두고 A 화랑에서는 100원에, B 특별전시회를 통해서는 80원에, 작가에게 직접 문의하면 50원에 팔겠다고 하는, 이중 삼중의 다중 가격이라는 혼란 때문에 고객은 처음부터 미술 작품의 가격에 대해 신뢰를 갖지 못하는 악순환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역시 시장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몇 분의 전문가와 대화를 나눈 뒤 나는 맥이 풀렸다. 시장이란 말을 쓰기 어려운데, 시장이라는 말을 쓰면서 시장처럼 보이려고 하다 보니 시장다운 시장은 만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온갖 시장용 처방전을 쓴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경매시장의 활성화나 미술 견본시장 같은 직거래 문화의 도입 등 대책도 비슷했다. 그러나 비전문가인 내가 듣기에는 그것도 결국은 미술 작품을 사려는 고객이 늘어나야 효과가 있을 텐데, 나는 이제껏 몇 점의 미술 작품을 샀던가 돌아보니 집 안의 사방 벽면이 텅 비어 있다. 미안했다.
나는 미술 전문가는 아니지만, 보도되는 기사들만 보고 있자면 한국 미술계는 지금 시궁창에 처박혀서 자력으로 헤쳐나올 기력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번 사태를 두고 ‘파문’이란 표현은 지나치게 점잖은 것이고 ‘위기’도 밋밋한 모양이다. ‘붕괴’라는 진단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고, 화가-화랑·경매장-고객으로 이어지는 먹이 그물에는 대어 대신에 온통 ‘불신’이라는 해파리만 끝없이 걸려나오는 형국이다.
1992년부터 지속된 한국 미술시장의 장기 불황도 끝이 안 보이는 마당에 이런 ‘핵폭탄’까지 투하되자, 차라리 전쟁 뒤의 폐허 상태를 인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위작 파문 때문에 한국 미술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구조적 모순까지 고스란히 도마에 오른 셈인데, 무엇이 이토록 한국 미술시장을 안으로부터 갉아먹은 것인지, 학습하는 기분으로 귀동냥했다.
나는 안면이 있는 미술담당 기자와 미술평론가, 그리고 큐레이터에게 전화를 걸어서 순진한 학생처럼 물어보았다. “이거 어찌된 일입니까? 뭐가 문제인가요?” 각 사안의 심각성과 해법의 우선 순위에서는 당연히 사람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이구동성으로 꼽아주는 몇 가지 문제만큼은 너무나 확연했다. 세 가지만 추려본다.
첫째, 수요와 공급의 심각한 불일치란다. 혹자는 젊은 작가들을 빼고 협회 등에 등록된 미술 작가만 1만5000여명에 달하는데, 이들이 한 해에 작품을 한 점만 완성한다는 가정을 해도 1만5000여점에 달한다. 그런데 한 해 동안 10점 이상 미술 작품을 사는 고객은 기껏해야 300여명 안팎이어서, 이러고도 미술시장이라고 말해온 것은 ‘기적’이거나 ‘사기’라면서 자조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300명이 10점씩 3000점을 모두 다른 작품을 사고, 작가는 한 해에 딱 한 점만 만든다고 치면, 협회에 등록된 나머지 1만2000여명은 ‘손가락 빠는’ 신세라는 말이다.
시장다운 시장 없으면서 처방전 남용
둘째, 화랑이나 경매회사를 통해 작품을 구매하려는 고객이 나타나서 작가에게 가격 이야기를 하면, 적지 않은 작가들이 ‘안 판다!’고 반응하는 인식의 문제가 있단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을 판다는 행위에 대해 반(反)작가적 행위나 반(反)미술적 문화로 간주하는, 요컨대 미술 작품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이지 상품으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구태의연한 태도가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설혹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도 공급자가 팔 수 없다는데 시장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셋째, 수요와 공급의 극심한 불일치 속에서 그나마 실제로 거래되는 미술 작품의 가격은 엿장수 마음대로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같은 작품을 두고 A 화랑에서는 100원에, B 특별전시회를 통해서는 80원에, 작가에게 직접 문의하면 50원에 팔겠다고 하는, 이중 삼중의 다중 가격이라는 혼란 때문에 고객은 처음부터 미술 작품의 가격에 대해 신뢰를 갖지 못하는 악순환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역시 시장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몇 분의 전문가와 대화를 나눈 뒤 나는 맥이 풀렸다. 시장이란 말을 쓰기 어려운데, 시장이라는 말을 쓰면서 시장처럼 보이려고 하다 보니 시장다운 시장은 만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온갖 시장용 처방전을 쓴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경매시장의 활성화나 미술 견본시장 같은 직거래 문화의 도입 등 대책도 비슷했다. 그러나 비전문가인 내가 듣기에는 그것도 결국은 미술 작품을 사려는 고객이 늘어나야 효과가 있을 텐데, 나는 이제껏 몇 점의 미술 작품을 샀던가 돌아보니 집 안의 사방 벽면이 텅 비어 있다.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