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른이 된 뒤 영화를 통해 티베트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 1997년 개봉된 장 자크 아노 감독의 ‘티베트에서의 7년’(사진)이었을 것이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이 영화는 달라이 라마의 개인 교사였던 오스트리아인 탐험가 하인리히 하레르의 티베트 체류기록이다. 영화 속에서 티베트를 대하기는 그만큼 드문 일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를 전후해 영화 속에 티베트(혹은 티베트와 관련된 것들)가 등장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달라이 라마의 생애를 다룬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쿤둔’도 그중 하나다. 이들과는 생판 다른 분위기지만 ‘방탄승’이라는 액션물도 있다. 주윤발이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밀서를 보관하는 승려로 등장하는데, 무술영화 하면 법칙처럼 나오는 소림사가 아니라 티베트 승려라는 점이 이채롭다. 그 외에도 봇물을 이룬다고 할 만큼 티베트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잇따르고 있다.
티베트에 대한 할리우드의 구애라고나 할까. 이 같은 열풍의 배경을 설명해줄 만한 한 가지 단서는 미국에서 티베트 불교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전역에서는 불교 연구 모임이 급증하고 있는데 주로 티베트에서 망명한 라마승들이 이끈다. 불교 바람은 서구의 물질문명에 대한 자기반성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가지만, 왜 유독 티베트 불교인가.
그것은 바로 ‘달라이 라마 효과’일 것이다. 근거지를 잃은 달라이 라마는 수십 년간 외국을 떠돌며 활발한 포교를 해왔는데, 그것은 또한 정치적 외교활동이기도 했다. 그래서 서구에는 그를 추종하거나 혹은 좋아하는 많은 팬들이 생겼다. 특히 그 가운데는 유명 배우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람이 리처드 기어로 그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장에서 공개적으로 티베트에 대한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스타들의 스타’, 그가 달라이 라마인 셈이다.
이를 떠나서도 티베트 자체가 영화화하기에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다. 눈 덮인 히말라야 산, 그리고 그 때묻지 않은 오지의 수도승. 소재 빈곤에 허덕이는 할리우드가 놓칠 수 없는 유혹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정치적인 이유도 슬쩍 가세하는 것 같다. 바로 ‘중국 때리기’다. 티베트를 순결한 공간으로 그리는 반대편에는 으레 중국이 악으로 설정돼 있다. ‘티베트에서의 7년’에도 중국 군대와의 충돌 장면이 삽입돼 있다.
중국의 티베트 침공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있긴 하지만 영화를 통해 티베트는 중국의 박해를 받는 가련한 희생자라는 이미지가 확대 전파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서구(미국)의 경계심이 영화 속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담은 영화들에 대해 당연히 중국 정부가 달가워할 리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티베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중국 입국 허가를 얻지 못해 티베트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찍어야 했다. 그러나 중국이 문을 열어줬더라도 티베트가 접근하기 쉬운 곳은 결코 아니다. 해발 5000m 이상의 이 고원지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도승 같은 고행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티베트에 들어가는 길이 아주 쉬워지게 됐다. 중국이 티베트로 통하는 칭장(淸江) 철도를 완공했기 때문이다. 중국 서부와 티베트 자치구를 잇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 철도는 평균 해발 4500m 노선이다. 그야말로 구름을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천상의 노선인 셈이다. 한비야 씨의 여행기를 보면 이 티베트 가는 길에 죽을 고생한 얘기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는데, 이제 이 철도를 이용하면 베이징에서 단 이틀 만에 라싸에 도착하게 된다. 비행기처럼 열차를 밀폐해 고산병으로 구토를 할 일도 없다고 한다.
중국은 칭장 철도의 완공을 계기로 낙후된 내륙 개발 및 관광객 유치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숨은 이유는 또 있다. 한족을 이 오지로 대거 이주시켜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티베트의 중국 편입 전략인 셈이다. 군 병력의 신속한 수송이라는 의도도 있다. 지금도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티베트에 대한 정치·경제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칭장철도에 대해 “한족들을 티베트로 유인해 티베트의 ‘문화적 대학살’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영화로든, 첨단 철도로든 티베트는 이렇게 문명 세계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1937년 영화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샹그릴라’라는 전설 속의 낙원으로 그려졌던 티베트. 그런 티베트는 이제 점점 영화 속 이야기로나 남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를 전후해 영화 속에 티베트(혹은 티베트와 관련된 것들)가 등장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달라이 라마의 생애를 다룬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쿤둔’도 그중 하나다. 이들과는 생판 다른 분위기지만 ‘방탄승’이라는 액션물도 있다. 주윤발이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밀서를 보관하는 승려로 등장하는데, 무술영화 하면 법칙처럼 나오는 소림사가 아니라 티베트 승려라는 점이 이채롭다. 그 외에도 봇물을 이룬다고 할 만큼 티베트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잇따르고 있다.
티베트에 대한 할리우드의 구애라고나 할까. 이 같은 열풍의 배경을 설명해줄 만한 한 가지 단서는 미국에서 티베트 불교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전역에서는 불교 연구 모임이 급증하고 있는데 주로 티베트에서 망명한 라마승들이 이끈다. 불교 바람은 서구의 물질문명에 대한 자기반성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가지만, 왜 유독 티베트 불교인가.
그것은 바로 ‘달라이 라마 효과’일 것이다. 근거지를 잃은 달라이 라마는 수십 년간 외국을 떠돌며 활발한 포교를 해왔는데, 그것은 또한 정치적 외교활동이기도 했다. 그래서 서구에는 그를 추종하거나 혹은 좋아하는 많은 팬들이 생겼다. 특히 그 가운데는 유명 배우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람이 리처드 기어로 그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장에서 공개적으로 티베트에 대한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스타들의 스타’, 그가 달라이 라마인 셈이다.
이를 떠나서도 티베트 자체가 영화화하기에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다. 눈 덮인 히말라야 산, 그리고 그 때묻지 않은 오지의 수도승. 소재 빈곤에 허덕이는 할리우드가 놓칠 수 없는 유혹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정치적인 이유도 슬쩍 가세하는 것 같다. 바로 ‘중국 때리기’다. 티베트를 순결한 공간으로 그리는 반대편에는 으레 중국이 악으로 설정돼 있다. ‘티베트에서의 7년’에도 중국 군대와의 충돌 장면이 삽입돼 있다.
중국의 티베트 침공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있긴 하지만 영화를 통해 티베트는 중국의 박해를 받는 가련한 희생자라는 이미지가 확대 전파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서구(미국)의 경계심이 영화 속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담은 영화들에 대해 당연히 중국 정부가 달가워할 리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티베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중국 입국 허가를 얻지 못해 티베트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찍어야 했다. 그러나 중국이 문을 열어줬더라도 티베트가 접근하기 쉬운 곳은 결코 아니다. 해발 5000m 이상의 이 고원지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도승 같은 고행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티베트에 들어가는 길이 아주 쉬워지게 됐다. 중국이 티베트로 통하는 칭장(淸江) 철도를 완공했기 때문이다. 중국 서부와 티베트 자치구를 잇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 철도는 평균 해발 4500m 노선이다. 그야말로 구름을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천상의 노선인 셈이다. 한비야 씨의 여행기를 보면 이 티베트 가는 길에 죽을 고생한 얘기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는데, 이제 이 철도를 이용하면 베이징에서 단 이틀 만에 라싸에 도착하게 된다. 비행기처럼 열차를 밀폐해 고산병으로 구토를 할 일도 없다고 한다.
중국은 칭장 철도의 완공을 계기로 낙후된 내륙 개발 및 관광객 유치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숨은 이유는 또 있다. 한족을 이 오지로 대거 이주시켜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티베트의 중국 편입 전략인 셈이다. 군 병력의 신속한 수송이라는 의도도 있다. 지금도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티베트에 대한 정치·경제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칭장철도에 대해 “한족들을 티베트로 유인해 티베트의 ‘문화적 대학살’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영화로든, 첨단 철도로든 티베트는 이렇게 문명 세계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1937년 영화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샹그릴라’라는 전설 속의 낙원으로 그려졌던 티베트. 그런 티베트는 이제 점점 영화 속 이야기로나 남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