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충무로 역사 벽면에는 역대 대종상 시상 사진이 연도별로 잘 정리돼 있다. 2003년 대종상 남우주연상과 인기상은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가 받았다. 그런데 사진 설명에는 두 사진 모두 ‘송광호’라고 돼 있다. 철판요리 전문가 송광호가 배우 송강호보다 유명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대학 영화 과목 리포트에도 송광호라고 쓰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다. 어느 방송에서도 자막이 송광호로 나온 경우도 있다. 아마도 강호라는 이름보다 광호라는 이름이 더 낯익어서이겠지만, 대배우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인간이 남의 영화도 잘 안 보고, 책도 잘 안 읽고, 음악도 싫어하고, 고학력자도 아닌 주제에, 나이도 서른넷밖에 안 먹었으면서, 그렇게 수준 높은 예술적 안목을 가질 수 있는 거야? 평생 해온 내 노력은 도대체 뭐야?”
박찬욱 감독이 술자리에서 송강호에게 한 이 말은, 나 역시 그에게 하고 싶은 것이었다. 도대체 이 인간의 취미가 뭔가 궁금하다면 당신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박찬욱의 푸념대로 그는 다른 사람이 출연하는 영화를 잘 안 본다. 책도 잘 안 읽는다. 골프나 승마, 테니스 아니면 낚시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삶은 그냥 영화를 ‘찍거나 혹은 안 찍거나’다.
한국 영화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빅3, 즉 설경구, 최민식, 송강호는 그 이름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안겨주는 배우들이다. 비록 설경구의 ‘역도산’이 기대 이하였고 최민식의 ‘꽃피는 봄이 오면’이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그 영화들이 형편없었다는 평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빅3 중에서도 가장 안정감을 주고 흥행 타율이 가장 높은 배우가 송강호다. 그는 2000년 이후 한국 배우 중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관객 동원력 1위의 흥행력은 물론, 연기력과 스타성까지 보장받는 유일한 배우다.
그러므로 송강호가 ‘남극일기’ 기자 시사회에서 “‘남극일기’는 흥행을 보장하는 안전한 공식을 따르지 않은 새로운 영화다. 하지만 대중성이 없는 영화는 아니다. 관객은 늘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새로움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대중성이다. ‘올드 보이’나 ‘살인의 추억’도 안전한 공식을 따른 영화는 아니었다. ‘남극일기’도 안전한 흥행 공식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아주 새롭고 강력한 대중성을 지녔다”고 발언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개봉을 앞둔 배우가 자기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하는 말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자나 평론가들은 이 뛰어난 배우가 이렇게 힘주어 강조하는 영화를 외면하기 힘들다. ‘남극일기’는 무겁고 진지한 주제,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다. 한국 관객들이 외면하기 딱 좋은 내용이며 스타일이다. 그러나 송강호가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곰곰이 뜯어보게 된다.
임필성 감독의 ‘남극일기’는 순제작비 70억원, 마케팅비까지 포함해서 95억원이 들어간 대작이다. 2004년 6월부터 8월까지 뉴질랜드에서 촬영한 분량이 전체의 45%, 그리고 한국의 양수리 세트장과 블루 스크린 앞에서 찍은 필름을 연결하여 완성했다. 영화 전체는 오직 눈 위에서만 진행된다. 남극의 도달불능점 탐험에 나선 6명의 한국 탐험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산악 영화나 모험 영화는 아니다. 소재만 극한 지점에서 가져왔을 뿐, 이 영화는 의외로 인간의 욕망, 그 본질적 집착이 가져오는 무서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송강호는 ‘남극일기’에서 탐험대장 최도형 역을 맡고 있다. 그는 냉철한 판단력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대원들을 이끌고 도보로 남극의 도달불능점 탐험에 나선다. 하지만 대원들이 의문의 사고로 한 사람씩 숨져가면서 그는 본부와의 교신기를 파괴하고 위치추적 발신기까지 망가뜨린다. 탐험을 중지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도달불능점을 정복하려는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송강호는 1967년 1월17일생이다. 무엇이든 배우와 연관 지어보려는 필자는 그와 별자리가 같다. 산양자리는 외로운 별자리다.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을 싫어한다. 산양은 바위 틈에서 혼자 풀을 뜯어 먹는 짐승이다. 송강호는 자주, 혼자 있다. 여기저기 모임에 기웃거리지 않는다. 방 안에서 빈둥거린다. 그의 일상은 촬영을 하거나 집 안에 있거나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는 술과 담배다.
도빌영화제에서 ‘공동경비구역 JSA’로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부상으로 ‘루이 14세’ 코냑을 받았다. 그는 그때가 가장 즐거웠다고 한다. 부상으로 술을 주는 영화제도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가장 좋았던 사건으로 기억하는 배우도 그렇다. 송강호의 수상 이전에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박중훈 역시 도빌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코냑을 부상으로 받았다. 하지만 국내에 들어올 때 세관에서 송강호는 100만원의 세금을 냈고, 박중훈은 내지 않았다.
박중훈은 수상을 해서 국위를 선양했는데 무슨 세금이냐고 주장해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송강호는 애초에 그런 문제로 시비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소심하다. 그는 내성적이다. 화면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배우 송강호가 연기를 하는 모습이다.
또 담배의 경우, ‘남극일기’에서 그와 연기의 대결을 펼치는 탐험대 막내 대원 유지태도, 똑같이 연극 무대에서 출발해 영화로 성공한 동갑내기 설경구도, 그리고 절친한 박찬욱 감독도 금연에 성공했지만, 그는 담배를 끊지 않고 있다. 이것마저 끊으면 무슨 낙이 있나. 그만큼 외롭다는 뜻이다.
그는 부산경상대 방송연예과 출신이다. 부산 순회공연에 온 연극 ‘칠수와 만수’를 보고 연극을 하겠다고 상경해서 대학로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했다. 극단의 포스터를 붙이고 무대 청소를 하고 연기를 배웠다. ‘동승’(91년)은 그의 연극 데뷔작이다. 그의 영화 데뷔작은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96년)이다.
그 이후 송강호는 ‘넘버3’에서 불사파의 두목으로 나와 온 국민이 따라하게 만든 “배, 배, 배신이야, 배신”의 장황한 연설로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그러고는 순풍에 돛 단 듯이 그의 영화 인생은 전개된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 ‘쉬리’에서 그는 한석규의 파트너 이장길 역으로 등장했지만, 당시 한국 영화의 양대 산맥으로 부상한 한석규와 최민식에 포위되어 존재감이 없었다. 송강호 자신도 ‘쉬리’에서의 연기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
“그땐 영화라는 매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지. 어릴 때다. 아무것도 모를 신인 때였다.”
그러나 송강호는 ‘반칙왕’으로 성공적인 주역 데뷔를 한다. 낮에는 스트레스 받는 은행원, 밤에는 반칙을 일삼는 프로레슬러로 나와 독창적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공동경비구역 JSA’를 찍었다. 이 영화는 송강호라는 배우가 대배우로 자리매김하는 결정타였다. 북한군 중사 오경필은 초코파이를 맛있게 먹으며 “공화국에서는 왜 이렇게 맛있는 과자를 못 만드는 거야”라고 탄식하기도 하고, 김광석의 노래를 듣다가 “근데 광석이는 왜 그렇게 빨리 간 거야”라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송강호와 가장 친한 잘생긴 배우는? 이병헌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찍으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졌는데, 송강호는 “잘생긴 배우 중에서는 이병헌과 친하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잘생긴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장동건이나 배용준과도 알고 지내지만, 잘생긴 그들은 자신의 외모에 그만큼 더 신경을 써야 하니까 피곤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자기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자신이 잘생기지 못했기 때문에 멜로 영화를 못 찍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이 무척 아쉽다는 것이다. 그는 빅3 중에서 평범한 얼굴을 가졌다는 점에서 설경구와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최민식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입체적인 얼굴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화면에서는 송강호의 얼굴이 상당히 크게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그의 얼굴은 화면‘보다는’ 작다. 뺨 부위가 둥글게 굽어지기 때문에 화면에서는 그것이 평면적으로 비쳐지면서 얼굴이 퍼지게 나오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180cm에 71kg. 자기 관리를 잘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특별히 영화상에서 몸무게를 불리거나 줄일 필요가 있지 않는 한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엄청난 성공으로 박찬욱 감독과는 ‘복수는 나의 것’을 하나 더 찍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실패했다. 인터넷에는 욕설과 비방이 끊이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은 그때 충격을 받아 인터넷에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다. 송강호 역시 흥행이 잘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찍었지만 그 차가운 결과는 당혹스러웠고 싸늘한 시선을 이겨내는 것은 힘들었다.
출연 결정 기준은 감독, 시나리오, 제작사 順
그러고 나서 찍은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다. ‘살인의 추억’은 송강호에서 시작해서 송강호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끝난다. 이 영화의 대성공은 그를 확고부동한 충무로 배우 캐스팅 0순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성공한 영화들에서 그는 대부분 코믹한 요소가 섞여 있는 캐릭터를 맡았다. 유괴당했다가 죽은 어린 딸의 복수를 하기 위해 핏발 선 눈으로 범인들을 찾아나서는 ‘복수는 나의 것’의 동진이나, 도달 불능점에 가기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 않는 ‘남극일기’의 최도형 대장은 웃음이 전혀 없는 캐릭터다. 송강호가 ‘남극일기’의 개봉을 앞두고 긴장하는 이유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진지한 캐릭터로도 흥행성을 입증하고 싶은 것이다. 코믹한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는 배역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과연 ‘남극일기’에서 최도형 대장의 눈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광기에 사로잡혀간다.
세계 최초로 북극과 남극, 14좌 등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 ‘남극일기’의 슈퍼바이저(감독자)로 참여해서 많은 조언을 해주었고, 송강호도 그에게서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배웠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부분이다.
“이 영화는 다른 산악 영화처럼 암벽 등반 같은 기술적 측면을 요구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극한 상황에서 대원들을 이끄는 탐험대장의 입장 같은, 탐험대장의 심리묘사에서는 박영석 씨의 도움을 받았다.”
송강호는 ‘남극일기’의 광기 어린 최도형 대장을 표현하기 위해 밤마다 숙소 주변을 뛰면서 8kg을 줄였다. 그러나 유지태는 날마다 21km를 걸으며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정말 무서운 후배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송강호가 눈여겨보는 배우는 조승우와 류승범. ‘말아톤’이나 ‘주먹이 운다’에서의 그들의 연기는 신들린 연기였다고 평했다.
외국 영화는 잘 안 보지만 한국 영화는 빠짐없이 보며 모니터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자기에게 주어진 역을 성실하게 연기하겠다는 직업적 자세가 돋보이는 것은, 배우라는 직업을 제대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는 선민의식에 빠져 있지도 않고, 배우를 출세나 허명을 위한 디딤돌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3년 전쯤 ‘살인의 추억’ 촬영장에 임필성 감독이 찾아왔다. 그전부터 안면은 있던 임 감독은 송강호에게 ‘남극일기’ 시나리오를 건넸고, 송강호는 다음날 곧바로 출연 결정을 했다. 그가 출연 결정을 하는 중요도 순서는 첫 번째가 감독, 그리고 시나리오, 그 다음이 제작사다.
그는 스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다. 앞으로도 자기에게 주어진 역을 충실하게 연기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적으로 아주 재미가 없는 사람이다. 송강호는 촬영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편집실로 출근한다. 딱히 별다른 취미가 없는 그이기 때문에 집에서 할 일도 없어서지만, 자신이 온 힘을 다해 찍은 영화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궁금해서다. 편집실에 온다고 해서 다른 배우들처럼 자신의 출연 분량을 삭제하지 말라고 무언의 압력을 넣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분량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한다.
‘남극일기’ 시사회장에서도 유지태가 기다란 녹색의 트렌치코트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멋지게 무대 위에 서 있는 것에 비해서, 송강호는 그 옆에서 평범한 감청색 양복 정장에 노타이 차림으로 서 있었다. 그는 외모도 평범하고 스타일도 평범하다. 소탈하고 서민적이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송강호의 다음 작품은 ‘살인의 추억’을 함께 했던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괴물’. 박해일, 배두나도 함께 나오는 ‘괴물’에서는 눈에 힘을 주고 미쳐가는 ‘남극일기’의 최도형 대장과는 전혀 달리 눈에, 어깨에 모인 힘을 모두 빼고 가볍고 즐거운 캐릭터, 어수룩한 서민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상당히 즐겁지 않을까? 그런데 영화 제목이 ‘괴물’이라면, 그리고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독특한 유머 감각으로 이성재와 배두나를 등장시켰고 연쇄살인사건이라는 끔찍한 소재 속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던 봉준호 감독이라면, 단순히 가벼운 캐릭터로 놔두지는 않을 것 같다. ‘평범한 남자, 비범한 배우’ 송강호는 확실히, 괴물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인간이 남의 영화도 잘 안 보고, 책도 잘 안 읽고, 음악도 싫어하고, 고학력자도 아닌 주제에, 나이도 서른넷밖에 안 먹었으면서, 그렇게 수준 높은 예술적 안목을 가질 수 있는 거야? 평생 해온 내 노력은 도대체 뭐야?”
박찬욱 감독이 술자리에서 송강호에게 한 이 말은, 나 역시 그에게 하고 싶은 것이었다. 도대체 이 인간의 취미가 뭔가 궁금하다면 당신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박찬욱의 푸념대로 그는 다른 사람이 출연하는 영화를 잘 안 본다. 책도 잘 안 읽는다. 골프나 승마, 테니스 아니면 낚시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삶은 그냥 영화를 ‘찍거나 혹은 안 찍거나’다.
한국 영화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빅3, 즉 설경구, 최민식, 송강호는 그 이름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안겨주는 배우들이다. 비록 설경구의 ‘역도산’이 기대 이하였고 최민식의 ‘꽃피는 봄이 오면’이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그 영화들이 형편없었다는 평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빅3 중에서도 가장 안정감을 주고 흥행 타율이 가장 높은 배우가 송강호다. 그는 2000년 이후 한국 배우 중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관객 동원력 1위의 흥행력은 물론, 연기력과 스타성까지 보장받는 유일한 배우다.
그러므로 송강호가 ‘남극일기’ 기자 시사회에서 “‘남극일기’는 흥행을 보장하는 안전한 공식을 따르지 않은 새로운 영화다. 하지만 대중성이 없는 영화는 아니다. 관객은 늘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새로움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대중성이다. ‘올드 보이’나 ‘살인의 추억’도 안전한 공식을 따른 영화는 아니었다. ‘남극일기’도 안전한 흥행 공식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아주 새롭고 강력한 대중성을 지녔다”고 발언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개봉을 앞둔 배우가 자기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하는 말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자나 평론가들은 이 뛰어난 배우가 이렇게 힘주어 강조하는 영화를 외면하기 힘들다. ‘남극일기’는 무겁고 진지한 주제,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다. 한국 관객들이 외면하기 딱 좋은 내용이며 스타일이다. 그러나 송강호가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곰곰이 뜯어보게 된다.
임필성 감독의 ‘남극일기’는 순제작비 70억원, 마케팅비까지 포함해서 95억원이 들어간 대작이다. 2004년 6월부터 8월까지 뉴질랜드에서 촬영한 분량이 전체의 45%, 그리고 한국의 양수리 세트장과 블루 스크린 앞에서 찍은 필름을 연결하여 완성했다. 영화 전체는 오직 눈 위에서만 진행된다. 남극의 도달불능점 탐험에 나선 6명의 한국 탐험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산악 영화나 모험 영화는 아니다. 소재만 극한 지점에서 가져왔을 뿐, 이 영화는 의외로 인간의 욕망, 그 본질적 집착이 가져오는 무서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남극일기’에서 슈퍼바이저를 맡은 산악그랜드슬램 달성자 박영석씨(가운데)와 주연배우 송강호(맨 오른쪽), 유지태.‘넘버3’.‘살인의 추억’(위부터).
송강호는 1967년 1월17일생이다. 무엇이든 배우와 연관 지어보려는 필자는 그와 별자리가 같다. 산양자리는 외로운 별자리다.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을 싫어한다. 산양은 바위 틈에서 혼자 풀을 뜯어 먹는 짐승이다. 송강호는 자주, 혼자 있다. 여기저기 모임에 기웃거리지 않는다. 방 안에서 빈둥거린다. 그의 일상은 촬영을 하거나 집 안에 있거나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는 술과 담배다.
도빌영화제에서 ‘공동경비구역 JSA’로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부상으로 ‘루이 14세’ 코냑을 받았다. 그는 그때가 가장 즐거웠다고 한다. 부상으로 술을 주는 영화제도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가장 좋았던 사건으로 기억하는 배우도 그렇다. 송강호의 수상 이전에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박중훈 역시 도빌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코냑을 부상으로 받았다. 하지만 국내에 들어올 때 세관에서 송강호는 100만원의 세금을 냈고, 박중훈은 내지 않았다.
박중훈은 수상을 해서 국위를 선양했는데 무슨 세금이냐고 주장해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송강호는 애초에 그런 문제로 시비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소심하다. 그는 내성적이다. 화면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배우 송강호가 연기를 하는 모습이다.
또 담배의 경우, ‘남극일기’에서 그와 연기의 대결을 펼치는 탐험대 막내 대원 유지태도, 똑같이 연극 무대에서 출발해 영화로 성공한 동갑내기 설경구도, 그리고 절친한 박찬욱 감독도 금연에 성공했지만, 그는 담배를 끊지 않고 있다. 이것마저 끊으면 무슨 낙이 있나. 그만큼 외롭다는 뜻이다.
그는 부산경상대 방송연예과 출신이다. 부산 순회공연에 온 연극 ‘칠수와 만수’를 보고 연극을 하겠다고 상경해서 대학로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했다. 극단의 포스터를 붙이고 무대 청소를 하고 연기를 배웠다. ‘동승’(91년)은 그의 연극 데뷔작이다. 그의 영화 데뷔작은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96년)이다.
그 이후 송강호는 ‘넘버3’에서 불사파의 두목으로 나와 온 국민이 따라하게 만든 “배, 배, 배신이야, 배신”의 장황한 연설로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그러고는 순풍에 돛 단 듯이 그의 영화 인생은 전개된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 ‘쉬리’에서 그는 한석규의 파트너 이장길 역으로 등장했지만, 당시 한국 영화의 양대 산맥으로 부상한 한석규와 최민식에 포위되어 존재감이 없었다. 송강호 자신도 ‘쉬리’에서의 연기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
“그땐 영화라는 매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지. 어릴 때다. 아무것도 모를 신인 때였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송강호를 대배우로 자리매김하게 한 영화다.
송강호와 가장 친한 잘생긴 배우는? 이병헌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찍으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졌는데, 송강호는 “잘생긴 배우 중에서는 이병헌과 친하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잘생긴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장동건이나 배용준과도 알고 지내지만, 잘생긴 그들은 자신의 외모에 그만큼 더 신경을 써야 하니까 피곤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자기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자신이 잘생기지 못했기 때문에 멜로 영화를 못 찍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이 무척 아쉽다는 것이다. 그는 빅3 중에서 평범한 얼굴을 가졌다는 점에서 설경구와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최민식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입체적인 얼굴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화면에서는 송강호의 얼굴이 상당히 크게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그의 얼굴은 화면‘보다는’ 작다. 뺨 부위가 둥글게 굽어지기 때문에 화면에서는 그것이 평면적으로 비쳐지면서 얼굴이 퍼지게 나오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180cm에 71kg. 자기 관리를 잘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특별히 영화상에서 몸무게를 불리거나 줄일 필요가 있지 않는 한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엄청난 성공으로 박찬욱 감독과는 ‘복수는 나의 것’을 하나 더 찍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실패했다. 인터넷에는 욕설과 비방이 끊이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은 그때 충격을 받아 인터넷에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다. 송강호 역시 흥행이 잘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찍었지만 그 차가운 결과는 당혹스러웠고 싸늘한 시선을 이겨내는 것은 힘들었다.
출연 결정 기준은 감독, 시나리오, 제작사 順
그러고 나서 찍은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다. ‘살인의 추억’은 송강호에서 시작해서 송강호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끝난다. 이 영화의 대성공은 그를 확고부동한 충무로 배우 캐스팅 0순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성공한 영화들에서 그는 대부분 코믹한 요소가 섞여 있는 캐릭터를 맡았다. 유괴당했다가 죽은 어린 딸의 복수를 하기 위해 핏발 선 눈으로 범인들을 찾아나서는 ‘복수는 나의 것’의 동진이나, 도달 불능점에 가기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 않는 ‘남극일기’의 최도형 대장은 웃음이 전혀 없는 캐릭터다. 송강호가 ‘남극일기’의 개봉을 앞두고 긴장하는 이유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진지한 캐릭터로도 흥행성을 입증하고 싶은 것이다. 코믹한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는 배역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과연 ‘남극일기’에서 최도형 대장의 눈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광기에 사로잡혀간다.
세계 최초로 북극과 남극, 14좌 등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 ‘남극일기’의 슈퍼바이저(감독자)로 참여해서 많은 조언을 해주었고, 송강호도 그에게서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배웠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부분이다.
“이 영화는 다른 산악 영화처럼 암벽 등반 같은 기술적 측면을 요구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극한 상황에서 대원들을 이끄는 탐험대장의 입장 같은, 탐험대장의 심리묘사에서는 박영석 씨의 도움을 받았다.”
송강호는 ‘남극일기’의 광기 어린 최도형 대장을 표현하기 위해 밤마다 숙소 주변을 뛰면서 8kg을 줄였다. 그러나 유지태는 날마다 21km를 걸으며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정말 무서운 후배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송강호가 눈여겨보는 배우는 조승우와 류승범. ‘말아톤’이나 ‘주먹이 운다’에서의 그들의 연기는 신들린 연기였다고 평했다.
외국 영화는 잘 안 보지만 한국 영화는 빠짐없이 보며 모니터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자기에게 주어진 역을 성실하게 연기하겠다는 직업적 자세가 돋보이는 것은, 배우라는 직업을 제대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는 선민의식에 빠져 있지도 않고, 배우를 출세나 허명을 위한 디딤돌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3년 전쯤 ‘살인의 추억’ 촬영장에 임필성 감독이 찾아왔다. 그전부터 안면은 있던 임 감독은 송강호에게 ‘남극일기’ 시나리오를 건넸고, 송강호는 다음날 곧바로 출연 결정을 했다. 그가 출연 결정을 하는 중요도 순서는 첫 번째가 감독, 그리고 시나리오, 그 다음이 제작사다.
그는 스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다. 앞으로도 자기에게 주어진 역을 충실하게 연기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적으로 아주 재미가 없는 사람이다. 송강호는 촬영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편집실로 출근한다. 딱히 별다른 취미가 없는 그이기 때문에 집에서 할 일도 없어서지만, 자신이 온 힘을 다해 찍은 영화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궁금해서다. 편집실에 온다고 해서 다른 배우들처럼 자신의 출연 분량을 삭제하지 말라고 무언의 압력을 넣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분량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한다.
‘남극일기’ 시사회장에서도 유지태가 기다란 녹색의 트렌치코트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멋지게 무대 위에 서 있는 것에 비해서, 송강호는 그 옆에서 평범한 감청색 양복 정장에 노타이 차림으로 서 있었다. 그는 외모도 평범하고 스타일도 평범하다. 소탈하고 서민적이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송강호의 다음 작품은 ‘살인의 추억’을 함께 했던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괴물’. 박해일, 배두나도 함께 나오는 ‘괴물’에서는 눈에 힘을 주고 미쳐가는 ‘남극일기’의 최도형 대장과는 전혀 달리 눈에, 어깨에 모인 힘을 모두 빼고 가볍고 즐거운 캐릭터, 어수룩한 서민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상당히 즐겁지 않을까? 그런데 영화 제목이 ‘괴물’이라면, 그리고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독특한 유머 감각으로 이성재와 배두나를 등장시켰고 연쇄살인사건이라는 끔찍한 소재 속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던 봉준호 감독이라면, 단순히 가벼운 캐릭터로 놔두지는 않을 것 같다. ‘평범한 남자, 비범한 배우’ 송강호는 확실히, 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