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한의원 김형준 원장(왼쪽)과 양촌한의원 윤석희 원장.
“2001년 1월 경희대와 부산 동의대 한의학과 학생들이 모여 ‘동의보감연구회’라는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교재를 가지고 함께 공부하다 보니 가끔 오자나 오역이 눈에 띄더군요. 또 기존에 동의보감이라 하면 북한 번역본과 1960년대 허민 선생이 국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다였거든요. ‘지금, 이곳’의 한의사들을 위한 쉽고 정확한 번역본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습니다.”
김 원장의 말이다.
동의대 한의대 입학 전 고려대 한문학과를 졸업한 윤석희 원장이 대표 번역을 맡기로 했다. 김 원장은 대한형상의학회 학술위원회, 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들, 동의보감연구회 등 기타 번역에 참여한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일을 맡았다. 비용은 경남 화계면 지리산 자락에서 쌍계한의원을 운영하는 김진목(41) 원장이 책임졌다. 맏형뻘인 김진목 원장은 동료들이 어렵고 긴 번역 작업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마다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다독이고 힘을 북돋워주었다.
두 사람은 ‘오역 없이 정확하고 일관성 있는 번역, 원전에 근거한 해석, 임상에 비추어보아 의미 있는 해석’을 목표로 삼았다.
“동의보감은 일종의 ‘종합 텍스트’입니다. 이전의 수많은 의서들을 집대성해놓은 것이죠. 허준 선생은 각 구절마다 참고한 원전을 세세히 밝혀놓았습니다. 해석이 매끄럽게 되지 않을 때마다 의학강목, 의학입문 등 원전을 일일이 찾아 그 흐름을 참고했습니다.”
윤 원장의 설명이다.
두 사람이 앞장섰다고는 하지만 방대한 작업을 이들의 힘만으론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최철한·성민규·안상영·남무길·강영희 한의사 등이 함께 짐을 지고 나섰고, 정부산하기관인 민족문화추진회 소속 전문위원들도 힘을 보탰다. 한의학의 한 갈래인 형상의학회 학술위원 20여명도 1년간 매주 수요일 새벽 2시간씩 번역 용어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소문이 퍼지면서 주변 한의사들의 문의나 조언도 잇따랐다. 김 원장은 “많은 이들이 그간 동의보감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점이나 실제 조제 과정에서 알게 된 처방의 상세 내용 등을 전달해줘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윤 원장은 “2월 초 펴낸 초판 1쇄 1000권이 다 팔려 2쇄 1500부를 찍었다. 그중 이미 500부가 팔린 상태”라고 했다. “학계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새로 찍어낼 때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10년쯤 후에는 ‘완벽한 동의보감’이 탄생할 수 있도록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