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최남단의 섬 마을 로드비하겐에서 독일 최북단 섬 푸트가르덴 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20km남짓한 해협을 왕래하는 여객선 안에 탄 승객이라고는 승용차로 덴마크를 여행하고 돌아가는 독일 여행자 몇 명이 전부다. 덴마크를 떠난 지 30분이나 됐을까, 곧 도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선상에서 바라보는 독일 땅, 겨울로 접어드는 이 나라는 북부 독일 특유의 썰렁한 기온과 무거운 우울 속에 잠겨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필자는 고향에 돌아온 듯한 푸근한 느낌을 받으며 독일 땅을 밟았다. 지난해 실크로드 횡단 도중 부러진 발목을 안고 긴 여정을 마친 뒤 돌아와 다리에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했던 곳이 바로 독일이다. 수술을 마치고 휴양을 위해 이웃나라 프라하로 떠난 지 꼭 1년 만에 자전거를 끌고 다시 독일을 찾은 것이다. 감회가 새롭다.
운하에 둘러싸인 뤼베크 시가지 … ‘한자동맹’의 수도로 유명
선착장을 벗어나 남쪽으로 이어진 국도 E47번에 올랐다. 계절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평원 사이로 길게 이어진 국도를 보니 진한 그리움이 묻어 나온다. 이제 2~3일이면 이번 여정도 종착지에 이르는구나 생각하니, 알 수 없는 향수 같은 게 솟아나는 것이다.
그늘 한 조각 없는 7월 중순의 불볕 아스팔트 위에서 타 들어가는 피부와 쏟아지는 땀에 눈물을 흘리며 자전거를 달렸던 중부 유럽, 연일 내리는 늦가을 빗줄기에 손마디가 시리다 못해 심장까지 서서히 식어가는 걸 느꼈던 북유럽, 육신의 고통을 한순간에 잊게 해주던 따뜻한 사람들과의 만남…. 이 모든 기억이 바로 엊그제 일만 같은데 이제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독일 땅을 밟은 것이다.
섬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 앞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 마침내 유럽 대륙 본토에 발을 들여놓았다. 해변가로 내려가 텐트를 치고 등잔불을 밝혔다. 텐트 안 공간조차 다 못 밝히는 작은 불빛이건만, 그 생명의 빛은 참으로 아름답다. 코펜하겐을 출발할 때 친구 시몬이 추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에 한 모금씩 마시라며 넣어준 보드카를 꺼냈다. ‘무색, 무향, 무취의 결정체를 통해 인생의 미학을 깨우쳐도 좋을 것’이라는 시몬의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필자에게는 여정의 끝에 서 있는 순간을 함께할 친구도 다정한 연인도 없다. 다만 발틱해 파도 소리만이 끊임없이 그 속삭임을 들려주고 있다. 곧이어 어딘가로 다시 훌쩍 떠날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여정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언제나 그랬다. 지난날들은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인다. 나에게는 불가항력이던 기억조차도.
알람 소리에 깨 일어나 보니 아직 주변에 어둠이 쌓여 있는 새벽 5시. 비상 식량으로 남겨두었던 라면 두 개를 끓여 먹었다. 더 이상 비상식량을 비축해둘 필요가 없는 지역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제는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정든 곳까지 온 것이다.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국도에서 내려 501번 지방도로를 통해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 빛나는 중세도시 뤼베크에 입성했다. 운하로 둘러싸인 옛 시가지, 낯설지 않은 거리 풍경이다. 가까운 함부르크에서 살면서 몇 번 다녀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뤼베크는 남부 독일의 관광지들에 비해 조금은 생소한 지역이지만, 옛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중세의 향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한자동맹의 여왕’이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 중세 400년 동안 발틱해 연안 무역을 총괄했던 한자동맹의 수도로서 중세 북유럽 역사에 한 송이 꽃으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뤼베크는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옛 시가지에 있는 여행자용 숙소에서 이번 여정의 종착지 함부르크 입성을 앞둔 마지막 밤을 보냈다. 오전 중에 옛 시가지 일대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는, 남서쪽으로 50km 남짓 떨어진 함부르크를 향해 75번 지방도로에 들어섰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여정이 끝나간다는 사실 때문에 감정의 기복이 심했는데, 막상 함부르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니 평온한 마음이 돌아왔다. 옛 친우들을 다시 만나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조금 설레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년쯤엔 아프리카 종단 여행이나 떠나볼까?”
이런저런 망상에 빠졌다 벗어났다 하며 달리다 보니 먼 거리도 아닌데 석양이 서서히 내려앉을 즈음에야 함부르크 외곽에 접어들었다. 세계7대 항구도시 가운데 하나로, 독일에서 수도 베를린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함부르크. 시내 중앙에 있는 거대한 인공호수 ‘알스터’에 도착하자 어느새 오후 9시가 다 된 시간이다.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인 함부르크 대학 앞 도로를 지나 본관에 다다랐다. 필자는 함부르크 대학 인도학 연구소에서 몇 년간 연구원으로 유학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추억이 많이 담긴 곳이다. 프라하를 출발한 지 꼭 3개월 만에 발틱해 연안 북유럽 11개국 일주여행의 기착지 함부르크에 도착한 것이다.
뤼베크를 출발하면서 함부르크에 있는 지인들에게 오늘 중으로 도착하니 얼굴이나 한번 보자며 연락을 해놓았다.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은 시간, 약속 장소인 교민이 운영하는 한국식당에 도착하니 함부르크에 남아 있는 한국인 유학생 동료들과 가깝게 지내던 교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1년 만의 재회다. 꼭 1년 전 목발을 짚고 프라하로 떠나는 내 모습에 걱정이 많았는지,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다들 안도의 숨을 돌리는 모습이다. 한국으로 귀국한 동료들을 제외하고 남아 있는 함부르크 식구들은 다 모여 있었다. 언제 다시 만나도 반가운 사람들, 홀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이들. 우리는 오랜만에 다시 만난 서로를 위해 축배의 잔을 들었다. 그 사이 귀국한 동료들의 안부와 여행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일에 대한 이야기로 금세 식당은 북적북적해졌다.
한 동료가 다음 자전거 여행은 어디로 갈 계획이냐고 묻는다. 내일 마음을 알 수 없는 게 사람인지라 사실 나도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일단은 자전거로 세계를 일주하겠다는 꿈으로 시작한 여행이니, 내년쯤에는 그동안 숙원으로 남겨두었던 ‘사하라에서 희망봉까지’ 아프리카 횡단 여행을 한 1년 떠날 생각이다. 여행의 마무리 지점에 서서 다음 여정을 생각하는 건, 방랑벽으로 점철된 길을 걸어온 이가 안고 살아가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리라.
* 이번 편으로 14회에 걸쳐 연재된 ‘승려 행창의 자전거 유럽 기행’을 마칩니다.
그동안 관심을 갖고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운하에 둘러싸인 뤼베크 시가지 … ‘한자동맹’의 수도로 유명
선착장을 벗어나 남쪽으로 이어진 국도 E47번에 올랐다. 계절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평원 사이로 길게 이어진 국도를 보니 진한 그리움이 묻어 나온다. 이제 2~3일이면 이번 여정도 종착지에 이르는구나 생각하니, 알 수 없는 향수 같은 게 솟아나는 것이다.
그늘 한 조각 없는 7월 중순의 불볕 아스팔트 위에서 타 들어가는 피부와 쏟아지는 땀에 눈물을 흘리며 자전거를 달렸던 중부 유럽, 연일 내리는 늦가을 빗줄기에 손마디가 시리다 못해 심장까지 서서히 식어가는 걸 느꼈던 북유럽, 육신의 고통을 한순간에 잊게 해주던 따뜻한 사람들과의 만남…. 이 모든 기억이 바로 엊그제 일만 같은데 이제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독일 땅을 밟은 것이다.
섬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 앞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 마침내 유럽 대륙 본토에 발을 들여놓았다. 해변가로 내려가 텐트를 치고 등잔불을 밝혔다. 텐트 안 공간조차 다 못 밝히는 작은 불빛이건만, 그 생명의 빛은 참으로 아름답다. 코펜하겐을 출발할 때 친구 시몬이 추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에 한 모금씩 마시라며 넣어준 보드카를 꺼냈다. ‘무색, 무향, 무취의 결정체를 통해 인생의 미학을 깨우쳐도 좋을 것’이라는 시몬의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필자에게는 여정의 끝에 서 있는 순간을 함께할 친구도 다정한 연인도 없다. 다만 발틱해 파도 소리만이 끊임없이 그 속삭임을 들려주고 있다. 곧이어 어딘가로 다시 훌쩍 떠날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여정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언제나 그랬다. 지난날들은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인다. 나에게는 불가항력이던 기억조차도.
알람 소리에 깨 일어나 보니 아직 주변에 어둠이 쌓여 있는 새벽 5시. 비상 식량으로 남겨두었던 라면 두 개를 끓여 먹었다. 더 이상 비상식량을 비축해둘 필요가 없는 지역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제는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정든 곳까지 온 것이다.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국도에서 내려 501번 지방도로를 통해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 빛나는 중세도시 뤼베크에 입성했다. 운하로 둘러싸인 옛 시가지, 낯설지 않은 거리 풍경이다. 가까운 함부르크에서 살면서 몇 번 다녀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뤼베크는 남부 독일의 관광지들에 비해 조금은 생소한 지역이지만, 옛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중세의 향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한자동맹의 여왕’이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 중세 400년 동안 발틱해 연안 무역을 총괄했던 한자동맹의 수도로서 중세 북유럽 역사에 한 송이 꽃으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뤼베크는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옛 시가지에 있는 여행자용 숙소에서 이번 여정의 종착지 함부르크 입성을 앞둔 마지막 밤을 보냈다. 오전 중에 옛 시가지 일대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는, 남서쪽으로 50km 남짓 떨어진 함부르크를 향해 75번 지방도로에 들어섰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여정이 끝나간다는 사실 때문에 감정의 기복이 심했는데, 막상 함부르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니 평온한 마음이 돌아왔다. 옛 친우들을 다시 만나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조금 설레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년쯤엔 아프리카 종단 여행이나 떠나볼까?”
이런저런 망상에 빠졌다 벗어났다 하며 달리다 보니 먼 거리도 아닌데 석양이 서서히 내려앉을 즈음에야 함부르크 외곽에 접어들었다. 세계7대 항구도시 가운데 하나로, 독일에서 수도 베를린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함부르크. 시내 중앙에 있는 거대한 인공호수 ‘알스터’에 도착하자 어느새 오후 9시가 다 된 시간이다.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인 함부르크 대학 앞 도로를 지나 본관에 다다랐다. 필자는 함부르크 대학 인도학 연구소에서 몇 년간 연구원으로 유학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추억이 많이 담긴 곳이다. 프라하를 출발한 지 꼭 3개월 만에 발틱해 연안 북유럽 11개국 일주여행의 기착지 함부르크에 도착한 것이다.
뤼베크를 출발하면서 함부르크에 있는 지인들에게 오늘 중으로 도착하니 얼굴이나 한번 보자며 연락을 해놓았다.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은 시간, 약속 장소인 교민이 운영하는 한국식당에 도착하니 함부르크에 남아 있는 한국인 유학생 동료들과 가깝게 지내던 교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1년 만의 재회다. 꼭 1년 전 목발을 짚고 프라하로 떠나는 내 모습에 걱정이 많았는지,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다들 안도의 숨을 돌리는 모습이다. 한국으로 귀국한 동료들을 제외하고 남아 있는 함부르크 식구들은 다 모여 있었다. 언제 다시 만나도 반가운 사람들, 홀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이들. 우리는 오랜만에 다시 만난 서로를 위해 축배의 잔을 들었다. 그 사이 귀국한 동료들의 안부와 여행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일에 대한 이야기로 금세 식당은 북적북적해졌다.
한 동료가 다음 자전거 여행은 어디로 갈 계획이냐고 묻는다. 내일 마음을 알 수 없는 게 사람인지라 사실 나도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일단은 자전거로 세계를 일주하겠다는 꿈으로 시작한 여행이니, 내년쯤에는 그동안 숙원으로 남겨두었던 ‘사하라에서 희망봉까지’ 아프리카 횡단 여행을 한 1년 떠날 생각이다. 여행의 마무리 지점에 서서 다음 여정을 생각하는 건, 방랑벽으로 점철된 길을 걸어온 이가 안고 살아가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리라.
* 이번 편으로 14회에 걸쳐 연재된 ‘승려 행창의 자전거 유럽 기행’을 마칩니다.
그동안 관심을 갖고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