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1일 한국방송연기자노조 관계자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홍우빌딩에서 연예인 X파일 사건관련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
우선 기획사나 리서치 기관은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80년대에 국군보안사령부가 민주화 인사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해서 관리한 것이 내부자의 양심선언에 의해 밝혀진 적이 있다. 당시 대법원은 “모든 국민은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 헌법 제17조의 사생활 보호조항에 의해 자신의 개인정보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처분할 수 있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헌법상 보장받는다”면서 “국가기관이라고 해도 적법한 공무집행의 범위를 넘어 개인의 동의 없이 정보 수집을 한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광고기획사 같은 민간사업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제일기획은 “연예인은 공인이며 광고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 것이기 때문에 적법한 업무 범위로 봐야 한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라 해도 그가 출연한 작품이나 경력 따위를 넘어 원치 않는 사생활에 대한 정보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수집되거나 공개돼선 안 된다.
혹자는 계약 이전에 계약 상대방의 정보를 어느 정도 수집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이미 공개된 정보에 국한될 뿐이지, 알려지지 않은 정보까지 캐내서는 곤란하다. 더구나 이번에 공개된 연예인 정보는 광고 계약 체결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이 태반이어서, 이런 항변이 인정될 여지도 거의 없다. 이들 회사들이 내부 이용 목적으로 자료를 구축했다 주장하더라도, 허위 정보가 공공연히 이용될 수 있게 했다면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의 형사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정보를 내려받아 봤거나 이를 게시판 등에 퍼뜨린 누리꾼들은 어떨까. 단순하게 이를 받아 본 누리꾼이라면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이를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리거나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리는 등 적극적으로 유포한 이들은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의 형사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정보통신망을 통해 사실을 적시해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진실한 사실일 경우에는 징역 3년 이하에, 허위의 사실이면 징역 7년 이하에 처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제61조 제1, 2항). 다만 이 범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되는 범죄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는다면 수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제61조 제3항).
한편 포털사이트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높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민·형사상의 책임은 인정되기 어렵다고 본다. 예를 들어 연예인들이 이 X파일을 적극적으로 유포하는 자를 막아달라고 포털 회사 측에 요청했음에도 의도적으로 이를 방치했다면 몰라도, 단순히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것만으로는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피해자의 요청이 있음에도 대응하지 않은 경우가 아니라면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그밖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 대해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법을 제정하거나, 법원에서 그와 같은 법리를 적용해가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 게시판의 실명제 논의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 도입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이다. 게시판의 실명제는 그 자체로 언론자유의 침해이자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개인정보 보호의식과 인권의식이 높아진 일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개인정보 침해를 감독·관리하고 이를 신속하게 구제해줄 수 있는 개인정보보호 감독기구 구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개인정보보호기본법안’이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에 의해 발의됐으며, 정부 여당에서도 이은영 의원의 발의로 개인정보보호기본법안을 마련할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올 상반기 임시국회에서 두 법안의 장점을 취합한 새로운 법률이 통과될 것으로 보이니 앞으로의 변화 과정을 좀더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은우 l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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