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은 바쁜 엄마 덕분에 스스로 숙제하는 법을 취득했다.
경기 광주시에 사는 박은경씨(37·경화여자중학교 교사)는 다섯 아이를 둔 맞벌이 주부. 남편 안상진씨(42·일신창투)와 민선(12), 주영(10), 지영(8) 그리고 쌍둥이 남매 제형(6), 희영(6)이를 데리고 찜질방에라도 가면 생전 처음 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질문 공세를 피할 길이 없다.
“밖에 나가면 ‘못 배운 여자’ ‘아무 생각 없이 아이만 낳은 여자’ 취급을 당해요. 아이 다섯을 키우면서 맞벌이한다고 하면 다들 거짓말이라며 믿어주질 않죠.”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또 있다. 박씨는 맞벌이를 하면서도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모유 수유를 고집했다. 학교에서 젖이 불면 짜서 용기에 모아두었다가 집에 가져와 먹였다. 덕분에 민선이는 100일, 주영이는 10개월, 지영이는 6개월 동안 엄마 젖을 먹는 행운아가 됐다.
‘못 배운 여자, 아무 생각 없는 여자’ 취급 당해
“쌍둥이만 모유를 못 먹였어요.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임신중독증에 걸려서 소금간이 된 음식을 못 먹고 화장실 출입도 힘들었거든요. 그런 탓인지 출산 후 젖이 한 방울도 안 나오더라고요.”
건강한 쌍둥이를 출산하던 날 그는 밤새 잠 못 들고 울었다고 한다. 아기들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는 안도감 때문에 흘린 눈물이 절반이었고, 나머지는 과거 ‘쌍둥이 사수작전’이 떠올라 흘린 눈물이었다. 그가 쌍둥이를 임신한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주변 사람들 모두 ‘산모가 힘들다’며 출산을 말렸다. 남편까지 아내의 네 번째 임신 때문에 극도로 예민해진 탓에 신경성 디스크에 걸려 집안 분위기는 무척 심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용감했다.
“이혼하게 되더라도 꼭 쌍둥이를 낳겠다고 결심했어요.”
비장한 그의 각오를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성애가 이겼다. 대신 짊어져야 할 책임은 혹독했다. 쌍둥이 남매 제형과 희영은 밤마다 잠도 자지 않고 교대로 울어댔다. 제형이를 재우고 나면 희영이가 울고, 그 소리에 제형이가 다시 깨어 울기를 서너 차례 반복하다 보면 부부는 다음날 아침 파김치처럼 축 늘어졌다.
“시어머니께서 쌍둥이 중 한 아이를 봐주신다고 했는데 거절했어요.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는 엄마 품에서 커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 기르는 정도 생기고 형제간의 우애도 좋아질 것 같아요.”
대신 맹목적인 사랑보다는 합리적인 사랑을 쏟기로 부부가 원칙을 세웠다.
“밤에 쌍둥이가 아무리 울어도 내버려두고 모른 척했어요. 아이들이 하도 울어서 나중에는 목이 다 쉴 정도였죠.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까 밤에 깨도 울지 않고 다시 잘 잠들어요.”
그는 연년생인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키울 때에 비하면 쌍둥이 돌보기는 일도 아니라고 한다.
“민선이와 주영이를 키울 때는 아이들 몸을 생각해 천 기저귀까지 쓰느라고 더 바빴어요. 그때 ‘연년생을 키우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할 만큼 힘들었어요.”
그는 지금도 민선이와 주영이를 놀이방에 맡기던 때를 떠올리면 눈가가 젖어온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놀이방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는데 어두컴컴하고 텅 빈 놀이방에 민선이와 주영이만 남아 찬 바닥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거예요. 더구나 화면 상태도 좋지 않은 텔레비전이었어요. 제가 너무 과민하면 아이들에게 득이 될 게 없으니까 평소 모성적인 자책 같은 것이 별로 없는 편이에요. 하지만 그날 따라 마음이 무척 아프더라고요.”
셋째 지영이도 생후 16개월째 됐을 때부터 놀이방에 맡겼다. 아침에 집에서 나갈 때는 멀쩡했던 아이가 저녁 때 집에 데리고 와서 보면 엉덩이가 짓물러 있기 일쑤였다. 놀이방에서 기저귀를 자주 갈아주지 않아 생긴 발진이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불이익이 올까봐 참았어요. 그런데 나아지지 않아서 ‘지영이 엉덩이가 빨개요. 자주 좀 봐주세요’ 하고 부탁했더니 ‘집에서 안 갈아주는 것 아니에요?’라고 제 탓으로 돌리더군요. 너무 속상해서 해코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엄마용 숙제 NO … 존경받는 엄마가 될래요
자식 키우기는 여자들이 농담 삼아 ‘도 닦는 일’이라고 할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박씨처럼 일하는 엄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나마 박씨는 교사라는 직업 덕분에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 1년을 휴직하고 쌍둥이를 낳았을 때 2년을 휴직할 수 있었다. 방학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됐다. 손이 부족할 때는 아주 잠깐 친정과 시댁에 첫째 아이와 셋째 아이를 몇 달 맡긴 것 말고는 동네 아줌마나 놀이방에 아이들을 맡기면서 매일 아이들과 먹고 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회의와 갈등이 왜 없었겠어요? 그렇지만 남편의 경제적 능력과 상관없이 ‘내가 낳은 아이는 나 혼자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직장생활을 포기하지 않았죠. 대신 아이들의 모든 것을 저 혼자 다 책임지려고 하기보다는 제 능력만큼만 하려고 해요.”
그래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민선이와 주영이의 공부를 방학 때 말고는 제대로 돌봐주지 않는다. 학기 중에는 각자 알아서 하게끔 하고 과도한 ‘엄마용 숙제’는 절대 도와주지 않는다. 숙제를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그냥 학교에 보낸다.
“엄마의 치맛바람이 심하면 아이의 자생력이 떨어져요. 제가 낳은 아이들이지만 저는 부모로서 도움만 줄 뿐이지 아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못 하거든요. 자식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방치가 아닌 간격 두기. 그로 인해 아이들은 엄마의 예상보다 훨씬 더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것 같단다.
“형제, 자매가 많아서 긍정적인 면이 있어요. 큰아이가 아래 아이들을 돌봐주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더라고요.”
남편 안상진씨는 자라면서 어머니에게서 느꼈던 모성애와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의 모성애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사랑해서 아껴주는 마음은 같아요. 하지만 어머니가 맹목적인 사랑을 베풀었다면 아내는 훨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죠. 남에게 뒤지지 않도록 아이들의 능력 개발을 하는 데도 체계적이고요.”
매일 아침 아내보다 30분 먼저 일어나 아이들의 아침상을 차린다는 안씨. 부성애가 밑받침될 때 모성애도 잘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 안씨의 생각이다. 그는 요즘 맞벌이 주부를 바라보는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사회가 여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점점 과해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집안일하면서 자식교육 잘하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거기에 보태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출세까지 하라고 내몰잖아요. 남자들의 삶은 별 변화가 없는데, 여자들은 두 배로 열심히 살아야 하니 힘들죠. 남자가 여자를 많이 배려해야 하는데….”
반면에 박씨는 ‘모성애가 부족하다’는 자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지만 ‘적절한 포기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하는 엄마의 균형감각을 유지해가고 있다.
“정성껏 음식 만들어 먹이거나 소풍 가는 날 김밥을 싸서 보내는 일은 못해요. 다른 엄마들처럼 자상하거나 표현방식이 따뜻한 편이 아니거든요. 제가 힘들 땐 아이들한테 짜증도 팍팍 내요. 헌신적인 엄마가 될 자신은 없어요. 다만 자식들한테 삶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존경받는 엄마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