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프랑스에서는 ‘사르코지 열풍’이 불고 있다. 11월28일 프랑스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UMP·중도우파) 총재에 취임한 니콜라 사르코지는 ‘사르코 스타’ ‘사르코 레옹’으로 불린다. 그가 지금 누리는 명성 뒤에는 칠전팔기의 인생역정 드라마가 있다.
‘향후 10년간 프랑스를 책임질 정치인은 누구인가’라는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사르코지를 지지했다. 2년 전부터 서서히 달아오른 사르코지 신드롬의 파장과 지속 기간은 이미 예측 불가로 판정된 가운데, 사르코지는 11월 말 이뤄진 총재 선출 투표에서 84%의 지지율을 획득했다.
자크 시라크 측근들은 사르코지의 취임식을 ‘사르코 쇼’라고 비하했다. 취임식에는 800만 유로(약 120억원)가 쓰였고, 프랑스 정당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대형 스크린이 등장했다. 연예인들의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시라크의 짧은 메시지, 총리의 연설만 빼면 할리우드식 버라이어티 쇼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매일 거울 보며 프랑스 대통령 상상”
사르코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프랑스 대통령이 된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곤 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 말의 진정한 의미와 무게를 알고 있다. 소련 공산당의 헝가리 침입을 피해 빈손으로 프랑스로 피신한 사르코지의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서 대통령이 나오기 위해선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으로 갔어야 했는데…”라고 말하곤 했다. 이는 그랑제콜이라는 엘리트 교육을 물려받지 않고는 정치인이나 고급관료가 될 수 없는 폐쇄적인 프랑스 정계의 현실을 한탄하며 한 말이다. 그러나 헝가리 이민자 아버지와 코르시카 섬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르코지는 19세가 되던 해 대통령이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
법대에 갓 입학한 열아홉 살의 사르코지는 1974년 어느 봄날, 자크 시라크가 만든 공화당 지역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작은 키에 동안인 한 소년의 예고 없는 방문에 어리둥절해하는 사무실 직원에게 사르코지는 “나는 장차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그해 가을 정당대회가 열리는 파리 북부 부르제 전시장 한구석에서 단상에 우뚝 선 채 연설하는 시라크 총재를 바라보면서, 사르코지는 언젠가 저 자리에 자신이 서 있을 것이란 막연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30년 뒤, 사르코지는 같은 장소 같은 단상에 올라 총재 당선 수락 연설을 했다.
지역 정당 사무실을 혼자 찾아간 지 9년째 되던 해인 89년 4월, 네이리 쉬르 센 뇌이 시장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시장 자리가 공석이 된다. 모두 자크 시라크의 오른팔이자 내무부 장관 후보인 파스쿠와가 후임 시장으로 내정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조용히 물밑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파스쿠와는 “겨우 28살밖에 안 된 녀석이…”이라며 매우 불쾌해했다. 당 중앙위원회는 사르코지를 불러들여 “시라크 총재는 파스쿠와가 시장이 되기를 원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총재가 내게 할 말이 있다면 직접 할 것이지 왜 다른 사람을 통하는가. 나는 시장에 출마할 것이다”라고 말한 뒤 방을 나가버렸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시라크는 사르코지를 총재 사무실로 불렀다. 사르코지는 시라크에게 “내가 원하는 단 한 가지는 나의 시장 출마를 막지 말아달라는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28세의 최연소 시장이 된 사르코지는 혁신적인 시정 운영과 변호사 기질을 맘껏 발휘하는 협상 능력, 언론과의 호의적 관계 유지 등을 통해 성공을 거둔다. 특히 그는 관공서에 보낸 등기우편의 답장을 받는 데 보통 한 달이 걸리는 관례를 깼다. 시 공무원이 직접 자전거를 타고 발송인에게 3일 이내에 답장을 전달하게 했고, 발송인에게 들은 애로사항을 일지에 기록하게 했으며, 이를 날마다 읽으면서 시정 상황을 파악했다. 또 10여만명의 시민들의 경조사를 잊지 않고 그때마다 편지를 보내는 ‘무서운’ 열정을 보였다. 사르코지는 34세의 나이에 최연소 하원의원이 되었다.
“여섯 살이 되면서 니콜라는 누구를 만나든 ‘나는 잘생기지도 않았고, 멋도 없고, 낭만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고, 키도 작아요’라고 대뜸 고백하면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했어요.”(사르코지의 어머니)
“한 조그만 청년이 과자를 얼마나 빨리 먹는지, 세다가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정당 사무실 앞 빵가게 주인)
2년 뒤 엘리제궁 들어갈 수 있나
이는 사르코지가 직설적인 성격, 우유 수프처럼 금방 끓어 넘치듯 쉽게 화를 내는 성격,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 공 같은 성격의 소유자임을 추측케 하는 일화들이다. 특히 정치 신념에서 ‘더욱 많은 것을 주는 쪽을 선택한다’라든가, ‘시도하지 않고 이를 갈며 후회하는 것은 내 사전에 없다’는 행동강령을 서슴없이 피력하는 솔직한 모습들은 사실 그가 얼마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단면이다.
결국 사르코지는 추락한다. 95년 대선에서 시라크의 라이벌인 에드워드 발라뒤를 지지하며 최연소 총리 자리를 꿈꾸지만, 시라크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배신자’로 지목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고 굳게 믿은 사르코지는 지역구 활동을 통해 시장과 하원의원에 재선된다.
2002년 좌파연합 대통령 후보인 조스팽 총리를 만나 고전을 면치 못하던 시라크는 사르코지의 전략과 추진력에 힘입어 대통령에 재선된다. 7년 전의 변절을 기억하고 있던 시라크는 자신과 너무 닮아 늘 도전적인 사르코지를 총리가 아닌 내무부 장관에 임명하고, 1년 뒤에는 재경부 장관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사르코지는 장관 자리를 미련 없이 버리고 집권당 총재에 당선됨으로써 화려한 정치적 부활과 함께 2007년 대통령 후보 자격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이로써 11월29일, 사르코지는 시라크의 72번째 생일에 독특한 두 가지 선물을 선사했다. 한 가지는 장관직 사표를 냄으로써 앓던 이가 빠지는 즐거움을 준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집권당 총재가 되어 정부와 대통령을 냉철히 견제하는 카드를 내민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가 2007년 대선 후보로 니콜라 사르코지를 지목했다. 새롭게 집권당 총재가 된 사르코지는 대양을 만난 상어로 변신한 것이다. 그가 당분간 누릴 이 커다란 자유가 2년 뒤에 있을 대통령 선거 때까지 올무가 되지 않는다면 사르코지의 열풍은 엘리제궁을 향해 부는 순풍이 될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는 기준으로도 목표로도 삼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항해보다는 등산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르코지에게 운명은 없다. 다만 눈앞에 보이는 ‘고지’만 있을 뿐이다.
‘향후 10년간 프랑스를 책임질 정치인은 누구인가’라는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사르코지를 지지했다. 2년 전부터 서서히 달아오른 사르코지 신드롬의 파장과 지속 기간은 이미 예측 불가로 판정된 가운데, 사르코지는 11월 말 이뤄진 총재 선출 투표에서 84%의 지지율을 획득했다.
자크 시라크 측근들은 사르코지의 취임식을 ‘사르코 쇼’라고 비하했다. 취임식에는 800만 유로(약 120억원)가 쓰였고, 프랑스 정당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대형 스크린이 등장했다. 연예인들의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시라크의 짧은 메시지, 총리의 연설만 빼면 할리우드식 버라이어티 쇼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매일 거울 보며 프랑스 대통령 상상”
사르코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프랑스 대통령이 된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곤 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 말의 진정한 의미와 무게를 알고 있다. 소련 공산당의 헝가리 침입을 피해 빈손으로 프랑스로 피신한 사르코지의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서 대통령이 나오기 위해선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으로 갔어야 했는데…”라고 말하곤 했다. 이는 그랑제콜이라는 엘리트 교육을 물려받지 않고는 정치인이나 고급관료가 될 수 없는 폐쇄적인 프랑스 정계의 현실을 한탄하며 한 말이다. 그러나 헝가리 이민자 아버지와 코르시카 섬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르코지는 19세가 되던 해 대통령이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
법대에 갓 입학한 열아홉 살의 사르코지는 1974년 어느 봄날, 자크 시라크가 만든 공화당 지역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작은 키에 동안인 한 소년의 예고 없는 방문에 어리둥절해하는 사무실 직원에게 사르코지는 “나는 장차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그해 가을 정당대회가 열리는 파리 북부 부르제 전시장 한구석에서 단상에 우뚝 선 채 연설하는 시라크 총재를 바라보면서, 사르코지는 언젠가 저 자리에 자신이 서 있을 것이란 막연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30년 뒤, 사르코지는 같은 장소 같은 단상에 올라 총재 당선 수락 연설을 했다.
지역 정당 사무실을 혼자 찾아간 지 9년째 되던 해인 89년 4월, 네이리 쉬르 센 뇌이 시장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시장 자리가 공석이 된다. 모두 자크 시라크의 오른팔이자 내무부 장관 후보인 파스쿠와가 후임 시장으로 내정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조용히 물밑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파스쿠와는 “겨우 28살밖에 안 된 녀석이…”이라며 매우 불쾌해했다. 당 중앙위원회는 사르코지를 불러들여 “시라크 총재는 파스쿠와가 시장이 되기를 원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총재가 내게 할 말이 있다면 직접 할 것이지 왜 다른 사람을 통하는가. 나는 시장에 출마할 것이다”라고 말한 뒤 방을 나가버렸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시라크는 사르코지를 총재 사무실로 불렀다. 사르코지는 시라크에게 “내가 원하는 단 한 가지는 나의 시장 출마를 막지 말아달라는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28세의 최연소 시장이 된 사르코지는 혁신적인 시정 운영과 변호사 기질을 맘껏 발휘하는 협상 능력, 언론과의 호의적 관계 유지 등을 통해 성공을 거둔다. 특히 그는 관공서에 보낸 등기우편의 답장을 받는 데 보통 한 달이 걸리는 관례를 깼다. 시 공무원이 직접 자전거를 타고 발송인에게 3일 이내에 답장을 전달하게 했고, 발송인에게 들은 애로사항을 일지에 기록하게 했으며, 이를 날마다 읽으면서 시정 상황을 파악했다. 또 10여만명의 시민들의 경조사를 잊지 않고 그때마다 편지를 보내는 ‘무서운’ 열정을 보였다. 사르코지는 34세의 나이에 최연소 하원의원이 되었다.
“여섯 살이 되면서 니콜라는 누구를 만나든 ‘나는 잘생기지도 않았고, 멋도 없고, 낭만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고, 키도 작아요’라고 대뜸 고백하면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했어요.”(사르코지의 어머니)
“한 조그만 청년이 과자를 얼마나 빨리 먹는지, 세다가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정당 사무실 앞 빵가게 주인)
2년 뒤 엘리제궁 들어갈 수 있나
이는 사르코지가 직설적인 성격, 우유 수프처럼 금방 끓어 넘치듯 쉽게 화를 내는 성격,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 공 같은 성격의 소유자임을 추측케 하는 일화들이다. 특히 정치 신념에서 ‘더욱 많은 것을 주는 쪽을 선택한다’라든가, ‘시도하지 않고 이를 갈며 후회하는 것은 내 사전에 없다’는 행동강령을 서슴없이 피력하는 솔직한 모습들은 사실 그가 얼마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단면이다.
결국 사르코지는 추락한다. 95년 대선에서 시라크의 라이벌인 에드워드 발라뒤를 지지하며 최연소 총리 자리를 꿈꾸지만, 시라크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배신자’로 지목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고 굳게 믿은 사르코지는 지역구 활동을 통해 시장과 하원의원에 재선된다.
2002년 좌파연합 대통령 후보인 조스팽 총리를 만나 고전을 면치 못하던 시라크는 사르코지의 전략과 추진력에 힘입어 대통령에 재선된다. 7년 전의 변절을 기억하고 있던 시라크는 자신과 너무 닮아 늘 도전적인 사르코지를 총리가 아닌 내무부 장관에 임명하고, 1년 뒤에는 재경부 장관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사르코지는 장관 자리를 미련 없이 버리고 집권당 총재에 당선됨으로써 화려한 정치적 부활과 함께 2007년 대통령 후보 자격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이로써 11월29일, 사르코지는 시라크의 72번째 생일에 독특한 두 가지 선물을 선사했다. 한 가지는 장관직 사표를 냄으로써 앓던 이가 빠지는 즐거움을 준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집권당 총재가 되어 정부와 대통령을 냉철히 견제하는 카드를 내민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가 2007년 대선 후보로 니콜라 사르코지를 지목했다. 새롭게 집권당 총재가 된 사르코지는 대양을 만난 상어로 변신한 것이다. 그가 당분간 누릴 이 커다란 자유가 2년 뒤에 있을 대통령 선거 때까지 올무가 되지 않는다면 사르코지의 열풍은 엘리제궁을 향해 부는 순풍이 될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는 기준으로도 목표로도 삼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항해보다는 등산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르코지에게 운명은 없다. 다만 눈앞에 보이는 ‘고지’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