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달 전부터 국립국어연구원과 동아닷컴은 ‘말터(www.malteo.net)’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시민들과 함께 우리말 다듬기를 하고 있다. 최근에 시민들의 제안으로 ‘누리꾼’이란 말을 만들었는데, ‘네티즌’이라는 외래어를 순우리말로 다듬은 것이다.
‘누리’란 ‘세상’ 또는 ‘세계’를 일컫는 우리 옛말이다. 이 말을 이용해 ‘인터넷’이라는 외래어를 ‘누리망’이라는 새 말로 바꾸어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는 ‘인터넷’을 전세계를 잇는 전자 그물이라는 뜻으로 해석해 ‘누리’라는 옛말을 묘하게 살려 쓴 것이다. ‘네티즌’을 ‘누리꾼’이라고 하는 것은 ‘누리망’과 짝을 짓기에 꽤 그럴듯한 제안이다. 이 말이 널리 쓰이기를 바란다.
우리말 다듬기 운동은 개화기 이래 꾸준히 이어져온 운동이다. 우리 글을 비하하여 ‘언문’이라 하던 것을 ‘한글’이라 한 것부터 그렇다. ‘한글’은 하나밖에 없는 글, 우리 한민족의 글이라는 것을 아울러 나타내기 위한 뜻으로 지은 말이라 한다.
해방 직후에는 우리말에 스며든 일본말을 몰아내려는 노력이 있었다. ‘혼다데, 간스메, 젠사이, 다꾸앙, 후미기리’ 같은 말들을 각각 ‘책꽂이, 통조림, 단팥죽, 단무지, 건널목’으로 바꾸었다. 이때 어려운 한자말을 쉬운 말로 순화하는 일도 병행됐다. ‘화판, 자예, 웅예, 가법, 감법, 방안지, 성좌’ 같은 말들을 ‘꽃잎, 암술, 수술, 더하기, 빼기, 모눈종이, 별자리’로 다듬었다.
요즘에는 서양 외래어가 말 다듬기 운동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무슨 까닭인지 날이 갈수록 서양 외래어의 유입이 가속화해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다. ‘벤치마킹, 로드맵, 어젠더, 무빙워크, 방카슈랑스’ 등 뜻을 알 수 없는 말들이 범람하여 우리들끼리 말이 통하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우리 피부색까지 하얘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많은 ‘누리꾼’들이 ‘말터’에 들어와 말 다듬기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듬은 말들이 모두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한자어, 서양 외래어를 순화해냈지만 성공한 것보다는 실패한 것이 더 많다. 해방 직후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일본말 찌꺼기들을 순화할 때 ‘센누키’를 ‘마개뽑이’라고 다듬은 일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쓰이지 않고, 누가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는 ‘병따개’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대중의 기호에 맞추어 내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다.
‘우리말 다듬기 운동’은 국어 자산을 키우는 일
그래서 말 다듬기는 몇 사람이 머리를 짜내서 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이 다양한 의견을 내고, 이를 걸러서 정하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 전문가들 몇이 모여서 하던 것을 ‘말터’라는 누리망을 통해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이 참여하여 적당한 말을 찾거나 만들어내도록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젊은이들은 창의력이 뛰어나다. 그들의 누리망 통신 언어가 국어를 훼손한다는 평도 있지만 그 속에는 재치가 번뜩이는 재미있는 말들도 많다. ‘말터’를 연 것은 젊은이들의 이러한 창의력을 말 다듬기에 끌어들이자는 의도도 있다.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건설적인 데로 흐르게 하자는 것이다.
우리말 다듬기 운동은 마음이 닫힌 사람들이 세상을 거꾸로 살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말을 더 부드럽고 아름답게 꾸며보자는 뜻으로 하는 것이며, 자꾸 사라져가는 고유한 우리말들을 살려 국어의 자산을 풍부하게 해보자고 하는 것이다. 틈날 때마다 우리말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것 또한 유익하고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누리’란 ‘세상’ 또는 ‘세계’를 일컫는 우리 옛말이다. 이 말을 이용해 ‘인터넷’이라는 외래어를 ‘누리망’이라는 새 말로 바꾸어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는 ‘인터넷’을 전세계를 잇는 전자 그물이라는 뜻으로 해석해 ‘누리’라는 옛말을 묘하게 살려 쓴 것이다. ‘네티즌’을 ‘누리꾼’이라고 하는 것은 ‘누리망’과 짝을 짓기에 꽤 그럴듯한 제안이다. 이 말이 널리 쓰이기를 바란다.
우리말 다듬기 운동은 개화기 이래 꾸준히 이어져온 운동이다. 우리 글을 비하하여 ‘언문’이라 하던 것을 ‘한글’이라 한 것부터 그렇다. ‘한글’은 하나밖에 없는 글, 우리 한민족의 글이라는 것을 아울러 나타내기 위한 뜻으로 지은 말이라 한다.
해방 직후에는 우리말에 스며든 일본말을 몰아내려는 노력이 있었다. ‘혼다데, 간스메, 젠사이, 다꾸앙, 후미기리’ 같은 말들을 각각 ‘책꽂이, 통조림, 단팥죽, 단무지, 건널목’으로 바꾸었다. 이때 어려운 한자말을 쉬운 말로 순화하는 일도 병행됐다. ‘화판, 자예, 웅예, 가법, 감법, 방안지, 성좌’ 같은 말들을 ‘꽃잎, 암술, 수술, 더하기, 빼기, 모눈종이, 별자리’로 다듬었다.
요즘에는 서양 외래어가 말 다듬기 운동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무슨 까닭인지 날이 갈수록 서양 외래어의 유입이 가속화해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다. ‘벤치마킹, 로드맵, 어젠더, 무빙워크, 방카슈랑스’ 등 뜻을 알 수 없는 말들이 범람하여 우리들끼리 말이 통하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우리 피부색까지 하얘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많은 ‘누리꾼’들이 ‘말터’에 들어와 말 다듬기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듬은 말들이 모두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한자어, 서양 외래어를 순화해냈지만 성공한 것보다는 실패한 것이 더 많다. 해방 직후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일본말 찌꺼기들을 순화할 때 ‘센누키’를 ‘마개뽑이’라고 다듬은 일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쓰이지 않고, 누가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는 ‘병따개’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대중의 기호에 맞추어 내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다.
‘우리말 다듬기 운동’은 국어 자산을 키우는 일
그래서 말 다듬기는 몇 사람이 머리를 짜내서 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이 다양한 의견을 내고, 이를 걸러서 정하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 전문가들 몇이 모여서 하던 것을 ‘말터’라는 누리망을 통해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이 참여하여 적당한 말을 찾거나 만들어내도록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젊은이들은 창의력이 뛰어나다. 그들의 누리망 통신 언어가 국어를 훼손한다는 평도 있지만 그 속에는 재치가 번뜩이는 재미있는 말들도 많다. ‘말터’를 연 것은 젊은이들의 이러한 창의력을 말 다듬기에 끌어들이자는 의도도 있다.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건설적인 데로 흐르게 하자는 것이다.
우리말 다듬기 운동은 마음이 닫힌 사람들이 세상을 거꾸로 살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말을 더 부드럽고 아름답게 꾸며보자는 뜻으로 하는 것이며, 자꾸 사라져가는 고유한 우리말들을 살려 국어의 자산을 풍부하게 해보자고 하는 것이다. 틈날 때마다 우리말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것 또한 유익하고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남 기 심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ksnahm@mc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