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올림픽이 얼마 전 막을 내렸다. 스포츠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올림픽 같은 큰 스포츠 행사가 있을 때는 빼놓지 않고 꼭 보는 것이 있다. 바로 개·폐막식이다.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에서 개·폐막식은 개최국의 문화적 역량을 총집결하여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국제 사회에서 한국은 전쟁과 분단, 독재와 인권탄압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나라로만 인식됐다. 그러다가 올림픽을 치르고 나서 한국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졌다고 한다. 여기에 결정적 구실을 한 것이 바로 개·폐막식이었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서울올림픽의 폐막식 장면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공중에 커다란 달을 띄워놓고 김소희 명창이 부르는 ‘뱃노래’가 잠실벌에 청아하게 울려퍼졌다. 그 환상적인 장면이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이후 나는 서울올림픽을 기억하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서 “한국이 이렇게 문화적으로 저력이 있는 나라인 줄 몰랐다”는 얘기를 들었다.
풍부한 문화자산 재창조한 그리스 저력 확인
올해에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열린다고 해서 은근히 기대를 많이 했다. 그리스가 얼마나 문화적 전통이 깊은 나라인가. 보여줄 것이 얼마나 많은 나라인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인들이 그토록 열심히 ‘우려먹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숱한 환상과 비유만으로도 아테네올림픽은 무궁무진한 볼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들의 선조들이 이룩해낸 자연과학적, 철학적 성과는 또 어떠한가.
아테네올림픽 개막식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내 생각으로는 역대 올림픽 개막식 가운데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개막식을 지켜보면서 한 민족의 역사를 관통하며 도도히 흐르는 문화와 전통의 힘이 무엇인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중국 베이징 쯔진청(紫禁城)에서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가 공연된 적이 있는데, 공연 실황을 담은 DVD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구엘공원을 보고 나서는 미국의 디즈니랜드는 ‘천한 것’이 되어 더는 못 볼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문화적 전통은 얄팍한 상업주의나 물질주의가 따라잡을 수 없는 ‘시간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하지만 단지 문화의 전통이 깊다고 해서 누구나 이렇게 훌륭한 볼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조들이 남긴 풍부한 재료를 가지고 얼마나 시대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들어내느냐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바르셀로나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카소와 달리 등 숱한 예술 천재들을 길러낸 바르셀로나에 많은 기대를 했는데, 정작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아테네올림픽 개막식이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그들의 선조들이 물려준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지극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식의 행사에는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매스게임식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그러나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이러한 구태의연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매우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구현해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중에 떠 있는 기하학적인 모형이 여러 개로 해체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21세기 기술을 매개로 과거와 현대가 드라마틱하게 만난 장면이라고나 할까.
그리스의 풍부한 자연과학과 철학, 신화가 선조들의 유산이라면 그것을 바탕으로 창조해낸 또 다른 세계는 후대의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그 나라의 문화적 역량이 판가름나는 것이 아닐까. 전통을 오늘의 시각으로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바로 그런 역량 말이다.
서울올림픽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여러 차례 국제 행사를 유치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엄청난 비용과 인원이 동원된 개·폐막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그중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들도 꽤 있었다. 우리도 그리스나 중국 못지않게 가지고 있는 자산이 많은 나라다. 그러나 그것을 펼쳐 보이는 방식이나 발상에서는 아직까지 구태의연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21세기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틀을 벗어나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민족의 유구한 전통이 참신한 생명력을 지닌 채 지속적으로 발휘되게 해야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국제 사회에서 한국은 전쟁과 분단, 독재와 인권탄압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나라로만 인식됐다. 그러다가 올림픽을 치르고 나서 한국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졌다고 한다. 여기에 결정적 구실을 한 것이 바로 개·폐막식이었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서울올림픽의 폐막식 장면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공중에 커다란 달을 띄워놓고 김소희 명창이 부르는 ‘뱃노래’가 잠실벌에 청아하게 울려퍼졌다. 그 환상적인 장면이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이후 나는 서울올림픽을 기억하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서 “한국이 이렇게 문화적으로 저력이 있는 나라인 줄 몰랐다”는 얘기를 들었다.
풍부한 문화자산 재창조한 그리스 저력 확인
올해에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열린다고 해서 은근히 기대를 많이 했다. 그리스가 얼마나 문화적 전통이 깊은 나라인가. 보여줄 것이 얼마나 많은 나라인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인들이 그토록 열심히 ‘우려먹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숱한 환상과 비유만으로도 아테네올림픽은 무궁무진한 볼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들의 선조들이 이룩해낸 자연과학적, 철학적 성과는 또 어떠한가.
아테네올림픽 개막식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내 생각으로는 역대 올림픽 개막식 가운데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개막식을 지켜보면서 한 민족의 역사를 관통하며 도도히 흐르는 문화와 전통의 힘이 무엇인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중국 베이징 쯔진청(紫禁城)에서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가 공연된 적이 있는데, 공연 실황을 담은 DVD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구엘공원을 보고 나서는 미국의 디즈니랜드는 ‘천한 것’이 되어 더는 못 볼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문화적 전통은 얄팍한 상업주의나 물질주의가 따라잡을 수 없는 ‘시간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하지만 단지 문화의 전통이 깊다고 해서 누구나 이렇게 훌륭한 볼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조들이 남긴 풍부한 재료를 가지고 얼마나 시대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들어내느냐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바르셀로나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카소와 달리 등 숱한 예술 천재들을 길러낸 바르셀로나에 많은 기대를 했는데, 정작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아테네올림픽 개막식이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그들의 선조들이 물려준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지극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식의 행사에는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매스게임식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그러나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이러한 구태의연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매우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구현해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중에 떠 있는 기하학적인 모형이 여러 개로 해체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21세기 기술을 매개로 과거와 현대가 드라마틱하게 만난 장면이라고나 할까.
그리스의 풍부한 자연과학과 철학, 신화가 선조들의 유산이라면 그것을 바탕으로 창조해낸 또 다른 세계는 후대의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그 나라의 문화적 역량이 판가름나는 것이 아닐까. 전통을 오늘의 시각으로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바로 그런 역량 말이다.
서울올림픽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여러 차례 국제 행사를 유치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엄청난 비용과 인원이 동원된 개·폐막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그중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들도 꽤 있었다. 우리도 그리스나 중국 못지않게 가지고 있는 자산이 많은 나라다. 그러나 그것을 펼쳐 보이는 방식이나 발상에서는 아직까지 구태의연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21세기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틀을 벗어나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민족의 유구한 전통이 참신한 생명력을 지닌 채 지속적으로 발휘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