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4일 노·사·정 간의 새로운 대화 채널인 노사정 대표자회의 첫 회의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에 따라 전력시장에 경쟁을 도입하기 위해 정부가 1999년부터 추진해온 전력산업 구조개편 방안이 원점으로 되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과 소관 부처인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는 그동안 노사정위의 권고안을 수용할 것임을 약속해왔다. 그러나 공동연구단의 일부 연구위원들이 “사업부제는 경영학이나 행정학의 전문용어도 아닌데 언제 연구했단 말이냐. 연구결과는 공동연구단 전체의 뜻이 아니다”면서 강력 반발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공동연구단은 2003년 8월27일 노사정위 공공특위 결의에 따라 구성돼 배전 분할의 타당성 및 쟁점 현안에 대한 공동연구를 해왔다. 이를 위해 16차례의 회의와 국내 전문가의 의견 청취, 9개국 32개 기관의 해외사례 현지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공동연구단 위원은 단장을 포함해 총 8명으로, 노조와 정부 측 인사 1명씩을 포함해 노조와 정부, 공공특위 위원장 추천 전문가 2명씩 총 8명으로 구성됐다.
사실 현 정부 들어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작업은 추진력을 잃고 있었다. 노대통령 스스로 전력산업 등 망산업을 민영화하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자부도 지난해 3월 노대통령에게 신축적으로 배전 분할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산자부의 당초 계획은 지난해 3월 말까지 한전의 배전 부문을 내부사업단 체제로 개편해 1년간 모의운영하고 올 4월 법적 분할을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5월31일 청와대 노사대표 간담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모두 발언을 듣고 있는 참석자들.
노사정위 권고안에 대해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찬성해온 인사들은 강력 비난하고 있다. 정부의 구조개편에 관여했던 한 전직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전문가들이 해온 일을 비전문가들이 다수결로 반대한다는 것이야말로 포퓰리즘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발했다. 공동연구단의 한 위원도 “배전 분할에 강력 반대해온 한전노조 등 조직된 소수가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의 이익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노사정위의 이해관계를 그대로 반영한 연구결과”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동안 한국노총 주력인 한전노조가 한국노총을 상대로 “배전 분할이 되면 한국노총을 탈퇴하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노총은 당연히 노사정위를 탈퇴할 수밖에 없어 노사정위로서는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공동연구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연구단의 인격을 무시하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어쨌든 한전노조의 상급단체인 한국노총 처지에서는 공동연구단의 연구결과는 중대한 승리로 기록될 만하다. 한전노조 이경호 대외협력국장은 “노조가 노사정위에 참여해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는 등 상처만 입었는데, 이번 연구결과는 노조가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의미가 있다”면서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복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때마침 노사정위의 기능과 위상에 대한 재정립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배전 분할에 반대해온 한전 노조는 최근 중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현 정부의 노사문제 해결 구상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노사관계 구축’으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도 안 되지만, 어느 일방의 요구만 들어준다고 해서 현재의 복잡한 노사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법과 제도를 일방적으로 비판만 하거나 요구만 하지 말고 대화와 타협의 틀을 만들어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사정위 개편을 논의하는 것도 이런 차원이다.
노사정의 새로운 대화 채널인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6월4일 1차 회의에서 노사정위의 개편 방안을 최우선적으로 논의했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위원장, 경총과 대한상의 회장, 노동부 장관, 노사정위원장 등 6명으로 구성된 대표자회의는 8월 말까지 매월 한 차례 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심도 있는 논의는 양 노총 사무총장과 경총 및 대한상의 부회장, 노사정위 상임위원, 노동부 차관 등 6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맡을 예정.
의제 확대 등 노동계 요구 상당 부분 반영 관측 나와
대표자회의에서 논의될 노사정위 개편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위상과 기능 재정립, 의제 재설정, 기구 개편 등이 그것이다. 노동계는 그동안 노사정위 합의사항 가운데 노동계에 불리한 내용은 즉각 법제화하는 반면 유리한 내용은 이행이 지체되거나 유보된다는 불만을 제기해왔다. 반면 재계는 “노사정위가 대통령 자문기구임에도 사실상 전원 합의제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면서 합의가 아닌 협의기구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사정위 의제에 대해서도 노동계는 확대를, 재계는 축소를 주장해왔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교섭기구에서는 노동 기본권과 경영 참가, 비정규직 대책 등 협소한 노동문제를 넘어 노동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사회 산업정책 전반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재계에서는 경제 산업정책에 대한 논의는 배제하고 노동 관련 정책 등에 한해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사 양측 모두 그동안 노사정위에 대해 불만을 가져왔던 만큼 노사정위 개편 방향을 두고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로선 최종 개편 방향은 노사정위 위상 강화와 의제 확대 등 노동계의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되는 쪽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새로운 노사정위를 통해 노사문제 전반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노무현 정부의 뜻이 노사정 대타협으로 결론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