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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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신 장애 운전자들 “나 어떡해”

5월부터 장애인 전용주차장 이용금지 ‘불편 불 보듯’… “복지부 탁상행정” 비난 빗발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4-04-01 1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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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반신 장애 운전자들 “나 어떡해”

    걸을 수 있다는 이유로 장애인 전용주차구역 주차불능 판정을 받은 양팔절단 장애인 김인화씨가 전용주차구역(왼쪽)과 일반주차장에서 승·하차하는 모습. 문이 활짝 열리는 전용주차구역과 일반주차장의 차이가 현격하다.

    양쪽 팔이 없어 ‘족동차(발로 운전하는 차)’를 몰고 다니는 김인화씨(48·서울 동작구 대방동)는 5월1일부터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이하 장애인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양팔절단장애 1급인 김씨에게 장애인주차장 이용 자격을 박탈한 주체는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장애인에게 더욱 많은 편의를 제공해야 할 복지부는 장애인주차장이 크게 모자란다는 이유로 ‘걸을 수 있는’ 모든 장애인의 장애인주차장 이용을 5월1일부터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장애의 정도나 형태와 관계없이 장애인주차장을 이용하던 장애인 140여만명 중 절반인 70만명 정도가 장애인주차장에 차를 세우지 못하게 된 것.

    복지부의 조치로 김씨는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 됐다. 관공서와 회사 등에 각종 소모품을 납품하며 생계를 꾸려온 김씨에게는 발로 차를 몰아 좁은 일반주차장에 주차하는 것도 어렵지만 주차를 했다 해도 차에서 내리는 게 더 큰 문제다. 장애인주차장보다 폭이 1m 이상 좁은 일반주차장에서는 차문을 활짝 여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설사 보호자가 있다 하더라도 전체 폭이 2~2.3m인 일반주차장에서 상반신 장애인들이 차에서 내리기는 쉽지 않다. 이제 김씨는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는 데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할 형편에 놓이게 됐다.

    비좁은 일반주차장서 주차 전쟁 치를 판

    상반신 장애 운전자들 “나 어떡해”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전용주차구역 이용제한 조치에 따라 새로 발급되는 네 종류의 장애인자동차표지와 기존 표지(왼쪽).

    하지만 김씨가 가장 걱정하는 대목은 관공서나 대형빌딩의 일반주차장이 비어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주차장을 몇 바퀴 돌다 마침내 빈자리를 발견해 주차했다 해도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리는 ‘긴 시간’ 동안 일반인들의 눈총이 자신에게 쏟아질 건 뻔하다. 답답해진 김씨는 동사무소를 찾아가 담당직원에게 이용표지를 달라고 사정해보았으나 “복지부에서 내려온 지침이라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요즘 각 동사무소를 방문해보면 김씨처럼 보행엔 지장이 없지만 차량 주차와 승·하차에 지장을 받는 장애 운전자나 그 보호자가 담당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장애인은 누구나 4월 말까지 기존 ‘장애인자동차 표지’(장애인주차장 이용표지)를 동사무소에 반납하고 새 표지를 발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외견상 입씨름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화 내용을 조금만 들어보면, 동사무소 직원도 장애인 편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일선 동사무소 직원들조차도 복지부의 이번 장애인주차장 이용제한 조치를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식의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의 형태나 정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책상 에서 정책을 만드니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 척추장애(소위 디스크) 5급, 6급이나 호흡기 장애, 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멀쩡히 잘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인데도 일괄적으로 장애인주차장 이용자격을 주고, 양팔 절단장애인·양팔 기능장애인·정신지체 2급·정신장애 2급 장애인처럼 걷는 데 균형감각이 떨어지고 주차와 승·하차에 실질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사정에 관계없이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이렇게 해놓고 어떻게 다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겠습니까.”(서울 송파구청 소속의 사회복지전문요원)

    상반신 장애 운전자들 “나 어떡해”

    서울 송파구 문정동사무소를 찾아가 장애인 전용주차구역 주차불능 판정에 항의하는 양팔절단 장애인 송석필씨(위 오른쪽). 일반주차장은 폭이 좁아 발로 차문을 열어야 하는 양팔절단 장애인에게는 어려움이 많다.

    그렇다면 복지부가 이 같은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장애인주차장 이용제도를 ‘대수선’하고자 한 이유는 뭘까.

    “그동안 장애인주차장은 그곳을 꼭 이용해야만 하는 장애인이 아니라 일반주차장을 이용해도 되는, 즉 보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장애인과 그 가족이 점령해왔습니다. 장애인주차장의 주차 대수는 늘지 않는데 장애인 차량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장애인 간 주차 시비가 발생하고, 일반 국민의 장애인주차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극에 달했죠. 이번 조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복지부 장애인정책과 담당 사무관)

    2003년 말 기준으로 장애인 차량은 전체 차량의 3.2%로 추정되지만 장애인주차장 비율은 전체 주차장의 2.3%에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복지부는 결국 장애인주차장을 단시간에 늘리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그 이용 수요를 줄이는 쪽을 선택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복지부의 이번 장애인주차장 이용제한 조치는 많은 장애인과 일반인에게 박수를 받을 만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우선 장애인 본인이 직접 운전하거나, 동승하고 있을 때만 장애인주차장 이용을 가능하게 해 집안에 경미한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장애인표지를 받으면 온 가족이 그것을 이용해 장애인주차장을 마음껏 이용하던 폐단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복지부는 또 장애인 보호자가 장애인주차장을 이용할 경우 멀쩡한 사람이 이용표지를 받았다는 오해를 막기 위해 보호자용 표지를 따로 제작, 배포하고 있다.

    문제는 장애인주차장을 배타적으로 이용할 실질적 수혜자를 새로 선발하는 기준에서 발생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정렬 소장은 “장애인주차장을 꼭 이용해야만 하는 장애인은 일반주차장에 주차할 경우 차량 진입, 승·하차, 통행로 확보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라며 “상반신이 불편한 사람도 차량 진입과 승·하차에 많은 애로가 있는 현실에서, 단지 걸을 수 있기 때문에 통행로 확보에 지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주차장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상반신 장애인들은 “장애인주차장 이용 기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보행상 장애가 있다는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면 ‘주차 가능’ 표지를 받을 수 있다”는 복지부 지침상 예외규정을 이용해 이용표지를 받아내는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양팔 장애인인 양충모씨(37·전북 무주군 무주읍)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병원 의사한테서 “상지(양팔)가 절단된 경우 하체 균형감각이 무너져 보행에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아주 ‘모호한’ 소견서를 받아 장애인주차장 이용표지를 얻어냈다. 양씨는 “면사무소를 찾아 통사정을 했더니 다리가 불편하다는 의사 소견서만 받아오라 해서 그렇게 했을 뿐”이라며 “일반주차장을 이용하면 엄청난 불편이 따르는 장애인인데도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 읍·면·동사무소의 직원들은 항의를 해오는 상반신 장애인들에게 드러내놓고 양씨가 한 방법을 권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편법을 시도했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동사무소 직원이 알려준 대로 의사한테 가서 통사정을 했는데 저의 경우는 ‘양팔이 절단되었어도 보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며 소견서를 못 써준대요. 그럼 저는 이제 어떡하지요. 당장 5월부터 장애인주차장에 주차하면 과태료 20만원을 물어야 할 판인데….”(송석필·56·서울 송파구 문정동)

    복지부는 올 3월부터 하반신 장애인을 제외한 3급 이상의 상반신 장애인에게 전기요금 할인혜택(20%)을 주고 있다. 상반신 장애인의 전기 치료기 사용량이 하반신 장애인보다 많다는 게 그 이유인데, 이후 하반신 장애인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복지부는 이에 대한 시정을 약속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장애인주차장 이용기준에 대해서는 상반신 장애인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반드시 고수하겠다는 강경자세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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