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3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왼쪽)와 조순형 민주당 대표.
3월12일 국회에서 ‘탄핵 만세’를 부른 지 6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는 ‘탄핵 부메랑’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날 밤 서울 여의도 촛불시위에 시민들이 속속 합류하는 등 탄핵 후폭풍이 가시화하자, 그는 기자에게 “겁만 주어 노무현 대통령을 선거판에서 쫓아버려야 했는데…”라며 한나라당 전술 구사의 오류를 인정했다. 민주당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변인실 한 관계자는 13일 “마(魔)가 낀 것 같다”는 말로 탄핵 과정의 실수를 인정했다.
양당 인사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탄핵정국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민주당 한 인사가 내놓는 탄핵정국 계산서는 매우 단순하다. 양당 구도로 전개되는 총선정국을 3파전으로 만들고, 노대통령의 역할을 제한하는 게 당초 목표였다. 이 계산서에는 목을 졸라 겁을 주자는 압박 프로그램은 있으되, 더 이상의 것을 취하자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탄핵은 가결됐고, 야3당은 후폭풍에 휘말렸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이기고도 지는 함정에 빠진 꼴이 됐다. 탄핵정국을 만든 양당 전략가들의 ‘복기’에는 여러 곳에서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과 의혹이 따라붙는다.
양당 전략가들 “마가 꼈다” “왜 그랬을까” 장탄식
민주당 조대표의 퇴로 없는 강공과 그 배경은 이 모든 의혹의 출발점이다. 조대표는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원칙주의자. 그런 그지만 탄핵정국에서는 다소 달랐다. 대변인실에서 “탄핵 명분이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았지만 조대표는 밀어붙였다. 왜 그랬을까. 우선 조대표의 절박한 정치현실을 배경으로 꼽을 수 있다. ‘조순형 리더십’은 갈수록 퇴화해왔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양당 구도를 깨야 총선에서 회생할 수 있지만 현실적 수단이 없었다. 조대표는 이를 한 방에 역전 시킬 수 있는 제물로 지지도 30%대의 노대통령을 선택했다. 이론적으로 나머지 70% 가운데 상당수는 탄핵을 지지할 것이란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강운태 사무총장은 “조대표의 올해 운세는 적장의 목을 베는 괘”라며 분위기를 북돋웠다. 노대통령을 치면 반노-반한나라 지지성향의 유권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당 정세분석팀의 전략보고서가 조대표의 결단을 재촉했다.
민주당은 3월11일 하루 세 차례나 의원총회를 열었다. 이 또한 불가사의다. 처음 연 의원총회는 179차. 이 자리에서 역학에 밝은 황태연 국가전략연구소장이 “숫자가 좋지 않다”며 “탄핵안 가결선인 181명에 맞춰 의총을 열자”고 제안했다. 지도부는 앉은 자리에서 의총을 두 번 더 개최했다.
조대표의 이런 탄핵 계산서에 한나라당 최대표가 공감했다. ‘차떼기’ 이미지로 무기력증에 빠진 한나라당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민주당을 키워, 소위 3파전을 벌여야 한다는 3자필승론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러자면 기존 판을 흔들어야 한다. 최대표에게 탄핵카드는 이 모든 고민을 한꺼번에 풀어주는 만병통치약이었다.
그러나 두 야당의 이런 전략은 노대통령의 기자회견과 맞물리며 ‘통제권’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노대통령이 3월11일 기자회견에서 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사과하거나, 최소한 유감의 뜻을 표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거꾸로 갔다.
“단순히 시끄럽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사과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비리에 연루된 측근들도 옹호했다.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의 이런 태도에 대해 “염장만 지른다”고 고함을 질렀다. 노대통령은 왜 그랬을까. 바로 정면돌파라는 노대통령 특유의 총선전략이 아니었을까. ‘4·15’ 총선에서 우리당이 원내1당이 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에 노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고 또 한 번 도박을 감행했다는 게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는 분석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이 지난해 4월과 5월, 일본의 전설적 무사인 미야모토 무사시의 병법서 오륜서를 탐독했다”고 말했다. 무사시는 이 책에서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고 적고 있다. 만약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철저하게 계산된 발언이라면 이 오륜서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많다. 청와대는 탄핵을 낯선 ‘말’로 보지 않는다. 이미 지난해부터 청와대 주변에서는 재신임 및 탄핵과 관련한 각종 시나리오가 흘러나왔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기자들에게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탄핵”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탄핵에 따른 권력 공백 대처방안, 대통령 직무정지 시 정국운영 등에 대해 분석 중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원집정제 등 통치구조에 대해서도 학습을 하고 있는 흔적들도 포착됐다. 물론 청와대측은 이런 움직임을 부인한다.
결과적으로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감동이 아닌 야당의 ‘분노’를 불러왔다. 제일 먼저 일성을 터뜨린 인사는 추미애 민주당 상임중앙위원. 그는 “탄핵을 정략으로 볼 만큼 진정성이 없다”며 노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는 곧바로 탄핵 대열로 합류했다. 파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명분이 부족하다며 관망하던 당 소장파 인사들이 추위원과 보조를 맞췄다. 이에 한나라당 소장파인 남경필, 권오을 의원 등도 ‘액션’을 취했다. 양당 소장파의 움직임은 단순히 ‘겁’을 주려던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도부에게 “잘하면 해치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확인해줬다. 양당은 즉각 ‘탄핵가결’로 목표를 수정했다. 최대표는 “전선에서 이탈하면 공천을 회수하고 출당시키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소속의원들도 지도부의 이런 압박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왜 그토록 쉽게 ‘스탠스’를 바꿨을까. 관망에서 지지로, 또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선 배경에는 ‘남상국 임팩트’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11일 오후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 K씨는 “노대통령의 언어 폭력이 부른 살인”이라고 정의했다. 노대통령의 헤픈 말에 부정적이던 여론도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과 안상영 전 부산시장 뒤를 이은 남 전 사장의 자살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소장파나 관망파도 ‘남상국 임팩트’가 불러올 후폭풍을 미리 예단, ‘고’를 선택했다.
미적거리는 나머지 인사들을 탄핵정국으로 골인시킨 주역은 이병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맡았다. 그는 12일 오전 9시40분, “노대통령께서는 모든 잘잘못을 떠나 탄핵정국에 이르게 된 것을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야당은 노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명분을 들어 이 사과를 외면했다. 오히려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이 사과문을 명분으로 김학원 원내총무 등 10여명의 소속의원들을 데리고 ‘탄핵’ 대열에 막차로 동참했다. 화룡점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전날, 야3당의 실무자들이 모처에서 의견을 조율했다는 얘기도 없지 않다. 이른바 내각제 개헌 합의설이다. 자민련의 합류로 탄핵 정족수(181석)는 ‘14석’의 여유까지 생겼다.
오전 10시30분, 국회의장실조에 편성된 우리당 소속 인사들이 갑자기 봉쇄를 푼 것은 탄핵정국의 미스터리로 볼 수 있다. 만약 우리당 인사들이 박관용 국회의장을 의장실에 감금했다면 ‘역사’는 달라질 가능성이 많았다. 우리당 의원들은 왜 제1 저지선인 의장실을 포기했을까. 그들은 왜 절대적으로 불리한 본회의장의 육박전을 선택했을까. 성을 비워 적을 끌어들여 공격하는 ‘공성계’의 의혹을 사는 배경이다.
지나놓고 보면 박의장의 강공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그는 누구보다 명예와 명분을 중시한다. 그런 그가 탄핵정국을 주도했다. 경호권을 발동한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박의장은 표결 직후 노대통령의 대화 거절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또 다수결원칙을 존중해야 한다는 국회 운영의 기본원칙도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FTA(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와 이라크 파병 문제 등 국익과 결부된 사안에 대해서도 경호권을 발동한 적이 없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노대통령으로 안 된다”는 박의장의 정치적 판단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