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경찰관이 실종된 여중생 엄현아양이 사체로 발견된 배수관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엄양이 발견된 이후, 이웃 주민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배수관 안에 과일을 담아놓았다.
경기 부천 남부경찰서 조희범 수사과장의 자괴감 어린 고백이다. 부천의 두 초등학생 실종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언론으로부터 ‘뒷북대응’이라는 비난의 포화를 맞았다. 경기 포천에서 실종된 여중생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을 때도 ‘경찰의 부실한 초동수사’는 비난의 표적이 됐다. 실종자 수사와 관리방식에서 허점을 노출했기 때문. 그러나 한편으론 부실한 경찰 수사를 탓하기에 앞서 실종자 문제를 전문적으로 처리하고 수사할 수 있는 제도의 정비가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실종자 찾기 문제는 비단 경찰뿐 아니라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 사회 전반의 관심을 통해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182 미아신고센터’ 가동 상대적 경시
2월12일 오후, 400명의 경찰들이 엄양의 교복을 찾기 위해 수색에 나섰다. 경기도 포천경찰서 전경(아래).
하루에 29명꼴로 실종신고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경찰이 일일이 수색, 수사를 벌이기 어렵다는 항변에는 일리가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실종된 15세 이하 어린이는 1만304명. 이는 2002년 9822명보다 5% 가량 늘어난 수치다. 경찰은 8세 이하 어린이 실종자 3206명 중 9명을 제외한 3197명이 다시 부모 품에 안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나머지 7098명의 행적에 대해서는 “대부분 단순 가출로 곧 돌아왔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돌아왔는지 확인해보지는 않았다”고 밝힌다.
이런 변명에도 그나마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경찰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182 미아가출신고센터는 접수된 실종 어린이의 정보를 전산망에 입력해, 파출소가 해당 어린이를 보호하고 있을 경우 쉽게 찾아주도록 한다. 그런데 경찰이 이 시스템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않아 실종자 가족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서울에서 실종된 장애인 중학생 김모군(15)이 실종 당일 경기 평택 철길에서 열차에 치여 숨진 사실이 48일 만에 밝혀졌다. 당시 실종신고를 접수한 서울의 한 경찰서는 이 중학생을 실종, 가출인찾기 내부 전산망에 등록했고, 변사사건을 맡은 평택경찰서는 변사자 수배전단지를 별도로 제작, 배포했다. 그런데 경찰이 전산망에 기록된 실종자와 변사자들을 조회하고 비교하지 않아 김군의 부모는 한 달이 넘게 전국을 헤매야 했다. 이에 대해 장화정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장은 “일선 경찰에 대한 교육이 법제도의 정비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경찰청은 2월11일 미아 실종자의 인권보호 및 수사체제 대폭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경찰은 미아, 가출인 신고의 경우 접수 즉시 현장출동 및 수색과 수사를 병행하고 현재까지 일선 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이 담당하던 합동심문을 수사주무 부서인 형사과장이 주관하는 한편, 수사전담팀을 꾸려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수사를 벌여나가겠다는 것. 하지만 경찰이 급작스럽게 제안한 제도가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더욱이 수사전담팀이 실종 미아 수사만을 전담하는 곳이 아니어서, 다른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실종 미아 사건은 자연스럽게 뒷전이 된다는 지적이다.
김희선 의원,오세훈 의원,김강자 위원장(위부터). 각 정당은 ‘미아 및 실종아동’ 관련 법안을 마련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두 기관 유기적 연계 없이는 사건 해결 어려워”
‘실종어린이찾기 지원법안’에서 특히 중요하게 검토해야 할 대목은 이원화된 실종자 관리 시스템의 문제다. 박은미 장신대 아동학과 교수는 “현재 유괴사건은 경찰이 담당하고 가출이나 단순 유기는 보건복지부 관할이다. 이 둘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지 않으면 사건 해결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종 신고는 경찰에 하지만, 미아가 된 어린이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복지시설에서 주로 보호된다. 특히 수백 곳에 이르는 비인가시설의 경우 보호아동의 신고가 의무화돼 있지 않아 경찰이 실종 미아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현재 어떻게 미아관리 시스템 일원화를 이룰 것인지, 그리고 경찰과 보건복지부의 업무를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를 놓고 부처간에 논의가 진행 중이다.
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실종어린이찾기 지원법안’과 관련해 “현재 ‘미아’로 규정하고 있는 연령을 만 8세 이하에서 18세 이하로 높여야 한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그동안 경찰은 8세 이하 아동은 변별력이 없다는 이유로 미아로 인정했지만, 9세 이상의 아동은 인지능력이 있다고 해서 가출로 봐왔다. 바로 이런 구분 때문에 포천 여중생 사건이나 부천 초등학생 사건 수사가 한 발 늦어졌다는 판단에 따라 두 당이 ‘미아’ 연령을 높이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 것.
하지만 미아관리 시스템의 일원화에 대한 두 당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민주당 김강자 시민사회특별위원장(전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과장)이 경찰 시절의 경험을 되살려 미아 및 실종아동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했다. 이 골자는 미아가출신고센터에 실종된 미아 수사를 전담하는 전담수사대를 설치하고, 시설에서 보호하고 있는 어린이의 DNA를 의무적으로 추출해 보관하자는 것이다. 미아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사항은 ‘범죄와의 연관성’을 판단하는 절차인 만큼 ‘경찰 시스템’으로의 일원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김희선 의원과 오세훈 의원의 법안을 절충, 보완하고자 하는 열린우리당은 “경찰과 보건복지부 두 부처를 연결하는 상시적 감시기구가 필요하다”는 쪽이다. 실제로 범죄에 연관된 실종사건보다 미아나 가출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경찰이 미아 찾아주기 업무를 모두 떠안기는 어렵다는 것.
포천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미아찾기 시스템’ 정비에 대한 공론화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큰 사건이 터진 후 반짝 관심을 보이다 곧 잊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냄비 근성’ 탓이다. 미아찾기에 대한 주변의 지속적 관심과 제도 정착이 바로 실종자 가족의 가장 큰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