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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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쿼터스(Ubiquitous) 과학용어 영자 공용화 어때요?

  • 박성래 /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parkstar@unitel.co.kr

    입력2003-12-04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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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신문을 보니 경기도 어디에서는 ‘영어마을’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아파트 분양을 시작했다고 한다. 영어교육 열풍이 거센 요즘인 만큼 당연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서는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가 개설된 지 오래고, 특정장소에서는 누구나 영어로만 이야기해야 하는 규칙이 생기기도 했다.

    이 같은 경향은 이미 한국의 유치원에까지 널리 퍼져 있다. 거리에 즐비한 영어간판은 우리에게 세계화란 바로 ‘영어화’인 듯한 인상을 준다. 그중에는 심심찮게 영문자 ‘e’를 써넣은 간판이 눈에 띈다. 이 글자를 ‘이’로 읽으면 뜻이 통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e-) 세상’이 이제는 ‘유(u-)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이 세상’을 모르면 사오정 취급당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제 그 세상도 한계에 이르렀는지 ‘유 세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세상을 더욱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지금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런 세상을 ‘유비쿼터스(Ubiquitous)’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 세상이란 사람과 사물, 공간을 연결하여 누구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원래 영어 유비쿼터스는 ‘도처에 존재하는, 편재(遍在)하는’이란 뜻을 지닌 약간 생소한 어휘로 ‘Omnipresent’와 거의 같은 뜻이다.

    문제는 이런 외국어(대개는 영어) 표현이 자꾸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이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나라들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Ubiquitous’를 아예 영자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때론 자신들의 문자로 ‘無所不在(Ubiquitous)’라고 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이 외래어를 표기할 때 쓰는 가타가나로 ‘ユビキタス’(유비키타스)라고 쓰고 영자를 따로 쓰지 않는다.



    ‘유비쿼터스’를 표현하는 세 나라의 방식이 근대 서양 과학용어를 들여올 때의 태도와는 정반대인 듯해서 흥미롭다. 원래 130년 전에 서양 과학기술 용어를 처음 도입한 일본은 그 번역에 무척 정성을 들여 한자용어를 만들었고, 그 대부분이 동아시아 3국에 전파됐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 용례가 많아지자 그 발음을 본떠 일본어로 표기하는 일이 많아졌다. 대신 영자를 그대로 쓰는 일은 삼갔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처음에는 영어용어를 중국 냄새가 나는 한자 표현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태도를 바꿔 아예 영어용어를 영자 그대로 쓰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은 변하게 마련인가. 19세기에는 그리도 보수적이던 중국이 지금은 과학용어를 영자 그대로 쓰는 혁명적(?) 태도를 보이는 반면, 오히려 일본은 보수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쩔 것인가. 우리도 일본처럼 ‘유비쿼터스’라 표현하고, 다른 과학용어도 컴퓨터, 인터넷 등 한글로 표기하고 있다. 차라리 우리도 중국처럼 아예 Computer, Internet, Ubiquitous 등 원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영어가 공용어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우선 과학용어부터 영자로 공용화한다면 영어가 익숙해지는 효과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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