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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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멋과 맛 체험 “원더풀”

외국인에 더 잘 알려진 ‘프렌즈 하우스’ … 한 번 들르면 단골손님 동료에게도 꼭 추천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3-07-02 15: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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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멋과 맛 체험 “원더풀”

    영화배우 정경순씨(가운데)와 어머니 이정희씨가 ‘프렌즈 하우스’를 찾은 외국인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기 전에 살았던 명륜동 한옥마을 방향으로 오르는 골목 중간 한 한옥에 ‘Friends’ house’라는 나무간판이 붙어 있다. 굳이 ‘친구들의 집’이란 의미를 새기지 않아도 정결한 검은색 기와와 황토색 나무 문이 지나던 사람도 문을 열고 들어가보고 싶게 하는 집이다.

    이곳 ‘프렌즈 하우스’는 영화배우 정경순씨와 어머니 이정희씨 모녀가 외국 관광객들을 위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다. 정확히 말하면 ‘프렌즈 하우스’의 주인은 어머니 이정희씨고 맏딸인 정경순씨가 통역과 기타 외부 행정적인 일을 돕고 있다.

    배우 정경순-이정희씨 모녀가 운영

    ‘프렌즈 하우스’가 단순히 연예인 모녀의 취미 생활이 아니라는 점은 지난해 말 이정희씨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2002년 아름다운 관광한국을 만드는 사람들 10인’에 아시아나항공 ‘플라잉 매직’팀 등과 함께 당당히 뽑힌 사실이 증명한다. 수상할 때도 이정희씨가 영화배우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민간 외교관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멋진 노부인으로 비쳤을 뿐이다.

    ‘프렌즈 하우스’의 열린 나무 대문 사이로 마침 낯익은 정경순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프렌즈 하우스’에 머물고 있는 한 외국인에게 점심을 권하는 어머니 이씨의 말을 전하는 중이었다.



    한국의 멋과 맛 체험 “원더풀”

    ‘프렌즈 하우스’의 객실.

    “이 손님이 아침을 못 드셨거든요. 비도 오는데 식사도 안 하고 나가면 내 마음이 불편하지요.”

    아들을 빈 속으로 내보내지 않는 ‘한국 엄마’ 이씨의 완강함에 못 이겨 독일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행객 라미 알라함씨가 마루에 올라 앉았다. 설악산에서 제주도, 울릉도까지 한국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중이라는 그는 “한국의 호텔, 모텔, 게스트하우스를 두루 경험했지만, 전통적인 한국 스타일에 청결하고 주인의 마음씨가 좋아 ‘프렌즈 하우스’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나무결을 살린 기둥과 서까래,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 처마, 따끈한 온돌뿐 아니라, 집주인의 감각을 보여주는 흰 고무신과 색동 이불은 같은 한국 사람에게도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정성스런 손길이 닿은 흔적이 느껴지는 화초로 가득한 정원은 ‘아름다운 관광한국’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결혼 전엔 도청 공무원이었고 10여년 전까지 사업가로 활동하다 은퇴했던 이씨가 지난해 ‘프렌즈 하우스’를 열게 된 건 일본에 살고 있는 둘째 딸 부부의 일본인 친구 덕분이라고 한다.

    “난 게스트하우스나 B&B가 뭔지도 몰랐어요. 한국 음식에 관한 책을 만든다며 한국에 와 있던 사위의 일본인 친구에게 제가 요리를 가르쳐주다 그가 머물던 게스트하우스라는 델 가봤지요. 나름대로 열심히 운영하는 곳인데도 내가 보기엔 부족한 점들이 눈에 띄었어요. 그런 점을 이야기했더니, 그 일본인이 내게 아예 운영을 해보라고 권하는 거예요.”

    이씨는 기왕이면 우리 멋과 맛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결심하고, 혜화동과 명륜동을 샅샅이 뒤져 이 집을 찾아냈다고 한다. 기와, 온돌 등은 한옥 수리 전문가들을 불러 전통적인 스타일로 수리를 하고, 화장실 등 편의시설은 서양의 모텔 수준으로 갖추었다.

    한국의 멋과 맛 체험 “원더풀”

    ‘프렌즈 하우스’의 주인 이정희씨가 만든 한국전통요리가 실린 ‘한식 한채 대전’(맨 왼쪽). 외국인들이 남긴 편지와 선물은 모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다.

    음식 솜씨가 좋아 게스트하우스를 권한 사위 친구가 일본에서 펴낸 ‘한식 한채 대전’이란 책에 실릴 50여 가지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기도 했던 이씨는 ‘프렌즈 하우스’를 연 후 한동안은 아침식사로 직접 만든 된장찌개, 떡국, 조기매운탕과 각종 밑반찬을 올린 한정식을 냈다. 그러나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젊은 손님들에겐 한정식이 아침식사로 부담스러운 눈치라 최근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토스트나 샌드위치를 아침식사로 제공하고 있다.

    ‘프렌즈 하우스’가 전통 한식 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소문이 나자 여비를 아끼려는 배낭여행객뿐 아니라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교수나 학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게다가 한번 이곳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국에 올 때마다 다시 찾을 뿐 아니라, 한국에 가는 친구나 동료들에게 꼭 ‘프렌즈 하우스’에서 묵으라고 추천한다고 한다.

    편의시설은 서양 모텔 수준

    “특이하게도 한국 아이를 입양한 서양인들이 우리 집으로 가족여행을 많이 와요. 아이들에게 한국의 생활방식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겠죠. 한달 전에도 우리 아이를 입양한 교수 부부와 가족 등 12명이 머물렀는데, 왠지 내가 너무나 부끄러워 정성을 다했더니 떠날 때 제게 장미꽃을 한아름 안겨주었어요. 그럴 때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구나 싶지요.”

    이때는 딸 정경순씨도 나서 이들을 이태원에 데리고 가 서울 관광을 시켜주었다.

    한국의 멋과 맛 체험 “원더풀”

    ‘ㄷ’자형 한옥을 수리한 ‘프렌즈 하우스’. 한번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은 꼭 다시 들른다고 한다.

    월드컵 때는 호주에서 온 의사와 화가 부부가 머물렀는데, 하루는 부인이 배탈이 나 아침에 이씨가 흰죽을 끓여주자 그가 “사실 내 어머니는 한국인인데, 나를 버리고 재혼했다. 함께 살 때 엄마가 흰죽을 잘 끓여주었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호주로 돌아간 그는 ‘프렌즈 하우스’의 ‘엄마’에게 달력을 직접 만들어 보내주었다고 한다.

    요즘 이씨는 신문에서 나쁜 소식이라도 보게 되면 제일 먼저 자신의 집에 묵고 있는 외국인들의 얼굴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한다. 정경순씨는 매일 매일 옆의 한옥집들이 헐리고 연립주택이 지어지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두 모녀는 어느새 세상에 대해 전혀 다른 눈을 갖게 된 듯했다.

    “어머니가 참 자랑스러워요. 친구 분들은 은퇴해서 쉬시는데 새롭게 일을 시작하셨고, 그것도 아주 멋지게 해내고 계시잖아요. 가끔 주위에서 어머니께 ‘나이 들어 무슨 고생이냐’고 말할 땐 답답해요. 10년 뒤에는 제가 ‘프렌즈 하우스’를 쓸고 닦고 있을 텐데요.”

    솔직함과 편안함은 모전여전인 듯했다. ‘프렌즈 하우스’의 홈페이지(www. friends-house.com)에 가면 이 멋진 모녀 이정희씨와 정경순씨의 집을 더 자세히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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