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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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차들 스크린 위로 고속 질주

자동차회사들 할리우드 영화에 협찬 붐 … 영화 뜨면 인기 동반 상승 ‘효과 짭짤’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3-06-19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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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명차들 스크린 위로 고속 질주

    ‘매트릭스 2’의 캐딜락 CTS

    블록버스터 경쟁이 시작된 올 여름 극장가에서 영화제작자(filmmaker)보다 사람들의 입에 더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자동차회사(automaker) 이름이다.

    그동안 자동차회사들은 제임스 본드가 등장하는 007시리즈를 비롯한 몇몇 액션영화에 제품 협찬(product placement·PPL)을 해왔으나 최근에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자동차를 협찬하는 것은 물론이고, 관객 이벤트에서 TV와 인터넷 등을 통한 홍보에 이르는 영화 마케팅 비용까지 분담하고 있다. 영화가 ‘떠야’ 협찬한 자동차도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올 여름 전 세계에서 개봉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자동차회사의 관계를 보면 PPL은 단순히 영화의 몇몇 장면에서 자동차를 노출시키는 정도에서 주인공을 TV광고 모델로 쓰는 수준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월 둘째 주 현재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분노의 질주 2’에는 미쓰비시의 ‘랜서 에볼루션Ⅷ’이 등장하고 주인공 폴 워커와 티레즈는 이 자동차의 TV광고에도 출연한다. 대신 미쓰비시는 무려 2500만 달러를 영화사에 지원했다. 개봉이 임박한 ‘툼 레이더 2’는 라라 크로프트 역의 안젤리나 졸리가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지프 랭글러 루비콘’(미국 내 가격 2만8815달러)을 타고 정글을 누비고, 이 자동차 앞에서 광고사진을 찍는 대가로 1000만 달러를 협찬받았다.

    협찬 별도로 수천만불 투자 예사



    세계의 명차들 스크린 위로 고속 질주
    ‘매트릭스 2’급 신드롬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는 ‘터미네이터 3: 기계들의 반란’에서는 새로 등장하는 여성 사이보그T-X가 도요타사의 스포츠카 ‘렉서스 SC430’를 운전하고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올 가을 시판될 ‘뉴 툰드라 픽업’을 몰고 다닌다. 이 영화의 감독 조나단 모스토우는 원래 렉서스 SC430의 팬으로 “렉서스의 아름다운 디자인과 첨단기능이 T-X의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을 정도라니 감독이 진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자신의 자동차가 아닐까 싶다. 이 렉서스 모델은 한국영화 ‘역전에 산다’에도 등장한다. 올해 도요타사는 곧 개봉될 ‘헐크’에도 자동차를 제공했다.

    ‘미녀삼총사 2’에서 카메론 디아즈는 1959~62년 사이에 100대가 한정 제작된 ‘페라리 GT’를 선보이며, 스릴러 ‘이탈리안 잡’에서는 ‘미니쿠페’가, 경주마 드라마인 ‘시비스킷’에서는 ‘뷰익’이 공식 자동차다.

    이미 개봉된 ‘엑스맨 2’에서는 마즈다사가 800만 달러를 협찬한 스포츠 쿠페 ‘RX-8’이 등장했는데 이 자동차는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영화 이상으로 인기를 모았다.

    그리고 ‘매트릭스 2: 리로리드’에서 가장 볼 만한 장면인 여주인공이 가상세계(2199년)에서 현실세계(2003년)로 빠져나가는 출구를 찾기 위해 달려가는 고속도로 추격신은 240만 달러를 들여 캘리포니아 앨러미다에 새로 건설한 고속도로 ‘세트’ 위에 220대의 차량을 등장시켜 촬영했다. 이 추격신에는 캐딜락 24대를 포함한 GM사의 자동차 74대가 PPL로 등장한다. 전체 138분의 러닝타임 중 무려 14분에 달하는 이 고속도로 추격신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GM의 전략적 ‘광고’ 상영 시간인 셈이다.

    ‘매트릭스 2’는 GM 캐딜락이 처음 PPL로 등장한 액션물이다. 캐딜락은 이 영화로 기존의 중후한 이미지를 벗고 젊은층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차로 인식되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가을 첫선을 보인 이후 한 달 평균 10대 가량 팔리던 캐딜락 CTS(국내 판매가 6250만원)는 영화 개봉 이후 한 달 평균 60대가 팔릴 정도로 판매가 늘었을 정도다.

    이처럼 블록버스터에 PPL로 등장하는 것이 자동차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자 미라맥스 영화사는 GM에 2005년 개봉 예정인 ‘그린 호넷’에 대한 자동차 및 마케팅 협찬을 제안했다.

    세계의 명차들 스크린 위로 고속 질주

    올 여름 극장가에 등장한 명차들. 위쪽부터 ‘엑스맨 2’의 RX-8, ‘툼 레이더 2’의 지프 랭글러 루비콘, ‘역전에 산다’와 ‘터미네이터 3’(아래)의 렉서스 SC430.

    ‘그린 호넷’은 원래 1966년 ABC가 방송한 인기 TV시리즈물로 우리에게는 브루스 리(이소룡)가 쿵푸 선생으로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영화화하기로 한 미라맥스는 GM에 악당들과 맞서 싸우는 주인공 그린 호넷의 자동차 ‘배역’을 주는 대신 3500만 달러를 투자하라고 제안했다.

    이 액수는 지난해 포드모터사가 ‘애스톤 마틴’ ‘재규어’ ‘선더버드’ 3개 브랜드를 ‘007 다이 어나더데이’에 출연시키면서 맺은 PPL 관련 최고기록과 같은 액수다. 만약 GM과 ‘매트릭스 2’를 만든 워너브라더스의 파트너십이 원래 계약대로 유지됐더라면 GM은 선뜻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미국의 연예산업전문지인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2년 전 GM은 ‘매트릭스 2’에 새로 디자인한 캐딜락 세단 CTS와 SUV인 에스컬레이드를 협찬하는 대신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와 캐리 앤 모스를 각각 출연시키는 광고를 촬영하기로 워너브라더스와 계약했다. GM은 이 광고에 5000만 달러를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남녀 주인공이 추가로 광고 모델비를 요구하는 바람에 TV광고는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영화 주인공들 車 광고 출연도

    영화제작이 공장에서 도면에 따라 조립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자동차회사들은 누가 자동차를 타게 되며, 어떤 장면에서 얼마 동안 달리게 되고, 어떻게 부서지는지에 따라 협찬 액수를 달리하는 추세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지난해 상영된 ‘XXX’처럼 구형 폰티악 GTO와 신형 GTO를 함께 협찬해 소비자들에게 두 모델의 ‘연속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 영화를 ‘매우 잘 된’ 사례로 꼽는다. 자동차회사들이 영화가 창조적이고 감정적인 과정을 거쳐 만들어내는 생산물이어서 감독 마음에 따라 스크린 가득 반짝이는 차체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빌딩 주차장에서 추락하는 단 한 장면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할리우드에는 아예 영화 속에서 PPL 제품의 역할, 제품 노출시간, 예상 관객 수, TV방영시 예상 시청률, 비디오와 DVD 예상 판매량 등을 종합적으로 수량화하여 이를 30초 광고 효과와 비교함으로써 합리적인 PPL 계약액을 결정해주는 컨설턴트까지 등장했다.

    이에 호응하듯 미라맥스는 아직 감독도, 시나리오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돈만 많이 낸다면 영화 속에서 자동차 광고할 기회는 얼마든 늘려줄 수 있다고 자동차업계에 손을 내밀고 있다. 이미 자동차회사들이 할리우드에 거액을 쏟아 붓고 있기 때문에 영화 내용에 영향력을 미치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사실 자동차는 로봇태권브이나 마징가제트가 보여주듯 기계와 한몸이 되려는 인간의 욕망을 구현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현대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다. 자동차가 가장 뜨거운 PPL 시장으로 떠오른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할리우드 영화에 점점 더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이 등장하게 된 것은 우연일 뿐인지, 또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주인공이 위험을 무릅쓰고 과거-우리의 현재-로 돌아올 때 그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2003년형 세단이나 막 런칭된 스포츠카를 시승해보기 위해서는 아닌지 의심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도 ‘매트릭스 2’는 ‘자동차의 올바른 운전법에 대한 철학적 질문’일 뿐 아니라 기계들의 에너지원으로 전락한 인간의 운명을 또 다른 차원에서 보여주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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