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파리,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한 소년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이 아이가 장차 ‘피아노의 왕’이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소년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에게서 인정을 받아 지난 3년간의 설움을 씻어낼 수 있었다. 소년의 설움이란 다름아닌 ‘후진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적잖은 차별대우였다. 무절제한 사생활로 그 재능을 탕진해 음악사의 그늘에 묻혀버리긴 했지만 쇼팽의 호언대로 훗날 세계 최고 연주자로 우뚝 선 이 소년의 이름은 거트쇼크.
그런데 소년은 어느 나라에서 왔기에 후진국 출신이라는 놀림을 받았을까. 이 후진국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지금으로선 실감나지 않는 얘기지만 미국은 불과 한 세기 반 전만 해도 유럽 ‘선진국’들로부터 뒤떨어진 나라라고 무시당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불과 50여년 뒤인 20세기 초에 강대국으로 올라선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초고속 성장’이었다. 과연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몇 년 전 국내에 소개된 영화 ‘파 앤드 어웨이(사진)’는 그중 한 가지를 보여준다. 미국에 찾아온 아일랜드 출신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미국은 이민자들에게 ‘위험하지만 한편으론 그만큼의 기회가 기다리는 곳’으로 그려진다. 18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땅 따 먹기 경주’ 장면이다.
자신이 원하는 땅으로 말을 몰고 가 깃대를 꽂으면 그 땅의 주인이 되는 경주에 출전해 주인공은 그토록 원하던 땅을 얻게 된다. 그때 주인공은 물론 그와 함께 경주에 참가한 경쟁자들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이었다. 당시 미국의 항구들은 그런 이민자들로 북적거렸다. 꿈과 열정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 이들 이민자들이야말로 미국의 성장을 일궈낸 밑거름이었다. 미국이 ‘용광로 사회’라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피부색은 정치·사회적으로는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돼왔지만 경제적으로는 미국 기업의 경쟁력의 한 뿌리다. 다양한 인종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그만큼 까다롭다. 미국 기업들은 다양한 성향의 자국 소비자들을 통해 엄격한 시장 테스트를 거친 제품을 국제 무대에 내놓음으로써 세계 시장을 장악해나갈 수 있었다는 얘기다.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총천연색 피부는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미국 제품의 경쟁력의 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도약에는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요인이 있었다. 그건 ‘운’이다. 19세기 후반 이후 미국의 번영은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초부터 계속된 성장과 상승세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그 같은 성장 과정에서 복잡한 유럽 정세가 미국에는 행운으로 작용했다.
19세기 유럽은 혁명과 전쟁의 시대. 프랑스의 역사가 앙드레 모로아는 저서 ‘미국사’에서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이 대립하고 있지 않았다면 아메리카 대륙을 방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유럽 나라들의 무관심과 방임이 신생국 미국에는 행운이었다는 얘긴데, 가령 루이지애나 구입도 유럽의 대립을 틈탄 어부지리였다.
루이지애나는 지금의 13개 주에 이르는 광대한 땅. 미국은 이 방대한 땅을 프랑스 나폴레옹으로부터 단돈 1500만 달러에 산다. 프랑스가 군비 때문에 돈이 될 만한 건 뭐든지 팔아 치우려는 다급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에이커당 3센트도 안 되는 가격에 영토를 2배로 늘렸다.
미국이 제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결정적으로 유럽을 누르고 세계의 강자로 올라선 것도 전장에서 멀찌감치 비켜나 있었던 덕이 크다. 전쟁으로 유럽은 세계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잃은 반면 미국은 오히려 자국 영토는 다치지 않으면서 전쟁특수를 독점했다. 그런 재미를 잊지 못해서인가. 남의 영토에서 전쟁을 벌이며 부를 쌓는 미국의 전통은 지금의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소년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에게서 인정을 받아 지난 3년간의 설움을 씻어낼 수 있었다. 소년의 설움이란 다름아닌 ‘후진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적잖은 차별대우였다. 무절제한 사생활로 그 재능을 탕진해 음악사의 그늘에 묻혀버리긴 했지만 쇼팽의 호언대로 훗날 세계 최고 연주자로 우뚝 선 이 소년의 이름은 거트쇼크.
그런데 소년은 어느 나라에서 왔기에 후진국 출신이라는 놀림을 받았을까. 이 후진국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지금으로선 실감나지 않는 얘기지만 미국은 불과 한 세기 반 전만 해도 유럽 ‘선진국’들로부터 뒤떨어진 나라라고 무시당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불과 50여년 뒤인 20세기 초에 강대국으로 올라선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초고속 성장’이었다. 과연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몇 년 전 국내에 소개된 영화 ‘파 앤드 어웨이(사진)’는 그중 한 가지를 보여준다. 미국에 찾아온 아일랜드 출신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미국은 이민자들에게 ‘위험하지만 한편으론 그만큼의 기회가 기다리는 곳’으로 그려진다. 18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땅 따 먹기 경주’ 장면이다.
자신이 원하는 땅으로 말을 몰고 가 깃대를 꽂으면 그 땅의 주인이 되는 경주에 출전해 주인공은 그토록 원하던 땅을 얻게 된다. 그때 주인공은 물론 그와 함께 경주에 참가한 경쟁자들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이었다. 당시 미국의 항구들은 그런 이민자들로 북적거렸다. 꿈과 열정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 이들 이민자들이야말로 미국의 성장을 일궈낸 밑거름이었다. 미국이 ‘용광로 사회’라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피부색은 정치·사회적으로는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돼왔지만 경제적으로는 미국 기업의 경쟁력의 한 뿌리다. 다양한 인종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그만큼 까다롭다. 미국 기업들은 다양한 성향의 자국 소비자들을 통해 엄격한 시장 테스트를 거친 제품을 국제 무대에 내놓음으로써 세계 시장을 장악해나갈 수 있었다는 얘기다.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총천연색 피부는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미국 제품의 경쟁력의 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도약에는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요인이 있었다. 그건 ‘운’이다. 19세기 후반 이후 미국의 번영은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초부터 계속된 성장과 상승세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그 같은 성장 과정에서 복잡한 유럽 정세가 미국에는 행운으로 작용했다.
19세기 유럽은 혁명과 전쟁의 시대. 프랑스의 역사가 앙드레 모로아는 저서 ‘미국사’에서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이 대립하고 있지 않았다면 아메리카 대륙을 방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유럽 나라들의 무관심과 방임이 신생국 미국에는 행운이었다는 얘긴데, 가령 루이지애나 구입도 유럽의 대립을 틈탄 어부지리였다.
루이지애나는 지금의 13개 주에 이르는 광대한 땅. 미국은 이 방대한 땅을 프랑스 나폴레옹으로부터 단돈 1500만 달러에 산다. 프랑스가 군비 때문에 돈이 될 만한 건 뭐든지 팔아 치우려는 다급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에이커당 3센트도 안 되는 가격에 영토를 2배로 늘렸다.
미국이 제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결정적으로 유럽을 누르고 세계의 강자로 올라선 것도 전장에서 멀찌감치 비켜나 있었던 덕이 크다. 전쟁으로 유럽은 세계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잃은 반면 미국은 오히려 자국 영토는 다치지 않으면서 전쟁특수를 독점했다. 그런 재미를 잊지 못해서인가. 남의 영토에서 전쟁을 벌이며 부를 쌓는 미국의 전통은 지금의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