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열 전 동아일보 사장이 11월7일 낮 12시30분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0세. 김 전 사장은 40여년간 동아일보에 재직하며 자유 언론을 몸소 실현한 참언론인이었다.
전남 순천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194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정경부장과 부국장을 거쳐 편집국장(대리)을 역임했다. 이후 주영특파원과 동아방송 국장·전무·부사장을 거쳐 85∼89년 동아일보 사장을 지냈다. 고인은 자유당 말기와 군사독재 시절 동아일보 정경부장을 지내면서 투철한 기자정신과 날카로운 필봉으로 독재권력에 맞서 싸웠다.
고인은 1960년 자유당 정권 말기에 정경부장을 맡아 3·15 부정선거와 마산의거 등에 대한 끈질긴 추적 보도로 4·19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69년까지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적 기사로 정권의 무수한 탄압을 받기도 했으나 정론직필의 보도 자세는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61년 3월 최루탄을 맞고 숨진 김주열군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랐다고 쓴 내 기사를 끝까지 지켜주는 등 진실 보도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참언론인”이라고 김 전 사장을 회고했다.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은 “고인은 박정희 정권의 재선과 삼선 과정에서 정권 연장 기도에 대한 잇따른 비판적 기사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에게서 많은 탄압을 받았다”고 말했다.
고인은 84년부터 국제언론인협회(IPI) 본부 이사를 맡아왔으며 이후 1989년 자유와 민주를 표방하는 지성인들의 모임인 ‘자유지성 300인회’의 발기인으로 참여, 이 모임의 공동대표와 상임고문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난순 여사와 홍, 훈, 지원, 지숙씨 등 2남2녀가 있다. 장례는 동아일보 회사장으로 치러졌다.
전남 순천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194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정경부장과 부국장을 거쳐 편집국장(대리)을 역임했다. 이후 주영특파원과 동아방송 국장·전무·부사장을 거쳐 85∼89년 동아일보 사장을 지냈다. 고인은 자유당 말기와 군사독재 시절 동아일보 정경부장을 지내면서 투철한 기자정신과 날카로운 필봉으로 독재권력에 맞서 싸웠다.
고인은 1960년 자유당 정권 말기에 정경부장을 맡아 3·15 부정선거와 마산의거 등에 대한 끈질긴 추적 보도로 4·19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69년까지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적 기사로 정권의 무수한 탄압을 받기도 했으나 정론직필의 보도 자세는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61년 3월 최루탄을 맞고 숨진 김주열군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랐다고 쓴 내 기사를 끝까지 지켜주는 등 진실 보도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참언론인”이라고 김 전 사장을 회고했다.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은 “고인은 박정희 정권의 재선과 삼선 과정에서 정권 연장 기도에 대한 잇따른 비판적 기사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에게서 많은 탄압을 받았다”고 말했다.
고인은 84년부터 국제언론인협회(IPI) 본부 이사를 맡아왔으며 이후 1989년 자유와 민주를 표방하는 지성인들의 모임인 ‘자유지성 300인회’의 발기인으로 참여, 이 모임의 공동대표와 상임고문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난순 여사와 홍, 훈, 지원, 지숙씨 등 2남2녀가 있다. 장례는 동아일보 회사장으로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