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검에서 발생한 피의자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된 검찰의 단속으로 용주골 윤락가의 휘황찬란하던 홍등과 네온사인이 모두 꺼졌다. 개중에는 아예 가게를 내놓은 곳도 있다.
“검찰이 대대적인 복수에 나섰다고 하던데 못 들으셨어요? 왜 검찰에서 맞아죽은 사람 있잖아요. 그 사람 형님 노릇을 하는 치가 용주골에서 카드깡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용주골을 박살낸대요. 하기야 법무부장관이랑 검찰총장 모가지가 날아갔으니 복수심에 불탈 만도 하지. 그나저나 불쌍한 용주골 사람들만 안됐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게 생겼다니까요.” 구멍가게 주인은 “사창가 업주들이 일제히 문을 닫고 도주한 사례는 한 차례도 없었다”면서 이씨 일행에게 파주시 법원리 사창가로 가는 길을 일러줬다.
용주골 윤락가에는 지금 공습경보가 내려져 있다. 검찰이 이 지역 사창가에 대한 대대적 단속에 나섰기 때문이다. 업주들의 대다수가 검찰의 단속을 피해 도주한 상태. 군데군데 문단속조차 하지 못하고 야반도주한 가게도 눈에 띈다. 파주경찰서 관계자는 “평균 30여명의 검-경 수사관들이 윤락행위를 단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주골 주변을 지나가던 전진부대 이모 중사는 “10년 가까이 용주골에서 근무했지만, 이처럼 을씨년스러운 윤락가 풍경은 본 적이 없다”면서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속반 상주하다시피… 업주들 “엉뚱한 데 화풀이”
파주파출소 연풍초소의 초소장 책상엔 급히 만든 것으로 보이는 수배 전단이 한 장 붙어 있었다. 수배 전단의 주인공은 파주를 무대로 활동하는 S파 두목 신모씨. ‘용주골 소동’은 바로 이 신씨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신씨는 이 지역 건달로 파주시 금촌동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씨 조직의 행동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 조직원이 서울지검 조사실에서 수사관들에게 구타당해 숨진 조천훈씨다. 조씨에게 살인을 사주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이 바로 두목 신씨. 용주골 포주들과 주민들은 신씨를 두고 “어려서부터 파주에서 자란 동네 건달일 뿐이지 검찰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거물은 절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포주들과 주민들의 주장에 따르면 어느 지역에나 한둘씩은 있는 토착 폭력조직 두목인 셈이다.
검사가 구속되고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옷을 벗는 초유의 사태를 접하면서 용주골 주변에선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용주골 조폭을 초토화하겠다는 비장한 복수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포주들 사이에선 “검찰이 용주골을 아예 없앨 계획을 세워놓았다”는 소문이 이미 퍼져 있다. 편의점에 물건을 사러 나온 포주 A씨는 “사람 죽인 검찰이 엉뚱한 곳에서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영장도 없이 업소에 들이닥쳐서 아가씨들을 끌고 갔어요. 다른 업소에선 잠자고 있는 아가씨 방에 무작정 들어가 방을 뒤지고 나선 콘돔이 증거라면서 붙잡아 갔다고 하더군요.” 또 다른 포주는 “수사관들이 다짜고짜 욕부터 해대는데 견뎌낼 업주가 어디 있겠느냐”면서 “1500만~3000만원 정도씩 빚을 안고 있는 아가씨들은 도주를 염려한 ‘삼촌’들과 여행을 떠났다”고 말했다.
수사 관련 독직 행위로 구속된 첫 검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홍경령 전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와 S파와의 악연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에서 근무하던 홍검사는 98년 경기 고양시에서 자살한 것으로 돼 있는 박모씨 사건 관련 기록을 검토하다 조씨가 관련된 살인 첩보를 입수, 파주를 무대로 활동하는 S파 조직원들이 조직 내부에서 알력을 빚던 조직원과 민간인 등 2명을 죽이고 자살로 위장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홍검사는 3년여간 수사에 매달린 끝에 10월23일 S파 조직원 장모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S파 두목 신씨의 지시를 받은 행동대장 조씨가 현장을 지휘해 조직원 박씨를 살해했으며, 이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돈을 요구하던 신씨의 교도소 동료 이모씨까지 살해한 혐의를 포착한 것이다.
홍검사는 사망한 조씨와 검찰청사에서 도주한 최모씨 등 5명을 한꺼번에 검거했지만, 조씨가 사망하면서 다른 피의자들이 “검찰의 구타와 협박 때문에 거짓 진술을 했다”며 진술 내용을 번복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출하는 등 살인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진 상태다.
문단속조차 못하고 ‘장기 휴업’에 들어간 한 업소.
대부분의 업소에 단말기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미뤄 보아 조직폭력배나 카드깡 업자들이 용주골 사창가에서 조직운영 자금의 일부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지검 강력부는 11월5일 용주골 윤락행위와 관련, 포주 김모씨를 신용카드 단말기 등을 갖춘 불법 윤락업소를 운영해온 혐의(여신전문 금융업법 위반 등)로 구속했다. 윤락업소를 운영하면서 지난 7월부터 3개월 동안 650여 차례에 걸쳐 매춘을 알선, 화대를 포함 4억8000만원 가량의 ‘매출 수익’을 올린 혐의다. 포주들에 따르면 김씨는 신씨의 ‘동생’으로 S파가 직접 관리하는 용주골 내 윤락업소는 김씨의 업소가 유일하다고 한다. 검찰은 김씨를 상대로 신씨의 소재 등을 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의 용주골 단속에 자극받은 경찰도 대대적인 사창가 단속에 나섰다. 경기경찰청은 11월8일 ‘윤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파주 동두천 평택 등의 윤락가에 철퇴를 가하며 일부 사창가를 폐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용주골 포주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11월6일 오후 용주골에 5일장이 섰다. 북적거려야 할 시골 장터는 오가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썰렁하기만 했다. 상인 우모씨(50)는 “공장 하나 없는 연풍리 일대에서 주민들은 윤락가에 의지해 생활해왔다”면서 “그깟 동네 건달 한 명 잡기 위해 왜 난리 법석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정모씨(33)는 “하루 매출만 100만원을 넘던 가게가 5일 동안 커트 손님 두 명밖에 못 받았다”면서 “검찰의 복수로 용주골 사창가가 없어진다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용주골 일대에서 검찰은 이처럼 ‘사람 죽여놓고 엉뚱한 데 와서 화풀이나 하고 있는 존재’로 비춰지고 있다. 매춘업을 하는 범법자들도 검찰을 비웃긴 마찬가지다. 포주들은 ‘영장 없는 수색’ ‘폭력 단속’ 운운하며 내놓고 검찰을 비난한다. 정당한 법집행을 하면서도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권위가 이렇게 추락해도 되는 것일까. 용주골이 칠흑같은 암흑 속에 빠져 있는 사이 용주골과 이웃한 법원리 사창가의 홍등은 여전히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