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열린 국민통합신당창당추진위원회 개소식에서 정몽준 의원 등이 현판식을 하고 있다(위).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가 9월12일 오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현판식에서 서청원 대표 등 당직자들과 박수를 치고 있다(아래).
박빙의 3강 구도에서 ‘최대 부동표 지역’인 충청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도 있다. 대선 전 자민련 해체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충청은 누구를 택할까. 각 대선 캠프에선 충청 잡기를 위한 물밑작업이 한창이다.
정몽준, 충청을 ''정풍 진원지''로정몽준 의원의 신당 창당 명분은 ‘정치개혁’이며 가장 중요하게 내걸고 있는 개혁 내용은 ‘지역감정 없고, 지역정당 없는 정치 실현’이다. 그러나 정의원이 처한 현실은 좀 다르다. 후발주자에게 안정적 지역기반의 필요성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자민련 정우택 의원측은 “지난 추석 때 지역구의 화제는 단연 정몽준이었다”고 전했다. 이미 이회창 노무현 두 라이벌이 영-호남에서 안정적 지지기반을 확보한 상황에서 정의원 캠프는 충청을 교두보로 택한 듯하다.
정의원측이 10월 말 예정인 신당창당대회의 잠정 개최지로 대전을 잡은 것도 이런 맥락. 최근 박구일, 김현욱 등 자민련 출신 전직의원들을 영입하기도 했다. 정의원 캠프에 들어온 충청 출신 박범진 전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 계열의 민주동지회 행사에 참석해 서석재 전 의원에게 지지를 부탁하는 등 정의원을 위한 외연 넓히기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지역 하동 정씨 종친회, ROTC, 생활체육협의회 축구연합회 활동도 탄력을 받고 있다. 정덕기 전 충남대 총장, 정하용 전 대전시 부시장 등 몇몇 지역인사들 역시 정의원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의원과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회동을 정의원측에서 먼저 공개한 것도 주목할 대목. ‘지역분할정치의 대표’, ‘구시대 정치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김총재와의 접촉은 ‘혁명적 정치개혁’을 표방한 정의원에겐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의원은 지금 ‘실리’가 급한 듯하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정몽준 신당의 당면과제다. 민주당 탈당파의 탈당 움직임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현역의원 20명의 수를 채워줄 수 있는 제2의 차선책은 바로 자민련 또는 충청 출신 의원들이다. 정의원에게 여론조사 지지율 1위가 현실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시험대는 충청 의원 영입 여부인 셈이다.
한나라당의 충청 사수 대책회의 9월25일은 한나라당 선거전략의 전환점이었다. 이날 고위선거대책회의에서 서청원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일제히 정의원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현 정권과 현대의 유착관계가 집중 부각됐다. 현대를 통한 북한 4억 달러 지원 의혹도 다분히 정의원을 겨냥한 측면도 없지 않다. 이날을 전후해 당 지도부는 충청 민심을 잡기 위한 대책회의를 열었다. 충청에서 정몽준 의원이 지지율 1위에 오르자 위기감이 팽배해 ‘특단의 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강창희 최고위원은 “그러한 회의가 열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청원 대표는 의원회관의 충청 출신 김용환 의원 방을 찾아 김의원과 2시간 동안 밀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도 충청권에 대한 대책이 논의됐다. 이러한 움직임과 관련, “충청에서 정풍이 현실화할 조짐을 보일 경우 한나라당은 한-자동맹 또는 자민련과의 통합으로 미리 선수를 치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당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일단 자민련 고사 등 김종필 총재를 자극하는 움직임은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자민련 의원 영입 교섭은 별도로 진행중이라고 한다. 강창희 최고위원은 기자와 만나 “정몽준에게 갈 사람은 가라. 그러나 정치를 그렇게 얄팍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노무현 후보가 9월24일 오전 당사에서 선거대책회의를 하고 있다(위 사진).9월16일 오전 국회 국정감사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왼쪽)(아래사진).
민주당 한화갑 대표 측근은 “한나라당이든 정몽준 의원이든 섣불리 자민련-JP와 손을 잡았다가는 이에 실망한 상당한 수의 이탈 표가 발생할 것이며, 이러한 표는 노후보 지지로 옮겨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충청은 ‘어느 정파와도 연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 9월25일 저녁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동생 종관씨 빈소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정몽준 의원, 이한동 전 국무총리 등 유력 대선후보들이 다녀갔다. 노무현 후보는 화환만 보냈다.
그러나 노후보는 9월30일 선대위 출범식에서 “집권시 청와대, 정부부처를 충청권으로 이전하겠다”면서 충청 민심 돌리기 차원의 공약을 발표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단 JP나 정몽준과의 연대 등 우회적 방법을 통하지 않고, 직접 충청시민들과 상대하겠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기사회생 노리는 JP 자민련 고위당직자는 자민련의 향후 대선행보 가능성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대선후보군과 연대는 하되 연대시기는 최대한 늦출 가능성이고, 둘째는 대통령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와 연대할 가능성이다.
정몽준 의원의 급격한 부상과 이회창-정몽준 양자의 접전 양상은 김종필 총재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주고 있다. 일단 한나라당행을 준비해온 자민련 의원들이 심리적으로 주춤하고 있다. 탈당을 준비하는 소속의원들에게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행동을 같이하자’는 JP의 설득이 일시적으로 먹혀들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자민련 한 의원은 “JP가 이번에도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자신과 연대한 후보를 당선시킬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하며 “당 구심력이 요즘 들어 회복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근엔 김총재와 자민련이 오히려 정의원측과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역력하다. 이와 관련 자민련에선 “정의원이 내놓는 창당 자금이 실제로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정의원 본인의 대선 출마 의지와 정의원에 대한 여론 지지율은 좀더 검증이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자민련 고위당직자는 “정의원측과 신당 문제와 관련된 접촉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자민련의 달라진 분위기는 10월 말 원내교섭단체로 ‘산뜻하게’ 출발하려는 정몽준 신당 계획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1997년 대선 때 김종필 총재는 대선 투표일 직전까지 결단을 늦추다 DJP연대를 성사시킨 바 있다. 그러나 97년에 비해 현재 김종필 총재의 정치적 힘은 크게 떨어져 있다. 자민련 의원들의 개별 이탈은 김총재에겐 치명적 타격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유력후보와의 연대 없이는 소속의원들을 붙잡아두기도 힘들고, 당의 공중분해를 막기도 힘든 상황에서 김총재가 과연 언제까지 결단을 늦출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