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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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21 핵심사업 “이젠 어쩌나”

교육부 지원금 중단 ‘중도 폐지’… 3년간 연구 성과 물거품 위기 속 연구생들 생계 걱정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2-10-02 18: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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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K21 핵심사업 “이젠 어쩌나”
    국민대 전자물리학과 김철성 교수는 요즘 제자들을 볼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정부가 1999년 ‘두뇌한국21(BK21)’ 사업을 시작하면서, 3년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추가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과 달리 BK21 ‘핵심분야’ 사업이 중단돼 연구팀의 미래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BK21 사업에 솔깃해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석·박사 과정 학생에게 각각 40만원, 60만원, 박사 후 과정 학생에게 150만원씩 지원되던 지원금이 9월부터 중단됐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99년부터 3년간 투자한 시간과 연구 성과들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며 “교육당국의 사업계획 설명만 믿고 다른 준비 없이 연구에만 매진해온 교수와 교수를 믿고 따라온 대학원생들이 당초 설명과 다른 사업 중단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십이지장 관련 질환의 원인균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 피로리’의 한국인 게놈 염기 서열 초안을 완성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경상대 의대 이광호 교수 연구팀도 사정은 마찬가지. BK21 사업의 지원에 힘입어 염기 서열의 95%를 분석해낸 연구팀은 지난 3월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교수의 연구팀은 BK21 사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 중 하나인 셈이다. 하지만 핵심분야 사업 중단으로 앞으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교수는 “가뜩이나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터에 사업 중단으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지방대 연구실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약속 어겼다” 해당 교수들 강력 반발

    BK21 핵심사업 “이젠 어쩌나”

    99년 열린 교수들의 BK21 반대 집회. 교수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으며 시작된 BK21사업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온갖 비난을 들으면서 시작하더니 마무리도 그 모양이냐.” “조변석개하는 교육정책에 지쳤다.” “지방대의 괜찮은 연구실마저도 문을 닫으란 말이냐.” “사업 전체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가장 지원금 액수가 적은 사업을 슬며시 없앤 것 아니냐.” BK21 핵심분야에 선정됐던 교수들이 최근 교육당국을 향해 쏟아내고 있는 말이다. 정부가 99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BK21 사업 중 핵심분야가 후속 지원 없이 중단되자 해당 교수들이 “정부가 당초의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핵심사업팀은 9월 지원이 중단됐고, 나머지 핵심사업팀들도 11월로 핵심사업 기간이 종료될 예정이다.

    BK21 사업은 △세계 수준의 대학원 육성 △대학의 연구력 제고 △산학 협동 강화를 통한 특성화 대학 육성 △초·중등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대학제도 개혁 등을 목표로 99년부터 추진한 현 정부의 대표적 교육사업으로 △과학기술 분야 △인문사회 분야 △지역대학 육성 분야 △특화분야 △핵심분야 등 5개로 구분돼 추진돼왔다. 7년간 모두 1조4000억원을 투입하는 BK21 사업 중 핵심분야 사업은 공학·자연·의약·인문 분야 등의 소규모 연구팀에 3년 동안 연 385억원씩 총 1155억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1차로 선정된 48개 대학 238개 팀과 추가로 선정된 28개 대학 78개 팀 등 53개 대학 316개 사업팀이 3년 동안 지원을 받아왔다. 핵심분야는 지원금의 75% 이상이 대학원 학생과 연구진들의 인건비로 사용되는 전문인력 양성사업이다.



    교육부는 BK21 사업계획 발표 당시 핵심분야의 경우 사업 기간이 끝나면 평가를 실시해 2차 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99년 교육부가 만든 핵심분야 관련 문건에도 “BK21 사업은 7년간 계속되는 사업이므로 이번 3년간의 핵심분야 사업은 1차 사업이며, 1차 사업 종료 후 2차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 경우 1차 사업 최종평가 결과, 제도 개선 목표와 사업 목표를 초과 달성한 사업팀에게는 2차 사업 선정시 우선권을 줄 계획이다”라고 적혀 있다.

    연구팀들은 교육부의 이런 설명을 믿고 2차 지원 대상에 선정되는 것을 목표로 3년 동안 연구를 진행해오다 느닷없이 “핵심사업은 1차 사업으로 중단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운영되던 53개 대학 316개 사업팀 5557명의 연구 인력이 독자적으로 생존해야 할 처지가 된 셈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핵심분야는 1차로 종료한다는 게 원칙이었다”며 “2차 지원은 계획 단계에서 논의한 것일 뿐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초 계획과 달리 사업이 중단된 것은 관련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획예산처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교육부는 추가지원에 대한 예산을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감사원 특감 결과, 99년부터 3년간 각 대학 석사 및 박사 연구과정에 지원된 연구비 가운데 수십억원이 부적격자에게 지급되는 등 부당집행 사례가 적발돼 BK21 사업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1차 사업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핵심분야 교수들이 추가지원을 요구하자, 교육부는 명칭을 바꿔 IT, BT 등 전략분야 중심으로 150억원 규모를 지원하는 ‘국가 전략분야 고급 R&D 인력사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 사업도 내년도 예산편성 지침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핵심분야에 대한 추가지원이 가능하도록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올해에도 예산 확보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교육부가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에는 일부 교수들의 책임도 있다. 최근엔 BK21 사업의 사업비 부당 집행이 1100여건에 달하고, 단기 해외연수를 빙자한 교수들의 관광성 외유가 심각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회 교육위 소속 한나라당 김정숙 의원은 9월25일 국감 질의 자료에서 “서울대 15개 사업단을 대상으로 지원자금 지출 내역을 조사한 결과 인건비 중복지급, 회의·여비 중복지급 등과 연구목적 이외의 도서구입비, 시내출장비, 이동전화요금 등도 지출 내역에 포함돼 있었다”며 “해외연수 프로그램이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해외여행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핵심분야 사업팀으로 지정돼 지원을 받아온 교수들은 “예산 낭비 운운하는 지적은 핵심사업을 제외한 다른 분야의 일부 교수들에게나 적용되는 얘기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분야에 비해 지원금이 크게 적은데다, 대학원생들과 연구원들의 인건비 위주로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유용할 예산 자체가 없었다는 것.

    이화여대 수학과 조용승 교수는 “핵심분야는 몇몇 명문대들이 독식한 과학기술 분야 등 다른 분야 사업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며 “큰 문제 없이 운영되던 핵심분야를 가장 먼저 중단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BK21 사업이 정쟁의 소재가 되면서 핵심분야가 희생양이 됐다는 주장이다.

    학계는 핵심분야 사업이 지원액과 팀 규모가 작은 데 비해 우수한 연구 성과를 올렸다고 평가한다. 핵심분야 316개 사업팀은 박사 후 과정 학생 등 신진연구인력 811명과 석·박사 과정 학생 2712명을 배출했고, 대학원생의 연구력도 크게 향상돼 대학원생의 학술지 수록 논문 수가 사업 이전보다 최고 350%까지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지방대와 사립대에 지원됨으로써 교육 연구의 상향 평준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핵심분야에 참여했던 교수들은 BK21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성공 사례를 담은 책자를 만들어 국회 교육위 위원들에게 보내는 등 ‘예산 확보’를 위한 로비에도 나섰다. 3년에 걸쳐 어렵게 이룩한 연구 성과와 제자들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조선대 약학과 최후균 교수는 “처음부터 3년 후에 중단한다고 밝혔으면 일을 벌여놓았겠느냐”면서 “연구실적이 우수한 연구팀만이라도 구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대 화학과 심윤보 교수는 “한쪽에선 우수인력을 용도 폐기하면서 다른 쪽에선 국가경쟁력 운운하며 이공계 대학원 기피 현상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고 법석을 떨고 있다”며 “BK21 ‘핵심사업’이 어떠한 형식으로든 재개되지 않으면 지방대학의 공동화와 소규모 연구집단의 도태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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