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대 초빙교수한국의 어느 지역을 가나 고층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아파트 몇 층에서 사는 것은 공중에 떠서 사는 셈이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의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통상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자기 집을 가진 미국인들은 여름에 잔디 깎고 겨울에 눈을 치운다. 가을엔 낙엽을 긁고 봄에는 대청소를 한다. 또 앞뒤 마당의 화단이나 채소밭을 가꾼다. 이래저래 일년 내내 집 안팎을 가꾸고 다듬는다. 하지만 한국의 아파트 거주자들은 모두 관리인 혹은 경비에게 맡겨버린다. 자기 집의 관리와 유지를 다른 사람에게 일임하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아파트 생활은 그래서 속 편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물의 관리와 유지라는 측면을 소홀히 하는 성향이 생겨났다.
건물·제도 등 만들어놓고 관리 뒷전… 수명 짧을 수밖에
오늘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이 관리소홀 내지 관리무능력(negligence or inability to maintain)이야말로 시급히 고쳐야 할 중증(重症) 한국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건물들이 지은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쉬 낡아버리는 이유는 졸속과 날림으로 지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도 크다. 아파트 단지는 물론이고 많은 돈을 들여 지은 학교 건물이나 공원, 도서관, 도로, 교량, 전기, 상하수도 시설, 그리고 올림픽이나 엑스포 시설물, 기타 이른바 사회의 인프라라는 것이 금방 낡아서 흉물단지로 변한다.
보물 제1호 흥인지문(동대문)이 허술한 관리로 곳곳에 균열이 생기고 퇴락(頹落)해 가고 있다. 어처구니없게 얼마 전 보수공사를 했는데 그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고 한다. 내가 일하는 미국의 평범한 주립대학 캠퍼스는 지은 지 100여년 된 건물들이 아직도 견실하게 사용되고 있는 데 반해, 지은 지 30년도 채 안 된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교사들은 벌써 후락(朽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본 고등학교에서는 한 재력가 동문이 기증했다는 기념건물이 불과 15년 만에 비가 새고 유리창이 깨지고 거미줄이 쳐진 헛간으로 변해 있다. 기증 당시의 멋지고 화려했을 장면이 연상되어 쓴웃음이 난다.
그래서 벌써부터 걱정이다. 자그마치 2조원이나 들여 지은 월드컵 경기장들을 앞으로 어떻게 유지해 나갈지. 자기 집도 잘 손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남의 집, 남의 건물, 공공시설물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길러질 리 없고, 결국 그러한 사회는 짓기와 헐기만 되풀이할 것이다.
관리소홀 및 관리무능력의 문제는 각종 시설물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각종 제도와 규율을 운용함에 있어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수많은 제도와 정책, 계획과 규율들을 채택하고 도입하고 발표하고 벌여놓지만, 늘 처음에만 크게 떠들 뿐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뒷일은 나 몰라라가 태반이다. 수능, 본고사, 학부제, 총장 선거, BK 21(Brain Korea 21) 등을 둘러싼 교육제도의 파행적 운용이 이를 가장 극명하게 대변한다.
시설과 제도는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사후의 적정한 관리·유지를 위해서는 인력과 재원이 소요되고, 또 무엇보다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처음부터 관리, 유지, 보완에 소요될 예산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묻고 싶다.
주 5일 근무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길어진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들인 모양인데, 밖으로 나돌지만 말고 집 안팎을 다듬고 가꾸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 나라 이 사회는 온 국민이 가꾸어 나가는 보금자리다. 손이 가면 갈수록 나의 보금자리가 윤이 나는 것처럼 이 나라 이 사회의 보금자리도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
가정(家庭)의 정(庭)자는 뜰이라는 의미다. 모름지기 가정이란 가족이 모여 즐기고 놀고 살아가는 ‘뜰’이어야 한다. 지금은 대부분 가정에서 ‘뜰’이라는 공간을 찾을 수 없지만 마음속에서만은 ‘뜰’을 간직하고 잘 가꾸어야 한다. 그 ‘뜰’을 가꾸어 ‘홈 스위트 홈’을 만드는 것까지 관리인에게 맡길 수 없는 것처럼, 이 나라 이 사회의 뜰과 보금자리를 가꾸는 데 나라 밖에서 관리인을 데려올 수는 없지 않은가.
자기 집을 가진 미국인들은 여름에 잔디 깎고 겨울에 눈을 치운다. 가을엔 낙엽을 긁고 봄에는 대청소를 한다. 또 앞뒤 마당의 화단이나 채소밭을 가꾼다. 이래저래 일년 내내 집 안팎을 가꾸고 다듬는다. 하지만 한국의 아파트 거주자들은 모두 관리인 혹은 경비에게 맡겨버린다. 자기 집의 관리와 유지를 다른 사람에게 일임하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아파트 생활은 그래서 속 편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물의 관리와 유지라는 측면을 소홀히 하는 성향이 생겨났다.
건물·제도 등 만들어놓고 관리 뒷전… 수명 짧을 수밖에
오늘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이 관리소홀 내지 관리무능력(negligence or inability to maintain)이야말로 시급히 고쳐야 할 중증(重症) 한국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건물들이 지은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쉬 낡아버리는 이유는 졸속과 날림으로 지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도 크다. 아파트 단지는 물론이고 많은 돈을 들여 지은 학교 건물이나 공원, 도서관, 도로, 교량, 전기, 상하수도 시설, 그리고 올림픽이나 엑스포 시설물, 기타 이른바 사회의 인프라라는 것이 금방 낡아서 흉물단지로 변한다.
보물 제1호 흥인지문(동대문)이 허술한 관리로 곳곳에 균열이 생기고 퇴락(頹落)해 가고 있다. 어처구니없게 얼마 전 보수공사를 했는데 그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고 한다. 내가 일하는 미국의 평범한 주립대학 캠퍼스는 지은 지 100여년 된 건물들이 아직도 견실하게 사용되고 있는 데 반해, 지은 지 30년도 채 안 된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교사들은 벌써 후락(朽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본 고등학교에서는 한 재력가 동문이 기증했다는 기념건물이 불과 15년 만에 비가 새고 유리창이 깨지고 거미줄이 쳐진 헛간으로 변해 있다. 기증 당시의 멋지고 화려했을 장면이 연상되어 쓴웃음이 난다.
그래서 벌써부터 걱정이다. 자그마치 2조원이나 들여 지은 월드컵 경기장들을 앞으로 어떻게 유지해 나갈지. 자기 집도 잘 손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남의 집, 남의 건물, 공공시설물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길러질 리 없고, 결국 그러한 사회는 짓기와 헐기만 되풀이할 것이다.
관리소홀 및 관리무능력의 문제는 각종 시설물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각종 제도와 규율을 운용함에 있어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수많은 제도와 정책, 계획과 규율들을 채택하고 도입하고 발표하고 벌여놓지만, 늘 처음에만 크게 떠들 뿐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뒷일은 나 몰라라가 태반이다. 수능, 본고사, 학부제, 총장 선거, BK 21(Brain Korea 21) 등을 둘러싼 교육제도의 파행적 운용이 이를 가장 극명하게 대변한다.
시설과 제도는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사후의 적정한 관리·유지를 위해서는 인력과 재원이 소요되고, 또 무엇보다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처음부터 관리, 유지, 보완에 소요될 예산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묻고 싶다.
주 5일 근무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길어진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들인 모양인데, 밖으로 나돌지만 말고 집 안팎을 다듬고 가꾸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 나라 이 사회는 온 국민이 가꾸어 나가는 보금자리다. 손이 가면 갈수록 나의 보금자리가 윤이 나는 것처럼 이 나라 이 사회의 보금자리도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
가정(家庭)의 정(庭)자는 뜰이라는 의미다. 모름지기 가정이란 가족이 모여 즐기고 놀고 살아가는 ‘뜰’이어야 한다. 지금은 대부분 가정에서 ‘뜰’이라는 공간을 찾을 수 없지만 마음속에서만은 ‘뜰’을 간직하고 잘 가꾸어야 한다. 그 ‘뜰’을 가꾸어 ‘홈 스위트 홈’을 만드는 것까지 관리인에게 맡길 수 없는 것처럼, 이 나라 이 사회의 뜰과 보금자리를 가꾸는 데 나라 밖에서 관리인을 데려올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