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이 넘도록 지겹게 내리던 빗줄기가 실낱처럼 가늘어졌다. 새파란 하늘이 짙은 먹구름 사이로 간간이 드러나곤 했다. 유례없이 줄기차게 내리던 빗발의 기세가 한풀 꺾인 듯싶어지자 문뜩 바다가 그리웠다. 새하얀 손수건을 적시면 쪽빛 물이 뚝뚝 떨어질 듯 푸른 동해바다에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진 않았다. 그리운 바다는 긴 여정의 끝에서 만나고 싶었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맨 나중에 맛보듯이.
424번 지방도는 첩첩산중인 홍천군 내면에서 평창, 정선 땅을 거쳐 삼척 동해안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산 높고 골 깊은 영서 내륙지방에서 가장 외진 두메산골과, 풍광 좋은 영동 동해안에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바닷가를 모두 아우르는 길이다. 그러나 서쪽의 기점인 홍천군 내면 조항동에서 평창군 봉평면 덕거리 사이의 구간은 실제 찻길이 없는 도상(圖上) 구간이어서 차량통행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424번 지방도를 따라가는 여정은 영동고속도로 장평IC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겠다.
장평IC를 빠져나오자마자 봉평 방면으로 조금만 가면 424번 지방도의 분기점을 만난다. 여기서부터 424번 지방도의 금당계곡 구간이 시작된다. 금당계곡은 금당산(1173m)과 거문산(1145m)의 서쪽 기슭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평창강의 상류다. 물길 양쪽으로 높은 산이 우뚝하고 사시사철 수량이 풍부해서 계곡미가 빼어나다. 근래에는 래프팅의 새로운 명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금당계곡을 지나는 424번 지방도 구간은 아스팔트 포장도로와 비포장 흙길이 섞여 있으나 노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더군다나 치마벼루, 넓적바위, 봉황대 등의 절경이 잇따라 나타나기 때문에 강변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20여km의 금당계곡을 지나온 424번 지방도는 평창군 대화면의 하안미 사거리에서 31번 국도와 교차한 뒤 가리왕산 남쪽 기슭의 벽파령을 넘어간다. 이 고개만 넘어서면 곧장 정선 땅이다. 하지만 하안미리의 신전마을에서 가리왕산자연휴양림 사이의 10km 가량 되는 벽파령 길은 몹시 비탈지고 노면이 거친 비포장 도로다. 게다가 국유임도(國有林道) 구간이라 일반차량의 통행은 아예 금지돼 있다. 부득불 하안미 사거리에서 31번·42번 국도를 따라 50km 가량의 먼 길을 우회하는 것 말고는 별 도리가 없다.
구름바다 지나면 동해가 활짝
정선 땅에 들어선 424번 지방도는 산천경개 좋은 정선에서도 가장 풍광이 수려하다는 동면 일대를 두루 거쳐간다. 동면에는 화암팔경으로 꼽히는 여덟 곳의 절경이 있다. 정선아리랑 중에도 ‘정선의 구명(舊名)은 무릉도원이 아니냐/ 무릉도원은 어데 가고 산만 충충하네/ 일강릉 이춘천 삼원주라 하여도/ 놀기 좋고 살기 좋은 곳은 동면 화암이로다’라는 노랫말이 전해져 올 만큼 풍광이 빼어나다. 하지만 이따금 굵은 빗방울까지 떨어지는 궂은 날씨 탓에 화암팔경의 진면목을 여유 있게 감상할 수가 없었다.
동면 역둔리를 지나 오두재 고갯길에 들어서자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삼척시 하장면의 광동댐과 장군바위를 지나 댓재 정상에 다다를 때까지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해발 845m의 댓재 고갯마루에서는 첩첩한 산 너머로 쪽빛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날씨가 쾌청할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빗길을 달려 도착한 그곳에는 뜻밖에도 가없는 구름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발아래에 펼쳐진 운해(雲海)는 진짜 바다보다 더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길을 재촉하여 그 구름바다 속의 고갯길을 내려갔다. 구름 위의 선계(仙界)와 그 아래의 속세(俗世)를 잇는 길은 역시 만만치 않다. 가시거리가 10m도 채 되지 않는다. 꿈결인지 생시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몽롱한 안개 속을 간신히 빠져나왔다.
댓재 동쪽의 삼척시 미로면에는 꼭 들러볼 만한 숲이 두 군데 있다. 고려 충렬왕 때 동안거사 이승휴가 머무르며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썼다는 천은사의 참나무숲과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이양무가 묻힌 준경묘의 소나무숲이 바로 그것이다. 두 곳 모두 424번 지방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댓재를 내려선 424번 지방도는 미로면 하거노 삼거리에서 38번 국도에 합류된다. 그러다가 하거노 삼거리로부터 8.4km쯤 떨어진 미로면 상정 삼거리에서 다시 국도와 갈린 뒤 노곡면을 가로지르게 된다. 노곡면의 424번 지방도 구간은 석회암 절벽들이 우뚝우뚝 솟은 협곡을 따라간다. 협곡 길이 끝나고 들입재의 오르막길이 시작될 즈음에는 새물내기약수터가 있다. 옛날에 이 고갯길을 오가던 행인들이 목을 축이며 잠시 쉬어가던 약수터라고 한다.
새물내기약수터 삼거리에서 약 4km 떨어진 산중턱에는 고봉암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 마당에서는 수평선 저편에 울릉도의 성인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또한 홀로 이 암자를 지키는 고봉스님은 불교 육통(六通)의 하나인 신족통(神足通·축지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인봉은 흐린 날씨 탓에 못 보고, 스님의 신족통은 ‘인연이 없어서’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들입재는 해발 345m의 야트막한 고개인데도 굴곡이 심한 편이다. 바닷가에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폭(路幅)도 좁아서 잠시도 한눈을 팔거나 방심할 수가 없다. 들입재만 넘어서면 삼척시 근덕면의 소재지인 교가리와 창망한 동해바다가 지척이다. 그러나 424번 지방도의 종점은 교가리에서 3km쯤 더 가야 되는 남아포(덕산항)다.
남아포(이곳 사람들은 ‘나맷가이’라고도 한다)의 원래 지명은 ‘덕산 남쪽의 바위 벼랑에 둘러싸인 포구’라는 뜻의 남암포(南岩浦)였다. 지세가 험해서 민가는 없고, 방파제와 등대, 그리고 몇 군데의 간이횟집만 있는 한적한 포구다. 포구에서 등대를 지나 남쪽으로 뻗은 바닷가에는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또한 남아포 북쪽으로는 덕산, 하맹방, 상맹방, 승공, 한재밑 등의 해수욕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철 지난 바닷가의 정취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애초에 기대했던 쪽빛바다는 아니지만, 장쾌한 파도가 끊임없이 몰려드는 바다의 풍경은 먼 길의 고단함을 모두 날려버릴 만큼 통쾌하다.
424번 지방도는 첩첩산중인 홍천군 내면에서 평창, 정선 땅을 거쳐 삼척 동해안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산 높고 골 깊은 영서 내륙지방에서 가장 외진 두메산골과, 풍광 좋은 영동 동해안에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바닷가를 모두 아우르는 길이다. 그러나 서쪽의 기점인 홍천군 내면 조항동에서 평창군 봉평면 덕거리 사이의 구간은 실제 찻길이 없는 도상(圖上) 구간이어서 차량통행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424번 지방도를 따라가는 여정은 영동고속도로 장평IC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겠다.
장평IC를 빠져나오자마자 봉평 방면으로 조금만 가면 424번 지방도의 분기점을 만난다. 여기서부터 424번 지방도의 금당계곡 구간이 시작된다. 금당계곡은 금당산(1173m)과 거문산(1145m)의 서쪽 기슭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평창강의 상류다. 물길 양쪽으로 높은 산이 우뚝하고 사시사철 수량이 풍부해서 계곡미가 빼어나다. 근래에는 래프팅의 새로운 명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금당계곡을 지나는 424번 지방도 구간은 아스팔트 포장도로와 비포장 흙길이 섞여 있으나 노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더군다나 치마벼루, 넓적바위, 봉황대 등의 절경이 잇따라 나타나기 때문에 강변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20여km의 금당계곡을 지나온 424번 지방도는 평창군 대화면의 하안미 사거리에서 31번 국도와 교차한 뒤 가리왕산 남쪽 기슭의 벽파령을 넘어간다. 이 고개만 넘어서면 곧장 정선 땅이다. 하지만 하안미리의 신전마을에서 가리왕산자연휴양림 사이의 10km 가량 되는 벽파령 길은 몹시 비탈지고 노면이 거친 비포장 도로다. 게다가 국유임도(國有林道) 구간이라 일반차량의 통행은 아예 금지돼 있다. 부득불 하안미 사거리에서 31번·42번 국도를 따라 50km 가량의 먼 길을 우회하는 것 말고는 별 도리가 없다.
구름바다 지나면 동해가 활짝
정선 땅에 들어선 424번 지방도는 산천경개 좋은 정선에서도 가장 풍광이 수려하다는 동면 일대를 두루 거쳐간다. 동면에는 화암팔경으로 꼽히는 여덟 곳의 절경이 있다. 정선아리랑 중에도 ‘정선의 구명(舊名)은 무릉도원이 아니냐/ 무릉도원은 어데 가고 산만 충충하네/ 일강릉 이춘천 삼원주라 하여도/ 놀기 좋고 살기 좋은 곳은 동면 화암이로다’라는 노랫말이 전해져 올 만큼 풍광이 빼어나다. 하지만 이따금 굵은 빗방울까지 떨어지는 궂은 날씨 탓에 화암팔경의 진면목을 여유 있게 감상할 수가 없었다.
동면 역둔리를 지나 오두재 고갯길에 들어서자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삼척시 하장면의 광동댐과 장군바위를 지나 댓재 정상에 다다를 때까지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해발 845m의 댓재 고갯마루에서는 첩첩한 산 너머로 쪽빛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날씨가 쾌청할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빗길을 달려 도착한 그곳에는 뜻밖에도 가없는 구름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발아래에 펼쳐진 운해(雲海)는 진짜 바다보다 더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길을 재촉하여 그 구름바다 속의 고갯길을 내려갔다. 구름 위의 선계(仙界)와 그 아래의 속세(俗世)를 잇는 길은 역시 만만치 않다. 가시거리가 10m도 채 되지 않는다. 꿈결인지 생시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몽롱한 안개 속을 간신히 빠져나왔다.
댓재 동쪽의 삼척시 미로면에는 꼭 들러볼 만한 숲이 두 군데 있다. 고려 충렬왕 때 동안거사 이승휴가 머무르며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썼다는 천은사의 참나무숲과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이양무가 묻힌 준경묘의 소나무숲이 바로 그것이다. 두 곳 모두 424번 지방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댓재를 내려선 424번 지방도는 미로면 하거노 삼거리에서 38번 국도에 합류된다. 그러다가 하거노 삼거리로부터 8.4km쯤 떨어진 미로면 상정 삼거리에서 다시 국도와 갈린 뒤 노곡면을 가로지르게 된다. 노곡면의 424번 지방도 구간은 석회암 절벽들이 우뚝우뚝 솟은 협곡을 따라간다. 협곡 길이 끝나고 들입재의 오르막길이 시작될 즈음에는 새물내기약수터가 있다. 옛날에 이 고갯길을 오가던 행인들이 목을 축이며 잠시 쉬어가던 약수터라고 한다.
새물내기약수터 삼거리에서 약 4km 떨어진 산중턱에는 고봉암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 마당에서는 수평선 저편에 울릉도의 성인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또한 홀로 이 암자를 지키는 고봉스님은 불교 육통(六通)의 하나인 신족통(神足通·축지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인봉은 흐린 날씨 탓에 못 보고, 스님의 신족통은 ‘인연이 없어서’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들입재는 해발 345m의 야트막한 고개인데도 굴곡이 심한 편이다. 바닷가에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폭(路幅)도 좁아서 잠시도 한눈을 팔거나 방심할 수가 없다. 들입재만 넘어서면 삼척시 근덕면의 소재지인 교가리와 창망한 동해바다가 지척이다. 그러나 424번 지방도의 종점은 교가리에서 3km쯤 더 가야 되는 남아포(덕산항)다.
남아포(이곳 사람들은 ‘나맷가이’라고도 한다)의 원래 지명은 ‘덕산 남쪽의 바위 벼랑에 둘러싸인 포구’라는 뜻의 남암포(南岩浦)였다. 지세가 험해서 민가는 없고, 방파제와 등대, 그리고 몇 군데의 간이횟집만 있는 한적한 포구다. 포구에서 등대를 지나 남쪽으로 뻗은 바닷가에는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또한 남아포 북쪽으로는 덕산, 하맹방, 상맹방, 승공, 한재밑 등의 해수욕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철 지난 바닷가의 정취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애초에 기대했던 쪽빛바다는 아니지만, 장쾌한 파도가 끊임없이 몰려드는 바다의 풍경은 먼 길의 고단함을 모두 날려버릴 만큼 통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