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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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半 그림 半… 읽는 보람, 보는 즐거움

  • 입력2004-10-07 1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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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半 그림 半… 읽는 보람, 보는 즐거움
    꼭 도판이 필요한 미술책이 아닌데도 고급 수입지에 총천연색 인쇄로 예쁘게 포장된 책들이 늘고 있다. 소설 ‘국화꽃 향기’에 실렸던 몇 점의 꽃 사진에 감탄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2년 사이 책의 외양은 확실히 사치스러워졌다. 그러나 텍스트와 무관한 포장술은 오히려 책 읽는 시선을 어지럽히는 방해꾼이 돼 책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도판이 빈약한 텍스트를 보완해 주는 눈가림 장치가 되어서도 안 되며, 그렇다고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라면 그 도판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텍스트와 도판은 각자의 메시지를 품고 있으면서 늙은 부부처럼 닮은꼴이어야 한다. 신현림의 ‘슬픔도 오리지널이 있다’(동아일보사 펴냄), 윤대녕·조선희의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봄), 곽의진·허용무의 ‘향 따라 여백 찾아가는 길’(그림 같은 세상)이 좋은 예다.

    신현림의 영상에세이는 사진에서 출발한다. 그는 표제작 ‘슬픔도 오리지널이 있다’를 쓰기 전에 게오르그 핀카소프의 사진집 ‘풍경산책’을 펼쳐놓고 5분간 멍하니 있었다. ‘지상에서 맛보는 아주 고요한 아름다움’에 취해 그는 ‘아름답다 못해 슬픈’ 이미지에 대한 감상을 글로 옮긴다. 이런 식으로 순전히 작가의 안목으로 고른 세계 젊은 사진가 20여명의 사진 작품들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산해 낸다. “앞으로의 문맹은 이미지를 못 읽어내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협박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전문용어를 동원해야만 이미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님도 말해준다.

    글 半 그림 半… 읽는 보람, 보는 즐거움
    윤대녕의 소설에 조선희의 사진이 어우러진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은 굳이 순서를 따진다면 텍스트가 앞선다. 사진가인 조선희는 소설 ‘피아노와…’를 읽다가 “불쑥 가까운 사람의 달라진 모습도 두렵지만 그러한 자신을 목격하는 일은 더욱 두려운 일이다”는 문장 때문에 불쑥 짐을 싸서 사막으로 떠났다. 사진은 스토리를 얌전히 따라가는 듯하지만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봄 출판사는 이 책에 이어 박청호의 소설과 김지양의 사진(모델 유지태)을 엮은 ‘라푼젤의 두 번째 물고기’를 펴내는 등 사진과 스토리의 결합을 실험하고 있다.

    ‘향 따라 여백 찾아가는 길’은 고향 진도에 칩거해 작품을 쓰고 있는 소설가 곽의진이 강진과 진도, 해남과 보길도를 잇는 여정을 소개한 책이다. 거의 3~4쪽 걸러 삽입된 허용무의 사진은 지극히 설명적이어서 텍스트와 사진이 딱딱 들어맞는다. 교과서 같은 편집이 오히려 군더더기가 없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길을 가니 보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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