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복귀 전인 94년 김대중 대통령의 공식 직함은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이었다. 아태재단의 영문 명칭은 ‘The Kim Dae-jung Peace Foundation’. ‘아태재단=김대중’으로 통했다.
재단에 짙은 정치색을 입힌 당사자는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었다. 김대통령은 95년 기울어 가는 정치생명을 아태재단에 기대어 회생시켰다. 아태재단을 모체로 국민회의를 창당한 것. 재단이 ‘정치적 단체’로 인식되는 출발점이었다. 97년 대선 때는 정권 창출의 후방기지를 담당했다. 새 정부 초기 아태재단은 인재 풀의 기능을 담당했다. 따라서 김대통령의 과거와 현재는 모두 아태재단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이 퇴임 후 활동할 공간도 이곳이다.
정·재계 비롯 각종 민원 청탁 끊이지 않아
현재 재단의 자금·조직을 총괄하는 책임자(부이사장)는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 따라서 ‘아태재단을 움직이는 실세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명하다. 바로 대통령 본인과 대통령 아들인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더 좋은 후광’은 없다.
아태재단이 맞고 있는 위기는 여기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아태 출신자들의 파격 발탁에서 편중인사 시비가 일었다. ‘대통령 가족이 운영한다고 하더니 과연 아태재단이면 다 통하는구나’라는 심리가 정·관계에 은연중 확산됐다. 종국엔 현재와 같은 아태재단 관련 권력형 비리, 이권개입 사건까지 터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지난 2월23일 오후 서울시 동교동 아태재단 빌딩 입구. 3명의 경비가 지키는 재단 건물 입구는 굳게 잠겼고 몇몇 언론사 사진 취재단은 재단 사무실로 진입하기 위해 직원들과 입씨름을 벌였다. 재단 직원들은 이수동 전 이사가 이용호 지앤지(G&G)그룹 회장으로부터 5000만원을 수뢰한 것과 관련, “재단과는 무관한 개인 비리”라며 의혹 확산을 경계했다. 이들의 육탄방어로 취재진의 사무실 출입은 봉쇄됐지만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동안 재단 관계자들이 ‘오이 밭에서 신발 끈 매는 우를 범한 경우’는 많았다. 의혹의 중심에는 김홍업 부이사장이 자리잡고 있다. ‘DJ 정부의 황태자’란 별칭에 걸맞게 그의 주변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항상 따라다닌다.
민주당 한 인사의 지적. “한때 그를 만나려는 정치인과 재계 인사들이 줄을 설 때가 있었다. 지난 2000년 총선을 앞두고 한 중견 기업인이 아태재단 김부이사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는데 그는 자신의 청탁을 들어주면 (아태재단이) 요구하는 후원금을 내겠다고 말했다. 결국 성사되지 않았지만 정치권과 재계 주변에 그런 민원과 관련한 얘기들이 끊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후 김부이사장은 진승현 MCI코리아 부회장의 로비스트인 최택곤 구명 로비 의혹을 비롯한 각종 게이트에 이름이 올라 저간의 흐름을 읽게 해주었다.
민주당 중진 A의원에 따르면 김대통령과 수십년 고락을 함께 해온 ‘1세대 핵심참모’는 4명이다. 권노갑씨, 김옥두 의원, 한화갑 의원 외에 이수동 아태재단 전 이사가 여기 포함된다. 이수동 전 이사는 대통령의 ‘집사’ 역이었다고 한다. A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홍인길, 장학로씨의 관계를 연상하면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수동+김홍업’이라는 ‘막강 투톱’은 아태재단을 동교동 구파와 신파에 버금가는 ‘제3의 권력 코어(Core)’로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용호씨의 돈이 이수동씨에게 흘러 들어간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도 비리와 관련한 재단 관계자들의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99년 5월 김영래 전 후원회 중앙위원이 장흥군수 공천 로비 대가로 3000만원을 수뢰해 파문을 일으켰고, 99년 7월에는 이영우 아태재단 전 미주지사 이사가 경기은행 퇴출을 막기 위한 로비자금으로 1억원을 수수했다. 이영작 전 미주지부장도 경기은행 퇴출 막기와 관련한 로비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황용대 아태재단 전 후원회 사무처장이 주가조작 금감원 조사 무마 로비 대가로 2억5000만원을 수뢰한 것으로 드러나 구속됐다.
이처럼 재단 인사들의 각종 비리 혐의가 드러나자 김대통령은 99년 박주선 당시 법무비서관을 보내 “처신에 각별히 신중하라”며 몇몇 인사를 구체적으로 지칭해 ‘구두경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태재단을 향한 정치권과 기업인들의 구애와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2000년 9월 한나라당은 ‘DJ 정권 낙하산 인사 실태’를 공개할 때 낙하산 인사의 주요 출신 조직으로 일오회(권노갑씨 주도 16대 총선 불출마자 모임)와 아태재단 두 곳을 지목했다. 한나라당은 권노갑씨 세력과 함께 아태재단, 연청을 여권의 주요 이너서클로 보고 있다. 김대통령 비서 출신 모임인 인동회엔 권노갑, 이수동씨 등 양 진영 300여명 인사들이 함께 가입돼 있다. 민주당 한 의원은 “동교동계 웬만한 의원은 아태재단 후원회 회원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태재단 출신으로 현 정권 들어 정부 산하기관에 등용된 사람은 백경남 여성특위원장(직위에서 전·현직 생략. 운영위원 출신), 오기평 세종연구소 이사장(이사장), 황용배 마사회 상임감사(후원회 사무처장), 정복진 성업공사 이사(중앙위원), 김삼웅 대한매일신문 주필(아태재단 기획실장), 한정일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위원장, 한상진 한국정신문화원장 등이다(한나라당 자료).
이들 중 상당수는 격렬한 낙하산 인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김삼웅 주필의 경우 편집권 독립성이 보장돼야 할 언론사 책임자 자리까지 아태재단 간부를 ‘서슴없이’ 앉혔다는 점에서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오히려 정부 핵심 요직에 기용되거나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 아태재단 인사는 잡음이 덜했다. 정동채 최재승 안동선 의원, 장성민 전 의원, 유종근 전북지사, 남궁진 문화관광부 장관, 박금옥 청와대 총무비서관, 나종일 전 안기부 1차장, 김상우 국제안보대사, 손숙 전 환경부 장관 등이 아태재단 출신이다. 이들의 존재는 아태 출신들이 권력 핵심의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왔음을 보여준다. 신건 국정원장, 임동원 대통령 특보, 이강래 의원(전 청와대 정무수석), 이영작 박사 등 일부 ‘아태 동문’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사람들을 아태재단으로 향하게 했을까. 오랫동안 아태재단을 지켜본 민주당 한 인사는 “아태재단이 현직 대통령의 사조직으로, 권력으로 통하는 게이트로 인식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태재단은 재단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현직 대통령의 실질적인 사조직으로 인식됐다. 게다가 그의 아들이 실질 책임자로 있다. 당과 청와대에 채널을 형성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아태재단을 쳐다볼 외형적 조건은 충분히 갖춘 것 아닌가.”
게다가 김대통령 스스로도 재단에 대해 깊은 애착을 보인 것이 정치권에 필요 이상의 기대감을 높였다. 김홍업씨가 재단을 책임지고 있는 점도 당연히 상승작용을 하면서 재단의 기능을 왜곡시켰다는 것이 이 인사의 진단. 당의 또 다른 한 관계자도 “DJ 정부 초기 ‘모든 길은 아태재단으로 통한다’는 말이 당에서 돌았다”며 “각종 이권 개입이나 민원 및 공천 등을 아태재단의 힘에 기대려는 분위기가 만연했었다”고 설명한다.
이수동씨의 금품수수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최근 매스컴에 거론되고 있는 전 아태재단 사무부총장 황모 교수. 그의 이력은 여권 내에서 아태재단이 갖는 현실적 위상을 상징한다.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대학에 출강하던 황씨가 재단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3년. 그는 이 재단의 연구실장 겸 기획조정실장으로 일하면서 김대중 당시 이사장의 신임을 받게 됐다고 한다. 그러던 그는 2년 만인 95년 국민회의 원내기획실장에 전격 발탁됐다. 당시 그 자리는 국민회의 내 많은 중견 정치인들이 탐내던 파워 있는 자리로, 정계 입문 3년차 황씨에게 돌아간 것은 의외였다. 민주당 관계자 B씨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아태재단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인사였다. 야당 시절에도 아태재단 출신은 이렇듯 고속 승진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황씨의 정치 행보는 순탄치 못했다. 그는 총선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낙점받지 못했다. 아태재단 출신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당에는 또 다른 권력축이 있지 않느냐. 황씨는 견제받은 듯하다.”(B씨)
98년 지방선거 및 2000년 총선 당시 공천을 노리는 사람들이 아태재단을 노크한 것은 알려진 비밀이다. 이에 앞서 95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아태재단이 신진인사를 수혈하는 통로 구실을 수행한 것을 지켜본 당내외 인사들 사이에서 아태재단이 ‘공략대상 1호’로 꼽힌 것은 당연했다.
아태재단이 DJ 정부 인재 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점도 재단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왜곡시키는 데 일조했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이후 재단 출신 인사들의 요직 발탁은 눈부실 정도여서 한때 “출세하려면 아태재단을 거쳐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DJ 정부 곳곳에 ‘아태맨’들이 포진하면서 부작용이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인사와 관련한 잡음.
한나라당 이재오 총무는 지난 2월22일 당 3역 회의에서 이용호씨와 함께 이수동 전 이사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서울시정신문 도승희 회장이 남긴 전화메모 내용을 공개했다. 도씨가 지난해 이용호씨에게 네 차례 전화를 걸어 ‘국세청장 안정남 오후 발표-꽃’이라는 메모를 남겼다는 내용이 골자. 이는 도씨가 안씨의 국세청장 임명 소식을 이수동씨로부터 들었으며, 결국 아태재단이 국세청장 인사를 사전에 알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수동씨와 친분이 있는 민주당 한 인사는 “이씨가 인사철 등이 되면 고급 정보를 들고 인사 당사자들에게 종종 귀띔을 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총선에서 떨어진 한 인사의 경험담. “별다른 친분도 없는 아태재단 모 인사가 전화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나중에 모른 척하지 말라’고 해 반신반의했는데 얼마 후 정부기관장 발령을 받아 인사와 관련한 아태재단의 정보력을 실감한 적이 있다.”
아태재단을 둘러싼 의혹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아태재단은 후원금으로 재단을 운영한다. 연구 프로젝트를 따 재단 살림을 보태는 경우도 흔치 않고 정부 지원도 없다. 때문에 재정 문제에 부딪힐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부족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궁리를 할 수밖에 없고, 또 DJ 정부 실세들에게 기대는 아태재단의 후원금 제도는 자연스럽게 민원 청탁의 고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특검팀은 이수동씨가 5000만원을 받은 뒤 이를 어떤 곳에 사용했는지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특검팀은 이씨가 5000만원 중 3000만원을 아태재단 간부를 지낸 것으로 알려진 김모 전 의원에게 건넨 사실이 계좌추적 결과 드러났다고 밝혔다. 만약 자금 중 일부가 재단이나 재단 관계자들에게 유입된 흔적이 드러날 경우 아태재단을 둘러싼 의혹의 불길은 또 다른 차원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아태재단은 전 간부 출신 황용배씨가 구속될 때까지만 해도 느긋했다. 그러나 이수동씨가 권력형 비리혐의로 소환되자 비상이 걸렸다. 이수동씨는 ‘지저분한 게이트’로부터 아태재단과 대통령 가족을 지켜줄 마지막 보호막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한나라당은 국감장에서 “아태재단에 이용호씨 자금이 유입됐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자 여당측은 “이용호씨의 돈이 단 1원이라도 아태재단에 흘러 들어갔다면 재단을 해체하겠다”(김옥두 의원)며 결백을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이제 그 약속을 지켜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태재단은 지금 자신이 배출한 권력자들로 인해 곤경에 빠진 상황이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아태재단이 향후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재단에 짙은 정치색을 입힌 당사자는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었다. 김대통령은 95년 기울어 가는 정치생명을 아태재단에 기대어 회생시켰다. 아태재단을 모체로 국민회의를 창당한 것. 재단이 ‘정치적 단체’로 인식되는 출발점이었다. 97년 대선 때는 정권 창출의 후방기지를 담당했다. 새 정부 초기 아태재단은 인재 풀의 기능을 담당했다. 따라서 김대통령의 과거와 현재는 모두 아태재단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이 퇴임 후 활동할 공간도 이곳이다.
정·재계 비롯 각종 민원 청탁 끊이지 않아
현재 재단의 자금·조직을 총괄하는 책임자(부이사장)는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 따라서 ‘아태재단을 움직이는 실세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명하다. 바로 대통령 본인과 대통령 아들인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더 좋은 후광’은 없다.
아태재단이 맞고 있는 위기는 여기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아태 출신자들의 파격 발탁에서 편중인사 시비가 일었다. ‘대통령 가족이 운영한다고 하더니 과연 아태재단이면 다 통하는구나’라는 심리가 정·관계에 은연중 확산됐다. 종국엔 현재와 같은 아태재단 관련 권력형 비리, 이권개입 사건까지 터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지난 2월23일 오후 서울시 동교동 아태재단 빌딩 입구. 3명의 경비가 지키는 재단 건물 입구는 굳게 잠겼고 몇몇 언론사 사진 취재단은 재단 사무실로 진입하기 위해 직원들과 입씨름을 벌였다. 재단 직원들은 이수동 전 이사가 이용호 지앤지(G&G)그룹 회장으로부터 5000만원을 수뢰한 것과 관련, “재단과는 무관한 개인 비리”라며 의혹 확산을 경계했다. 이들의 육탄방어로 취재진의 사무실 출입은 봉쇄됐지만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동안 재단 관계자들이 ‘오이 밭에서 신발 끈 매는 우를 범한 경우’는 많았다. 의혹의 중심에는 김홍업 부이사장이 자리잡고 있다. ‘DJ 정부의 황태자’란 별칭에 걸맞게 그의 주변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항상 따라다닌다.
민주당 한 인사의 지적. “한때 그를 만나려는 정치인과 재계 인사들이 줄을 설 때가 있었다. 지난 2000년 총선을 앞두고 한 중견 기업인이 아태재단 김부이사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는데 그는 자신의 청탁을 들어주면 (아태재단이) 요구하는 후원금을 내겠다고 말했다. 결국 성사되지 않았지만 정치권과 재계 주변에 그런 민원과 관련한 얘기들이 끊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후 김부이사장은 진승현 MCI코리아 부회장의 로비스트인 최택곤 구명 로비 의혹을 비롯한 각종 게이트에 이름이 올라 저간의 흐름을 읽게 해주었다.
민주당 중진 A의원에 따르면 김대통령과 수십년 고락을 함께 해온 ‘1세대 핵심참모’는 4명이다. 권노갑씨, 김옥두 의원, 한화갑 의원 외에 이수동 아태재단 전 이사가 여기 포함된다. 이수동 전 이사는 대통령의 ‘집사’ 역이었다고 한다. A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홍인길, 장학로씨의 관계를 연상하면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수동+김홍업’이라는 ‘막강 투톱’은 아태재단을 동교동 구파와 신파에 버금가는 ‘제3의 권력 코어(Core)’로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용호씨의 돈이 이수동씨에게 흘러 들어간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도 비리와 관련한 재단 관계자들의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99년 5월 김영래 전 후원회 중앙위원이 장흥군수 공천 로비 대가로 3000만원을 수뢰해 파문을 일으켰고, 99년 7월에는 이영우 아태재단 전 미주지사 이사가 경기은행 퇴출을 막기 위한 로비자금으로 1억원을 수수했다. 이영작 전 미주지부장도 경기은행 퇴출 막기와 관련한 로비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황용대 아태재단 전 후원회 사무처장이 주가조작 금감원 조사 무마 로비 대가로 2억5000만원을 수뢰한 것으로 드러나 구속됐다.
이처럼 재단 인사들의 각종 비리 혐의가 드러나자 김대통령은 99년 박주선 당시 법무비서관을 보내 “처신에 각별히 신중하라”며 몇몇 인사를 구체적으로 지칭해 ‘구두경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태재단을 향한 정치권과 기업인들의 구애와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2000년 9월 한나라당은 ‘DJ 정권 낙하산 인사 실태’를 공개할 때 낙하산 인사의 주요 출신 조직으로 일오회(권노갑씨 주도 16대 총선 불출마자 모임)와 아태재단 두 곳을 지목했다. 한나라당은 권노갑씨 세력과 함께 아태재단, 연청을 여권의 주요 이너서클로 보고 있다. 김대통령 비서 출신 모임인 인동회엔 권노갑, 이수동씨 등 양 진영 300여명 인사들이 함께 가입돼 있다. 민주당 한 의원은 “동교동계 웬만한 의원은 아태재단 후원회 회원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태재단 출신으로 현 정권 들어 정부 산하기관에 등용된 사람은 백경남 여성특위원장(직위에서 전·현직 생략. 운영위원 출신), 오기평 세종연구소 이사장(이사장), 황용배 마사회 상임감사(후원회 사무처장), 정복진 성업공사 이사(중앙위원), 김삼웅 대한매일신문 주필(아태재단 기획실장), 한정일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위원장, 한상진 한국정신문화원장 등이다(한나라당 자료).
이들 중 상당수는 격렬한 낙하산 인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김삼웅 주필의 경우 편집권 독립성이 보장돼야 할 언론사 책임자 자리까지 아태재단 간부를 ‘서슴없이’ 앉혔다는 점에서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오히려 정부 핵심 요직에 기용되거나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 아태재단 인사는 잡음이 덜했다. 정동채 최재승 안동선 의원, 장성민 전 의원, 유종근 전북지사, 남궁진 문화관광부 장관, 박금옥 청와대 총무비서관, 나종일 전 안기부 1차장, 김상우 국제안보대사, 손숙 전 환경부 장관 등이 아태재단 출신이다. 이들의 존재는 아태 출신들이 권력 핵심의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왔음을 보여준다. 신건 국정원장, 임동원 대통령 특보, 이강래 의원(전 청와대 정무수석), 이영작 박사 등 일부 ‘아태 동문’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사람들을 아태재단으로 향하게 했을까. 오랫동안 아태재단을 지켜본 민주당 한 인사는 “아태재단이 현직 대통령의 사조직으로, 권력으로 통하는 게이트로 인식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태재단은 재단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현직 대통령의 실질적인 사조직으로 인식됐다. 게다가 그의 아들이 실질 책임자로 있다. 당과 청와대에 채널을 형성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아태재단을 쳐다볼 외형적 조건은 충분히 갖춘 것 아닌가.”
게다가 김대통령 스스로도 재단에 대해 깊은 애착을 보인 것이 정치권에 필요 이상의 기대감을 높였다. 김홍업씨가 재단을 책임지고 있는 점도 당연히 상승작용을 하면서 재단의 기능을 왜곡시켰다는 것이 이 인사의 진단. 당의 또 다른 한 관계자도 “DJ 정부 초기 ‘모든 길은 아태재단으로 통한다’는 말이 당에서 돌았다”며 “각종 이권 개입이나 민원 및 공천 등을 아태재단의 힘에 기대려는 분위기가 만연했었다”고 설명한다.
이수동씨의 금품수수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최근 매스컴에 거론되고 있는 전 아태재단 사무부총장 황모 교수. 그의 이력은 여권 내에서 아태재단이 갖는 현실적 위상을 상징한다.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대학에 출강하던 황씨가 재단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3년. 그는 이 재단의 연구실장 겸 기획조정실장으로 일하면서 김대중 당시 이사장의 신임을 받게 됐다고 한다. 그러던 그는 2년 만인 95년 국민회의 원내기획실장에 전격 발탁됐다. 당시 그 자리는 국민회의 내 많은 중견 정치인들이 탐내던 파워 있는 자리로, 정계 입문 3년차 황씨에게 돌아간 것은 의외였다. 민주당 관계자 B씨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아태재단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인사였다. 야당 시절에도 아태재단 출신은 이렇듯 고속 승진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황씨의 정치 행보는 순탄치 못했다. 그는 총선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낙점받지 못했다. 아태재단 출신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당에는 또 다른 권력축이 있지 않느냐. 황씨는 견제받은 듯하다.”(B씨)
98년 지방선거 및 2000년 총선 당시 공천을 노리는 사람들이 아태재단을 노크한 것은 알려진 비밀이다. 이에 앞서 95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아태재단이 신진인사를 수혈하는 통로 구실을 수행한 것을 지켜본 당내외 인사들 사이에서 아태재단이 ‘공략대상 1호’로 꼽힌 것은 당연했다.
아태재단이 DJ 정부 인재 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점도 재단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왜곡시키는 데 일조했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이후 재단 출신 인사들의 요직 발탁은 눈부실 정도여서 한때 “출세하려면 아태재단을 거쳐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DJ 정부 곳곳에 ‘아태맨’들이 포진하면서 부작용이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인사와 관련한 잡음.
한나라당 이재오 총무는 지난 2월22일 당 3역 회의에서 이용호씨와 함께 이수동 전 이사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서울시정신문 도승희 회장이 남긴 전화메모 내용을 공개했다. 도씨가 지난해 이용호씨에게 네 차례 전화를 걸어 ‘국세청장 안정남 오후 발표-꽃’이라는 메모를 남겼다는 내용이 골자. 이는 도씨가 안씨의 국세청장 임명 소식을 이수동씨로부터 들었으며, 결국 아태재단이 국세청장 인사를 사전에 알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수동씨와 친분이 있는 민주당 한 인사는 “이씨가 인사철 등이 되면 고급 정보를 들고 인사 당사자들에게 종종 귀띔을 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총선에서 떨어진 한 인사의 경험담. “별다른 친분도 없는 아태재단 모 인사가 전화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나중에 모른 척하지 말라’고 해 반신반의했는데 얼마 후 정부기관장 발령을 받아 인사와 관련한 아태재단의 정보력을 실감한 적이 있다.”
아태재단을 둘러싼 의혹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아태재단은 후원금으로 재단을 운영한다. 연구 프로젝트를 따 재단 살림을 보태는 경우도 흔치 않고 정부 지원도 없다. 때문에 재정 문제에 부딪힐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부족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궁리를 할 수밖에 없고, 또 DJ 정부 실세들에게 기대는 아태재단의 후원금 제도는 자연스럽게 민원 청탁의 고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특검팀은 이수동씨가 5000만원을 받은 뒤 이를 어떤 곳에 사용했는지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특검팀은 이씨가 5000만원 중 3000만원을 아태재단 간부를 지낸 것으로 알려진 김모 전 의원에게 건넨 사실이 계좌추적 결과 드러났다고 밝혔다. 만약 자금 중 일부가 재단이나 재단 관계자들에게 유입된 흔적이 드러날 경우 아태재단을 둘러싼 의혹의 불길은 또 다른 차원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아태재단은 전 간부 출신 황용배씨가 구속될 때까지만 해도 느긋했다. 그러나 이수동씨가 권력형 비리혐의로 소환되자 비상이 걸렸다. 이수동씨는 ‘지저분한 게이트’로부터 아태재단과 대통령 가족을 지켜줄 마지막 보호막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한나라당은 국감장에서 “아태재단에 이용호씨 자금이 유입됐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자 여당측은 “이용호씨의 돈이 단 1원이라도 아태재단에 흘러 들어갔다면 재단을 해체하겠다”(김옥두 의원)며 결백을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이제 그 약속을 지켜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태재단은 지금 자신이 배출한 권력자들로 인해 곤경에 빠진 상황이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아태재단이 향후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