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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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소통하는 생태마을

영국 핀드혼 환경공동체 참관기 … 세계인 어울려 인성·예술 등 다양한 체험교육

  • < 유정길/ 한국불교환경교육원 사무국장 > ecogil21@yahoo.co.kr

    입력2004-11-11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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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이 소통하는 생태마을
    아이가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온다. 어머니는 친구에 대해 무엇을 묻게 될까. 우선은 “아빠는 뭐 하시는 분이니?”, 그 다음은 “그 친구는 공부 잘하니?”일 것이다. 습관적인 질문이지만 뭔가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경쟁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이윤과 이해관계로 주판알을 튀기며 인간관계를 맺으라고 말한다. 심지어 아이들에게까지도.

    필자를 포함해 생태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10여명의 사람들이 지난해 9월 핀드혼을 비롯한 해외 환경공동체를 방문하며 고민했던 것은 ‘이런 식의 기준이 적용되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인가’라는 의문이었다. 196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공동체운동은 바로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영국 스코틀랜드 북동쪽 포레스(Forres)역에서 내려 자동차로 약 10분, 비행기로는 인버네스 공항에 도착해 약 1시간을 달려가면 핀드혼만(灣)이 있다. 홍합과 자개가 지천으로 깔린 해변 위쪽에 핀드혼 공동체가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 있다. 모래언덕을 넘어서면 북쪽으로 모레이만과 북해로 이어지는 바다가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영혼이 소통하는 생태마을
    그러나 핀드혼의 진정한 가치는 그 풍광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핀드혼은 450여명이 함께 살면서 배우고 노동하는 세계적인 영성공동체다. 이곳은 영국 생태마을운동의 기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을 통해 대안적 생활양식을 찾는 세계 생태마을 네트워크의 중심 구실을 하고 있다. 1962년 피터 캐디, 에일린 캐디 부부와 도로시 매클린에 의해 ‘LOVE’라는 공동체로 출발한 핀드혼은 처음에는 이동식 트레일러에서 시작했다. 그러다가 1972년 무렵 생태공동체로 방향을 바꾸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머나먼 땅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핀드혼 사람들과 함께 둘러본 마을 풍경은 우선 그 건축부터 모습이 달랐다. 이곳에서는 인근 지역에서 얻은 독성 없는 자연재료만 사용해 집을 짓는다. 외형적으로는 유럽 전통의 목조건축을 지향하고 있지만, 지붕에는 최대한의 에너지 효율을 위해 잔디를 심고, 단열을 위해 3중 유리창을 사용하는 등 인공적인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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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내에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클루니힐 대학, 교육센터인 모레이 슈타이너 학교, 각종 영적 전통을 체험하는 민턴하우스, 작은 협동농장, 공동체 구성원들이 살고 있는 집까지 모든 건물 하나하나에 자연에 대한 섬세한 배려와 공존이라는 목적의식이 살아 있었다.

    에너지도 75kw급 풍력발전기를 이용해 20%의 전력을 충당하고 태양전지 등 재활용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28%에 달했다. 수생식물과 미생물, 박테리아를 이용한 하수처리 시설 역시 하루 300명분의 생활오수를 처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농장에서 지켜본 재배방식은 철저한 무농약 자연농업이다. 생태적으로 건강한 공간을 꿈꾸며 그린 모든 것, 한국에서는 책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계획들이 그곳에서는 현실로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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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수익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핀드혼에서 재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영성훈련과 수행수련 프로그램을 통한 수입이다. 특히 단기 교육 프로그램은 일주일간 실시되는 1단계 기본 프로그램인 체험주1(Experience Week1), 1단계를 마친 사람만 참여할 수 있는 체험주2(Experience Week2)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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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1만명의 사람이 핀드혼을 찾아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 덴마크어, 브라질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까지 다양한 언어로 진행되고 있었다.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교육센터를 통해 운영되는 프로그램의 내용은 인격 함양, 정신 계발, 갈등 해소, 원예, 명상, 리더십, 공동체 생활, 예술 등 대단히 광범위했다.

    1년 365일 교육만 받는 것일까. TV도, 록 음악도, 화끈한 액션영화도 찾아보기 힘든 이 조용한 마을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우리를 유난히 반갑게 맞아준 한 마을 주민은 “그런 것이 없어도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교육이라 해도 게임과 노래, 춤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오락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것. 아예 게임 개발 연구팀이 별도로 있어 다양한 오락을 연구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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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국에서 온 방문자들의 눈에 유난히 낯설어 보이는 의식으로는 ‘조율’(tuning)이 있었다. 일을 시작할 때 항상 둥그렇게 손잡고 사람들간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묶는 절차였다. “아주 엄숙하면서 고요한 의식이지만 서로의 영혼을 소통시키는 방법이지요.” 단순한 의식에 무슨 힘이 있을까 생각하는 우리 일행에게 안내자가 해준 말이었다. 조용히 둘러앉아 옆사람의 손을 잡고 가운데 놓여 있는 촛불을 응시하는 의식은 언뜻 기도와 흡사했다. 그리고는 잡았던 옆사람 손을 꼬옥 한 번 쥐었다가 놓는 일이 계속되면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흐뭇함이 전해져 왔다.

    우리나라의 강강술래처럼 다같이 손 잡고 추는 ‘영적인 춤’ 역시 마음에 오래 남았다. ‘바구니 짜기 춤’이라고도 하는 이 춤은 옆사람 건너 사람의 손을 잡아 촘촘해진 원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춤이었다. 참가자의 상당수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한다. 고요한 분위기에서 부른 노래와 춤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격정적이게 했다. “초기의 에일린 캐디와 도로시는 ‘자연의 내면의 소리’와 교감하는 능력이 있었고, 이를 통해 작물과 가축에도 놀라운 영향을 주곤 했지요.” 방문객을 놀라게 하는 경험들은 그렇게 계속됐다.

    영혼이 소통하는 생태마을
    그렇지만 핀드혼은 종교집단은 아니다. 우선 이들은 공식적인 교의나 이념을 표방하고 있지 않으며 종교적으로도 매우 개방적이다. 단지 일상생활이나 작업 그리고 사람-사람, 사람-자연의 관계에서 영성적·정신적·정서적 풍요를 매우 중시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안내자는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의 내면에 함께하는 삶을 위한 잠재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이를 좀더 큰 틀에서 활용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했을 뿐입니다. 결국 이 노력이 대안적인 삶을 위해 쓰일 수 있기를 희망하고요.”

    핀드혼은 그 자체가 모범적인 생태공동체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들은 생태마을을 “생태적·경제적·문화적·정신적으로 지속 가능한 인간 정주지”라고 정의하고 있고, 이러한 모델을 농촌과 도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모든 형태의 인간 거주지에 적용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한국사회의 시민운동 역시 ‘반대’의 운동만으로는 한계에 이른 것이 아닐까. 하나의 난개발이나 오염을 저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대안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 씨앗을 만드는 작업을 위해 핀드혼을 비롯한 생태공동체 프로젝트들은 진지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핀드혼을 떠나면서 우리 일행의 마음에 남은 가장 큰 화두는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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