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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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흥행감독'으로 복귀하나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1-09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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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 '흥행감독'으로 복귀하나
    영화 ‘공공의 적’의 언론 시사회가 두 번 열렸는데, 강우석 감독은 두 번 모두 무대 인사를 하지 않았다. 시네마서비스 직원들은 “객석 어딘가에 앉아 있다”고 했지만 인산인해를 이룬 시사회장에서 그의 모습을 찾기란 어려웠다.

    영화 시사회라면 으레 감독과 주연배우가 나란히 무대에 올라 “고생 정말 많이 했다” “미숙한 점이 있더라도 예쁘게 봐달라”며 애교 섞은 멘트를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강우석 감독(44)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일까. 5, 6년째 한국 영화산업 파워 1인자의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충무로의 거물이라서? “나는 아무 말 않고 있을 테니 영화만 보고 알아서들 판단하라”는 자신감 혹은 오만으로?

    한편으론 그에게도 두려움 같은 게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투캅스2’를 세상에 내놓은 96년까지만 해도 한국 최고의 흥행감독이었던 강우석은 98년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이란 영화로 자신은 물론, 자신을 믿고 따른 영화팬들에게 끔찍한 ‘악몽’을 안겨주었다. 웬만한 솜씨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난해한 장르인 법정드라마를 선택해 경제파탄의 주범인 재벌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전개, 당시 IMF 사태로 신음하던 대중들의 울분과 감동을 끌어내겠다던 그의 야심은 정확히 빗나갔다.

    ‘바락바락 악만 쓰다’ 끝난 이 영화는 강우석 감독의 풍자에 더 이상의 세련됨이 없음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말았다. “재미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그의 내공이 우상으로 삼고 있는 채플린과 우디 앨런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나 할까. “웃음은 저항하는 자세다. 내 희극적 요소의 근본은 투쟁과 고통이다”고 했던 채플린의 세계와 강우석의 영화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 하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이후 어쩌면 더 이상 영화감독으로서의 강우석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그저 영화계의 ‘큰손’으로, 한국 영화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사업가 내지 제작자로서의 이름만 기억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사장실 의자를 박차고 나와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잘해야 본전일 뿐이다. 이번 영화가 실패하면 아마 다시는 감독을 못할 것”이라는 비감한 심정으로 시작한 작업이었다. 신작 ‘공공의 적’을 연출하면서 강우석은 “작품의 완성도와 영화적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고 공언했다. 최상의 결과를 미리 내걸고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것이 강감독의 스타일이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투캅스’ 시절처럼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라도 나오면 다행이겠다 한 것이 기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최고 '흥행감독'으로 복귀하나
    이제 뚜껑을 연 ‘공공의 적’은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감독’ 강우석의 부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강우석 영화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고 재미있는 장르영화”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다시 흥행의 권좌를 차지할 수도 있다.

    강우석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형사액션코미디’라는 장르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내공의 소유자임을 입증했다. “투캅스 이후 본격적인 강우석 영화의 한 정점으로 보인다”는 영화평론가 김소희씨의 말처럼, ‘공공의 적’은 비슷한 장르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투캅스’ 등이 뒤섞인 느낌을 풍기면서도 훨씬 파워풀하고 강렬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기발랄함과 신랄한 꼬집기, 유쾌한 웃음은 강우석 영화의 무기다. 강감독은 “내 장기는 코미디다. 이전의 영화들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는 데 신경 썼다면, 이번엔 매우 극단적인 상황 즉 코미디가 불가능할 것 같은 상태에서 웃음을 끌어내려 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설명한다.

    극단적 패륜아 규환(이성재), 조폭 같은 형사 철중(설경구)이라는 설정에서 알 수 있듯, 캐릭터를 중심에 내세우는 건 여전하지만 ‘공공의 적’이 ‘투캅스’와 다른 건 영화 내내 피가 흥건하고 죽음의 냄새가 짙게 깔리는 스릴러라는 점. 91년작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서 선보인 강우석의 스릴러가 이제 일정한 스타일을 갖춰가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웃음을 통해 사회성을 강조하는 건 변함없는 강감독의 전략이다. ‘공공의 적’이 ‘신라의 달밤’ 이나 ‘조폭 마누라’와 다른 점은 코미디를 통해 사회에 쓴소리를 내뱉고 병들어 있는 세상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이는 간혹 지나친 노골성으로 나타나 진정성을 상실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하지만, 강우석은 어쩌면 ‘코미디의 대가’를 넘어 ‘작가’로 평가받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스필버그가 오랫동안 아카데미상을 받고 싶어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로 단박에 작가 대접을 받진 못하겠지만, ‘사장님’ ‘회장님’ 소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감독’으로 불리고 기억되길 원하는 그의 자의식과 끝없는 욕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평론가 조희문씨의 말처럼 강우석의 영화는 ‘관객을 가장 관객답게 대우해 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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