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공격은 불량국가나 테러분자들의 미사일 공격이 될 것이다.” “9·11 테러는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는 방어망 구축의 필요성을 분명히 보여줬다.” 부시 미 대통령은 9·11 테러사태를 겪은 뒤 불안해하는 자국민을 향해 기회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9·11 테러는 자살공격이라는 21세기 새로운 전쟁 형태에 미사일방어(MD)체제가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에 대한 위협은 워싱턴을 겨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위협은 생화학무기 공격을 포함한 테러다. 그럼에도 부시는 밀어붙이기식으로 MD를 고집한다. 1972년 맺은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은 MD 추진에 걸림돌이다. 그래서 부시는 최근 “6개월 안에 ABM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의 선거공약인 MD체제를 반드시 구축하겠다는 집념이다. 그 배후엔 군산복합체가 도사리고 있다.
군산복합체 사실상 미국 지배자
ABM협정 탈퇴는 동서냉전이 막을 내린 뒤 미국이 주요 국제협정을 저버리는 첫 사례다. ABM 탈퇴선언과 MD 추진은 아프간전의 빠른 승리와 맞물려 있다. 9·11 테러 직후만 해도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 때문에 부시 정권은 그 전까지만 해도 비판의 표적이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젠 다시 일방주의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MD 계획은 그동안 전 세계적인 반대에 부딪혀 온 논쟁적 사안이다. 미국 내에서도 기술적 결함과 2000억 달러 이상이 들 천문학적 예산 때문에 거센 비판에 부딪혀 왔다.
미 펜타곤(국방부)측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MD체제 구축이지 ABM협정 파기가 아니다”고 강변한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앞으로 6개월 안에 ABM 개정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ABM협정에서 공식 탈퇴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말이 그 말인 대외용 수사(修辭)일 뿐이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은 힘에 바탕한 대외정책 및 MD 구축이 미국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굳게 믿는 이들이다.
MD가 탄력을 얻기 시작한 것은 지난 98년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에서 럼스펠드 보고서가 나온 뒤부터다. 보수적 성향의 미 싱크탱크들은 그동안 부시 행정부의 MD를 뒤에서 밀어왔다. 이를테면 지난 12월 초 미 전략국제연구소(CSIS)가 내놓은 대량파괴무기(WMD) 관련 보고서는 북한 등의 WMD 확산 움직임을 경고하면서 “무기통제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MD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부시 정권이 아프간전 승리에 때맞춰 ABM 파기의 뜻을 표명한 데는 다른 까닭이 있을 것이다. 미국 내에는 아프간전이 생각보다 빨리 끝난 것을 누구보다 아쉬워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군산복합체다.
“구매계약 걱정은 하지 말고 무기생산 속도를 높여라.” 미 국방전문지 ‘데일리 디펜스 네트워크’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9·11 테러사태 뒤 아프간전을 준비하면서 주요 군수업체들에 이런 은밀한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전쟁이 10·7 공습 두 달 만에 아쉽게(?) 끝나는 상황이 됐다. 군수업체들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두 가지다. 단기적으론 부시독트린을 부추겨 테러전선을 이라크나 소말리아로 넓히는 것이고, 장기적으론 MD사업을 강행하도록 부시 정권에 총력 로비하는 것이다. 군수산업체들엔 MD야말로 업계의 사활이 걸린 프로젝트다.
군부세력과 군수산업세력 간 상호의존 체계를 가리키는 군산복합체는 미국을 지배하는 거대세력이다. 1961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고별 연설에서 “거대한 군사기구와 군수 관련 대기업이 결합해 미국 사회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미국 사회가 군산복합체에 끌려다닐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자신의 재임기간(1953∼61)에 소련과의 군비경쟁에 따라, 그리고 이를 부추긴 군수업체들의 로비에 따라 매년 국방예산이 커지는 현상을 걱정했다. 그로부터 40년 뒤 미국 정치ㆍ사회학자들은 군산복합체가 미국의 사실상의 지배자로 등장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군산복합체는 부시 정권의 공격적 대외정책의 배후세력이다.
따지고 보면 MD 추진은 군산복합체의 끊임없는 로비 결과다. 이들이 전직 국무ㆍ국방 장관들을 회장이나 고문으로 영입해 로비스트로 활용해 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전쟁이 나면 CNN과 군수업체들이 남몰래 미소 짓는다”는 말이 있다. 인류문명의 수치라고 할 전쟁과 유혈분쟁에서 뿌려지는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 군수산업이다. 미국 4대 군수업체는 록히드 마틴, 보잉, 레이시언, TRW이다. 이 ‘공룡’들에 속한 하청업체를 포함해 미국 군수 관련 업체들에게 1990년대는 위기였다. 냉전이 끝난 뒤 창고엔 재고가 쌓였고 곧 불황을 맞았다. 많은 군수업체가 구조조정의 찬바람 속에서 문닫아야 했고, 제3세계 동맹국들이나 아프리카 독재자들에게 ‘부르는 게 값’이라던 미 군산복합체의 오만함이 모처럼 움츠러든 시기였다. 걸프전과 코소보 전쟁 때 반짝했지만, 그나마 단기호황에 그쳤다. MD사업은 이런 단기전과 달리 군수업체들에 좀더 장기적인 호황을 안겨줄 게 뻔하다.
지난 10월 미 국방부가 차세대 전투기인 JSF 통합공격기 공급자로 선정한 록히드 마틴사의 경우, 90년대 내내 허덕이다 호황을 맞았다. 현재 전 세계의 종업원 수는 12만6000명에 이른다(2000년도 매출액은 253억2900만 달러). 록히드 마틴이 1970년대 후반 일본에서 록히드 뇌물 파동을 일으킨 것도 로비의 산물이다. 미 국방정보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미국 군수산업은 미국 노동력의 2%인 220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현재대로라면 이들은 차기 대선에서 부시의 재선을 위해 한 표를 기꺼이 던질 확실한 표밭이다.
국제정치학계는 부시 행정부의 ABM 파기-MD 강행을 21세기를 지배하려는 미 패권주의의 표현으로 풀이한다. 미국의 핵우산 이데올로기가 동맹국을 지배하는 현실적 수단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MD는 핵우산 포장만 바꾸어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국 패권전략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죽음의 상인들’이 주축인 미 군산복합체가 MD를 축으로 활력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시의 MD정책이 한반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가뜩이나 어려워진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지난날 미국과 핵사찰 수용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펼쳐온 북한이 이른바 ‘미사일 주권’을 강조하고 나올 가능성은 더없이 커졌다.
군산복합체 사실상 미국 지배자
ABM협정 탈퇴는 동서냉전이 막을 내린 뒤 미국이 주요 국제협정을 저버리는 첫 사례다. ABM 탈퇴선언과 MD 추진은 아프간전의 빠른 승리와 맞물려 있다. 9·11 테러 직후만 해도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 때문에 부시 정권은 그 전까지만 해도 비판의 표적이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젠 다시 일방주의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MD 계획은 그동안 전 세계적인 반대에 부딪혀 온 논쟁적 사안이다. 미국 내에서도 기술적 결함과 2000억 달러 이상이 들 천문학적 예산 때문에 거센 비판에 부딪혀 왔다.
미 펜타곤(국방부)측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MD체제 구축이지 ABM협정 파기가 아니다”고 강변한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앞으로 6개월 안에 ABM 개정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ABM협정에서 공식 탈퇴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말이 그 말인 대외용 수사(修辭)일 뿐이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은 힘에 바탕한 대외정책 및 MD 구축이 미국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굳게 믿는 이들이다.
MD가 탄력을 얻기 시작한 것은 지난 98년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에서 럼스펠드 보고서가 나온 뒤부터다. 보수적 성향의 미 싱크탱크들은 그동안 부시 행정부의 MD를 뒤에서 밀어왔다. 이를테면 지난 12월 초 미 전략국제연구소(CSIS)가 내놓은 대량파괴무기(WMD) 관련 보고서는 북한 등의 WMD 확산 움직임을 경고하면서 “무기통제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MD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부시 정권이 아프간전 승리에 때맞춰 ABM 파기의 뜻을 표명한 데는 다른 까닭이 있을 것이다. 미국 내에는 아프간전이 생각보다 빨리 끝난 것을 누구보다 아쉬워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군산복합체다.
“구매계약 걱정은 하지 말고 무기생산 속도를 높여라.” 미 국방전문지 ‘데일리 디펜스 네트워크’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9·11 테러사태 뒤 아프간전을 준비하면서 주요 군수업체들에 이런 은밀한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전쟁이 10·7 공습 두 달 만에 아쉽게(?) 끝나는 상황이 됐다. 군수업체들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두 가지다. 단기적으론 부시독트린을 부추겨 테러전선을 이라크나 소말리아로 넓히는 것이고, 장기적으론 MD사업을 강행하도록 부시 정권에 총력 로비하는 것이다. 군수산업체들엔 MD야말로 업계의 사활이 걸린 프로젝트다.
군부세력과 군수산업세력 간 상호의존 체계를 가리키는 군산복합체는 미국을 지배하는 거대세력이다. 1961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고별 연설에서 “거대한 군사기구와 군수 관련 대기업이 결합해 미국 사회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미국 사회가 군산복합체에 끌려다닐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자신의 재임기간(1953∼61)에 소련과의 군비경쟁에 따라, 그리고 이를 부추긴 군수업체들의 로비에 따라 매년 국방예산이 커지는 현상을 걱정했다. 그로부터 40년 뒤 미국 정치ㆍ사회학자들은 군산복합체가 미국의 사실상의 지배자로 등장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군산복합체는 부시 정권의 공격적 대외정책의 배후세력이다.
따지고 보면 MD 추진은 군산복합체의 끊임없는 로비 결과다. 이들이 전직 국무ㆍ국방 장관들을 회장이나 고문으로 영입해 로비스트로 활용해 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전쟁이 나면 CNN과 군수업체들이 남몰래 미소 짓는다”는 말이 있다. 인류문명의 수치라고 할 전쟁과 유혈분쟁에서 뿌려지는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 군수산업이다. 미국 4대 군수업체는 록히드 마틴, 보잉, 레이시언, TRW이다. 이 ‘공룡’들에 속한 하청업체를 포함해 미국 군수 관련 업체들에게 1990년대는 위기였다. 냉전이 끝난 뒤 창고엔 재고가 쌓였고 곧 불황을 맞았다. 많은 군수업체가 구조조정의 찬바람 속에서 문닫아야 했고, 제3세계 동맹국들이나 아프리카 독재자들에게 ‘부르는 게 값’이라던 미 군산복합체의 오만함이 모처럼 움츠러든 시기였다. 걸프전과 코소보 전쟁 때 반짝했지만, 그나마 단기호황에 그쳤다. MD사업은 이런 단기전과 달리 군수업체들에 좀더 장기적인 호황을 안겨줄 게 뻔하다.
지난 10월 미 국방부가 차세대 전투기인 JSF 통합공격기 공급자로 선정한 록히드 마틴사의 경우, 90년대 내내 허덕이다 호황을 맞았다. 현재 전 세계의 종업원 수는 12만6000명에 이른다(2000년도 매출액은 253억2900만 달러). 록히드 마틴이 1970년대 후반 일본에서 록히드 뇌물 파동을 일으킨 것도 로비의 산물이다. 미 국방정보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미국 군수산업은 미국 노동력의 2%인 220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현재대로라면 이들은 차기 대선에서 부시의 재선을 위해 한 표를 기꺼이 던질 확실한 표밭이다.
국제정치학계는 부시 행정부의 ABM 파기-MD 강행을 21세기를 지배하려는 미 패권주의의 표현으로 풀이한다. 미국의 핵우산 이데올로기가 동맹국을 지배하는 현실적 수단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MD는 핵우산 포장만 바꾸어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국 패권전략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죽음의 상인들’이 주축인 미 군산복합체가 MD를 축으로 활력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시의 MD정책이 한반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가뜩이나 어려워진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지난날 미국과 핵사찰 수용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펼쳐온 북한이 이른바 ‘미사일 주권’을 강조하고 나올 가능성은 더없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