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2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동댐 상류. 갈대 무성한 황량한 겨울 벌판 여기저기서 연신 총성이 울린다. 엽사(獵師)들의 모습은 주변 숲에 가려 좀체 보이지 않지만, 날카로운 금속성 굉음은 어김없이 인근 산골짜기를 뒤흔든다.
야생조수가 많은 안동지역은 요즘 전국 최고의 엽장(獵場)이다. 지난 11월1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 경남ㆍ북 전역(울릉ㆍ청도군 제외)이 4년에 한 번 차례가 돌아오는 순환수렵장으로 지정됐기 때문. 멧돼지, 고라니, 꿩, 청둥오리 등 각각 9종(경남)과 7종(경북)의 조수 사냥이 가능하다. 경북도 산림과에 따르면 12월8일 현재 야생조수 포획 승인을 받은 엽사는 6295명. 경남의 경우도 12월12일 현재 2500여명에 이른다. 이는 대한수렵관리협회 회원 5000여명을 크게 웃도는 수치.
안동 토박이 엽사 차상구씨(42)는 “수렵장 개장 후 수꿩(장끼) 60마리를 잡았다”며 “개장 초기 800여명의 전국 엽사가 안동 일대에 몰렸지만, 지금은 외지 엽사들이 많이 빠져나간 편”이라 전한다. 그러나 수렵 허용기간이 2개월 이상 남아 있어 안동ㆍ의성ㆍ봉화 등 경북 북부지역엔 현지인은 물론, 서울ㆍ경기 등지에서 온 외지 엽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기총도 간혹 쓰이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엽총의 절대 다수는 산탄총. 방아쇠를 당기면 지름 3mm 가량의 작은 금속알 수백개가 30∼50m 전방으로 흩어져 나간다. 금속알 재질은 납(Pb). 알려진 대로 납은 유해성이 치명적인 중금속. 이 납들이 사냥시즌마다 엄청나게 뿌려진다.
국내의 한 해 납탄 사용량은 450만발(120톤). 환경부가 납탄 수입량에 근거해 추산한 수치다. 매년 전국의 2개 도(道)를 지정하는 순환수렵제도는 원래 산림청이 주관했지만 지난 99년 이후 환경부가 관리한다. 순환수렵장이 1982년부터 운영됐으니 지난 19년간 어림잡아 2000톤이 넘는 막대한 양의 납탄이 전국에 뿌려진 셈이다.
납탄은 토양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다수 엽사들은 문제 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엽사(42)는 “10년 넘게 수렵하며 납알이 박힌 야생동물 고기를 수도 없이 먹었는데 아무 탈이 없었다”며 “땅에 뿌려지는 납알도 넓은 수렵장 면적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데 별 영향이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기자는 그에게서 일명 ‘꿩탄’으로 불리는 ‘12게이지 탄’ 1개를 얻어 분해해 보았다. 뇌관과 연결된 플라스틱 탄집 속엔 화약 외에 구슬 형태의 납알이 빼곡이 들어 있었다. 그 무게만도 30g 이상이다. 멧돼지 등 덩치 큰 동물의 사냥엔 탄알이 하나인 ‘슬럭’(slug)이나 8개의 굵은 납알이 든 엽탄을 쓰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엽탄은 역시 300여개의 납알이 든 ‘꿩탄’이다.
특이한 것은 요즘 판매되는 대다수 납탄의 납알 표면이 구리나 니켈로 코팅처리된 점. 불과 2년 전만 해도 코팅 납탄이 없었지만, 세계적으로 환경보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납탄 제조업체들이 ‘최소한’의 납오염 대비조치를 취한 것. 때문에 일부 엽사들은 “코팅이 돼 있으니 납오염 걱정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납알이 조류의 뼈 등 단단한 물체에 맞으면 코팅은 쉽게 벗겨진다.
아쉽게도 국내에선 납탄에 의한 환경오염 실태에 관한 이렇다 할 연구실적조차 없다. 국립환경연구원 이민효 토양환경과장은 “납알 코팅이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벗겨지는지에 대한 실험도 이뤄진 적이 없다”며 “장기간 땅에 방치된 납알은 결국 산화돼 토양생물과 수질을 오염시키는 등 파급범위가 넓어 코팅은 효과적인 납오염 방지책이 되지 못한다”고 밝힌다.
문제는 납탄을 계속 사용하는 한 국토 전역이 서서히 병드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점. 현재 운영중인 순환수렵장 면적은 경북 7465km2(도 전체면적의 39.2%)와 경남 3175km2 (도 면적의 30%)다. 하지만 대도시 주변과 마을ㆍ도로 인근지역을 뺀 임야만 계산하면 사실상 거의 모든 평야와 야산에서 수렵이 가능하다. 최근 몇 년만 보더라도 경남ㆍ북(1997년)-강원(98년)-충남ㆍ북(99년)-전남ㆍ북(2000년) 순으로 순환수렵장이 개장돼 납알은 골고루(?) 뿌려진 셈이다. 이 밖에 제주도와 춘천, 거제도(휴식년제로 올해는 미개장, 2002년 개장 예정)엔 매년 4개월간(11월∼이듬해 2월) 개장하는 고정수렵장도 있다.
수렵장에 뿌려진 납알은 당장엔 큰 문제가 없더라도 장기적으론 토양에 악영향을 끼친다. 만성적이고, 자정작용이 약해 한번 오염되면 복원이 어려운 게 토양오염의 특성이다.
고무적인 사실은, 환경부가 지난 5월 납탄 사용을 규제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점. 2003년 클레이사격장을 시작으로 2004년 고정수렵장, 2005년부터는 모든 수렵장에서 납탄 사용을 금지하는 단계별 규제계획을 세운 한편,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 등 관련법 개정까지 검토중인 것. 환경단체들마저 미처 관심 갖지 못한 납탄에 환경부가 전격적으로 눈 돌린 속사정은 뭘까.
이는 비록 제한된 면적의 토양이긴 하지만, 이미 납오염의 심각성이 드러난 곳이 있기 때문. 환경부 토양보전과 박종록 사무관은 “98년 실시한 대구시보건환경연구원의 대구봉무사격장(1984년 개장, 99년 1월 폐쇄) 납오염 측정결과가 매우 충격적이어서 이를 계기로 지난해 전국적인 정밀조사를 벌였다”고 밝힌다. 당시 봉무사격장 부지에선 평균 5098.58mg/kg(최고 2만3125mg/kg)의 납이 검출돼 ‘토양오염대책기준’(300mg/kg)을 무려 17배나 초과했고, 사격장 외부 농수로 바닥 토양에서까지 평균 4625mg/kg(최고5062.5mg/kg)의 납이 검출됐다. 토양환경보전법상 토양오염대책 기준은 오염 상태가 인체 건강과 동식물 생육에 지장을 초래할 만큼 심해 규제조치가 필요한 수준. 이보다 낮은 기준치인 ‘토양오염 우려기준’(100mg/kg)은 더 이상 오염이 심화되는 것을 예방해야 하는 오염수준을 뜻한다.
지난해 5∼10월 환경부가 전국 11개 클레이사격장의 토양오염 실태를 최초로 정밀조사한 결과도 심각하다. 서울 태릉국제종합사격장 등 7곳에서 토양오염 우려기준을 초과하는 납 성분이 검출된 것. 일부 사격장은 납알이 사격장 내 우수로에 쌓여 있다 빗물을 타고 인근 하천에까지 흘러들었다. 납알 수거시설 등 토양오염 방지시설을 갖춘 사격장이 거의 없다는 방증인 셈.
환경부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올해 5월에도 3개 고정수렵장의 토양 샘플을 채취해 국립환경연구원, 지방환경청과 합동으로 토양오염도 정밀조사를 마쳤다.
국내에선 납탄 규제가 걸음마를 떼려는 단계지만, 선진국에선 이미 80년대부터 납알의 유해성을 인식,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이들 국가에서 납탄 대용품으로 쓰이는 것은 철탄. 말 그대로 강철로 만든 탄이다. 또 텅스텐-철, 텅스텐-폴리머, 비스무트, 주석 등 비독성 재질의 탄알 사용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철탄이 사용되지 않는다. 국내엔 엽탄 제조업체가 없어 엽탄은 레밍턴(미국), 윈체스터(미국), 베레타(이탈리아) 등 10여개 외국 총기제조 회사들로부터 전량 수입된다. 물론 100% 납탄이다. 자연히 엽사들이 철탄을 구입할 여지도 없다. 엽탄 수입 과 총판을 맡은 서울 S총포사측은 “일명 ‘무공해 탄’으로 불리는 철탄을 수입해 보았지만 엽사들이 찾지 않아 요즘은 납탄만 수입한다”고 밝힌다.
엽사들은 왜 철탄을 외면할까. 우선 철탄은 납탄보다 20% 가량 비싸다. 종류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보통 25발들이 납탄 1통의 가격은 1만5000원 선. 엽기(獵期) 내 엽사 1명이 소지할 수 있는 엽탄은 1000발이다. 이에 비해 엽사 1명이 내는 4개월분 수렵장 사용료는 60만원(산탄총 기준). 외지 엽사들은 엽기중 이 금액의 평균 4배 가량을 여비와 체재비 등으로 더 쓴다. 그만큼 수렵비용은 만만치 않다. 때문에 대한수렵관리협회 권오웅 대구ㆍ경북지부장은 “환경부의 납탄 규제가 현실화해도 철탄 가격에 부담을 느껴 납탄을 고집할 엽사는 없다”고 단언한다.
정작 엽사들이 철탄을 꺼리는 근본이유는 수렵의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 철탄은 비중이 무거운 납탄보다 가벼워 공기저항을 더 받아 명중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이는 엽사들이 “납탄 규제는 수렵을 그만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실제 미국 환경청(EPA) 분석에 따르면 철탄은 납탄보다 33% 가볍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엽탄과 공기총 실탄(지름 4.5mm), 사격용 화약총 실탄(일명 ‘투투’로 불리는 22구경 및 45구경 권총과 소총)의 성분은 모두 납. 국제사격경기대회에 쓰이는 실탄 역시 마찬가지다. 태릉국제종합사격장 관리를 맡은 (재)푸른동산 김돈하 총무본부장은 “국제사격연맹(ISSF)이 비독성 탄 사용을 권장하고, 대한사격연맹도 국제사격연맹에 납 대체탄 개발을 건의한 적이 있지만, 아직 납탄에 필적할 만한 성능을 가진 대체탄이 개발되진 않았다”고 말한다.
이는 납탄 규제의 성패가 정책의지에 달렸음을 간접 시사한다. 사냥 경력 20년인 대한수렵관리협회 김재한 안동시지회장(44)은 “납탄의 위험성을 대다수 엽사들도 인정한다”며 “그러나 납탄 규제는 전적으로 정책적 문제일 뿐”이라 못박는다. 그러잖아도 엽사들이 밀렵꾼쯤으로 백안시당하는 터에 납탄 문제가 엽사들의 무책임에 기인한 것인 양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렵을 대중 레포츠로 자리매김하는 상황에서 엽사들의 항변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환경부의 고민도 바로 여기서 비롯한다. 환경부는 지난 5월 실시한 고정수렵장 토양오염도 정밀측정 결과를 여지껏 공개하지 않았다. 까닭이 뭘까. ‘해답’은 ‘주간동아’가 12월14일 환경부에 요청해 받은 측정 결과 자료에 나타나 있다.
측정 결과, 강원도립춘천수렵장(1997년 개장)에서는 평균 3.52mg/kg, 거제시고정수렵장(1982년 개장)에서는 17.56mg/kg, 심지어 1978년 맨 먼저 개장해 매년 1000여명의 국내외 엽사가 찾는 제주도 대유수렵장에서도 0.82mg/kg의 납만 검출돼 모두 토양오염 우려기준을 초과하지 않았다. 특히 춘천ㆍ제주의 경우 자연상태인 토양의 납 함유량인 5.375mg/kg에도 못 미쳤다. 샘플 채취 지점들은 전국 4500개 토양측정망 중 해당지역의 것들이다.
“예상과 달리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환경부 신관호 토양보전과장은 “클레이사격장엔 못 미쳐도 고정수렵장의 납오염이 꽤 심할 것으로 짐작했다”며 “사격장에 비해 조사대상 지역이 훨씬 넓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것”이라 말했다. 납탄 규제는 해야겠는데, 규제의 정당성을 받쳐줄 데이터가 부족한 셈이다. 환경부가 규제계획을 밝히고도 적잖이 속앓이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더욱이 환경부는 납탄을 올무, 독극물 등 밀렵장비에 준해 규제할 방침이어서 엽사들의 반발을 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납탄 규제의 다른 딜레마는 납탄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국내 학자가 거의 없을뿐더러 관련자료도 전무하다시피 한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관기관과의 협조 없인 불가능할 만큼 납오염 연구가 전문조사와 체계적 분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환경부는 지난 10월 대한사격연맹 및 대한수렵관리협회 관계자들과 의견수렴을 위한 회의를 갖고 납탄 규제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환경부가 예정대로 2003년부터 강력한 납탄 규제활동을 벌인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무분별하게 자행되는 밀렵이 근절되지 않는 한 납탄 사용을 원천차단하기가 어렵기 때문. 밀렵꾼들은 올무, 덫, 독극물 대신 총기를 사용할 경우 대개 총소리가 작은 공기총을 쓴다. 공기총 실탄 역시 납탄. 더욱이 국내 보유 공기총은 60여만정에 달한다.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경북북부지회 이면진 회장(44)은 “납탄 수입 자체를 금지해야 납탄에 의한 환경오염을 제대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실제 엽사들도 “공기총 소지자 중 포획 승인을 받아 수렵하는 이들은 소수에 그친다”고 털어놓는다.
이미 한국의 연안과 하천은 납 낚시추(봉돌)의 산화로 수질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납으로 뒤덮인 ‘납수강산’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다름 아닌 납탄에 대한 전 국민적 경각심이다.
야생조수가 많은 안동지역은 요즘 전국 최고의 엽장(獵場)이다. 지난 11월1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 경남ㆍ북 전역(울릉ㆍ청도군 제외)이 4년에 한 번 차례가 돌아오는 순환수렵장으로 지정됐기 때문. 멧돼지, 고라니, 꿩, 청둥오리 등 각각 9종(경남)과 7종(경북)의 조수 사냥이 가능하다. 경북도 산림과에 따르면 12월8일 현재 야생조수 포획 승인을 받은 엽사는 6295명. 경남의 경우도 12월12일 현재 2500여명에 이른다. 이는 대한수렵관리협회 회원 5000여명을 크게 웃도는 수치.
안동 토박이 엽사 차상구씨(42)는 “수렵장 개장 후 수꿩(장끼) 60마리를 잡았다”며 “개장 초기 800여명의 전국 엽사가 안동 일대에 몰렸지만, 지금은 외지 엽사들이 많이 빠져나간 편”이라 전한다. 그러나 수렵 허용기간이 2개월 이상 남아 있어 안동ㆍ의성ㆍ봉화 등 경북 북부지역엔 현지인은 물론, 서울ㆍ경기 등지에서 온 외지 엽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기총도 간혹 쓰이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엽총의 절대 다수는 산탄총. 방아쇠를 당기면 지름 3mm 가량의 작은 금속알 수백개가 30∼50m 전방으로 흩어져 나간다. 금속알 재질은 납(Pb). 알려진 대로 납은 유해성이 치명적인 중금속. 이 납들이 사냥시즌마다 엄청나게 뿌려진다.
국내의 한 해 납탄 사용량은 450만발(120톤). 환경부가 납탄 수입량에 근거해 추산한 수치다. 매년 전국의 2개 도(道)를 지정하는 순환수렵제도는 원래 산림청이 주관했지만 지난 99년 이후 환경부가 관리한다. 순환수렵장이 1982년부터 운영됐으니 지난 19년간 어림잡아 2000톤이 넘는 막대한 양의 납탄이 전국에 뿌려진 셈이다.
납탄은 토양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다수 엽사들은 문제 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엽사(42)는 “10년 넘게 수렵하며 납알이 박힌 야생동물 고기를 수도 없이 먹었는데 아무 탈이 없었다”며 “땅에 뿌려지는 납알도 넓은 수렵장 면적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데 별 영향이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기자는 그에게서 일명 ‘꿩탄’으로 불리는 ‘12게이지 탄’ 1개를 얻어 분해해 보았다. 뇌관과 연결된 플라스틱 탄집 속엔 화약 외에 구슬 형태의 납알이 빼곡이 들어 있었다. 그 무게만도 30g 이상이다. 멧돼지 등 덩치 큰 동물의 사냥엔 탄알이 하나인 ‘슬럭’(slug)이나 8개의 굵은 납알이 든 엽탄을 쓰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엽탄은 역시 300여개의 납알이 든 ‘꿩탄’이다.
특이한 것은 요즘 판매되는 대다수 납탄의 납알 표면이 구리나 니켈로 코팅처리된 점. 불과 2년 전만 해도 코팅 납탄이 없었지만, 세계적으로 환경보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납탄 제조업체들이 ‘최소한’의 납오염 대비조치를 취한 것. 때문에 일부 엽사들은 “코팅이 돼 있으니 납오염 걱정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납알이 조류의 뼈 등 단단한 물체에 맞으면 코팅은 쉽게 벗겨진다.
아쉽게도 국내에선 납탄에 의한 환경오염 실태에 관한 이렇다 할 연구실적조차 없다. 국립환경연구원 이민효 토양환경과장은 “납알 코팅이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벗겨지는지에 대한 실험도 이뤄진 적이 없다”며 “장기간 땅에 방치된 납알은 결국 산화돼 토양생물과 수질을 오염시키는 등 파급범위가 넓어 코팅은 효과적인 납오염 방지책이 되지 못한다”고 밝힌다.
문제는 납탄을 계속 사용하는 한 국토 전역이 서서히 병드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점. 현재 운영중인 순환수렵장 면적은 경북 7465km2(도 전체면적의 39.2%)와 경남 3175km2 (도 면적의 30%)다. 하지만 대도시 주변과 마을ㆍ도로 인근지역을 뺀 임야만 계산하면 사실상 거의 모든 평야와 야산에서 수렵이 가능하다. 최근 몇 년만 보더라도 경남ㆍ북(1997년)-강원(98년)-충남ㆍ북(99년)-전남ㆍ북(2000년) 순으로 순환수렵장이 개장돼 납알은 골고루(?) 뿌려진 셈이다. 이 밖에 제주도와 춘천, 거제도(휴식년제로 올해는 미개장, 2002년 개장 예정)엔 매년 4개월간(11월∼이듬해 2월) 개장하는 고정수렵장도 있다.
수렵장에 뿌려진 납알은 당장엔 큰 문제가 없더라도 장기적으론 토양에 악영향을 끼친다. 만성적이고, 자정작용이 약해 한번 오염되면 복원이 어려운 게 토양오염의 특성이다.
고무적인 사실은, 환경부가 지난 5월 납탄 사용을 규제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점. 2003년 클레이사격장을 시작으로 2004년 고정수렵장, 2005년부터는 모든 수렵장에서 납탄 사용을 금지하는 단계별 규제계획을 세운 한편,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 등 관련법 개정까지 검토중인 것. 환경단체들마저 미처 관심 갖지 못한 납탄에 환경부가 전격적으로 눈 돌린 속사정은 뭘까.
이는 비록 제한된 면적의 토양이긴 하지만, 이미 납오염의 심각성이 드러난 곳이 있기 때문. 환경부 토양보전과 박종록 사무관은 “98년 실시한 대구시보건환경연구원의 대구봉무사격장(1984년 개장, 99년 1월 폐쇄) 납오염 측정결과가 매우 충격적이어서 이를 계기로 지난해 전국적인 정밀조사를 벌였다”고 밝힌다. 당시 봉무사격장 부지에선 평균 5098.58mg/kg(최고 2만3125mg/kg)의 납이 검출돼 ‘토양오염대책기준’(300mg/kg)을 무려 17배나 초과했고, 사격장 외부 농수로 바닥 토양에서까지 평균 4625mg/kg(최고5062.5mg/kg)의 납이 검출됐다. 토양환경보전법상 토양오염대책 기준은 오염 상태가 인체 건강과 동식물 생육에 지장을 초래할 만큼 심해 규제조치가 필요한 수준. 이보다 낮은 기준치인 ‘토양오염 우려기준’(100mg/kg)은 더 이상 오염이 심화되는 것을 예방해야 하는 오염수준을 뜻한다.
지난해 5∼10월 환경부가 전국 11개 클레이사격장의 토양오염 실태를 최초로 정밀조사한 결과도 심각하다. 서울 태릉국제종합사격장 등 7곳에서 토양오염 우려기준을 초과하는 납 성분이 검출된 것. 일부 사격장은 납알이 사격장 내 우수로에 쌓여 있다 빗물을 타고 인근 하천에까지 흘러들었다. 납알 수거시설 등 토양오염 방지시설을 갖춘 사격장이 거의 없다는 방증인 셈.
환경부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올해 5월에도 3개 고정수렵장의 토양 샘플을 채취해 국립환경연구원, 지방환경청과 합동으로 토양오염도 정밀조사를 마쳤다.
국내에선 납탄 규제가 걸음마를 떼려는 단계지만, 선진국에선 이미 80년대부터 납알의 유해성을 인식,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이들 국가에서 납탄 대용품으로 쓰이는 것은 철탄. 말 그대로 강철로 만든 탄이다. 또 텅스텐-철, 텅스텐-폴리머, 비스무트, 주석 등 비독성 재질의 탄알 사용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철탄이 사용되지 않는다. 국내엔 엽탄 제조업체가 없어 엽탄은 레밍턴(미국), 윈체스터(미국), 베레타(이탈리아) 등 10여개 외국 총기제조 회사들로부터 전량 수입된다. 물론 100% 납탄이다. 자연히 엽사들이 철탄을 구입할 여지도 없다. 엽탄 수입 과 총판을 맡은 서울 S총포사측은 “일명 ‘무공해 탄’으로 불리는 철탄을 수입해 보았지만 엽사들이 찾지 않아 요즘은 납탄만 수입한다”고 밝힌다.
엽사들은 왜 철탄을 외면할까. 우선 철탄은 납탄보다 20% 가량 비싸다. 종류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보통 25발들이 납탄 1통의 가격은 1만5000원 선. 엽기(獵期) 내 엽사 1명이 소지할 수 있는 엽탄은 1000발이다. 이에 비해 엽사 1명이 내는 4개월분 수렵장 사용료는 60만원(산탄총 기준). 외지 엽사들은 엽기중 이 금액의 평균 4배 가량을 여비와 체재비 등으로 더 쓴다. 그만큼 수렵비용은 만만치 않다. 때문에 대한수렵관리협회 권오웅 대구ㆍ경북지부장은 “환경부의 납탄 규제가 현실화해도 철탄 가격에 부담을 느껴 납탄을 고집할 엽사는 없다”고 단언한다.
정작 엽사들이 철탄을 꺼리는 근본이유는 수렵의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 철탄은 비중이 무거운 납탄보다 가벼워 공기저항을 더 받아 명중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이는 엽사들이 “납탄 규제는 수렵을 그만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실제 미국 환경청(EPA) 분석에 따르면 철탄은 납탄보다 33% 가볍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엽탄과 공기총 실탄(지름 4.5mm), 사격용 화약총 실탄(일명 ‘투투’로 불리는 22구경 및 45구경 권총과 소총)의 성분은 모두 납. 국제사격경기대회에 쓰이는 실탄 역시 마찬가지다. 태릉국제종합사격장 관리를 맡은 (재)푸른동산 김돈하 총무본부장은 “국제사격연맹(ISSF)이 비독성 탄 사용을 권장하고, 대한사격연맹도 국제사격연맹에 납 대체탄 개발을 건의한 적이 있지만, 아직 납탄에 필적할 만한 성능을 가진 대체탄이 개발되진 않았다”고 말한다.
이는 납탄 규제의 성패가 정책의지에 달렸음을 간접 시사한다. 사냥 경력 20년인 대한수렵관리협회 김재한 안동시지회장(44)은 “납탄의 위험성을 대다수 엽사들도 인정한다”며 “그러나 납탄 규제는 전적으로 정책적 문제일 뿐”이라 못박는다. 그러잖아도 엽사들이 밀렵꾼쯤으로 백안시당하는 터에 납탄 문제가 엽사들의 무책임에 기인한 것인 양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렵을 대중 레포츠로 자리매김하는 상황에서 엽사들의 항변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환경부의 고민도 바로 여기서 비롯한다. 환경부는 지난 5월 실시한 고정수렵장 토양오염도 정밀측정 결과를 여지껏 공개하지 않았다. 까닭이 뭘까. ‘해답’은 ‘주간동아’가 12월14일 환경부에 요청해 받은 측정 결과 자료에 나타나 있다.
측정 결과, 강원도립춘천수렵장(1997년 개장)에서는 평균 3.52mg/kg, 거제시고정수렵장(1982년 개장)에서는 17.56mg/kg, 심지어 1978년 맨 먼저 개장해 매년 1000여명의 국내외 엽사가 찾는 제주도 대유수렵장에서도 0.82mg/kg의 납만 검출돼 모두 토양오염 우려기준을 초과하지 않았다. 특히 춘천ㆍ제주의 경우 자연상태인 토양의 납 함유량인 5.375mg/kg에도 못 미쳤다. 샘플 채취 지점들은 전국 4500개 토양측정망 중 해당지역의 것들이다.
“예상과 달리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환경부 신관호 토양보전과장은 “클레이사격장엔 못 미쳐도 고정수렵장의 납오염이 꽤 심할 것으로 짐작했다”며 “사격장에 비해 조사대상 지역이 훨씬 넓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것”이라 말했다. 납탄 규제는 해야겠는데, 규제의 정당성을 받쳐줄 데이터가 부족한 셈이다. 환경부가 규제계획을 밝히고도 적잖이 속앓이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더욱이 환경부는 납탄을 올무, 독극물 등 밀렵장비에 준해 규제할 방침이어서 엽사들의 반발을 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납탄 규제의 다른 딜레마는 납탄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국내 학자가 거의 없을뿐더러 관련자료도 전무하다시피 한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관기관과의 협조 없인 불가능할 만큼 납오염 연구가 전문조사와 체계적 분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환경부는 지난 10월 대한사격연맹 및 대한수렵관리협회 관계자들과 의견수렴을 위한 회의를 갖고 납탄 규제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환경부가 예정대로 2003년부터 강력한 납탄 규제활동을 벌인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무분별하게 자행되는 밀렵이 근절되지 않는 한 납탄 사용을 원천차단하기가 어렵기 때문. 밀렵꾼들은 올무, 덫, 독극물 대신 총기를 사용할 경우 대개 총소리가 작은 공기총을 쓴다. 공기총 실탄 역시 납탄. 더욱이 국내 보유 공기총은 60여만정에 달한다.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경북북부지회 이면진 회장(44)은 “납탄 수입 자체를 금지해야 납탄에 의한 환경오염을 제대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실제 엽사들도 “공기총 소지자 중 포획 승인을 받아 수렵하는 이들은 소수에 그친다”고 털어놓는다.
이미 한국의 연안과 하천은 납 낚시추(봉돌)의 산화로 수질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납으로 뒤덮인 ‘납수강산’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다름 아닌 납탄에 대한 전 국민적 경각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