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민심이 정치권과 벤처업계의 ‘부적절한 관계’에 쏠리고 있다. 문제는 그 초점이 단순히 권력층에 대한 업계의 로비를 넘어선다는 데 있다. 정치권-벤처금융-경제관료를 잇는 검은 커넥션의 존재와 그 커넥션이 ‘신(新) 정경유착’으로 고착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 검찰의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가 진행되면서 이런 의혹은 일부 사실로 확인되고 있기도 하다.
“최근 몇 년간의 화두였던 ‘시장 논리’란 실상 ‘정권의 논리’를 뜻하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통신장비 관련 C벤처 L사장)
왜 이 같은 비난이 터져나오는 것일까. 코스닥과 벤처, ‘큰손’들과 정치자금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98년 정권교체와 함께 시작된 벤처 열풍의 성격과 양상, 코스닥의 생리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집권 초기 김대중 대통령은 정권과 재벌의 유착을 완전 청산하고 재벌로 인해 피폐해진 한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실리콘밸리식 벤처기업을 대량 육성, 경제 기반을 튼튼히 하겠다는 획기적 구상을 내놓았다. 100만명에 육박한 실업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벤처 육성은 유용한 카드였다. 정부 각 부처는 김대통령의 시책을 받들어 너도나도 벤처 육성책을 발표했고, 이에 호응하듯 창업 붐이 거세게 일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정부가 벤처에 거는 기대는 절박한 것이었고 한편으로 경제 회생을 위한 순수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테헤란밸리의 벤처 열풍은 조성 과정부터 실리콘밸리와는 전혀 달랐다. 자생적이라기보다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측면이 강했던 것이다. 마치 1970년대 재벌과 정·관계 유착을 심화한 도화선이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이었듯. 당시 정부가 몇몇 기업에 대형사업 인·허가권을 쥐어주고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과정에 각종 부작용이 발생했다. 벤처 육성책 또한 비슷한 유(類)의 ‘관치’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벤처자금 지원이 증가하면서 각종 규제·관리 장치가 마련될 수밖에 없었던 것. 정부는 일정한 ‘심사’를 거쳐 벤처기업을 ‘지정’하고 코스닥 등록을 하도록 유도했다. 한편으로는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관료들의 벤처행이 이어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들이 영입 기업의 로비스트나 ‘얼굴 마담’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코스닥 활황과 더불어 벤처업계엔 엄청난 돈이 몰려들었다. 명동 사채시장에서 제도권 벤처로 흘러든 자금만도 줄잡아 수조원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감시가 거의 불가능한 사설펀드에만 2조원 안팎의 자금이 몰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더구나 ‘벤처 투자 자금은 출처를 묻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은 수상쩍은 자금의 업계 유입을 더욱 부추겼다.
벤처 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정·관계 인사, 벤처기업인, 유력 투자자를 아우르는 수많은 공식·비공식 모임이 생겨났다. 이들의 만남은 벤처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휴먼 네트워크’로 포장돼 점점 그 세와 긴밀함을 더해갔다. 일부 눈치 빠른 권력 주변 인사들이 이런 ‘네트워크’에 포섭돼 한몫 단단히 챙겼다는 얘기도 나왔다.
B창투 L책임심사역의 설명은 벤처업계에도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말이 벤처지 실상은 핵심 기술도 없이 벤처 붐을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사이비 벤처기업인들이 판쳤다. 이들의 행태는 권력 주변 인사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혈안이 되는 등 재벌의 정·관계 로비와 다름없었다. 권력 주변 인사들은 엔젤투자라는 형식으로 주식을 상납받아 이 주식의 코스닥 등록 후 한몫 챙길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골드 러시’ 대열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코스닥이 붕괴하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으로 원금도 찾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투자원금 보존’이라는 기상천외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한국디지탈라인에 투자했던 장래찬 전 금감원 비은행검사 1국장이 유조웅 인천 대신금고 사장에게서 돌려받은 7억원이 이에 해당한다.
정·관·벤처업계를 잇는 각종 루머가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작년 4·13 총선 직후인 4월17일 주가가 대폭락한 무렵부터였다. 총선용 정치자금줄로 벤처를 선택한 권력 핵심 인사들의 ‘큰돈’이 총선을 앞두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주가가 폭락했다는 설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루머 수준이었지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문이 과장됐거나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음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루머가 그럴듯하게 유포된 것은 주가 폭락으로 ‘쪽박’을 찬 개미투자자들이 많았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증권가에서는 보고 있다. 증권 투자의 경우 ‘돈을 벌면 자신 탓이고, 손해를 보면 정부 탓’이라는 얘기가 있듯 주가 폭락으로 큰 손해를 본 투자자들 입장에서 희생양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청문회 대상이 될 실세와 벤처기업 대표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인지 유력 벤처기업인 K씨가 미국 현지법인 사장으로 취임하자 당사자의 분명하고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권 교체 후를 대비해 도피한 것 아니냐”는 악성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3대 게이트 중 하나의 주범으로 현재 감옥 생활을 하고 있는 모씨의 어머니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 가족만큼 정권교체를 학수고대하는 이들도 없을 것”이라는 말로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사건이 터진 직후 가진 통화에서도 “우리들은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때가 오리라 생각하며 이 시련을 견디고 있다. 지금은 내 아들이 모든 죄를 다 덮어쓴다 해도 뭐라 말할 계제가 아니다. 국감 출석해서도 크게 당할 줄 알았더니 여당이나 야당이나 별것 없더라. 뭐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지…”라며 여운을 남겼다.
증권가에서는 코스닥에서 권력 실세들과 일부 악덕 벤처기업가들의 ‘검은 거래’가 가능했던 것은 김대중 정부의 경제개혁이 겉돌았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시장경제의 정착을 위해 절실한 증권(코스닥) 시장의 투명성 제고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박 신화’에 눈이 어두운 일부 벤처기업가들이 권력 주변 인사들을 끼고 쉽게 주가조작 유혹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한 증시 관계자는 “미국처럼 주가조작에 관여한 인사는 영원히 주식시장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해야 쓸데없는 소문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야심차게 추진한 벤처 육성은 일부 정치인과 업계 인사들 간의 불온한 커넥션으로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빛이 바래가고 있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벤처는 결국 ‘가진 자들’의 잿밥이 되고 말았고, 정경유착을 배척하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신경제는 루머와 ‘게이트’ 홍수 속에서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벤처 입국’ ‘닷컴 신화’를 부르짖는 목소리 또한 쑥 들어간 지 오래다. 대표적인 벤처기업들이 부도 직전이라거나 수백억원의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는 소문도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아직도 벤처에 연연하는 이들은 코스닥에서 큰 손실을 입고 원금만이라도 회수하기 위해 연일 증권사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 개미투자자 뿐인 듯하다.
“최근 몇 년간의 화두였던 ‘시장 논리’란 실상 ‘정권의 논리’를 뜻하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통신장비 관련 C벤처 L사장)
왜 이 같은 비난이 터져나오는 것일까. 코스닥과 벤처, ‘큰손’들과 정치자금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98년 정권교체와 함께 시작된 벤처 열풍의 성격과 양상, 코스닥의 생리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집권 초기 김대중 대통령은 정권과 재벌의 유착을 완전 청산하고 재벌로 인해 피폐해진 한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실리콘밸리식 벤처기업을 대량 육성, 경제 기반을 튼튼히 하겠다는 획기적 구상을 내놓았다. 100만명에 육박한 실업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벤처 육성은 유용한 카드였다. 정부 각 부처는 김대통령의 시책을 받들어 너도나도 벤처 육성책을 발표했고, 이에 호응하듯 창업 붐이 거세게 일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정부가 벤처에 거는 기대는 절박한 것이었고 한편으로 경제 회생을 위한 순수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테헤란밸리의 벤처 열풍은 조성 과정부터 실리콘밸리와는 전혀 달랐다. 자생적이라기보다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측면이 강했던 것이다. 마치 1970년대 재벌과 정·관계 유착을 심화한 도화선이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이었듯. 당시 정부가 몇몇 기업에 대형사업 인·허가권을 쥐어주고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과정에 각종 부작용이 발생했다. 벤처 육성책 또한 비슷한 유(類)의 ‘관치’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벤처자금 지원이 증가하면서 각종 규제·관리 장치가 마련될 수밖에 없었던 것. 정부는 일정한 ‘심사’를 거쳐 벤처기업을 ‘지정’하고 코스닥 등록을 하도록 유도했다. 한편으로는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관료들의 벤처행이 이어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들이 영입 기업의 로비스트나 ‘얼굴 마담’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코스닥 활황과 더불어 벤처업계엔 엄청난 돈이 몰려들었다. 명동 사채시장에서 제도권 벤처로 흘러든 자금만도 줄잡아 수조원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감시가 거의 불가능한 사설펀드에만 2조원 안팎의 자금이 몰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더구나 ‘벤처 투자 자금은 출처를 묻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은 수상쩍은 자금의 업계 유입을 더욱 부추겼다.
벤처 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정·관계 인사, 벤처기업인, 유력 투자자를 아우르는 수많은 공식·비공식 모임이 생겨났다. 이들의 만남은 벤처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휴먼 네트워크’로 포장돼 점점 그 세와 긴밀함을 더해갔다. 일부 눈치 빠른 권력 주변 인사들이 이런 ‘네트워크’에 포섭돼 한몫 단단히 챙겼다는 얘기도 나왔다.
B창투 L책임심사역의 설명은 벤처업계에도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말이 벤처지 실상은 핵심 기술도 없이 벤처 붐을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사이비 벤처기업인들이 판쳤다. 이들의 행태는 권력 주변 인사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혈안이 되는 등 재벌의 정·관계 로비와 다름없었다. 권력 주변 인사들은 엔젤투자라는 형식으로 주식을 상납받아 이 주식의 코스닥 등록 후 한몫 챙길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골드 러시’ 대열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코스닥이 붕괴하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으로 원금도 찾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투자원금 보존’이라는 기상천외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한국디지탈라인에 투자했던 장래찬 전 금감원 비은행검사 1국장이 유조웅 인천 대신금고 사장에게서 돌려받은 7억원이 이에 해당한다.
정·관·벤처업계를 잇는 각종 루머가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작년 4·13 총선 직후인 4월17일 주가가 대폭락한 무렵부터였다. 총선용 정치자금줄로 벤처를 선택한 권력 핵심 인사들의 ‘큰돈’이 총선을 앞두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주가가 폭락했다는 설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루머 수준이었지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문이 과장됐거나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음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루머가 그럴듯하게 유포된 것은 주가 폭락으로 ‘쪽박’을 찬 개미투자자들이 많았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증권가에서는 보고 있다. 증권 투자의 경우 ‘돈을 벌면 자신 탓이고, 손해를 보면 정부 탓’이라는 얘기가 있듯 주가 폭락으로 큰 손해를 본 투자자들 입장에서 희생양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청문회 대상이 될 실세와 벤처기업 대표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인지 유력 벤처기업인 K씨가 미국 현지법인 사장으로 취임하자 당사자의 분명하고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권 교체 후를 대비해 도피한 것 아니냐”는 악성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3대 게이트 중 하나의 주범으로 현재 감옥 생활을 하고 있는 모씨의 어머니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 가족만큼 정권교체를 학수고대하는 이들도 없을 것”이라는 말로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사건이 터진 직후 가진 통화에서도 “우리들은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때가 오리라 생각하며 이 시련을 견디고 있다. 지금은 내 아들이 모든 죄를 다 덮어쓴다 해도 뭐라 말할 계제가 아니다. 국감 출석해서도 크게 당할 줄 알았더니 여당이나 야당이나 별것 없더라. 뭐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지…”라며 여운을 남겼다.
증권가에서는 코스닥에서 권력 실세들과 일부 악덕 벤처기업가들의 ‘검은 거래’가 가능했던 것은 김대중 정부의 경제개혁이 겉돌았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시장경제의 정착을 위해 절실한 증권(코스닥) 시장의 투명성 제고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박 신화’에 눈이 어두운 일부 벤처기업가들이 권력 주변 인사들을 끼고 쉽게 주가조작 유혹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한 증시 관계자는 “미국처럼 주가조작에 관여한 인사는 영원히 주식시장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해야 쓸데없는 소문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야심차게 추진한 벤처 육성은 일부 정치인과 업계 인사들 간의 불온한 커넥션으로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빛이 바래가고 있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벤처는 결국 ‘가진 자들’의 잿밥이 되고 말았고, 정경유착을 배척하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신경제는 루머와 ‘게이트’ 홍수 속에서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벤처 입국’ ‘닷컴 신화’를 부르짖는 목소리 또한 쑥 들어간 지 오래다. 대표적인 벤처기업들이 부도 직전이라거나 수백억원의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는 소문도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아직도 벤처에 연연하는 이들은 코스닥에서 큰 손실을 입고 원금만이라도 회수하기 위해 연일 증권사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 개미투자자 뿐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