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다 죽는다.” 일본영화 개방에 대해 이렇게 소리 높여 반대한 사람들은 우리 극장들이 일본영화를 걸기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 쑥스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러브 레터’ 등 소수의 몇몇 영화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일본영화가 제대로 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관객의 무관심 속에 서둘러 간판을 내리곤 했으니까.
영화를 소개하는 입장에서도 ‘일본영화니까’ 하는, 약간은 속 좁은 마음에 대놓고 호평하기가 꺼려졌던 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오히려 좋은 영화들이 자꾸 외면당하는 게 안타까워 “좀 보라”고 나서서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지리적·문화적으로 가까운 곳인데도 한국영화와 일본영화는 분명히 다른 색깔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현재의 일본영화를 특정한 경향으로 묶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일본영화를 보다 보면 어떤 부분에 가서 지극히 일본적인 요소와 만나게 되고 그것이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고 거북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많은 일본적 전통 중에서도 중요한 것으로 죽음에 대한 탐미적 집착을 꼽을 수 있다. 신세대 관객을 매료시킨 ‘러브 레터’ 같은 영화에서도 사자(死者)에 대한 집착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니, 이는 90년대 후반의 젊은 영화들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문화적 전통이다. 일본에서 450만 관객을 울렸다는 영화 ‘철도원’ 역시 평생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린 철도원의 삶이 주는 비장미의 미학으로 일본식 장인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철도 외에는 자신의 인생 모두를 놓아버린 자의 비애와 담담한 체념이 일본인들에겐 어떤 아름다움의 경지로 승화되어 받아들여진 것이다.
‘원더풀 라이프’를 만든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은 위 영화의 감독들보다 젊은 신진세력이지만 그의 작품 역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경쾌한 팝송 같은 제목과 달리 ‘원더풀 라이프’는 죽음과 삶의 중간지대에 선 사람들의 회고담을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죽음에 대해 매혹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죽음 이후의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죽고 나면 일주일간 머물러야 하는 ‘림보’라는 곳이 있고, 이곳에서 사람들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한순간을 선택해 그 하나의 기억만을 가지고 영원한 시간 속으로 떠나게 된다는 설정에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가장 행복했던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면접관들이 상주하고 있어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찾아내고,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영화는 다양한 사람들의 선택을 보여주다가, 마지막까지 선택하지 못한 와타나베라는 노인과 그의 면접관 모치즈키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아내와의 첫 만남에 대한 설렘조차 잊은 채 무미건조하게 살아오던 와타나베는 자신의 일생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서 아내와 함께한 50년 세월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노인의 기억을 도우려고 함께 비디오를 보던 모치즈키는 와타나베의 아내가 자신의 옛 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빚어내는 드라마는 극적이지만, 흔히 보던 최루성 멜로와는 차원이 다른 절절함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스토리와 영화 전체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감성은 어머니가 들려주던 옛이야기처럼 편안하게 다가온다. 시끄러운 사람도, 장면도 없어 어느 순간 스르르 눈이 감겨도 영화가 전하는 따뜻한 느낌은 꽤 오래 남는다. 죽음을 얘기하는 일본영화지만 일말의 거부감도 들지 않는 건 영화가 전하는 행복의 메시지 때문일까.
영화를 소개하는 입장에서도 ‘일본영화니까’ 하는, 약간은 속 좁은 마음에 대놓고 호평하기가 꺼려졌던 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오히려 좋은 영화들이 자꾸 외면당하는 게 안타까워 “좀 보라”고 나서서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지리적·문화적으로 가까운 곳인데도 한국영화와 일본영화는 분명히 다른 색깔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현재의 일본영화를 특정한 경향으로 묶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일본영화를 보다 보면 어떤 부분에 가서 지극히 일본적인 요소와 만나게 되고 그것이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고 거북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많은 일본적 전통 중에서도 중요한 것으로 죽음에 대한 탐미적 집착을 꼽을 수 있다. 신세대 관객을 매료시킨 ‘러브 레터’ 같은 영화에서도 사자(死者)에 대한 집착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니, 이는 90년대 후반의 젊은 영화들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문화적 전통이다. 일본에서 450만 관객을 울렸다는 영화 ‘철도원’ 역시 평생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린 철도원의 삶이 주는 비장미의 미학으로 일본식 장인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철도 외에는 자신의 인생 모두를 놓아버린 자의 비애와 담담한 체념이 일본인들에겐 어떤 아름다움의 경지로 승화되어 받아들여진 것이다.
‘원더풀 라이프’를 만든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은 위 영화의 감독들보다 젊은 신진세력이지만 그의 작품 역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경쾌한 팝송 같은 제목과 달리 ‘원더풀 라이프’는 죽음과 삶의 중간지대에 선 사람들의 회고담을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죽음에 대해 매혹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죽음 이후의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죽고 나면 일주일간 머물러야 하는 ‘림보’라는 곳이 있고, 이곳에서 사람들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한순간을 선택해 그 하나의 기억만을 가지고 영원한 시간 속으로 떠나게 된다는 설정에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가장 행복했던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면접관들이 상주하고 있어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찾아내고,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영화는 다양한 사람들의 선택을 보여주다가, 마지막까지 선택하지 못한 와타나베라는 노인과 그의 면접관 모치즈키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아내와의 첫 만남에 대한 설렘조차 잊은 채 무미건조하게 살아오던 와타나베는 자신의 일생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서 아내와 함께한 50년 세월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노인의 기억을 도우려고 함께 비디오를 보던 모치즈키는 와타나베의 아내가 자신의 옛 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빚어내는 드라마는 극적이지만, 흔히 보던 최루성 멜로와는 차원이 다른 절절함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스토리와 영화 전체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감성은 어머니가 들려주던 옛이야기처럼 편안하게 다가온다. 시끄러운 사람도, 장면도 없어 어느 순간 스르르 눈이 감겨도 영화가 전하는 따뜻한 느낌은 꽤 오래 남는다. 죽음을 얘기하는 일본영화지만 일말의 거부감도 들지 않는 건 영화가 전하는 행복의 메시지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