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10월12일 특별한 행사를 열었다. 9·11 테러사건에 대한 전쟁 국면을 맞아 범국민적 결속을 다지기 위해 열린 ‘충성 서약회’였다. 이 행사는 백악관에서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열렸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이 행사에 참석했다.
이날 학생들은 수업을 중단하고 “미국기에 대해 충성을 맹세한다”로 시작하는 충성 서약문(The Pledge of Allegiance)을 함께 읊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충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소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교실에서 토론 시간도 가졌다. 이날 행사는 박정희 유신체제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차지철 경호실장이 즐겼던 독특한 국기 하강식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질적으로 분위기는 다르지만 밑바닥에 깔린 공통 정서는 애국주의 강조다.
부시 행정부는 비판여론을 의식해 충성 서약식 참가 여부는 본인 의사에 맡겼다. 중학생 아들을 둔 필자의 한 미국인 친구는 아들에게 참가하지 말라고 했다. 퀘이커교 신자인 그는 충성 서약식에 대해 ‘일종의 강요된 애국주의 행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부시 행정부의 견해(views)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렇듯 지금 미국에는 애국주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라디오나 TV 방송국 등은 미국 국가 연주를 반복해 내보낸다. 지난 한 달 동안 가게에서 성조기가 동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집집마다, 자동차마다 성조기가 나부낀다. 테러 충격 이후 미국에서 애국주의 바람이 뜨겁게 불어댄 덕에 중국의 국기 제조 수출업체들이 때아닌 특수를 맞았다는 소식이다. 그런 애국 바람이 아랍계 시민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져 광신적이고 배타적인 애국주의인 쇼비니슴 증세마저 보인다. 함부로 애국주의 바람을 거스르려 하다가는 살해 위협마저 받는 그런 분위기다.
그러나 이런 애국주의 물결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사는 곳이 미국이고 뉴욕이다. 9·11 테러참사의 영향으로 최근 각종 여론조사 지표상에서 소수로 나타나지만, 상당수 미국인이 ‘부시 독트린’으로 상징되는 부시 정권의 대외 강공책에 비판적이다. 이들은 부시 정권의 아프간 폭격을 반대할 뿐더러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데 대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며 반발한다. 9·11 테러는 물론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지만, 왜 미국이 공격당했는지 생각해 보자는 입장이다. 이런 평화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강제 점령과 정착촌 확장 때문에, 그리고 이 같은 이스라엘의 정책을 미국이 배후 지원했기에 오늘날과 같은 비극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9·11 테러참사가 있고 난 뒤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유니언 광장에는 매주 일요일마다 ‘아프간 폭격 반대’ ‘전쟁 반대’를 외치는 평화주의자들이 집회를 열어왔다. 지난 10월7일, 아프간 공습이 처음으로 있던 바로 그날도 3000명 가량의 시민·학생들이 그곳에 모여 “노 워(No War)!”를 외쳤다. 그 모임을 주도한 한 평화주의자에게 지금 상황에서 애국주의가 무엇을 뜻하는지 물어봤더니 그는 “부시의 애국주의는 깡패의 마지막 수단”이라 질타했다. ‘대규모 학살자(wholesale murderers) 훈련을 정당화하는 원리’가 애국주의라는 극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구두, 옷을 만들거나 목수일처럼 인간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람 죽이는 훈련을 시키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곁에 서 있던 또 다른 평화주의자는 미국 애국주의를 “종교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미신”이라고 규정한다. 원시인들이 천둥이나 번개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보다 압도적인 힘을 지닌 그 무엇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듯, 실체가 분명치 않은 미국 애국주의가 바로 미신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를 편다. 군산복합체로 상징되는 미국의 지배세력이 조작한 것이 바로 지금의 미국 애국주의란 주장이다.
그는 애국주의 자체를 반대한다는 게 아님을 분명히 했다. 요점은 부자와 권력자가 애국주의를 독점해선 안 되며 모든 사람을 위한 애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 정권은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 부자를 위한 정권이라는 지적이다. 미 테네시대학의 윌프레드 매클레이 교수는 최근 미 계간지 ‘공익’(Public Interest)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애국주의의 긍정적인 부분은 “자랑스럽고 충성스런 미국인이 반드시 국가에 자신의 주체성을 모두 양도하도록 요구받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미국은 잡다한 인종으로 이뤄진 이른바 다민족(multi-ethnic) 사회다. 우리처럼 단일 민족국가가 아닌 만큼 이들을 하나로 묶을 구심점이 약하다. 그런데 위기상황에서 언제나 약방의 감초처럼 애국주의를 들먹인 나라가 미국이다. 이것은 학계에서도 연구대상이다. 비판론을 제기하는 학자들은 미국 애국주의에 일종의 허상이 숨었다고 말한다. 미국을 위해 싸운다지만, 미국의 실체는 애국주의란 상표로 애매하게 포장돼 있을 뿐이란 것이다.
그 포장을 뜯어보면 미국을 지배하는 계층이 드러난다. 상위 5%를 차지하는 미국의 핵심집단이 WASP다. 백인(White), 앵글로색슨(Anglo-Saxon), 개신교(Protestant)의 머리글자를 합친 미국의 전통적 정치 엘리트 집단이다. 미국 사회를 주도해 온 정책 결정집단이 바로 WASP다. 이들은 빌 클린턴처럼 예외는 있지만 대개 조지 부시처럼 부잣집 아들에 동부 명문대학을 일컫는 아이비리그 출신들이다. 대개는 법률이나 경영학을 전공하고 군수산업체를 위해 변호사나 경영자로 일하다 정치 일선에 뛰어든다.
미국이 중요한 전쟁을 치를 때마다 내거는 포스터가 있다. 잘 알려진 샘 아저씨 포스터다. 성조기로 디자인한 모자를 쓰고 정면으로 손가락질하며 위압적인 표정으로 “미국이 너를 부른다”고 말하는 포스터다. 젊은이들에게 자진해서 군대에 입대해 미국을 위해 싸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WASP의 부잣집 도련님들은 어찌어찌해서 병역 대상에서 빠지기 일쑤다. 병역 기피 현상은 미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하층 노동자 아들이나 흑인들이 총대를 메온 것이 미국이다. 이 같은 현상은 1860년 남북전쟁 때나 70년대 전후의 베트남전 때나 마찬가지다. 남북전쟁 당시 뉴욕에서는 불공평한 징집에 항의하는 하층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뉴욕시 전체가 마비된 적도 있다.
미국 애국주의를 정치인들이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150여 년 전 멕시코와 전쟁을 벌이면서부터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지금의 뉴멕시코를 비롯해 당시 멕시코 국토의 절반을 빼앗았다. 바로 그때 성조기가 처음 전선에 등장했고, 당시만 해도 애매한 미국 애국주의란 게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미국 사가 들은 말한다(Telling the story of our America, Monthly Review·New York·Jun 2001).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거쳐 승리를 거둔 바로 멕시코 전쟁에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성조기 아래에서 결합했다는 것이다. 그 승리로 미 기업인과 농장주들은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을 수백만 명 확보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미국은 안정적 자원과 시장 확보라는 국가적 대외정책 목표를 설정해놓고, 팽창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WASP 출신 미국 정치인들의 세계관을 규정하는 한 요소는 개신교 가운데서도 칼비니슴(Calvinism)으로 얘기된다. 칼비니슴은 미국의 시민종교로 미국사 초기부터 정치 엘리트들의 의식세계에 자리잡아 왔다는 것이 미국 학계의 정설이다. 신학적으로 칼비니슴은 ‘적은 곧 악’이라고 규정한다. 9·11 테러사건 뒤 부시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을 가리켜 “그는 악(evil)이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한 것은 이런 바탕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악을 물리치려는 미국의 ‘십자군 전쟁’이 20년 전란에 시달려 온 아프가니스탄인들을 또 다른 두려움 속에 몰아넣고 있다.
이날 학생들은 수업을 중단하고 “미국기에 대해 충성을 맹세한다”로 시작하는 충성 서약문(The Pledge of Allegiance)을 함께 읊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충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소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교실에서 토론 시간도 가졌다. 이날 행사는 박정희 유신체제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차지철 경호실장이 즐겼던 독특한 국기 하강식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질적으로 분위기는 다르지만 밑바닥에 깔린 공통 정서는 애국주의 강조다.
부시 행정부는 비판여론을 의식해 충성 서약식 참가 여부는 본인 의사에 맡겼다. 중학생 아들을 둔 필자의 한 미국인 친구는 아들에게 참가하지 말라고 했다. 퀘이커교 신자인 그는 충성 서약식에 대해 ‘일종의 강요된 애국주의 행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부시 행정부의 견해(views)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렇듯 지금 미국에는 애국주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라디오나 TV 방송국 등은 미국 국가 연주를 반복해 내보낸다. 지난 한 달 동안 가게에서 성조기가 동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집집마다, 자동차마다 성조기가 나부낀다. 테러 충격 이후 미국에서 애국주의 바람이 뜨겁게 불어댄 덕에 중국의 국기 제조 수출업체들이 때아닌 특수를 맞았다는 소식이다. 그런 애국 바람이 아랍계 시민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져 광신적이고 배타적인 애국주의인 쇼비니슴 증세마저 보인다. 함부로 애국주의 바람을 거스르려 하다가는 살해 위협마저 받는 그런 분위기다.
그러나 이런 애국주의 물결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사는 곳이 미국이고 뉴욕이다. 9·11 테러참사의 영향으로 최근 각종 여론조사 지표상에서 소수로 나타나지만, 상당수 미국인이 ‘부시 독트린’으로 상징되는 부시 정권의 대외 강공책에 비판적이다. 이들은 부시 정권의 아프간 폭격을 반대할 뿐더러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데 대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며 반발한다. 9·11 테러는 물론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지만, 왜 미국이 공격당했는지 생각해 보자는 입장이다. 이런 평화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강제 점령과 정착촌 확장 때문에, 그리고 이 같은 이스라엘의 정책을 미국이 배후 지원했기에 오늘날과 같은 비극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9·11 테러참사가 있고 난 뒤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유니언 광장에는 매주 일요일마다 ‘아프간 폭격 반대’ ‘전쟁 반대’를 외치는 평화주의자들이 집회를 열어왔다. 지난 10월7일, 아프간 공습이 처음으로 있던 바로 그날도 3000명 가량의 시민·학생들이 그곳에 모여 “노 워(No War)!”를 외쳤다. 그 모임을 주도한 한 평화주의자에게 지금 상황에서 애국주의가 무엇을 뜻하는지 물어봤더니 그는 “부시의 애국주의는 깡패의 마지막 수단”이라 질타했다. ‘대규모 학살자(wholesale murderers) 훈련을 정당화하는 원리’가 애국주의라는 극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구두, 옷을 만들거나 목수일처럼 인간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람 죽이는 훈련을 시키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곁에 서 있던 또 다른 평화주의자는 미국 애국주의를 “종교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미신”이라고 규정한다. 원시인들이 천둥이나 번개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보다 압도적인 힘을 지닌 그 무엇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듯, 실체가 분명치 않은 미국 애국주의가 바로 미신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를 편다. 군산복합체로 상징되는 미국의 지배세력이 조작한 것이 바로 지금의 미국 애국주의란 주장이다.
그는 애국주의 자체를 반대한다는 게 아님을 분명히 했다. 요점은 부자와 권력자가 애국주의를 독점해선 안 되며 모든 사람을 위한 애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 정권은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 부자를 위한 정권이라는 지적이다. 미 테네시대학의 윌프레드 매클레이 교수는 최근 미 계간지 ‘공익’(Public Interest)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애국주의의 긍정적인 부분은 “자랑스럽고 충성스런 미국인이 반드시 국가에 자신의 주체성을 모두 양도하도록 요구받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미국은 잡다한 인종으로 이뤄진 이른바 다민족(multi-ethnic) 사회다. 우리처럼 단일 민족국가가 아닌 만큼 이들을 하나로 묶을 구심점이 약하다. 그런데 위기상황에서 언제나 약방의 감초처럼 애국주의를 들먹인 나라가 미국이다. 이것은 학계에서도 연구대상이다. 비판론을 제기하는 학자들은 미국 애국주의에 일종의 허상이 숨었다고 말한다. 미국을 위해 싸운다지만, 미국의 실체는 애국주의란 상표로 애매하게 포장돼 있을 뿐이란 것이다.
그 포장을 뜯어보면 미국을 지배하는 계층이 드러난다. 상위 5%를 차지하는 미국의 핵심집단이 WASP다. 백인(White), 앵글로색슨(Anglo-Saxon), 개신교(Protestant)의 머리글자를 합친 미국의 전통적 정치 엘리트 집단이다. 미국 사회를 주도해 온 정책 결정집단이 바로 WASP다. 이들은 빌 클린턴처럼 예외는 있지만 대개 조지 부시처럼 부잣집 아들에 동부 명문대학을 일컫는 아이비리그 출신들이다. 대개는 법률이나 경영학을 전공하고 군수산업체를 위해 변호사나 경영자로 일하다 정치 일선에 뛰어든다.
미국이 중요한 전쟁을 치를 때마다 내거는 포스터가 있다. 잘 알려진 샘 아저씨 포스터다. 성조기로 디자인한 모자를 쓰고 정면으로 손가락질하며 위압적인 표정으로 “미국이 너를 부른다”고 말하는 포스터다. 젊은이들에게 자진해서 군대에 입대해 미국을 위해 싸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WASP의 부잣집 도련님들은 어찌어찌해서 병역 대상에서 빠지기 일쑤다. 병역 기피 현상은 미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하층 노동자 아들이나 흑인들이 총대를 메온 것이 미국이다. 이 같은 현상은 1860년 남북전쟁 때나 70년대 전후의 베트남전 때나 마찬가지다. 남북전쟁 당시 뉴욕에서는 불공평한 징집에 항의하는 하층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뉴욕시 전체가 마비된 적도 있다.
미국 애국주의를 정치인들이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150여 년 전 멕시코와 전쟁을 벌이면서부터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지금의 뉴멕시코를 비롯해 당시 멕시코 국토의 절반을 빼앗았다. 바로 그때 성조기가 처음 전선에 등장했고, 당시만 해도 애매한 미국 애국주의란 게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미국 사가 들은 말한다(Telling the story of our America, Monthly Review·New York·Jun 2001).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거쳐 승리를 거둔 바로 멕시코 전쟁에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성조기 아래에서 결합했다는 것이다. 그 승리로 미 기업인과 농장주들은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을 수백만 명 확보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미국은 안정적 자원과 시장 확보라는 국가적 대외정책 목표를 설정해놓고, 팽창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WASP 출신 미국 정치인들의 세계관을 규정하는 한 요소는 개신교 가운데서도 칼비니슴(Calvinism)으로 얘기된다. 칼비니슴은 미국의 시민종교로 미국사 초기부터 정치 엘리트들의 의식세계에 자리잡아 왔다는 것이 미국 학계의 정설이다. 신학적으로 칼비니슴은 ‘적은 곧 악’이라고 규정한다. 9·11 테러사건 뒤 부시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을 가리켜 “그는 악(evil)이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한 것은 이런 바탕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악을 물리치려는 미국의 ‘십자군 전쟁’이 20년 전란에 시달려 온 아프가니스탄인들을 또 다른 두려움 속에 몰아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