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경기도 이천·광주·여주에서는 세계도자기엑스포가 한창이다(8월10일~10월28일).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2200여 점을 출품했고, 특히 주행사장인 이천 ‘세계도자센터’에서 열린 세계도자문명전에는 베이징 고궁박물관, 오사카 동양도자박물관, 프랑스 세브르 국립도자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명품 350점도 선보였다. 이렇게 세계 도자기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도자기를 통한 문명간 교류는 이미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릇은 크게 토기, 석기, 도기, 자기 네 단계로 구분한다. 이 중 카올린이라는 자토로 빚어 1300℃에서 구워낸 자기가 질적으로 으뜸이다. 표면의 무늬가 반투명하며 두드리면 경쾌하고 맑은 소리를 내 중국 도기는 오랫동안 다른 나라 사람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9세기 중엽 중국 당나라 시대에 웨저우 가마의 청자를 동남아시아에서 서남아시아에까지 수출하였고, 16세기 대항해 시대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중국 청화백자를 대량수송함으로써 유럽에 ‘쉬누아즈리’(중국 취미)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유럽 도공들의 꿈은 중국 자기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1709년 독일 작센 왕국의 수도인 드레스덴 교외 마이센 가마에서 자기를 굽는 데 성공했다. 그 후 자기 생산을 독점한 마이센 가마는 초기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일본 이마리 도자기(조선에서 건너간 도공 이삼평이 꽃피운 일본의 도자기)를 받아들였고, 이후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한다. 이것이 미스기 다카토시가 쓴 ‘동서도자교류사-마이센으로 가는 길’의 내용이다. 그러나 요즘은 거꾸로 일본 부유층들 사이에서 마이센이나 로열 코펜하겐 도자기 등 유럽 자기를 사들이는 게 유행이다. 저자는 로열 코펜하겐 청화백자 꽃무늬의 기원이 중국에 있는 것도 모르고 브랜드에 집착하는 일본인의 행태를 개탄했다. 마이센이든 크라운 더비든 원조는 일본 이마리 자기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막사발 한 점을 앞에 두고 가슴치는 이가 있다. ‘순례자’의 시인이며 대하소설 ‘백정’의 작가인 정동주씨. 그는 1994년 6월17일 교토 다이도큐샤 고호가 소장한 찻잔 ‘기자에몬이도’(喜左衡門井戶)를 처음 보았다. 한국인으로는 400년 만에 갖는 기회였다. 빰으로 문질러 보고 두어 시간 넘게 눈을 맞추면서 받은 깊은 감동은 기자에몬이도 외의 다른 ‘이도차완’을 찾게 만들었다. 현재 일본이 소장한 조선 막사발은 200여 점쯤 된다. 이 중 20여 점이 일본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정씨는 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가 ‘이도차완’이라는 보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추적해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을 썼다.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우리는 낳았지만 그들은 길렀다.”
서정록씨의 ‘백제금동대향로’는 도자기 이야기는 아니나 향로의 미시적 탐구를 통해 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추적한 역작이다. 1993년 12월12일 부여의 나성 밖 능산리 고분군 서족 골짜기 유적지에서 백제왕실에서 사용하였을 법한 향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학계는 향로의 제작시기를 백제 무왕 재위중이거나 6세기 후반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서정록씨는 이 향로가 백제 성왕 때 사비 천도를 준비하면서 사비의 신궁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보고, 그 시기를 520~530년으로 추정한다. 또 능산리 유적지는 본래 사비의 신궁 자리라 했다. 향로의 양식으로 보았을 때 세부양식에서 서역의 요소들을 채용한 북위 향로의 영향을 받았고, 이로써 백제 역시 서역과 북방의 수렵문화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백제인은 만주를 떠나 반도로 남하한 이들이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는 물론 고대 동북아인들의 세계관과 정신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고 살았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인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동북아정신 그 자체인 것이다.
그밖에 세계도자기엑스포에 즈음하여 ‘매일신문’ 전충진 기자가 쓴 ‘도자기와의 만남’(리수 펴냄), 영남대 유홍준 교수와 원광대 윤용이 교수가 공동집필한 ‘알기 쉬운 한국도자사’(학고재 펴냄) 등이 출간되었다.
◇ 동서도자교류사/ 미스기 다카토시 지음/ 김인규 옮김/ 눌와 펴냄/ 272쪽/ 1만2000원
◇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정동주 지음/ 한길아트 펴냄/ 276쪽/ 1만5000원
◇ 백제금동대향로/ 서정록 지음/ 학고재 펴냄/ 488쪽/ 2만5000원
그릇은 크게 토기, 석기, 도기, 자기 네 단계로 구분한다. 이 중 카올린이라는 자토로 빚어 1300℃에서 구워낸 자기가 질적으로 으뜸이다. 표면의 무늬가 반투명하며 두드리면 경쾌하고 맑은 소리를 내 중국 도기는 오랫동안 다른 나라 사람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9세기 중엽 중국 당나라 시대에 웨저우 가마의 청자를 동남아시아에서 서남아시아에까지 수출하였고, 16세기 대항해 시대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중국 청화백자를 대량수송함으로써 유럽에 ‘쉬누아즈리’(중국 취미)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유럽 도공들의 꿈은 중국 자기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1709년 독일 작센 왕국의 수도인 드레스덴 교외 마이센 가마에서 자기를 굽는 데 성공했다. 그 후 자기 생산을 독점한 마이센 가마는 초기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일본 이마리 도자기(조선에서 건너간 도공 이삼평이 꽃피운 일본의 도자기)를 받아들였고, 이후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한다. 이것이 미스기 다카토시가 쓴 ‘동서도자교류사-마이센으로 가는 길’의 내용이다. 그러나 요즘은 거꾸로 일본 부유층들 사이에서 마이센이나 로열 코펜하겐 도자기 등 유럽 자기를 사들이는 게 유행이다. 저자는 로열 코펜하겐 청화백자 꽃무늬의 기원이 중국에 있는 것도 모르고 브랜드에 집착하는 일본인의 행태를 개탄했다. 마이센이든 크라운 더비든 원조는 일본 이마리 자기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막사발 한 점을 앞에 두고 가슴치는 이가 있다. ‘순례자’의 시인이며 대하소설 ‘백정’의 작가인 정동주씨. 그는 1994년 6월17일 교토 다이도큐샤 고호가 소장한 찻잔 ‘기자에몬이도’(喜左衡門井戶)를 처음 보았다. 한국인으로는 400년 만에 갖는 기회였다. 빰으로 문질러 보고 두어 시간 넘게 눈을 맞추면서 받은 깊은 감동은 기자에몬이도 외의 다른 ‘이도차완’을 찾게 만들었다. 현재 일본이 소장한 조선 막사발은 200여 점쯤 된다. 이 중 20여 점이 일본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정씨는 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가 ‘이도차완’이라는 보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추적해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을 썼다.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우리는 낳았지만 그들은 길렀다.”
서정록씨의 ‘백제금동대향로’는 도자기 이야기는 아니나 향로의 미시적 탐구를 통해 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추적한 역작이다. 1993년 12월12일 부여의 나성 밖 능산리 고분군 서족 골짜기 유적지에서 백제왕실에서 사용하였을 법한 향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학계는 향로의 제작시기를 백제 무왕 재위중이거나 6세기 후반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서정록씨는 이 향로가 백제 성왕 때 사비 천도를 준비하면서 사비의 신궁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보고, 그 시기를 520~530년으로 추정한다. 또 능산리 유적지는 본래 사비의 신궁 자리라 했다. 향로의 양식으로 보았을 때 세부양식에서 서역의 요소들을 채용한 북위 향로의 영향을 받았고, 이로써 백제 역시 서역과 북방의 수렵문화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백제인은 만주를 떠나 반도로 남하한 이들이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는 물론 고대 동북아인들의 세계관과 정신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고 살았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인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동북아정신 그 자체인 것이다.
그밖에 세계도자기엑스포에 즈음하여 ‘매일신문’ 전충진 기자가 쓴 ‘도자기와의 만남’(리수 펴냄), 영남대 유홍준 교수와 원광대 윤용이 교수가 공동집필한 ‘알기 쉬운 한국도자사’(학고재 펴냄) 등이 출간되었다.
◇ 동서도자교류사/ 미스기 다카토시 지음/ 김인규 옮김/ 눌와 펴냄/ 272쪽/ 1만2000원
◇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정동주 지음/ 한길아트 펴냄/ 276쪽/ 1만5000원
◇ 백제금동대향로/ 서정록 지음/ 학고재 펴냄/ 488쪽/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