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모나리자’를 펼치기 전에 먼저 노성두라는 저자를 만나보자. 그는 1959년에 태어나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독일 쾰른대 철학부에서 서양미술사·고전고고학·로만어문학을 전공했고, 94년 르네상스시대 미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서울대 대학원에 출강중. 언뜻 보기에는 마흔이 넘도록 자리(교수)를 못 잡은 많고 많은 강사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많은 인문학자들이 그의 삶을 부러워한다. 우선 그는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르네상스 미술 전문가다. 하지만 더 이상 추파를 던지기 싫어 교수직에 대한 미련을 버린 자유인이다. 집 서재를 사무실 삼아 날마다 번역하고 창작한다. 평생 원전 100권을 번역하는 게 목표. 이를 위해 열심히 가슴근육을 키우는 운동도 한다. 적게 버는 만큼 적게 쓰는 삶의 철학을 실천하지만 열심히 모아 1년에 한 달쯤은 유럽에서 보낸다. 이처럼 미련스러울 만큼 ‘꾸역꾸역’(이는 한 인터뷰에서 노성두씨가 자신의 삶을 묘사한 말이다) 글쓰기에 매달리는 그를 보며 아이러니컬하게도 학자들은 부럽다고 말한다.
‘천국을 훔친 화가들’(사계절 펴냄) 출간 후 공개강좌에서 그는 이미 새 책 ‘유혹하는 모나리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눌한 듯한 말솜씨로 막힘 없는 지식을 자랑했고, 수다스럽지 않아도 할 말은 다했다. ‘유혹하는 모나리자’는 어깨 힘을 쫙 빼고 그냥 그림 한장 걸어놓고 이야기하듯 써 내려간 책이다. 순서를 지켜가며 읽을 필요도 없다. 펼쳐지는 대로, 또는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오면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래도 구분을 하자면 1부 ‘르네상스의 빛’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을 소개한 것이고, 2부 ‘고대의 그늘’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과 건축들을 다뤘다.
노성두씨가 이끄는 대로 떠나는 미술여행은 재미있다. 그가 굳이 첫장에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가 베르메르가 그린 ‘우유 따르는 하녀’를 배치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미술사학자 곰브리치가 그토록 감탄했다는 그림. 문외한의 눈에는 ‘흙으로 돌려 구운 듯한 단단한 몸매’(저자의 표현대로)의 평범한 하녀가 탁자 위 대접에 우유를 따르는 단순 동작만 들어온다. 그러나 저자는 우유의 가느다란 흐름에서 일상적 우주의 틈새로 새어 나와 멈추어 선 시간을 읽어내고, 그것을 일상의 기적이라 말한다. 너무 기울이면 넘치고, 덜 기울이면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우윳병은 곧 ‘절제’를 의미한다.
‘절제’를 느끼고 나면 그제서야 청어나 소시지 버터 치즈 양파나 달걀과 같은 소품들이 등장하지 않는 소박한 식탁풍경과 장식이 거의 없이 오히려 빈 못자국만 보이는 벽이 눈에 들어온다. 하녀는 지금 소박한 식탁에 영혼의 허기를 채울 경건한 성찬을 준비하고 있다. 저자는 ‘우유 따르는 하녀’를 종교적 내용을 담은 교훈적 풍속화로 분류했다. 화가는 이 그림을 그리며 일종의 신앙고백을 한 셈이다. 저자는 ‘우유 따르는 하녀’를 통해 독자들에게 무심히 흘러갈 일상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세밀하게 관찰하는 눈을 길러준다. 그러고 나서 벨라스케스의 명작 ‘시녀들’로 넘어간다.
이 수수께끼 같은 그림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해설이 돌고 돌아 오히려 헷갈린다. 그림 중앙에 서 있는 다섯 살의 마르게리타 공주와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의 미묘한 관계로 설명하는 이도 있고, 그림 속의 벨라스케스가 사실 마르게리타 공주를 그리고 있는 게 아니라 거울 속 이미지로 나오는 펠리페 4세 국왕부처를 그리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노성두씨는 이 그림을 ‘원근법’으로 분석했다. 보는 이의 시점과 대응하는 화면 위의 소실점은 뒷벽 거울 오른쪽에 반쯤 열린 문짝 중앙 윗부분께에서 멈춘다. 그것을 통해 그림 앞쪽에서 뒷벽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고 각 인물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저자는 서양미술을 이야기할 때 흔히 정신사적 흐름이나 역사, 신화에 매달리다 보면 오히려 놓치기 쉬운 그림 그 자체로 시선을 돌리도록 해준다. 그 과정에서 원근법이나 인체비례와 같은 미술의 전문적인 영역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유혹하는 모나리자’를 덮을 즈음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기행’이 도착했다. 이 책은 미술 평론가인 이씨가 프랑스 미술관과 미술가들의 아틀리에, 고향, 그리고 그들의 활동무대를 차례로 순례한 뒤 적어 내려간 감상기의 성격이 강하다. 여행자를 위해 박물관 관람메모까지 꼼꼼히 적혀 있어 여행 안내서 역할도 대신한다. 물론 이 책을 먼저 집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저자의 안내를 받으며 프랑스 미술관을 돌고 있을 것이다.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기행’은 ‘유혹하는 모나리자’와 판형도 같고 분량도 비슷하다. 여기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은 분명 무리한 요구다.
ㆍ 유혹하는 모나리자/ 노성두 지음/ 한길아트 펴냄/ 337쪽/ 1만5000원
ㆍ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기행/ 이주헌 지음/ 중앙M&B펴냄/ 356쪽/ 1만8000원
그러나 많은 인문학자들이 그의 삶을 부러워한다. 우선 그는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르네상스 미술 전문가다. 하지만 더 이상 추파를 던지기 싫어 교수직에 대한 미련을 버린 자유인이다. 집 서재를 사무실 삼아 날마다 번역하고 창작한다. 평생 원전 100권을 번역하는 게 목표. 이를 위해 열심히 가슴근육을 키우는 운동도 한다. 적게 버는 만큼 적게 쓰는 삶의 철학을 실천하지만 열심히 모아 1년에 한 달쯤은 유럽에서 보낸다. 이처럼 미련스러울 만큼 ‘꾸역꾸역’(이는 한 인터뷰에서 노성두씨가 자신의 삶을 묘사한 말이다) 글쓰기에 매달리는 그를 보며 아이러니컬하게도 학자들은 부럽다고 말한다.
‘천국을 훔친 화가들’(사계절 펴냄) 출간 후 공개강좌에서 그는 이미 새 책 ‘유혹하는 모나리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눌한 듯한 말솜씨로 막힘 없는 지식을 자랑했고, 수다스럽지 않아도 할 말은 다했다. ‘유혹하는 모나리자’는 어깨 힘을 쫙 빼고 그냥 그림 한장 걸어놓고 이야기하듯 써 내려간 책이다. 순서를 지켜가며 읽을 필요도 없다. 펼쳐지는 대로, 또는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오면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래도 구분을 하자면 1부 ‘르네상스의 빛’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을 소개한 것이고, 2부 ‘고대의 그늘’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과 건축들을 다뤘다.
노성두씨가 이끄는 대로 떠나는 미술여행은 재미있다. 그가 굳이 첫장에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가 베르메르가 그린 ‘우유 따르는 하녀’를 배치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미술사학자 곰브리치가 그토록 감탄했다는 그림. 문외한의 눈에는 ‘흙으로 돌려 구운 듯한 단단한 몸매’(저자의 표현대로)의 평범한 하녀가 탁자 위 대접에 우유를 따르는 단순 동작만 들어온다. 그러나 저자는 우유의 가느다란 흐름에서 일상적 우주의 틈새로 새어 나와 멈추어 선 시간을 읽어내고, 그것을 일상의 기적이라 말한다. 너무 기울이면 넘치고, 덜 기울이면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우윳병은 곧 ‘절제’를 의미한다.
‘절제’를 느끼고 나면 그제서야 청어나 소시지 버터 치즈 양파나 달걀과 같은 소품들이 등장하지 않는 소박한 식탁풍경과 장식이 거의 없이 오히려 빈 못자국만 보이는 벽이 눈에 들어온다. 하녀는 지금 소박한 식탁에 영혼의 허기를 채울 경건한 성찬을 준비하고 있다. 저자는 ‘우유 따르는 하녀’를 종교적 내용을 담은 교훈적 풍속화로 분류했다. 화가는 이 그림을 그리며 일종의 신앙고백을 한 셈이다. 저자는 ‘우유 따르는 하녀’를 통해 독자들에게 무심히 흘러갈 일상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세밀하게 관찰하는 눈을 길러준다. 그러고 나서 벨라스케스의 명작 ‘시녀들’로 넘어간다.
이 수수께끼 같은 그림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해설이 돌고 돌아 오히려 헷갈린다. 그림 중앙에 서 있는 다섯 살의 마르게리타 공주와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의 미묘한 관계로 설명하는 이도 있고, 그림 속의 벨라스케스가 사실 마르게리타 공주를 그리고 있는 게 아니라 거울 속 이미지로 나오는 펠리페 4세 국왕부처를 그리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노성두씨는 이 그림을 ‘원근법’으로 분석했다. 보는 이의 시점과 대응하는 화면 위의 소실점은 뒷벽 거울 오른쪽에 반쯤 열린 문짝 중앙 윗부분께에서 멈춘다. 그것을 통해 그림 앞쪽에서 뒷벽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고 각 인물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저자는 서양미술을 이야기할 때 흔히 정신사적 흐름이나 역사, 신화에 매달리다 보면 오히려 놓치기 쉬운 그림 그 자체로 시선을 돌리도록 해준다. 그 과정에서 원근법이나 인체비례와 같은 미술의 전문적인 영역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유혹하는 모나리자’를 덮을 즈음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기행’이 도착했다. 이 책은 미술 평론가인 이씨가 프랑스 미술관과 미술가들의 아틀리에, 고향, 그리고 그들의 활동무대를 차례로 순례한 뒤 적어 내려간 감상기의 성격이 강하다. 여행자를 위해 박물관 관람메모까지 꼼꼼히 적혀 있어 여행 안내서 역할도 대신한다. 물론 이 책을 먼저 집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저자의 안내를 받으며 프랑스 미술관을 돌고 있을 것이다.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기행’은 ‘유혹하는 모나리자’와 판형도 같고 분량도 비슷하다. 여기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은 분명 무리한 요구다.
ㆍ 유혹하는 모나리자/ 노성두 지음/ 한길아트 펴냄/ 337쪽/ 1만5000원
ㆍ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기행/ 이주헌 지음/ 중앙M&B펴냄/ 356쪽/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