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하고 따사로운 봄날,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이 극장 전체가 온통 봄빛으로 가득 차 있어 관객은 마치 산등성이 어디쯤에 앉아 봄기운에 살풋 젖어 예쁜 꿈을 꾸는 듯하다. 연희단 거리패가 공연하는 ‘봄날은 간다’(7월15일까지 혜화동 1번지)는 이렇게 매력적인 공간에서 펼쳐진다. 30대 초반의 작가 최창근의 데뷔 무대며 역시 젊은 배우이자 연출가인 김경익이 연출을 맡았다.
무대가 밝아지면 숲 속 한모퉁이에 무덤처럼 누워 있던 늙은 여인이 홀연히 깨어 일어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은 그녀가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존재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녀는 누군가를 마중 나온 듯한데 젊은 부부가 산모롱이를 돌아 나타난다. 그들은 구비구비 산길을 따라 걸으며 힘겹던 과거지사를 한 올씩 꺼내 보인다. 현재 속에 과거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편입되고 과거 장면 속에서 늙은 여인은 그들의 어머니다.
부부는 원래 어머니의 아들이고 딸이었으니 남매 사이인 셈이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혈연관계의 가족이 아니라 어머니의 남편이 사랑하던 다른 여자의 딸이며 뒤늦게 입양한 아들이었다. 기실 모두가 남남이었던 것인데, 어머니의 남편 역시 어머니와는 사당패에서 맺어진 의남매 사이였다. 두 남녀의 사랑은 불행한 인생 유전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치지만 결국은 운명적인 굴레로 맺어졌다. 이들은 지금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이다.
어릴 적 심한 열병을 앓아 달거리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심각한 병을 앓는 아내와 그런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는 남편은 그 옛날 어머니가 그런 것처럼 아이를 입양하기로 한다. 그러나 아내는 아이를 안아보지 못한 채 어머니의 무덤을 목전에 두고 숨을 거둔다.
찬란한 봄날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더 더욱 잔인하다. 하지만 슬픔의 무게보다 희망의 불씨가 더 크게 남겨지는 것은 이들의 사랑이 시종 간절하고 따뜻하게 피어나기 때문이다. 죽음의 고통 위에 새싹이 움트는 생명의 이미지가 겹쳐지고 남편이 보듬어 안은 아이가 새로운 가족을 이룬다. 피를 나눈 가족도 다투고 헤어지고 버리는 일이 흔한 이 시대에 결함과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끼리 만나 가족이 되고 사랑을 완성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정감 넘치면서도 깊이 있는 대사들을 시적으로 구사하는 작가의 능력이 범상치 않다. 서정적 분위기를 차분하게 밀고 나가는 연출가의 뚝심도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주인공의 파란 만장한 삶을 얘기하느라 부분적으로 감정의 과잉상태나 감상성의 과도한 누출을 초래해 작품 전반의 상큼하고 산뜻한 분위기를 해치는 것이 아쉽다.
객석을 무대로 끌어들이고 무대를 객석으로 확장한 무대미술(강연화)과 봄날의 나른함과 아련함을 잘 살린 음악(이태원)은 이 작품의 서정성을 드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작은 스피커들을 눈에 띄지 않게 여러 개 설치하여 자연의 소리들이 지척에서 들려오도록 고안함으로써 관객은 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무대가 밝아지면 숲 속 한모퉁이에 무덤처럼 누워 있던 늙은 여인이 홀연히 깨어 일어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은 그녀가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존재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녀는 누군가를 마중 나온 듯한데 젊은 부부가 산모롱이를 돌아 나타난다. 그들은 구비구비 산길을 따라 걸으며 힘겹던 과거지사를 한 올씩 꺼내 보인다. 현재 속에 과거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편입되고 과거 장면 속에서 늙은 여인은 그들의 어머니다.
부부는 원래 어머니의 아들이고 딸이었으니 남매 사이인 셈이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혈연관계의 가족이 아니라 어머니의 남편이 사랑하던 다른 여자의 딸이며 뒤늦게 입양한 아들이었다. 기실 모두가 남남이었던 것인데, 어머니의 남편 역시 어머니와는 사당패에서 맺어진 의남매 사이였다. 두 남녀의 사랑은 불행한 인생 유전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치지만 결국은 운명적인 굴레로 맺어졌다. 이들은 지금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이다.
어릴 적 심한 열병을 앓아 달거리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심각한 병을 앓는 아내와 그런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는 남편은 그 옛날 어머니가 그런 것처럼 아이를 입양하기로 한다. 그러나 아내는 아이를 안아보지 못한 채 어머니의 무덤을 목전에 두고 숨을 거둔다.
찬란한 봄날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더 더욱 잔인하다. 하지만 슬픔의 무게보다 희망의 불씨가 더 크게 남겨지는 것은 이들의 사랑이 시종 간절하고 따뜻하게 피어나기 때문이다. 죽음의 고통 위에 새싹이 움트는 생명의 이미지가 겹쳐지고 남편이 보듬어 안은 아이가 새로운 가족을 이룬다. 피를 나눈 가족도 다투고 헤어지고 버리는 일이 흔한 이 시대에 결함과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끼리 만나 가족이 되고 사랑을 완성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정감 넘치면서도 깊이 있는 대사들을 시적으로 구사하는 작가의 능력이 범상치 않다. 서정적 분위기를 차분하게 밀고 나가는 연출가의 뚝심도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주인공의 파란 만장한 삶을 얘기하느라 부분적으로 감정의 과잉상태나 감상성의 과도한 누출을 초래해 작품 전반의 상큼하고 산뜻한 분위기를 해치는 것이 아쉽다.
객석을 무대로 끌어들이고 무대를 객석으로 확장한 무대미술(강연화)과 봄날의 나른함과 아련함을 잘 살린 음악(이태원)은 이 작품의 서정성을 드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작은 스피커들을 눈에 띄지 않게 여러 개 설치하여 자연의 소리들이 지척에서 들려오도록 고안함으로써 관객은 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