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오르면 무대에는 배우와 무대장치 대신 갖가지 모양의 설치작품이 조명을 받으며 서 있다. 관객들은 연극이 시작되기 전 잠깐 동안 작품 감상 시간을 갖는다. 이어지는 연극을 지켜보다 보면 무대 위 작품들이 등장인물들의 내면상태와 행위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자체로 독립적인 미술품이면서 연극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이 작품들은 일반적인 무대장치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이 든 관객들이 어렵다고 하는 반면, 어린 학생들은 오히려 재미있어해요. 연극이나 미술에 대한 일정한 고정관념 없이 그저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5월20일 막을 내린 연극 ‘햄릿-분신놀이’(소극장 리듬공간)의 연출가 김현묵씨는 설치미술가 최연금씨의 설치작품을 그대로 무대로 가져와 ‘연극’과 ‘설치미술’의 만남을 꾀했다. “연극의 주제와 번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한 최씨 작품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
셰익스피어 창작극 시리즈 2탄으로 기획하고 있는 ‘오셀로-질투’에서는 미술 외에도 마임-무용-영상을 끌어들여 보다 적극적인 ‘퓨전 연극’을 선보이겠다는 것이 김씨의 말이다.
문화 전반에서 ‘퓨전’과 ‘크로스오버’ 현상은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최근에는 미술과 연극의 만남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좁은 전시장을 벗어난 미술은 연극무대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였고, 아예 배우가 되어 무대에 서는 미술가도 나오고 있다.
경희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설치미술가 조계형씨는 ‘에고로부터의 탈피’라는 주제로 꾸준히 작업을 해오고 있다. 5월25∼27일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에고로부터의 탈피 - 그녀가 죽었다’에는 배우로 출연한다. 단순히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 자체가 그녀의 전시회인 셈. 주인공의 감정 순화를 보여주기 위해 남자이면서 여자의 음역을 넘나드는 카운터테너가 동원되고, 누드모델이 무대 위 작품의 오브제로 등장하며, 무대와 조명 등이 미술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꾸민다.
“배우 자신이 살아 움직이는 오브제가 되는 것입니다. 연극을 표현재료로 가져온 것이죠. ‘미술을 위한 연극’이라고 할까요.” 세라믹`-`금속`-`돌 등 죽은 물체로 작업을 해온 작가는 살아 있는 오브제, 소통을 위한 미술을 모색하던 중 연극에 눈을 돌렸다.
조씨 외에는 전문 연극배우가 출연하고 리얼리즘 연극연출가로 알려진 임수택씨가 연출을 맡았다. 연극은 자살충동을 느낀 한 여인이 자살 디자이너를 만나 자살 리허설을 거쳐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 찾기에 고민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에 대해 미술평론가 김주환 교수(연세대 신문방송학과)는 “공연되는 연극 자체를 그대로 미술적 맥락으로 가져와 연극 공연이 하나의 미술작품으로 작동하였다는 점에서 하나의 완벽한 연극이면서, 동시에 한편의 연극 이상의 의미를 갖는 ‘메타 연극’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김교수는 “뒤샹이 화장실의 변기를 그대로 가져와 작품으로 삼은 것처럼 하나의 연극무대를 통째로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가져오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른바 ‘퓨전 아트’에 대한 그의 생각. “지금 예술에서 장르별 경계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미술가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모던 아트’가 당시에는 보기 싫고 지저분한 것이었지만 그 후 패션에 반영되면서 사람들의 미적 감수성이 달라지는 것처럼 모든 예술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고정관념을 깨나가는 작업이다.”
홍대 앞에 위치한 쌈지스페이스가 6월29일∼7월7일 개최하는 영상미술제의 제목도 ‘넘나들기’다. 그동안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전시에 록밴드 공연과 파티 이벤트를 결합시키는 등 독특한 문화행사를 선보인 쌈지가 이번에는 전통미술과 디지털 아트, 정지그림과 동영상, 미술과 영화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개념을 흔드는 전시를 선보인다. 담당 큐레이터 이윤영씨는 “쌈지스페이스가 지향하는 탈(脫) 장르, 복합문화의 총화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중심 없이, 단지 즐기기 위한 이벤트적 놀이로 변질되어 간다”(문화평론가 백지숙씨)는 일부의 우려가 있음에도 문화 간 장르 허물기(크로스오버)는 앞으로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중과의 소통을 모색하고, ‘새로운 것의 즐거움’을 공급하고자 하는 대중예술의 궁극적 목적과도 닿아 있다. 내용보다는 형식이 새로운 감수성으로 다가오는 시대에서 ‘형식이 새로워야 새로운 내용을 담을 수 있다’는 예술가들의 인식은 끊임없이 새로운 변종과 잡종성(hybridity)의 문화를 생성한다.
이런 현상들은 어쩌면 ‘다자간 공유’를 본질로 하는 예술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지난 세기 예술은 다른 예술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고유의 형식미를 구축해 왔지만, 이제 그 옛날 원시 종합예술시대처럼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재통합의 길을 찾아가는 것일까. 그것이 테크놀로지의 발전 때문이든 글로벌-디지털화에 따른 필연적인 변화이든 간에 우리에게 아주 흥미로운 예술체험을 제공하는 것임은 틀림없다.
“나이 든 관객들이 어렵다고 하는 반면, 어린 학생들은 오히려 재미있어해요. 연극이나 미술에 대한 일정한 고정관념 없이 그저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5월20일 막을 내린 연극 ‘햄릿-분신놀이’(소극장 리듬공간)의 연출가 김현묵씨는 설치미술가 최연금씨의 설치작품을 그대로 무대로 가져와 ‘연극’과 ‘설치미술’의 만남을 꾀했다. “연극의 주제와 번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한 최씨 작품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
셰익스피어 창작극 시리즈 2탄으로 기획하고 있는 ‘오셀로-질투’에서는 미술 외에도 마임-무용-영상을 끌어들여 보다 적극적인 ‘퓨전 연극’을 선보이겠다는 것이 김씨의 말이다.
문화 전반에서 ‘퓨전’과 ‘크로스오버’ 현상은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최근에는 미술과 연극의 만남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좁은 전시장을 벗어난 미술은 연극무대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였고, 아예 배우가 되어 무대에 서는 미술가도 나오고 있다.
경희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설치미술가 조계형씨는 ‘에고로부터의 탈피’라는 주제로 꾸준히 작업을 해오고 있다. 5월25∼27일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에고로부터의 탈피 - 그녀가 죽었다’에는 배우로 출연한다. 단순히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 자체가 그녀의 전시회인 셈. 주인공의 감정 순화를 보여주기 위해 남자이면서 여자의 음역을 넘나드는 카운터테너가 동원되고, 누드모델이 무대 위 작품의 오브제로 등장하며, 무대와 조명 등이 미술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꾸민다.
“배우 자신이 살아 움직이는 오브제가 되는 것입니다. 연극을 표현재료로 가져온 것이죠. ‘미술을 위한 연극’이라고 할까요.” 세라믹`-`금속`-`돌 등 죽은 물체로 작업을 해온 작가는 살아 있는 오브제, 소통을 위한 미술을 모색하던 중 연극에 눈을 돌렸다.
조씨 외에는 전문 연극배우가 출연하고 리얼리즘 연극연출가로 알려진 임수택씨가 연출을 맡았다. 연극은 자살충동을 느낀 한 여인이 자살 디자이너를 만나 자살 리허설을 거쳐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 찾기에 고민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에 대해 미술평론가 김주환 교수(연세대 신문방송학과)는 “공연되는 연극 자체를 그대로 미술적 맥락으로 가져와 연극 공연이 하나의 미술작품으로 작동하였다는 점에서 하나의 완벽한 연극이면서, 동시에 한편의 연극 이상의 의미를 갖는 ‘메타 연극’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김교수는 “뒤샹이 화장실의 변기를 그대로 가져와 작품으로 삼은 것처럼 하나의 연극무대를 통째로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가져오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른바 ‘퓨전 아트’에 대한 그의 생각. “지금 예술에서 장르별 경계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미술가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모던 아트’가 당시에는 보기 싫고 지저분한 것이었지만 그 후 패션에 반영되면서 사람들의 미적 감수성이 달라지는 것처럼 모든 예술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고정관념을 깨나가는 작업이다.”
홍대 앞에 위치한 쌈지스페이스가 6월29일∼7월7일 개최하는 영상미술제의 제목도 ‘넘나들기’다. 그동안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전시에 록밴드 공연과 파티 이벤트를 결합시키는 등 독특한 문화행사를 선보인 쌈지가 이번에는 전통미술과 디지털 아트, 정지그림과 동영상, 미술과 영화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개념을 흔드는 전시를 선보인다. 담당 큐레이터 이윤영씨는 “쌈지스페이스가 지향하는 탈(脫) 장르, 복합문화의 총화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중심 없이, 단지 즐기기 위한 이벤트적 놀이로 변질되어 간다”(문화평론가 백지숙씨)는 일부의 우려가 있음에도 문화 간 장르 허물기(크로스오버)는 앞으로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중과의 소통을 모색하고, ‘새로운 것의 즐거움’을 공급하고자 하는 대중예술의 궁극적 목적과도 닿아 있다. 내용보다는 형식이 새로운 감수성으로 다가오는 시대에서 ‘형식이 새로워야 새로운 내용을 담을 수 있다’는 예술가들의 인식은 끊임없이 새로운 변종과 잡종성(hybridity)의 문화를 생성한다.
이런 현상들은 어쩌면 ‘다자간 공유’를 본질로 하는 예술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지난 세기 예술은 다른 예술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고유의 형식미를 구축해 왔지만, 이제 그 옛날 원시 종합예술시대처럼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재통합의 길을 찾아가는 것일까. 그것이 테크놀로지의 발전 때문이든 글로벌-디지털화에 따른 필연적인 변화이든 간에 우리에게 아주 흥미로운 예술체험을 제공하는 것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