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계 원로로서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와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종종 비교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엔 다른 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 먼저 실천하는 지식인이라는 점과 은퇴란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조교수는 1997년 8월 은퇴 후 한국사학사연구회를 발족하고 지난해에는 ‘한국사학사학보’라는 학술지를 만들었다. 강교수는 은퇴 후 ‘내일을 여는 역사’라는 계간지를 내고 ‘월간민족21’ 발행인으로 역사 대중화와 통일교육 전면에 나섰다가 상지대 총장으로 부임해 다시 현역으로 돌아왔다.
올해로 먼저 고희(古稀)를 맞은 조동걸 선생이 자축의 의미로 두 권의 책을 펴냈다. ‘그래도 역사의 힘을 믿는다’는 97년 정년퇴임 후 각종 일간지-계간지-학회지 등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것이고, ‘한국현대사의 이상과 형상’은 역시 정년 퇴임 후 지난 2~3년간 발표한 논문 21편을 엮은 것이다. 회갑이다 칠순이다 해서 제자들이 엮어준 논집을 앉아서 받는 일은 많아도, 이처럼 스스로 축하하며 근작 논문과 산문만으로 두 권의 책을 펴낼 수 있는 왕성한 저작활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뿐이다. ‘은퇴란 없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것이다.
실천하는 지식인이라는 말은 그가 평생을 시류에 편승하지도 않고 멀찍이 물러서서 관망하지도 않았음을 뜻한다. 독립운동사나 한말 의병전쟁, 백범 김구 연구 등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기며, 지난 50년 동안 고집스럽게 한우물을 파왔지만 현실세계를 향한 일침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역사의 힘을 믿는다’의 2부 ‘21세기의 길목에서’와 3부 ‘200년 만의 개혁은 어디로’는 학문과 실천이 따로 없음을 보여준 그의 칼럼 모음이다. 농협을 농민에게 돌려주라는 주장부터 어이없는 한-일어업협정 실패에 대해 신라시대의 ‘바다정치’를 배우라는 따끔한 충고, 박정희 기념관 건립시비에 대해 “화해와 기념관은 별개”라는 말로 단호한 반대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조교수는 경북 영양 출신이다).
그가 이처럼 끊임없이 세상을 향한 잔소리꾼이 되기로 자처한 것은 무엇보다 ‘천황씨(天皇氏)’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1998년 ‘교수신문’에 기고했던 ‘천황씨의 IMF’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어릴 때 동네 어른들이 세상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는 어른이 잔소리를 하거나 억지를 부리면 그 어른을 가리켜 ‘천황씨 같은’ 어른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이것은 며느리들이 시아버지를 원망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었다.”
정년 퇴임 후 북한산에 오르며 한가로움을 만끽하던 중 IMF 사태가 닥쳤을 때 그는 자신이 바로 ‘천황씨’가 된 것은 아닌가 하고 마음속으로 “내 다리를 꼬집어 봤다”고 토론한다. 퇴직 후 세상에 대한 관심을 늦추는 동안, 판단력이 무뎌진 것이 아닌가 했다는 것이다. 그가 굳이 ‘교수신문’에 이 글을 기고한 뜻은 연구실에 갇혀 점잖은 충고나 일삼는, 그러나 정작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깜깜한 ‘천황씨 같은’ 교수들에 대한 일침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역사의 힘을 믿는다’의 마지막 장에는 그동안 펴낸 저술의 서문들이 정리되어 있다. ‘책을 엮을 때마다 외친 소리’라는 제목으로 ‘태백의 역사’ ‘태백항일사’ ‘일제하 한국농민운동사’ ‘한말 의병전쟁’ ‘한국근대사의 시련과 반성’ 등 13권의 주요 저술 서문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모아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한국 민족주의의 성립과 독립운동사 연구’(89년)가 ‘한국민족주의의 발전과 독립운동사 연구’(93년)로 이어지고, ‘한국근대사의 시련과 반성’(89년)이 ‘한국 근대사의 서가’(97년)로 이어지는 등 사학자로서 걸어온 길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문집 성격의 ‘그래도 역사를…’이 지식인으로서 세상을 향한 외침을 담았다면 ‘한국근현대사의 이상과 형상’은 50년 역사연구를 정리하는 작업이다. 좀더 학술적으로 보면 98년 출간한 ‘한국근현대사의 이해와 논리’ 속편에 해당한다. 의병 전적지 조사과정에서 직접 발굴한 전남 화순군과 보성군 경계에 있는 ‘쌍산의소’(雙山義所)와 1910년 대한제국 멸망 후 서간도로 망명한 후 쓴 선비 김대락의 일기 ‘백하일기’(白下日記) 등은 학계 최초로 공개한 것이어서 노학자의 끝없는 탐구열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또 이 책의 4장 ‘한국 현대사학의 전망’ 편에서 조교수는 ‘사회문화사학’이라는 새로운 역사방법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즉, 특정사관에 치우치지 말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종합적 관점뿐 아니라 문화사관과 경제사관의 통합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젊은 연구자들을 향해 “한국사 연구가 진실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는 사실이면 논증된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역사적 사실로 부각시킨 경우가 있다”고 경고했다. 논설문 작성에 매달려 논증을 미루는 풍토, 역사를 분석-규명하면서 학문적 진실을 찾으려는 고민이 부족한 논문들, 마치 추리소설 같은 문체의 논문까지 부지런한 원로학자의 날카로운 지적들을 피하려면 후학들은 부지런히 발 품을 팔아 발굴과 고증을 하고, 밤을 밝혀 연구에 매진하는 방법밖에 없을 듯하다. ‘천황씨’는 은퇴한 노교수가 아니라 신지식론에 빠져 지식을 상품화하기에 급급한 요즘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棟
·그래도 역사의 힘을 믿는다/ 조동걸 지음/ 푸른역사 펴냄/ 348쪽/ 1만2000원
·한국근현대사의 이상과 형상/ 조동걸 지음/ 푸른역사 펴냄/ 568쪽/ 2만8000원
올해로 먼저 고희(古稀)를 맞은 조동걸 선생이 자축의 의미로 두 권의 책을 펴냈다. ‘그래도 역사의 힘을 믿는다’는 97년 정년퇴임 후 각종 일간지-계간지-학회지 등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것이고, ‘한국현대사의 이상과 형상’은 역시 정년 퇴임 후 지난 2~3년간 발표한 논문 21편을 엮은 것이다. 회갑이다 칠순이다 해서 제자들이 엮어준 논집을 앉아서 받는 일은 많아도, 이처럼 스스로 축하하며 근작 논문과 산문만으로 두 권의 책을 펴낼 수 있는 왕성한 저작활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뿐이다. ‘은퇴란 없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것이다.
실천하는 지식인이라는 말은 그가 평생을 시류에 편승하지도 않고 멀찍이 물러서서 관망하지도 않았음을 뜻한다. 독립운동사나 한말 의병전쟁, 백범 김구 연구 등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기며, 지난 50년 동안 고집스럽게 한우물을 파왔지만 현실세계를 향한 일침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역사의 힘을 믿는다’의 2부 ‘21세기의 길목에서’와 3부 ‘200년 만의 개혁은 어디로’는 학문과 실천이 따로 없음을 보여준 그의 칼럼 모음이다. 농협을 농민에게 돌려주라는 주장부터 어이없는 한-일어업협정 실패에 대해 신라시대의 ‘바다정치’를 배우라는 따끔한 충고, 박정희 기념관 건립시비에 대해 “화해와 기념관은 별개”라는 말로 단호한 반대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조교수는 경북 영양 출신이다).
그가 이처럼 끊임없이 세상을 향한 잔소리꾼이 되기로 자처한 것은 무엇보다 ‘천황씨(天皇氏)’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1998년 ‘교수신문’에 기고했던 ‘천황씨의 IMF’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어릴 때 동네 어른들이 세상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는 어른이 잔소리를 하거나 억지를 부리면 그 어른을 가리켜 ‘천황씨 같은’ 어른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이것은 며느리들이 시아버지를 원망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었다.”
정년 퇴임 후 북한산에 오르며 한가로움을 만끽하던 중 IMF 사태가 닥쳤을 때 그는 자신이 바로 ‘천황씨’가 된 것은 아닌가 하고 마음속으로 “내 다리를 꼬집어 봤다”고 토론한다. 퇴직 후 세상에 대한 관심을 늦추는 동안, 판단력이 무뎌진 것이 아닌가 했다는 것이다. 그가 굳이 ‘교수신문’에 이 글을 기고한 뜻은 연구실에 갇혀 점잖은 충고나 일삼는, 그러나 정작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깜깜한 ‘천황씨 같은’ 교수들에 대한 일침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역사의 힘을 믿는다’의 마지막 장에는 그동안 펴낸 저술의 서문들이 정리되어 있다. ‘책을 엮을 때마다 외친 소리’라는 제목으로 ‘태백의 역사’ ‘태백항일사’ ‘일제하 한국농민운동사’ ‘한말 의병전쟁’ ‘한국근대사의 시련과 반성’ 등 13권의 주요 저술 서문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모아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한국 민족주의의 성립과 독립운동사 연구’(89년)가 ‘한국민족주의의 발전과 독립운동사 연구’(93년)로 이어지고, ‘한국근대사의 시련과 반성’(89년)이 ‘한국 근대사의 서가’(97년)로 이어지는 등 사학자로서 걸어온 길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문집 성격의 ‘그래도 역사를…’이 지식인으로서 세상을 향한 외침을 담았다면 ‘한국근현대사의 이상과 형상’은 50년 역사연구를 정리하는 작업이다. 좀더 학술적으로 보면 98년 출간한 ‘한국근현대사의 이해와 논리’ 속편에 해당한다. 의병 전적지 조사과정에서 직접 발굴한 전남 화순군과 보성군 경계에 있는 ‘쌍산의소’(雙山義所)와 1910년 대한제국 멸망 후 서간도로 망명한 후 쓴 선비 김대락의 일기 ‘백하일기’(白下日記) 등은 학계 최초로 공개한 것이어서 노학자의 끝없는 탐구열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또 이 책의 4장 ‘한국 현대사학의 전망’ 편에서 조교수는 ‘사회문화사학’이라는 새로운 역사방법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즉, 특정사관에 치우치지 말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종합적 관점뿐 아니라 문화사관과 경제사관의 통합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젊은 연구자들을 향해 “한국사 연구가 진실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는 사실이면 논증된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역사적 사실로 부각시킨 경우가 있다”고 경고했다. 논설문 작성에 매달려 논증을 미루는 풍토, 역사를 분석-규명하면서 학문적 진실을 찾으려는 고민이 부족한 논문들, 마치 추리소설 같은 문체의 논문까지 부지런한 원로학자의 날카로운 지적들을 피하려면 후학들은 부지런히 발 품을 팔아 발굴과 고증을 하고, 밤을 밝혀 연구에 매진하는 방법밖에 없을 듯하다. ‘천황씨’는 은퇴한 노교수가 아니라 신지식론에 빠져 지식을 상품화하기에 급급한 요즘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棟
·그래도 역사의 힘을 믿는다/ 조동걸 지음/ 푸른역사 펴냄/ 348쪽/ 1만2000원
·한국근현대사의 이상과 형상/ 조동걸 지음/ 푸른역사 펴냄/ 568쪽/ 2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