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의 거문도는 곱디고운 동백섬이다. 봄빛 무르익은 3월이면 남해바다의 섬들은 죄다 동백섬으로 탈바꿈하게 마련이지만, 숲의 규모와 꽃빛깔의 화사함에서 거문도를 능가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거문도에서는 어딜 가나 잘 자란 동백나무가 지천일 뿐만 아니라 무성한 잎새를 비집고 피어난 동백꽃도 유난히 싱그럽고 새뜻하다. 염려(艶麗)한 선홍빛의 꽃잎과 선명한 노란색의 꽃술을 품은 동백꽃마다 섬뜩한 요기(妖氣)마저 느껴질 정도다.
참으로 멀고 아득한, 그래서 찾아가기도 수월치 않은 거문도를 이 즈음의 섬 여행지로 선택한 것도 실은 섬뜩하리만치 아리따운 동백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특히 거문도등대 초입의 동백숲은 여태껏 가본 곳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다. 서도의 수월산(196m)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거문도등대는 1905년 4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불을 밝힌 등대인데, 차가 다니는 길이 끝나는 지점부터 등대에 이르는 1.6km 가량의 산책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울창한 동백꽃길이다.
양쪽 길가와 머리 위쪽에는 앞다투어 피어난 동백꽃이 온통 핏빛이고, 길바닥엔 통째로 낙화(洛花)한 동백꽃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나뒹군다. 사방팔방이 온통 동백꽃이라 꽃멀미가 날 지경이다. 이따금씩 산허리를 가쁘게 돌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아득한 벼랑 위에 올라서기도 하는 숲길의 율동감도 아주 경쾌하다. 뿐만 아니라 성긴 숲 사이로 간간이 드러나는 쪽빛바다의 풍광도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행정구역상으로 전남 여수시 삼산면에 속하는 거문도는 사실 하나의 섬이 아니라 동도(東島) 서도(西島) 고도(古島) 등의 세 섬을 아우르는 지명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오랫동안 ‘삼도’(三島)라 불리기도 했다. 또한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라는 연도교(連島橋)로 연결돼 있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동도와 서도의 한중간쯤에 위치한 고도는 거문도를 비롯해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삼산면의 행정중심지 구실을 한다.
고도는 거문도의 세 섬 중에서 면적이 가장 작다. 그런데도 동서 양쪽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동도와 서도가 거센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바다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어 이미 조선시대 말에 제법 큰 규모의 항구가 들어섰다. 그 유명한 거문도사건의 주역인 영국군이 대규모 요새와 군항을 구축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곳은 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 여객선터미널 수협 등의 공공기관과 여관 식당 슈퍼 유흥주점 등이 몰려 있어 원도(遠島)의 항구답지 않게 번잡하다. 그래도 밤 9시만 되면 거리엔 인적이 뚝 끊기고, 적막한 포구에는 촘촘히 늘어선 고깃배들만이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 밤새도록 흐느적거린다. 거문도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면 이토록 한가로운 포구의 밤 풍경도 한 번 들여다볼 일이다.
거문도에서는 어딘가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고도를 제외한 두 섬은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 작지도 않을 뿐더러 대중교통편 또한 마땅치 않은 탓이다. 고도와 서도 전역을 운행하는 승합차형 택시가 있지만 기본요금(3100원)이 워낙 비싸서 주머니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은 선뜻 이용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택시도 두 대뿐이어서 고도 이외의 지역에서 전화로 불러올 경우에는 추가로 콜(call) 요금을 내야 한다. 또한 거문항에서 동도로 이동하려면 작은 연락선을 타야 하는데, 부정기적으로 운항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더군다나 동도에는 택시조차 없어서 천상 다리품을 팔며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그래도 거문도, 특히 고도에서의 사나흘 여정은 꿈결처럼 흘러간다. 어느 바닷가에서나 간단한 채비의 낚싯대만 드리우면 학꽁치 볼락 등의 입질이 끊이질 않는다. 게다가 섬의 면적이 작아서 어디라도 부담없이 걸어다닐 수 있고, 포구를 조금만 벗어나면 동백나무 늘어선 오솔길로 접어든다.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서면 고도 주변의 푸른 바다와 정겨운 갯마을들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느긋한 걸음으로 소요(逍遙)하면서 여심(旅心)을 돋우기엔 아주 제격이다. 특히 거문초등학교에서 영국군 묘지로 이어지는 비탈길의 주변에는 제철을 만난 동백꽃 유채꽃 수선화가 만발하고, 호수 같은 바다 저편에는 짙푸른 상록수림에 뒤덮인 수월산의 오롯한 자태가 시야에 들어온다.
고도의 거문항에서 동쪽으로 칠십 리쯤 떨어진 바다에는 거문도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꼽히는 백도가 있다. 망망한 쪽빛바다 위에 점점이 뿌려진 36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백도는 무인도인 덕택에 지금도 원시적인 자연미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백도는 다시 상백도와 하백도로 나뉘는데, 끝 모를 심연(深淵) 위로 솟구쳐 오른 바위섬들마다 매바위 병풍바위 각시바위 석불바위 서방바위 곰바위 등 다양하고도 독특한 형상의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또한 규모가 큰 바위섬의 위쪽에는 갖가지의 늘푸른 초목들이 자라고 있어 한겨울에도 변함없이 싱그러운 초록빛을 띤다.
봄기운 가득한 해풍(海風)과 다사로운 햇살 아래 이처럼 빼어난 백도의 비경을 둘러보거나, 거문도 등대 주변의 동백꽃터널을 유유자적하게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3월의 거문도 여행에서는 더 바랄 게 없다.
참으로 멀고 아득한, 그래서 찾아가기도 수월치 않은 거문도를 이 즈음의 섬 여행지로 선택한 것도 실은 섬뜩하리만치 아리따운 동백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특히 거문도등대 초입의 동백숲은 여태껏 가본 곳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다. 서도의 수월산(196m)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거문도등대는 1905년 4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불을 밝힌 등대인데, 차가 다니는 길이 끝나는 지점부터 등대에 이르는 1.6km 가량의 산책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울창한 동백꽃길이다.
양쪽 길가와 머리 위쪽에는 앞다투어 피어난 동백꽃이 온통 핏빛이고, 길바닥엔 통째로 낙화(洛花)한 동백꽃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나뒹군다. 사방팔방이 온통 동백꽃이라 꽃멀미가 날 지경이다. 이따금씩 산허리를 가쁘게 돌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아득한 벼랑 위에 올라서기도 하는 숲길의 율동감도 아주 경쾌하다. 뿐만 아니라 성긴 숲 사이로 간간이 드러나는 쪽빛바다의 풍광도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행정구역상으로 전남 여수시 삼산면에 속하는 거문도는 사실 하나의 섬이 아니라 동도(東島) 서도(西島) 고도(古島) 등의 세 섬을 아우르는 지명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오랫동안 ‘삼도’(三島)라 불리기도 했다. 또한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라는 연도교(連島橋)로 연결돼 있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동도와 서도의 한중간쯤에 위치한 고도는 거문도를 비롯해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삼산면의 행정중심지 구실을 한다.
고도는 거문도의 세 섬 중에서 면적이 가장 작다. 그런데도 동서 양쪽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동도와 서도가 거센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바다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어 이미 조선시대 말에 제법 큰 규모의 항구가 들어섰다. 그 유명한 거문도사건의 주역인 영국군이 대규모 요새와 군항을 구축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곳은 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 여객선터미널 수협 등의 공공기관과 여관 식당 슈퍼 유흥주점 등이 몰려 있어 원도(遠島)의 항구답지 않게 번잡하다. 그래도 밤 9시만 되면 거리엔 인적이 뚝 끊기고, 적막한 포구에는 촘촘히 늘어선 고깃배들만이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 밤새도록 흐느적거린다. 거문도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면 이토록 한가로운 포구의 밤 풍경도 한 번 들여다볼 일이다.
거문도에서는 어딘가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고도를 제외한 두 섬은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 작지도 않을 뿐더러 대중교통편 또한 마땅치 않은 탓이다. 고도와 서도 전역을 운행하는 승합차형 택시가 있지만 기본요금(3100원)이 워낙 비싸서 주머니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은 선뜻 이용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택시도 두 대뿐이어서 고도 이외의 지역에서 전화로 불러올 경우에는 추가로 콜(call) 요금을 내야 한다. 또한 거문항에서 동도로 이동하려면 작은 연락선을 타야 하는데, 부정기적으로 운항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더군다나 동도에는 택시조차 없어서 천상 다리품을 팔며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그래도 거문도, 특히 고도에서의 사나흘 여정은 꿈결처럼 흘러간다. 어느 바닷가에서나 간단한 채비의 낚싯대만 드리우면 학꽁치 볼락 등의 입질이 끊이질 않는다. 게다가 섬의 면적이 작아서 어디라도 부담없이 걸어다닐 수 있고, 포구를 조금만 벗어나면 동백나무 늘어선 오솔길로 접어든다.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서면 고도 주변의 푸른 바다와 정겨운 갯마을들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느긋한 걸음으로 소요(逍遙)하면서 여심(旅心)을 돋우기엔 아주 제격이다. 특히 거문초등학교에서 영국군 묘지로 이어지는 비탈길의 주변에는 제철을 만난 동백꽃 유채꽃 수선화가 만발하고, 호수 같은 바다 저편에는 짙푸른 상록수림에 뒤덮인 수월산의 오롯한 자태가 시야에 들어온다.
고도의 거문항에서 동쪽으로 칠십 리쯤 떨어진 바다에는 거문도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꼽히는 백도가 있다. 망망한 쪽빛바다 위에 점점이 뿌려진 36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백도는 무인도인 덕택에 지금도 원시적인 자연미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백도는 다시 상백도와 하백도로 나뉘는데, 끝 모를 심연(深淵) 위로 솟구쳐 오른 바위섬들마다 매바위 병풍바위 각시바위 석불바위 서방바위 곰바위 등 다양하고도 독특한 형상의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또한 규모가 큰 바위섬의 위쪽에는 갖가지의 늘푸른 초목들이 자라고 있어 한겨울에도 변함없이 싱그러운 초록빛을 띤다.
봄기운 가득한 해풍(海風)과 다사로운 햇살 아래 이처럼 빼어난 백도의 비경을 둘러보거나, 거문도 등대 주변의 동백꽃터널을 유유자적하게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3월의 거문도 여행에서는 더 바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