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시대 ‘희망의 보컬’](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5/02/21/200502210500028_1.jpg)
블루스와 재즈의 아들인 리듬앤드블루스는 전국에 산재한 미군기지 사병클럽에서 머나먼 이국땅으로 배치받은 흑인 병사들의 심금을 달랬다. 마침내 1968년 신중현의 프로듀스에 의해 펄시스터즈의 데뷔 음반이 폭발하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허리띠를 졸라 맨 이 땅의 대중에게 강렬한 표정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우리는 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당대 리듬앤드블루스의 정상 자리를 순식간에 찬탈해버린 박효신의 두번째 앨범을 감상한다. 그가 이 새로운 세기에 등장한 최고의 보컬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갈래는 좀 다르지만 조용필 전인권 김현식 임재범으로 이어지는 명보컬리스트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것은, 그의 데뷔 앨범과 최근에 발표된 들국화 트리뷰트 앨범에서 역전의 맹장 권인하와 듀오를 이뤄 부른 ‘그것만이 내 세상’의 압도적인 호소력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절망의 시대 ‘희망의 보컬’](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5/02/21/200502210500028_2.jpg)
그러나 우리는 좀더 요구하고 싶어진다. 스타 작곡가들의 퍼레이드는 이 앨범의 피상적인 반짝임 이상의 카리스마를 분만하지 못하며(오히려 최재은이나 조우진 같은 신예 작곡가들의 곡이 훨씬 신선하다), 뉴욕의 스튜디오나 Take6 같은 미국의 뮤지션들의 참여 역시 감동의 핵심을 명쾌하게 관통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 어설프긴 했지만 99년 말 발표된 그의 데뷔 앨범에서 선보였던 자작곡들은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우리는 이 앨범의 풍요로운 볼륨에서 무엇인가 상실해버린 아우라를 원하는 것이다.
69년 흑인 솔 음악을 극적으로 소화한 박인수의 ‘봄비’와 임아영의 ‘미련’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흑인 음악 특유의 풀뿌리 같은 억센 생명력과 틀지워지지 않으려는 거센 자유의 혼이 아롱졌다. 어느 누가 이 절멸의 정점에서 조악한 녹음과 믹싱 수준을 책잡을 것인가.
요즘의 조류인 이 세련된 매끄러움은 하나의 트렌드일 뿐 흑인음악의 정통적인 정신과는 거리가 먼 요소들이다. 여기에 눈머는 한 우리는 풍요 속의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Urban R&B고 보사노바고 탱고고 펑키고 재즈고 다 좋다.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신인에게 너무 가혹한 요구일는지는 모르겠지만, 박효신에게는 성장논리보다 원점 회귀 본능이 앞으로 더 필요하다. 그럴 때만이 그는 그저 노래 잘 부르는 가수에서 벗어나 위기에 빠진 한국 대중음악의 대들보가 되어 줄 것이다. 그는 그런 자격이 충분히, 넘칠 정도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