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어느 들녘을 가로지르거나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늘 아늑하다. 너른 논밭과 야트막한 산자락, 은빛 물결 일렁이는 호수와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그 들과 산과 호수를 따라 기분 좋게 구불거리는 황톳길…. 발길 닿는 곳마다 이처럼 서정 넘치는 풍광을 마주하게 되면 절로 휘파람소리가 흘러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여정(旅程)만큼은 예외였다. 정초부터 시시때때로 내린 폭설로 인해 도로 곳곳이 빙판으로 변해버린 탓이다. 서울에서 진도까지의 천리길은 물론이거니와 짧은 뱃길을 지나 다도해의 한 섬에 당도한 뒤에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가녀리나마 봄기운이 느껴지던 남녘의 섬들도 둥덩산같이 푸짐한 눈에 묻혀서 온통 은세계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토록 풍성하고도 눈부신 은세계를, 그것도 눈 흔한 영동지방에서가 아니라 머나먼 남도의 바닷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횡재였다. 사흘 동안의 여정 내내 팽팽한 긴장감 못지않게 기대감과 설렘이 마음에 가득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진도 남동쪽 끄트머리의 작은 포구인 팽목항 앞바다에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섬들이 오롱조롱 떠 있다. 크고 작은 섬들에 둘러싸인 바다는 내륙의 호수처럼 고요하고,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은 커다란 담수호에 내려앉은 새떼와 흡사하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조도군도’(鳥島群島)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을 절로 깨닫게 하는 풍경이다. 특히 상조도의 도리산 정상에 올라서면 호수 같은 다도해 위에 새떼처럼 떠 있는 조도군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시야에 가득 찬다.
35개의 유인도와 119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이 조도군도의 어미섬은 하조도(下鳥島). 팽목항에서 남서쪽으로 16km 가량 떨어진 섬으로 조도군도에 딸린 154개 섬들 가운데서는 가장 크다. 조도면사무소를 비롯해 우체국 수협 농협 파출소 초-중교 등의 공공기관도 모두 이 섬의 창리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면소재지인 창리 일대에는 제법 너른 간척농경지가 펼쳐져 있어 낙도(落島) 특유의 고립감이나 궁벽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더욱이 하조도는 좁은 물목을 사이에 두고 400m쯤 떨어진 상조도와 ‘조도대교’로 연결돼 있어 실제보다도 훨씬 더 커 보인다.
그러나 상조도를 찾은 첫날에는 주민들의 모습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30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교통이 두절되다시피 한 마을이 여럿인 데다 기온마저 뚝 떨어져 섬 전체가 꽁꽁 얼어붙은 듯했다. 그래도 숙소를 찾아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눈길을 조심스레 헤치며 조도대교 건너편의 상조도로 향했다. 그러나 상조도의 맹성마을에서 갔던 길을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먼 객지에서 눈길에 미끄러져 생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일정을 하루 더 늘리자’는 생각조차 들 만큼 도로사정이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튿날은 날씨가 쾌청한 데다 수은주도 예년의 기온을 회복했다. 며칠 동안이나 섬 전체를 깊은 겨울잠에 빠뜨렸던 눈도 ‘봄눈 녹듯’ 빠르게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따금 볼을 스치는 바닷바람에도 따사로운 봄기운이 느껴지는 듯하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에서는 전날과는 확연히 다른 생동감이 엿보였다. 게다가 마침 설 대목을 목전에 둔 진도 읍내장날(2일, 7일)이라, 첫배를 타고 읍내에 나가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몹시 분주했다. 고깃배들이 들어선 포구와 물 빠진 갯벌에서도 모처럼 만에 일하러 나왔다는 주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육동마을 앞의 수루기나루에서 만난 장영태씨(56)도 때아닌 폭설과 매서운 추위 때문에 며칠 동안 방치해둔 덤장(낭장망)을 걷어올리러 나가려던 참이었다. 0.5t짜리 낡은 목선의 바닥에 고인 물을 퍼낸 장씨는 다시 한참을 시동이 좀체 걸리지 않는 경운기 엔진과 씨름했다. 동행하고 싶다며 올라탄 객(客)의 불안한 눈빛에 김씨는 “FRP(강화플라스틱) 배를 하나 주문해 놨다”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렵게 시동을 걸어 포구를 빠져나온 김씨의 배는 10여 분 만에 관매도가 손에 닿을 듯이 가까워보이는 앞바다에 당도했다. 조수(潮水)가 들고나는 길목에 가로놓인 그물을 걷어올리자 어른 팔뚝만한 농어부터 갓난애 손바닥보다도 작은 감성돔 새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어종과 크기의 물고기들이 잡혀 올라왔다. 하지만 김씨는 “오랜만의 어황(漁況)이 퍽 신통치 않다”며 못마땅해했다. 그러면서도 어린 물고기들은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다. 그런 김씨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문득 ‘수많은 섬들을 모두 끌어안은 다도해의 넉넉함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 여정(旅程)만큼은 예외였다. 정초부터 시시때때로 내린 폭설로 인해 도로 곳곳이 빙판으로 변해버린 탓이다. 서울에서 진도까지의 천리길은 물론이거니와 짧은 뱃길을 지나 다도해의 한 섬에 당도한 뒤에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가녀리나마 봄기운이 느껴지던 남녘의 섬들도 둥덩산같이 푸짐한 눈에 묻혀서 온통 은세계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토록 풍성하고도 눈부신 은세계를, 그것도 눈 흔한 영동지방에서가 아니라 머나먼 남도의 바닷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횡재였다. 사흘 동안의 여정 내내 팽팽한 긴장감 못지않게 기대감과 설렘이 마음에 가득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진도 남동쪽 끄트머리의 작은 포구인 팽목항 앞바다에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섬들이 오롱조롱 떠 있다. 크고 작은 섬들에 둘러싸인 바다는 내륙의 호수처럼 고요하고,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은 커다란 담수호에 내려앉은 새떼와 흡사하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조도군도’(鳥島群島)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을 절로 깨닫게 하는 풍경이다. 특히 상조도의 도리산 정상에 올라서면 호수 같은 다도해 위에 새떼처럼 떠 있는 조도군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시야에 가득 찬다.
35개의 유인도와 119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이 조도군도의 어미섬은 하조도(下鳥島). 팽목항에서 남서쪽으로 16km 가량 떨어진 섬으로 조도군도에 딸린 154개 섬들 가운데서는 가장 크다. 조도면사무소를 비롯해 우체국 수협 농협 파출소 초-중교 등의 공공기관도 모두 이 섬의 창리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면소재지인 창리 일대에는 제법 너른 간척농경지가 펼쳐져 있어 낙도(落島) 특유의 고립감이나 궁벽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더욱이 하조도는 좁은 물목을 사이에 두고 400m쯤 떨어진 상조도와 ‘조도대교’로 연결돼 있어 실제보다도 훨씬 더 커 보인다.
그러나 상조도를 찾은 첫날에는 주민들의 모습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30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교통이 두절되다시피 한 마을이 여럿인 데다 기온마저 뚝 떨어져 섬 전체가 꽁꽁 얼어붙은 듯했다. 그래도 숙소를 찾아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눈길을 조심스레 헤치며 조도대교 건너편의 상조도로 향했다. 그러나 상조도의 맹성마을에서 갔던 길을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먼 객지에서 눈길에 미끄러져 생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일정을 하루 더 늘리자’는 생각조차 들 만큼 도로사정이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튿날은 날씨가 쾌청한 데다 수은주도 예년의 기온을 회복했다. 며칠 동안이나 섬 전체를 깊은 겨울잠에 빠뜨렸던 눈도 ‘봄눈 녹듯’ 빠르게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따금 볼을 스치는 바닷바람에도 따사로운 봄기운이 느껴지는 듯하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에서는 전날과는 확연히 다른 생동감이 엿보였다. 게다가 마침 설 대목을 목전에 둔 진도 읍내장날(2일, 7일)이라, 첫배를 타고 읍내에 나가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몹시 분주했다. 고깃배들이 들어선 포구와 물 빠진 갯벌에서도 모처럼 만에 일하러 나왔다는 주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육동마을 앞의 수루기나루에서 만난 장영태씨(56)도 때아닌 폭설과 매서운 추위 때문에 며칠 동안 방치해둔 덤장(낭장망)을 걷어올리러 나가려던 참이었다. 0.5t짜리 낡은 목선의 바닥에 고인 물을 퍼낸 장씨는 다시 한참을 시동이 좀체 걸리지 않는 경운기 엔진과 씨름했다. 동행하고 싶다며 올라탄 객(客)의 불안한 눈빛에 김씨는 “FRP(강화플라스틱) 배를 하나 주문해 놨다”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렵게 시동을 걸어 포구를 빠져나온 김씨의 배는 10여 분 만에 관매도가 손에 닿을 듯이 가까워보이는 앞바다에 당도했다. 조수(潮水)가 들고나는 길목에 가로놓인 그물을 걷어올리자 어른 팔뚝만한 농어부터 갓난애 손바닥보다도 작은 감성돔 새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어종과 크기의 물고기들이 잡혀 올라왔다. 하지만 김씨는 “오랜만의 어황(漁況)이 퍽 신통치 않다”며 못마땅해했다. 그러면서도 어린 물고기들은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다. 그런 김씨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문득 ‘수많은 섬들을 모두 끌어안은 다도해의 넉넉함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