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저 한 개 혹은 두 개씩 편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미소로 인사할 뿐. 그러면 그는 노릇노릇 따뜻하게 잘 구워진 호떡을 손가락 수만큼 화덕에서 꺼내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건넨다.
신촌 연세대 입구 횡단보도 앞에서 10년째 ‘한국호떡’을 팔고 있는 노점상 황양묵씨(51). 기름에 부치는 중국식이 아니라 화덕에서 구워 담백한 한국식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소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선천성 청각장애인이다. 밀가루가 흩뿌려진 반죽판을 공책 삼아 그가 글로 써서 ‘이야기’해 주는 삶.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그가 서울에 온 것은 29년 전, 같은 동네에 살던 동갑내기 아내를 만나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한 뒤였다. 역시 청각장애인인 아내는 첫아이를 낳고 혹시 아들이 말을 배우지 못할까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지만 잘 자라준 아이들은 어느새 어엿한 사회인이다. 말보다 수화에 더 익숙한 자녀들이 밤마다 이제 일을 그만두시라고 ‘손짓’해도 그는 오후 4시면 어김없이 소형 트럭을 몰고 이 자리에 와 불을 지핀다.
장사를 시작한 이래 푸짐하게 부풀어오른 그의 500원짜리 ‘공갈 호떡’은 오가는 캠퍼스 커플들의 달콤한 사랑이나, 밤늦게 집에 돌아가는 여고생의 출출함을 달래주는 군것질거리가 되어주었다.
어떻게 하면 호떡이 그렇게 풍선처럼 부푸는지 묻는 기자에게 “영업상의 비밀”이라며 그저 웃기만 한다. 바로 그 웃음을 언제라도 단돈 500원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또 다른 행운이다.
신촌 연세대 입구 횡단보도 앞에서 10년째 ‘한국호떡’을 팔고 있는 노점상 황양묵씨(51). 기름에 부치는 중국식이 아니라 화덕에서 구워 담백한 한국식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소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선천성 청각장애인이다. 밀가루가 흩뿌려진 반죽판을 공책 삼아 그가 글로 써서 ‘이야기’해 주는 삶.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그가 서울에 온 것은 29년 전, 같은 동네에 살던 동갑내기 아내를 만나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한 뒤였다. 역시 청각장애인인 아내는 첫아이를 낳고 혹시 아들이 말을 배우지 못할까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지만 잘 자라준 아이들은 어느새 어엿한 사회인이다. 말보다 수화에 더 익숙한 자녀들이 밤마다 이제 일을 그만두시라고 ‘손짓’해도 그는 오후 4시면 어김없이 소형 트럭을 몰고 이 자리에 와 불을 지핀다.
장사를 시작한 이래 푸짐하게 부풀어오른 그의 500원짜리 ‘공갈 호떡’은 오가는 캠퍼스 커플들의 달콤한 사랑이나, 밤늦게 집에 돌아가는 여고생의 출출함을 달래주는 군것질거리가 되어주었다.
어떻게 하면 호떡이 그렇게 풍선처럼 부푸는지 묻는 기자에게 “영업상의 비밀”이라며 그저 웃기만 한다. 바로 그 웃음을 언제라도 단돈 500원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또 다른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