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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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열린 공간으로 화려한 변신

조용한 환경·값싼 입지조건에 너도나도…박물관·수련시설·연극무대 등 특급 재활용

  • 입력2005-06-22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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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교’… 열린 공간으로 화려한 변신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고정3리 고정초등학교 우음분교. 여류화가 경정옥씨(40) 가족이 이곳에 들어온 지난해 8월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2년 넘게 잡초와 뱀의 천국으로 방치됐던 500여평의 폐교는 이제 잔디가 깔린 아담한 아틀리에로 단장됐다.

    서울에서 두시간여 거리지만 지난 93년 시화지구 방조제 공사 이전 섬이었던 관계로 우음도는 지금도 오지 중의 오지다. “그림은 무슨… 그냥 여기 사는 것이 좋아요.” 경씨는 화가라기보다 우음마을 16가구의 선생님이자 의사이고 이장이다. 요즘은 무농해 농법의 전파자 노릇을 하는 ‘영농후계자’ 역할도 한다. 평생 단독주택에도 살아보지 못한 ‘아파트족’인 경씨는 분교 임대 후 고추와 포도농사를 지으며 우음도의 풍광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햇볕에 그을려 기미 가득한 얼굴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이제 완벽한 우음도 주민이 됐다”고 수줍게 웃는다. 우음도의 아이들은 2년 동안 잃었던 마을 운동장을 이렇게 해서 되찾았다.

    폐교 2000여개 매각이나 임대

    폐교가 살아나고 있다. ‘교육생산성의 저하’라는 명목 아래 버려졌던 폐교는 이제 더 이상 ‘닫힌 학교’가 아니다. 학생들이 사라진 공간은 예술과 전통, 첨단기술이 숨쉬는 ‘열린 공간’ 으로 탈바꿈했다. 황량한 폐교가 창작촌으로, 박물관으로, 연구소로 변모하고 있다. 한때는 청소년 탈선공간의 최적합지였지만 이제 청소년들의 ‘스트레스 해소장’(수련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82년부터 올 8월말 현재까지 문을 닫은 학교는 전국적으로 2745개 소. 이중 무려 2000여개의 학교가 매각이나 임대를 통해 재활용되고 있다. 교육용이나 청소년 수련시설로 이용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지만, 가장 눈에 띄게 부각되는 변모가 바로 예술촌 또는 창작촌의 입성이라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환경과 전원적 분위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작업실이 폐교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



    “프랑스 파리에도 이런 작업실을 얻긴 힘들죠.” 경북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 대산초등학교 운동장. 10여년간 파리에서 활동하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귀국한 이영배씨(44)가 작품 활동에 쓰기 위해 내다놓은 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교정을 차지하고 있다.

    이씨가 4명의 동료작가들과 함께 들어와 ‘대산초등 스튜디오’를 꾸민 것은 지난해 6월의 일이다. 화랑 ‘시공’의 멤버였던 이들은 값비싸고 소란스런 도심의 작업장을 피해 한달 내내 전국을 돌아다니다 폐교인 이곳을 발견했다. 대구 도심에서 한시간 반 남짓의 거리에다 교통 여건도 좋았고 이씨의 고향이 청도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1층 7개 교실 전체를 5명의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이곳은 창작공간 자체가 하나의 현대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지역주민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뭔가를 생각했죠. 그래서 얻은 답이 ‘놀기’였어요. 결국 미술이란 원초적인 것, 느끼는 것이니까요.” 이씨는 지난 여름방학 일주일 동안 ‘작가들과 놀기’ 행사를 지역 주민과 가졌다. 미술은 ‘체험 자체’라는 이씨의 평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광주와 전주, 대구 인근에 특히 이런 집단 창작촌이 많은 것은 상대적으로 도심과 가까워 교통 여건이 좋은 데도 학생수가 모자라 문을 닫은 폐교가 주위에 많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폐교가 계곡을 끼고, 풍광이 수려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이들의 발길을 머물게 했다.

    이들 창작촌이 모두 개인의 필요에 따라 폐교를 구입하거나 임대한 사례라면 경남 밀양시는 지방자치단체가 폐교 이용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경우다. 밀양시는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 아래 밀양시 교육청으로부터 세군데의 폐교를 무상 임대받아 이들 공간을 예술과 문화의 명소로 키워냈다.

    경남 밀양시 부북면 가살리 월산초등학교 5000여평의 폐교 교정에 자리잡은 ‘밀양연극촌’은 이미 주말마다 전국에서 구경꾼이 몰려올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나무들로 둘러싸인 야외무대 ‘숲의극장’이 운동장 한쪽에 만들어졌고 각 교실은 연습실, 무대제작실, 의상제작실, 춤꾼 하보경기념관으로 개조됐다. 연희단거리패 배우 50명이 합숙할 수 있는 숙소가 교실마다 꾸며졌다. 연극과 관련된 모든 것이 이 안에 모였다.

    폐교 이전 학생들의 급식소는 100여명에 달하는 전체 식구들의 취사를 도맡는 식당이 됐다. 아담한 극장 카페가 들어선 자리는 창고였던 자리. 400여명이 함께 앉을 수 있도록 통나무 의자를 들여놓은 ‘숲의극장’ 야외무대는 지역주민에게 단연 인기다. 지난 5월11일부터 매 주말 낮 밤으로 꾸며지는 연희단거리패의 고정 레퍼토리와 신작 공연에는 인근 주민들과 밀양시민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팬들이 몰려와 넓은 운동장이 주차장으로 모자랄 정도다.

    “동네 주민을 위한 연습 공연이었는데 워낙 인기가 좋아 정규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았어요. 춤추시는 할아버지, 술꾼들, 그 누구도 올 수 있는 공간입니다. 밀양시장 부부도 고정팬이죠.” 하용부 밀양연극촌장(배우)의 말이다. 하씨는 학춤 인간문화재 하보경씨의 친손자로 이 마을이 고향이면서 밀양백중놀이 전수자이기도 하다. 밀양 연극촌의 이사장인 손숙씨(배우,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도 이 마을이 고향.

    밀양시는 지난해 9월1일 이 학교가 폐교되자 시교육청으로부터 학교를 넘겨받아 연극촌에 5년간 무상임대한다는 파격적 조치를 단행했다. 고향에서 뿌리를 내리겠다는 이들의 포부와 밀양시장의 문화적 식견이 전국적 ‘연극 명소‘를 만들어 낸 것이다.

    주변의 절경으로 잘 알려진 강원도의 영월 책박물관이 폐교의 박물관 활용 신호탄이었다면 밀양시 초동면 범평초등학교에 자리잡은 미리벌 박물관은 폐교를 가장 성공적으로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실들에 가득 찬 2400점의 민속자료, 주위를 둘러싼 대나무 울타리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운동장, ‘교실이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라는 감탄까지 자아내게 하는 토종카페, 그곳의 매실차, 등잔, 가야금 소리, 맷돌방아까지… 한번 놀러온 사람들은 쉬 발길을 떼지 못한다. 운동장 한쪽에 만들어진 텃밭은 박물관과 마을 주민들을 연결하는 만남의 장(場)이다. 성재정관장(57)은 마을주민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배우면서 ‘박물관’이 주민 전체의 소유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98년 9월 문을 닫은 폐교가 1년 만에 ‘박물관’으로 변하기까지는 성관장의 희생이 컸다. 박물관이 공공적인 성격이 크고, 교육의 효과도 있지만 교육 당국은 지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모든 것을 성관장 부부가 이뤄냈다. 당국의 이러한 홀대 속에서도 미리벌 박물관은 지난 9월15일부터 경남 창원시 성산아트홀에서 민속자료 순회전시회를 열고 있다. 10월에는 부산, 11월에는 울산, 12월에는 대구를 돌아다니며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미리벌 박물관의 특징은 관람객이 단 한 사람이라도 관장이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 직접 설명을 해준다는 데 있죠.” 성관장은 지난 여름방학 동안 단체로 다녀간 수천명의 학생들 때문에 가을을 맞아서도 목이 쉬어 있다. 성관장은 “폐교 시설 활용의 성공 여부는 결국 지역주민의 마음에 달렸다”고 단언한다.

    지난해 말 제정된 ‘폐교지원에 관한 특별법’이나 ‘지방재정법’ 등 어느 법률에도 주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시설의 매각이나 임대는 금지되어 있다. 매매나 임대시에는 반드시 마을 주민 전체의 동의를 얻도록 못박고 있는 것.

    하지만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난개발’의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부터 교통 여건이 그럭저럭 갖추어진 폐교의 경우 임대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 일부 폐교는 입찰 경쟁률이 6대 1까지 이르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교육부 지방교육재정과 강구도 서기관은 “일부 폐교는 투기 대상이 되기까지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무리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 해도 주민들이 폐교를 농촌현실에도 맞지 않는 영리시설이나 혐오시설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는 우려는 사실상 기우”라고 말한다. 비록 문을 닫았다 하더라도 농촌지역 오지 마을 주민들에겐 폐교가 그들의 추억과 땀이 묻어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교육재정 확보를 위해 개발에 나섰던 교육 당국이 물러서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문화와 문명, 복지의 사각지대인 농촌공간에서 학교통폐합은 학생들을 빼앗아 갔을 뿐 아니라 마을의 ‘해체’를 더욱 촉진시키고 있다. 그래서 ‘폐교 되살리기’는 곧 ‘마을 되살리기’란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폐교가 학교가 되는 그날까지 꼭 그대로 보존할 겁니다.” 폐교의 빈자리를 채울 시설이 어떤 종류이든, 그 시설이 마을을 살리고, 그래서 학생들이 돌아와 ‘폐교’가 ‘학교’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폐교마을 주민들이 끝내 버리지 못하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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