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 한국 양궁의 신화는 9월22일 남자 선수들이 12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마무리됐다. 지난 19일부터 시드니 올림픽파크 양궁장에 몰아친 태극기의 물결과 선수들의 ‘눈물바람’도 이로써 대미를 장식했다.
눈물바람을 시작한 선수는 ‘독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침착한(혹은 냉정한) 김수녕(29·예천군청)이었다. 19일 단식 준결승에서 ‘새카만’ 후배 윤미진에 패한 다음 관중석 아래쪽에서 울어버린 것. 김수녕의 눈물을 두고 한국기자단에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후배에게 진 것이 억울해서 울었다” “6년간의 공백을 딛고 재기한 기쁨으로 흘린 눈물이다” “지원(6세)이와 정훈(2세)이가 생각나서 울었을 것이다” 등등. 어쩌면 모두가 정답일 수 있을 것이다.
김수녕의 눈물을 시작으로 금메달 2관왕인 윤미진(17·경기체고)이 울었고, 여자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딸 때부터 울기 시작한 김남순(20·인천시청)은 남자단체전 금메달의 순간까지 연일 눈시울을 붉혀 ‘수도꼭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여고생 궁사’에서 ‘엄마 궁사’가 되기까지 12년 동안 김수녕은 참 많은 메달을 땄다. 서울올림픽에서 2관왕에 올랐고,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개인 은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시드니올림픽에서 개인 동메달과 단체 금메달을 얻었으니 그녀가 획득한 메달을 헤아리려면 다섯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김수녕의 금메달 네 개가 한국기록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대(射臺)에 서면 오직 과녁을 향해 온몸으로 화살을 쏠 뿐입니다. 결과는 화살을 다 쏜 다음에 얻는 것이니까요”라는 말로 단독 인터뷰의 말문을 연 김수녕은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어제와 오늘, 또 내일을 얘기했다. 바로 옆방에서는 ‘금 노다지’를 캐낸 남녀 양궁선수단이 축배의 잔을 들고 있었다.
“서울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르고 보니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땐 참 겁없이 쏘았던 것 같습니다. 2연패를 노린 바르셀로나에서 또 금메달을 목에 걸고 보니 이젠 그만둘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93년에 은퇴했지요. 그 다음 해에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아서 기르고….”
“6년간의 공백을 딛고 99년 10월에 사대로 돌아와 보니 많은 것이 변해 있더군요. 주변에서 어렵겠다고 했지만 나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긍정적인 사고가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어렵다는 국내 선발전을 통과하도록 해준 것 같습니다. 마지막 여섯명으로 압축됐을 때는 마음 안쪽에서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일목요연하게 자신의 지난 날들을 정리한 김수녕이 친정에 맡기고 온 아이들 얘기를 말하는 대목에서는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특유의 침착함 때문에 외신기자들로부터 ‘철녀’라는 말까지 듣고 있지만 그녀는 ‘돌아온 신궁’ 이전에 두 아이의 엄마였다.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지만 금메달리스트이기 때문에 폐막식에 참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난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서 일하는 엄마들을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습니다. 금메달리스트나 생업에 매달려 있는 주부들이나….”
윤미진과 김남순은 입만 열면 “언니 덕분에”라고 말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홍종 한국양궁협회 회장은 “김수녕 선수가 여자 단체전에서 맨 먼저 활을 쏜 다음 바람의 방향을 후배들에게 알려주는 등 언니의 몫을 톡톡히 했습니다. 또한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순서를 바꾸어 마지막 사수로 나서서 마무리하는 역할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고 말했다.
“4년 뒤에 열리는 아테네올림픽에 도전할 생각입니다”는 말을 끝으로 뒤늦게 축하파티에 합세한 김수녕에게 장영술 감독이 음료수 한 잔을 따라주면서 “참 잘 견뎌냈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눈물바람을 시작한 선수는 ‘독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침착한(혹은 냉정한) 김수녕(29·예천군청)이었다. 19일 단식 준결승에서 ‘새카만’ 후배 윤미진에 패한 다음 관중석 아래쪽에서 울어버린 것. 김수녕의 눈물을 두고 한국기자단에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후배에게 진 것이 억울해서 울었다” “6년간의 공백을 딛고 재기한 기쁨으로 흘린 눈물이다” “지원(6세)이와 정훈(2세)이가 생각나서 울었을 것이다” 등등. 어쩌면 모두가 정답일 수 있을 것이다.
김수녕의 눈물을 시작으로 금메달 2관왕인 윤미진(17·경기체고)이 울었고, 여자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딸 때부터 울기 시작한 김남순(20·인천시청)은 남자단체전 금메달의 순간까지 연일 눈시울을 붉혀 ‘수도꼭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여고생 궁사’에서 ‘엄마 궁사’가 되기까지 12년 동안 김수녕은 참 많은 메달을 땄다. 서울올림픽에서 2관왕에 올랐고,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개인 은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시드니올림픽에서 개인 동메달과 단체 금메달을 얻었으니 그녀가 획득한 메달을 헤아리려면 다섯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김수녕의 금메달 네 개가 한국기록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대(射臺)에 서면 오직 과녁을 향해 온몸으로 화살을 쏠 뿐입니다. 결과는 화살을 다 쏜 다음에 얻는 것이니까요”라는 말로 단독 인터뷰의 말문을 연 김수녕은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어제와 오늘, 또 내일을 얘기했다. 바로 옆방에서는 ‘금 노다지’를 캐낸 남녀 양궁선수단이 축배의 잔을 들고 있었다.
“서울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르고 보니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땐 참 겁없이 쏘았던 것 같습니다. 2연패를 노린 바르셀로나에서 또 금메달을 목에 걸고 보니 이젠 그만둘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93년에 은퇴했지요. 그 다음 해에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아서 기르고….”
“6년간의 공백을 딛고 99년 10월에 사대로 돌아와 보니 많은 것이 변해 있더군요. 주변에서 어렵겠다고 했지만 나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긍정적인 사고가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어렵다는 국내 선발전을 통과하도록 해준 것 같습니다. 마지막 여섯명으로 압축됐을 때는 마음 안쪽에서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일목요연하게 자신의 지난 날들을 정리한 김수녕이 친정에 맡기고 온 아이들 얘기를 말하는 대목에서는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특유의 침착함 때문에 외신기자들로부터 ‘철녀’라는 말까지 듣고 있지만 그녀는 ‘돌아온 신궁’ 이전에 두 아이의 엄마였다.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지만 금메달리스트이기 때문에 폐막식에 참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난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서 일하는 엄마들을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습니다. 금메달리스트나 생업에 매달려 있는 주부들이나….”
윤미진과 김남순은 입만 열면 “언니 덕분에”라고 말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홍종 한국양궁협회 회장은 “김수녕 선수가 여자 단체전에서 맨 먼저 활을 쏜 다음 바람의 방향을 후배들에게 알려주는 등 언니의 몫을 톡톡히 했습니다. 또한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순서를 바꾸어 마지막 사수로 나서서 마무리하는 역할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고 말했다.
“4년 뒤에 열리는 아테네올림픽에 도전할 생각입니다”는 말을 끝으로 뒤늦게 축하파티에 합세한 김수녕에게 장영술 감독이 음료수 한 잔을 따라주면서 “참 잘 견뎌냈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