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8일 서울지법 민사합의50부(재판장 강병섭 부장판사)는 “일반사회 과목교사에게 국사 과목까지 가르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낸 한 고등학교 교사의 국사교과 수업배정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전공 외에 비전공 과목까지 두 과목 이상 가르치는‘상치(相馳) 교사’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자신이 잘 모르는 과목을 가르치느라 진땀을 흘리는 교사와, 그런 교사의 강의를 짜증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학생들을 생각하면 이번 결정은 참으로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재판부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기에 앞서 사건의 이면에 있는 복잡한 변수들을 읽어야 한다. 이 사건이야말로 한국 교육의 온갖 뒤틀린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단을 위해 먼저 교과와 영역, 과목의 개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회 교과를 중심으로 설명하면, 현재 고등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제6차 교육과정은 사회 교과와 윤리 교과가 구별돼 있다. 그리고 사회 교과에 일반사회 역사 지리라는 3개의 영역이 있다. 학생들이 배우는 과목은 다시 공통사회(통합교과)와 국사, 그리고 선택과목인 정치경제 세계사 사회문화 세계지리로 나뉜다.
중학교에는 사회와 윤리 교과가 있고 사회 안에 일반사회 역사 지리 영역이 있다. 과목은 중학사회(통합교과)와 국사 도덕으로 편성돼 있다. 이런 과목 구분을 따르면 국사와 세계사의 거리가 일반사회와 세계사의 거리보다 멀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이렇게 복잡한 모양을 띠게 된 것은 바로 왜곡된 정치 상황과 집단 이기주의 때문이다. 유독 우리나라만 윤리(도덕) 교과를 독립 교과로 가르치게 된 것은 순전히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다. 1968년 1·21 무장공비 사태와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의 영향으로 반공 도덕을 강조하면서 사회과로부터 떨어져나와 윤리(도덕) 교과와 과목이 생겨났다.
국사는 유신 직후 “국적 있는 교육” 운운하며 사회 교과로부터 분리됐다가 제6차 교육과정부터 사회 교과 안으로 새로 편입됐지만 그 비중이 다른 사회과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세계사는 국사와 달리 일찌감치 사회 교과 안에 들어와 있다.
문제는 사범대학에서 시작된다. 각 대학은 일반사회와 역사, 지리를 구분해 교육과정을 설치하고 따로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그나마 사회과 교육과정이 미완성인 채로 통합됐지만, 대학이 이렇게 따로 교사를 양성함으로써 자기 전공 이외에는 가르칠 수 없는 교사들이 애꿎은 한숨만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제5차 교육과정 이후 일반사회 교사에게 세계사나 지리 과목 연수를 하는 등 통합사회과 교육과정 연수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나 성과는 크지 않은 것 같다.
내용면에서 각 교과나 과목 간 거리도 판단하는 데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 현실적으로 일반사회 교사가 윤리를 가르치는 것이 국사를 가르치는 것보다 쉽다. 그리고 국사를 가르치는 것이 세계사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좀더 쉽다. 그럼에도 영역 구분상 일반사회 교사에게는 윤리보다 국사가 더 가까이 있으며, 국사보다 세계사가 더욱 가까이 있다.
그렇다면 다음 상황이 과연 상치 교사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자.
1. 과목이 같은데 영역이 다른 경우
①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고등학교 공통사회 과목 내에서 세계사 영역을 가르치는 것은 상치과목 교사에 해당하는가?
②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중학 사회 과목 내에서 세계사 영역을 가르치는 것은 상치과목 교사에 해당하는가?
2. 교과는 같은데 과목이 다른 경우
①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고등학교 국사를 가르치는 경우.
②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중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치는 경우.
3. 교과는 구별되지만 역사적 연원이 같고 내용도 비슷한 경우
①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고등학교 윤리를 가르치는 경우.
②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중학교 윤리를 가르치는 경우.
이번 재판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2-①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번 판결을 따르면 위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이를 다른 교과로 확대해 보자. 같은 논리로 국어와 한문이 분리되고, 물리 생물 화학 지구과학이 분리되고, 가정과 기술이 분리돼 있을 경우 다른 영역을 가르치면 모두 상치과목 교사가 된다. 즉 국어교사가 한문을 가르치면 상치과목이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다. 정치적 이유와 교과 이기주의 때문에 이토록 많은 교과목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학생들은 “무거운 책가방”을 들어야 한다. 또 너무 많은 과목을 한꺼번에 공부해야 한다. 선진국 고등학교가 불과 6∼8개 과목만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아이들의 부담을 줄이려면 학교 교육과정이 통합되고, 교사 양성기관의 교육과정도 통합되고, 교사들의 전공도 통합되거나 복수 전공이 늘어나야 해결된다.
이번 결정대로 만약 모든 상치과목 교사들이 가처분 신청을 낸다면 2학기에는 대부분의 학교가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특히 농촌 학교들은 거의 100% 문을 닫아야 한다. 이 문제를 어찌할 것인가.
단기간의 혼란이 있겠지만 먼 안목으로 보면 이번 결정은 옳다. 학생 1인당 교사 수를 열악한 상황으로 만들어간 교육재정, 리더십이 없어 교육과정 통합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육부, 변화할 줄 모르는 교사 양성기관, 교과 이기주의에 빠져 통합은 절대 안 된다는 교육전문가 집단, 학교의 자율성을 살려 다른 학교와의 제휴를 통해 이 문제를 풀 만도 하건만 학교 안에 갇혀 편의행정을 하는 학교장, 엄청난 예산을 들여 연수를 하고도 교사들의 의식을 바꾸지 못하는 연수기관이 함께 빚어낸 결정이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교사의 용기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단지 2학기 수업의 어려움을 회피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좀더근본적인 개혁을 성취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한 학교의 한 교사가 내린 결단이 우리 교육 발전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교육재정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교사 수를 늘려야 한다. 빈곤한 학교에 지나치게 많은 책무성을 두려는 현재의 교육정책에서 벗어나 빈곤 상황부터 해결해 놓고 학교의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반사회 교사가 국사를 가르치는 것이 용납되려면 더 이상의 투자는 불가하다는 인식이 들 정도로 정부가 먼저 의지를 보여야 한다.
둘째, 교육과정에 대한 근본적 수술을 해야 한다. 특히 군사 권위주의가 만든 잘못된 분과 교육과정을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역사 바로 세우기 입장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셋째, 교사양성 및 연수기관의 자기 개혁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기관의 존재 이유는 학교 교육과정 완수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교육과정 변화에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켜야 옳다.
넷째, 학교장 및 교사들의 자기 혁신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학교의 문제들을 놓고 주어진 여건 탓을 하고 불평할 것만 아니라 여러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안 되면 당국과 싸워서라도 현장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 길 이외에는 왕도가 없다.
자신이 잘 모르는 과목을 가르치느라 진땀을 흘리는 교사와, 그런 교사의 강의를 짜증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학생들을 생각하면 이번 결정은 참으로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재판부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기에 앞서 사건의 이면에 있는 복잡한 변수들을 읽어야 한다. 이 사건이야말로 한국 교육의 온갖 뒤틀린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단을 위해 먼저 교과와 영역, 과목의 개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회 교과를 중심으로 설명하면, 현재 고등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제6차 교육과정은 사회 교과와 윤리 교과가 구별돼 있다. 그리고 사회 교과에 일반사회 역사 지리라는 3개의 영역이 있다. 학생들이 배우는 과목은 다시 공통사회(통합교과)와 국사, 그리고 선택과목인 정치경제 세계사 사회문화 세계지리로 나뉜다.
중학교에는 사회와 윤리 교과가 있고 사회 안에 일반사회 역사 지리 영역이 있다. 과목은 중학사회(통합교과)와 국사 도덕으로 편성돼 있다. 이런 과목 구분을 따르면 국사와 세계사의 거리가 일반사회와 세계사의 거리보다 멀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이렇게 복잡한 모양을 띠게 된 것은 바로 왜곡된 정치 상황과 집단 이기주의 때문이다. 유독 우리나라만 윤리(도덕) 교과를 독립 교과로 가르치게 된 것은 순전히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다. 1968년 1·21 무장공비 사태와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의 영향으로 반공 도덕을 강조하면서 사회과로부터 떨어져나와 윤리(도덕) 교과와 과목이 생겨났다.
국사는 유신 직후 “국적 있는 교육” 운운하며 사회 교과로부터 분리됐다가 제6차 교육과정부터 사회 교과 안으로 새로 편입됐지만 그 비중이 다른 사회과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세계사는 국사와 달리 일찌감치 사회 교과 안에 들어와 있다.
문제는 사범대학에서 시작된다. 각 대학은 일반사회와 역사, 지리를 구분해 교육과정을 설치하고 따로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그나마 사회과 교육과정이 미완성인 채로 통합됐지만, 대학이 이렇게 따로 교사를 양성함으로써 자기 전공 이외에는 가르칠 수 없는 교사들이 애꿎은 한숨만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제5차 교육과정 이후 일반사회 교사에게 세계사나 지리 과목 연수를 하는 등 통합사회과 교육과정 연수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나 성과는 크지 않은 것 같다.
내용면에서 각 교과나 과목 간 거리도 판단하는 데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 현실적으로 일반사회 교사가 윤리를 가르치는 것이 국사를 가르치는 것보다 쉽다. 그리고 국사를 가르치는 것이 세계사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좀더 쉽다. 그럼에도 영역 구분상 일반사회 교사에게는 윤리보다 국사가 더 가까이 있으며, 국사보다 세계사가 더욱 가까이 있다.
그렇다면 다음 상황이 과연 상치 교사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자.
1. 과목이 같은데 영역이 다른 경우
①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고등학교 공통사회 과목 내에서 세계사 영역을 가르치는 것은 상치과목 교사에 해당하는가?
②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중학 사회 과목 내에서 세계사 영역을 가르치는 것은 상치과목 교사에 해당하는가?
2. 교과는 같은데 과목이 다른 경우
①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고등학교 국사를 가르치는 경우.
②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중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치는 경우.
3. 교과는 구별되지만 역사적 연원이 같고 내용도 비슷한 경우
①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고등학교 윤리를 가르치는 경우.
②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중학교 윤리를 가르치는 경우.
이번 재판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2-①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번 판결을 따르면 위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이를 다른 교과로 확대해 보자. 같은 논리로 국어와 한문이 분리되고, 물리 생물 화학 지구과학이 분리되고, 가정과 기술이 분리돼 있을 경우 다른 영역을 가르치면 모두 상치과목 교사가 된다. 즉 국어교사가 한문을 가르치면 상치과목이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다. 정치적 이유와 교과 이기주의 때문에 이토록 많은 교과목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학생들은 “무거운 책가방”을 들어야 한다. 또 너무 많은 과목을 한꺼번에 공부해야 한다. 선진국 고등학교가 불과 6∼8개 과목만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아이들의 부담을 줄이려면 학교 교육과정이 통합되고, 교사 양성기관의 교육과정도 통합되고, 교사들의 전공도 통합되거나 복수 전공이 늘어나야 해결된다.
이번 결정대로 만약 모든 상치과목 교사들이 가처분 신청을 낸다면 2학기에는 대부분의 학교가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특히 농촌 학교들은 거의 100% 문을 닫아야 한다. 이 문제를 어찌할 것인가.
단기간의 혼란이 있겠지만 먼 안목으로 보면 이번 결정은 옳다. 학생 1인당 교사 수를 열악한 상황으로 만들어간 교육재정, 리더십이 없어 교육과정 통합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육부, 변화할 줄 모르는 교사 양성기관, 교과 이기주의에 빠져 통합은 절대 안 된다는 교육전문가 집단, 학교의 자율성을 살려 다른 학교와의 제휴를 통해 이 문제를 풀 만도 하건만 학교 안에 갇혀 편의행정을 하는 학교장, 엄청난 예산을 들여 연수를 하고도 교사들의 의식을 바꾸지 못하는 연수기관이 함께 빚어낸 결정이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교사의 용기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단지 2학기 수업의 어려움을 회피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좀더근본적인 개혁을 성취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한 학교의 한 교사가 내린 결단이 우리 교육 발전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교육재정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교사 수를 늘려야 한다. 빈곤한 학교에 지나치게 많은 책무성을 두려는 현재의 교육정책에서 벗어나 빈곤 상황부터 해결해 놓고 학교의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반사회 교사가 국사를 가르치는 것이 용납되려면 더 이상의 투자는 불가하다는 인식이 들 정도로 정부가 먼저 의지를 보여야 한다.
둘째, 교육과정에 대한 근본적 수술을 해야 한다. 특히 군사 권위주의가 만든 잘못된 분과 교육과정을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역사 바로 세우기 입장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셋째, 교사양성 및 연수기관의 자기 개혁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기관의 존재 이유는 학교 교육과정 완수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교육과정 변화에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켜야 옳다.
넷째, 학교장 및 교사들의 자기 혁신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학교의 문제들을 놓고 주어진 여건 탓을 하고 불평할 것만 아니라 여러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안 되면 당국과 싸워서라도 현장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 길 이외에는 왕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