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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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그들의 국적은 모두 대한민국

비전향 장기수만 북송, ‘호혜원칙’ 어긋나…6·15 공동선언서 빠져 해결까지 ‘험난한 길’

  • 입력2005-06-14 13: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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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북자… 그들의 국적은 모두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께 요청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납북자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납북자 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뤄주십시오. 납북자들의 생사 확인을 즉시 해주십시오. 납북자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비전향 장기수 63명의 북송 날짜(9월2일)가 최종 확정된 다음날인 8월24일, 납북자 가족들은 ‘납북자 가족모임’ 명의의 탄원서를 청와대 민원실에 제출했다. 이들은 “남북한 당국의 체면도, 과거 냉전시절 치열하게 전개됐던 체제경쟁도 하늘이 부여한 인권을 대신할 순 없다”고 호소했다.

    휴전 이후 3756명 … 생존 454명, 국군포로도 343명

    이산가족 교환상봉의 흥분이 다소 가라앉으면서 납북자 가족들이 남북 모두에게 ‘잊힌 존재’로 남아 있는 그들의 피붙이 되찾기에 나선 것이다. 또 납북자 및 국군포로에 대한 각계의 송환 여론이 거세짐에 따라 언론도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해당 가족들에게 연일 조명 세례를 퍼부으며 제각기 앞으로의 전망과 결과를 점치는 등 부산한 분위기다.

    현재 정부가 파악 중인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지난 1월 통일연구원이 펴낸 ‘북한인권백서 2000’에 따르면 1953년 휴전 이후 납북자는 3756명(사망자 포함). 이중 아직까지 북에 억류 중인 사람은 454명이다. 어민이 407명으로 대다수를 점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대한항공(KAL)기 납북자 12명(69년), 해군 방송선 I`-`2정 납북자 20명(70년), 기타 해외 납북자 등이다. 또 1만9000여명(국방부 추산)으로 알려진 미귀환 포로(전쟁 중 실종자) 중 귀순자나 탈북자 진술 등을 통해 확인된 생존 국군포로도 343명에 이른다.



    비전향 장기수 송환이 일단락된 만큼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는 당초 합의사항에 따라 무리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납북자`-`국군포로 송환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8월21일 박재규 통일부 장관은 “8월29일부터 3일간 평양에서 열리는 2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이 의제로 채택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번 회담에서 정부의 확실한 입장을 북측에 공식 전달키로 한 것이다.

    외견상으로는 최근의 비등한 여론을 적절히 수렴한 듯해 보이지만 산적한 난제들을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갈 것인지는 미지수다. 장기수 북송은 지난 6월30일의 남북적십자회담 합의 당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위한 면회소 설치의 전제조건으로 북측이 요구한 사항.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합의문에 없는 ‘예외’를 요구해야 하는 중압감에 난감해하는 정부의 속앓이가 가볍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가장 큰 딜레마는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남북간 공식협의 의제로 올리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시종일관 “단 한 명의 국군포로도, 납치된 민간인도 없다”며 현실적으로 버젓이 존재하는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다. 특히 한국전쟁에 따른 국군포로 문제는 1953년 정전협정을 통해 남북 쌍방간 포로교환이 끝나 국제법상으로도 종결됐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16쪽 관련기사 참조).

    때문에 정부는 송환 문제에 대해 무척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에 관한 남북간의 ‘교감’이 있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통일부 인도지원국의 한 관계자는 “잘 모른다”는 짧은 한마디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는 다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꾸준히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이를 위해 전담부서(과 단위)를 설치한다는 원칙은 섰지만 인력부족으로 아직 구체화된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8월23일, “직제 개편을 통해 통일부 내에 국군포로(납북자)를 담당할 전담부서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박장관의 발표가 여론을 의식한 ‘임기응변’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법한 대목이다.

    정부의 복안은 납북자`-`국군포로 송환 문제를 비전향 장기수 북송과 직접 연계시키지 않는 대신 냉전구조에서 파생된 ‘광의의 이산가족’ 범주에 포함시켜 무르익는 화해 분위기에 맞춰 조용히 다룬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이 이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돌려주지 않는 한 이들을 빼내올 방법은 없다. 또 한창 달아오른 북한의 대남 화해협력 제스처와 국제무대 진출로 모처럼 회복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가 이 문제로 자칫 손상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정부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비판의 핵심은 한마디로 정부가 협상 테이블에서 줏대 없이 북측에 끌려가는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단국대 정용석 교수(사회과학부)의 지적이다.

    “납북자 송환 없는 장기수만의 일방적 북송은 남북간 호혜적 송환의 형평성에 어긋난다. 이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접근자세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징표다. 또 정부의 대북정책은 ‘가시적 성과’를 위해 지나치게 서두르는 감이 있다.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성공단 개발사업 등 경협 논의나 대북 경제지원 속도를 한 고삐 늦추며 여유를 가져야 할 것이다.”

    6·15공동선언 당시 합의문에 포함된 비전향 장기수 문제와 달리, 납북자와 국군포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들 문제가 결국 ‘뜨거운 감자’로 남게 됐다는 것이다. 첫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주장이다.

    1985년 이산가족 교환방문 당시 남북적십자회담 대표를 맡기도 한 정교수는 “당시엔 금강산 관광비로 외화를 북한에 송금하지도 않았고 비료나 소떼를 몇차례씩 보내지 않아도 이산가족의 호혜적 교환방문이 이뤄졌다”며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 대가로 비전향 장기수 북송을 약속한 것이라면 이는 지나친 저자세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북한 눈치보기’에 연연하지 말고 강약을 조절하는 전략을 구사하라는 것이다.

    국군포로 송환 문제는 전쟁 직후의 처리 문제와 직결돼 있는 예민한 정치적 사안인 만큼 간단치 않다. 이에 비해 납북자 송환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할 문제다. 그러나 2차 장관급회담에서 납북자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더라도 새로운 난제는 뒤따른다. 정부가 납북자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북측과의 협상에서 이른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납북자 수는 454명. 반면 ‘납북자 가족모임’은 491명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2월 결성된 ‘납북자 가족모임’의 대표 최우영씨(31·1987년 1월 조업 중 납북돼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수용 중인 것으로 확인된 ‘동진27호’ 어로장 최종석씨(55)의 딸)는 “남한 내 가족들의 제보로 30명, 탈북자의 증언으로 7명의 납북자를 더 확인했다”며 “제보와 증언이 잇따르고 있어 납북자 수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씨의 이런 주장은 1970년 4월 납북됐다가 지난 98년 8월 탈북한 납북어민 이재근씨(62)의 증언에 힘입은 것이다. 이씨는 정부가 발표한 454명의 미귀환 납북자 명단에도 포함돼 있다. 경남 울산에 살고 있는 이씨의 형 재원씨(63)는 “동생이 탈북했다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알았으나 아직 소재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현재 제3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의 한 관계자는 “이씨의 소재에 관해 아무것도 아는 사실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씨의 증언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까닭은 그의 증언이 사실일 경우 납북자 송환을 위한 남북간 협상에서 남측이 취해야 할 ‘액션’의 행태가 달라져야 하고 그러한 노력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결과물’들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물론 납북자 수를 다시 파악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관계기관과 공조해 조사 중이지만 아직 결과를 발표하기엔 때가 이르다. 491명이라는 수치엔 ‘자진 월북자’가 포함돼 있을 수도 있다. 실사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어쨌든 납북자 송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부가 추진 중인 여러 대북 현안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힘들다. 그렇다면 ‘납북자 구하기’의 해법은 어떤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야 할까.

    “일단 자기 의사에 반해 납북됐다가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된 22명(99년 국정원 발표)의 납북자들만이라도 빠른 시일 내에 남한으로 송환돼야 한다. 그들도 북한에서 양심의 자유를 ‘억압당한’ 일종의 비전향 장기수 아닌가.” 명지대 신율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등가성에 기반을 둔 상호주의와 인도주의를 적당히 절충하는 선에서 송환 문제의 물꼬를 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이 이제껏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온 마당에 이같은 요구에 쉽게 응할지는 의문이다.

    2차 장관급회담서 입장 전달, 북측 반응이 변수

    2차 장관급회담의 의제는 당초 약속대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위한 면회소 설치와 추가 상봉을 위한 논의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납북자 송환의 의제화에 대한 북한측의 태도다. 이산가족 상봉기간 내내 서울 워커힐호텔 앞에서 정부측의 성의 있는 송환 노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온 ‘납북자 가족모임’의 촉각은 온통 이번 회담에 향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지난 8월22일에 이어 8월27일에도 서울 수유리 한빛교회에서 북송대상 비전향 장기수들과의 만남 행사를 갖고 북에 있는 가족에 대한 서신 전달과 생사 확인을 부탁하며 사무친 그리움을 호소했다. 장기수 북송을 앞두고 불거진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 문제로 ‘미묘한’ 관계에 놓인 현실에도 아랑곳없이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인권 사각지대에서 남쪽을 바라볼 납북자와 국군포로들, 그리고 북녘 땅을 응시하며 혈육을 그리는 그들 가족의 눈물은 아직도 그치지 않았다. 그들의 국적은 모두 대한민국이며 그들의 인권은 살아 숨쉬고 싶어한다. 헌법상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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